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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좋다 | 확신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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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3-26 07:00 조회6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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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신이 필요한 때

 

 

 

 

 

 

질문 1 | 백수로 사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지금 학교를 자퇴하고 백수로 살고 있습니다. 백수로 공부하고 책 읽고 사는 게 재밌기는 한데 가끔씩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사회적인 기준으로 제 모습을 바라 봐서 그런 게 아닌가라고 이번에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사회적인 기준으로 저를 계속 비교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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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

우리나라의 유명한 어떤 생물학자가 근래에 어떤 대담집에서, 자기가 가장 행복하고 즐겁게 살면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했습니다. 자 바꿔 말합시다. 괴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가 되기도 하고 즐거운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가 되기도 해요. 이 ‘사’, 사회의 ‘사’는 모일 ‘사’인 거예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회가 있는데 괴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이 파장이 괴로운 사회로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존재하게 할 것인가를 연구하지 말고, 내가 그 사회에 들어갔을 때 내 기운이 여기에 어떤 파장으로 공명할 것인가를 체크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분은 그러더라니까요. 각 개인이 잘 사는 것이 사회가 잘 사는 것이라고. 

 

다만 옛날에는 그 개인이 잘 사는 방법을 잘난 사람들이 정해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말해줬어요. 그렇게 살면 월급도 주고 뭣도 주고 했지요. 그런데 앞으로는 그 사람들이 월급 줄 일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기본소득으로 가면. 바꿔 말하면, 이제 진짜 개인이 잘 사는 것이 사회가 잘 사는 사회로 들어가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백수인 내가 부끄럽지 않도록 나를 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부끄러움과 공명해요.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사회가 돼요. 자기가 처한 현상 자체는 혼자만 책임을 지고 있는 일도, 혼자 힘을 옴팡 써야 할 일도 아니에요. 사회라고 하는 것 자체가 짊어지고 있는 짐도 함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수인 내가 나를 부끄럽게 보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그 수행 내공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죠.

 

먼저 해야 될 일은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보는 이유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빨리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저런 이론으로 백수는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백수가 ‘다음 시대의 뭐다’라고 말해도 실제로는 부끄러운 나밖에 안 돼요. 백수로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하고, 그렇게 사는 내가 좋게 비치도록 심리 흐름에 대한 훈련을 하지 않는 이상, 여기 고선생님의 새로운 시대가 백수의 시대라고 말을 아무리 듣고 있어도 본인만 보면 단순히 부끄러운 사람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백수가 부끄러운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하는 것에 확신을 해야 해요.

 

스스로 ‘나는 부끄럽다’라고 정의를 내리는 순간 백수거나 백수가 아니거나를 떠나서 자신의 인생 자체가 부끄러운 인생이 되는 거예요.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역사가 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요즘 진화학을 보면 한 사람이 걸어가는 것이 우주의 역사가 걸어가는 것으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 다 똑같이 그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금생에 태어나 몇 가지를 가지고 잘났네, 부끄럽네 하는 것은 제가 늘 말합니다만 DNA의 처지에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백수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끄럽다고 정의를 내리는 것, 그것이 문제예요.

 

 

 

질문 2 | 확신이 없는데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기간제 교사를 6년 정도하고 쉬고 있습니다. 교사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제가 말하는 게 옳은 것도 아니고, 옳다는 확신도 없고, 나중에는 이 말들이 틀린 말이 될 수도 있는데, 뭘 이야기하고 가르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교과 지식만을 강요해서 가르칠 필요도 못 느끼겠고, 앞으로의 사회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까 제가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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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

가르치는 것에는 거의 정답이 없어요. 정답을 몰라서 못 가르치는 게 아니고, 정답을 알아서 가르쳐줘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미 그것을 다른 식으로 해석 하도록 되어있어요 인식한다는 말은, 자기 나름의 독특한 세계 해석기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의 영국인들이 뭘 연구하고 있냐면 박쥐의 초음파가 무슨 말을 이야기하는가를 연구하고 있어요. a박쥐의 초음파가 발생할 때마다 이 소리를 듣고 b라는 박쥐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관찰하는 거예요. ‘아’라고 했더니 오른쪽으로 가고 ‘어’라고 했더니 왼쪽으로 간다. 이렇게 관찰을 계속 하는 거예요. 계속 관찰을 해서 어떤 신호가 올 때마다 움직임이 같으면, ‘아’ 라고 발음할 때는 오른쪽으로 가세요, ‘어’라고 발음 할 때는 왼쪽으로 가세요구나 라고 해석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몇 가지 언어들이 해석이 됐어요. 앞으로 연구가 계속 진척되면 박쥐의 초음파를 라디오처럼 받는 거예요. 라디오는 라디오파가 오는 것을 소리로 해석해주잖아요. 그 박쥐 초음파를 해석하는 라디오가 생기면 이제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그와 마찬가지로 각자 안에 자기 나름대로 세상에서 오는 정보파들을 해석하는 해석기를 가지고 있어요. 이 해석기에는 각자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누가 정답을 가르쳐줬다고 합시다. 이 정답 속에는 예를 들면 a라는 말이 있는데, a라는 말을 듣고 내가 어떤 감정으로 접근하는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주파수에 따라 달라요. 바꿔 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관계 속에서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애들이 그것을 듣고 여러 가지를 융합해서 뭘 하는 데에 하나씩, 조금씩 도움이 되는 거예요. 정답이 라는 것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것이 정답이다 아니다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답 자체가 없기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살아온 것이 자기 인생에서는 그 나름대로 정답이에요. 여기 모든 사람에 똑같이 통하는 정답이 있다고 하기 어려워요. 우리가 추상으로 ‘2+2는 4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조차도, 절대적인 2와 절대적인 2가 만났을 때 절대적인 4가 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어요. 그러니 2+2라고 했을 때, 그 안에 두 2가 먼지 하나도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 됐을 때만 4라고 하는 것을 쓸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세상에는 그렇게 먼지 하나도 차이 나지 않는 것이 물리법칙상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많아요. 그래서 체계자체가 항상 확률적 유사성이에요. 그런 것들의 결과는 거의 많은 부분에서 우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애들하고 만났을 때 그렇게 하면 돼요. 정답을 가르치는 게 아니고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이야기 했을 때 그 애가 자기 세상의 라디오를 만들 때 조금씩 도움이 되면 좋은 정도이다.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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