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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씨앗문장 | 방일하는 자 가운데 방일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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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안 작성일17-12-21 08:52 조회1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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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일하는 자 가운데 방일하지 않고

잠자는 자 가운데 크게 깨어 있는 님,

아주 지혜로운 님은

마치 준마가 둔마를 제치듯 나아간다.   (게송 26,27)

 

두 수행승이 부처님에게서 명상주제를 받고 정진하기 위해 숲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한 수행승은 아침 일찍부터 모닥불을 피우고 화롯가에 앉아 새내기 수행승들과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른 한 수행승은 수행에 정진하면서 게으른 동료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이렇게 충고했다. 

 

“형제여, 수행승은 마땅히 주의력 깊게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정신을 집중시켜서 그것들의 본래적인 모습을 깨달으려는 일념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러지 않고 어떻게 네 군데의 낮은 세계(수라, 축생, 아귀, 지옥)로부터 불어오는 괴로운 바람을 이겨내려 하오? 그런 사람은 머지않아 거기가 자기 집이 되고 말 것이오. 설사 부처님의 능력으로도 그런 방일한 사람을 구해낼 수 없소.”  

 

그러나 태만한 수행승은 동료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부지런한 수행승은 더 이상 충고하지 않았다. 게으른 수행승은 초저녁을 화롯가에서 따뜻하게 보내고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부지런한 동료가 걷기 정진을 마치고 좌선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방일한 자여, 숲 속에서 정진한다더니 결국 잠자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는구나. 부처님으로부터 수행주제를 받았으면 좀더 열성적으로 수행을 닦아야하지 않는가?”라고 비웃고는 정작 자기가 방에 들어가 잠들어 버렸다.

 

이러한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방일하지 않은 수행승은 열심히 정진하여 머지않아 깨달음을 이뤘다. 이에 비해 그의 동료는 주의력 없이 산만하고 방황하는 마음으로 게으름을 피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기가 지나고 그들은 싸바티시의 제따 숲으로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게으른 자는 부처님 앞에서 이미 거룩한 경지를 성취한 수행승을 비웃었다. “그는 부처님 곁을 떠나자마자 아무것도 실천한 것 없이 줄곧 잠만 잤을 뿐이고, 자신은 아침에 숯불을 피워 화롯불을 쬐면서 깨어있었지 잠을 자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부처님은 이에 대해 “너는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너는 노둔한 망아지, 둔마와 같고, 나의 아들(방일하지 않은 수행승)은 잘 달리는 준마와 같다”고 했다.

 

방일하지 않음(불방일, 不放逸)은 ‘지혜를 수반한 마음챙김’이다. 붓다가 명상을 통해 깨달은 지혜의 가르침이 그것에 녹아있다. 부지런한 수행승이 동료에게 충고한 말도 그것이다. ‘주의력 깊게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놓치지 말고, 그것들의 본래적인 모습을 깨달으려 노력하라’는 말. 

 

인간은 태어나기를 ‘탐진치(貪瞋痴)’의 존재로 태어난다. 우리 몸이 '다섯가지 존재의 집착다발(오온')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붓다가 발견한 지혜의 가르침이다. 그런 몸이 만들어내는 탐진치의 마음은 대부분 갈망과 집착에 끄달리는 아귀와 지옥의 마음이다. 그래서 괴롭다. 붓다는 그런 마음의 무상함을 보라는 말이다. 매 순간 일어나는 몸과 마음을 관(觀)하는 명상과 좌선수행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게으른 수행승은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기 어려워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일까?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다른 말이다. 그러고싶지 않은 것이다. 그는 아직 어리석은 무명 속에 있다. 그래서 방일하지 않음은 무지가 주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발심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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