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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좋다 | 맛있는 게 있으면 그냥 맛있게 먹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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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9-24 07:00 조회3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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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게 있으면 그냥 맛있게 먹어도 괜찮아요.



 

 

감이당 일요대중지성팀 정리

 

 

 

 

질문 1│ 맛있는 걸 먹으면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자책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번 한 주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제 모습을 글을 쓰면서 발견했는데요. 이중적인 모습들이 있습니다. 맛있는 걸 먹으면 맛있다고 느끼면 되는데, 살찔까봐 걱정하고 괴로워합니다. 먹고 그냥 살이 찌든가, 아니면 안 먹고 살이 안찌면 되는데 어느 하나 결정을 못하고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자의식이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혼자 상처도 많이 받고, 망상도 많습니다. 친구는 그냥 화장실에 간 건데, 걔가 나한테서 도망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구요. 이중적인 제 모습 때문에 생기는 혼란과 자의식이 커서 자책하는 제 마음이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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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스님 

우선 그렇게 된 것에 대해서는 자기 책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내가 세계를 보는 세계상은 나 혼자서만 만든 것처럼 보여도, 실제는 어머니 뱃속에 있는 양수의 성분이 내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정합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집안 분위기, 시대와 마을, 학교의 분위기 등등이 내 생각의 지도에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미쳐요. 더군다나 신경세포가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생각길이 있어요. 이것은 내 의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만들어진 이중성이든 삼중성이든 더 많은 다중성이든 그것 자체를 가지고 자기를 탓할 수 없어요. 그리고 지금같이 어린 학생들은 부모님들이 맞벌이하는 경우가 많아요. (맞벌이 안 해도 그럴 수 있지만) 그러면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주변 사람이 부족해요. 그런 경우, 어렸을 때부터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맞춰가려는 성향이 강해요. 그러니까 나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만, 다른 여러 가지 환경 때문에 거기에 맞추는 거예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젊은 여자 연예인들이 나와서 애교떨고 그렇잖아요. 속으로는 실제로 그렇게 즐겁게 하고 싶은 여성들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청자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거랑 똑같아요. 어렸을 때 우리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식으로 되어 있어요. 나는 하고 싶지 않은데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은 환경에서 두 가지 길, 세 가지 길이 만들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것에 대해 자기 잘못이라고 하면 안돼요. 사회나 환경도 상당히 많은 책임을 공동으로 지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전적으로 사회 책임이라고 하면 안 되고요.

 

두 번째로, 친구가 아무 생각 없이 간 건데, 마치 내 뜻이 아닌 일이 벌어졌다고 해석하기가 쉬워요. 그런 것을 보면 나는 이런 사건들을 이렇게 해석하도록 하는 해석의 통로를 가지고 있구나,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도 아니고 전적으로 사회 책임도 아니구나, 그렇게 보는 훈련이 필요해요.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어요. 그 다음에 이제 호흡하듯이 잘 살펴서, 이것은 해석의 통로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지 실제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자꾸 떠올려야 해요. 꿈을 깨고 나면 현실적으로 그 생각이 오래 가지 않잖아요. 꿈인 줄 알고 나면 거기에 크게 집착하지 않아요. 그렇듯이 친구가 가는 것이 만들어진 해석 채널에 의한 꿈과 같다고 보세요. 자꾸 그렇게 생각하면 그 일에 대해 아까처럼 강하게 감정이나 사고의 연속이 되지 않아요.

 

그리고 맛있는 거 먹는 문제. 우리 안에는 남들이 원해서 해야 된다고 만들어진 사고의 축이 굉장히 많아요. 한 3년 전에 영국에서 10대 모델이 죽었어요. 가장 큰 이유는, 모델이 살이 찌면 이익이 없어지기 때문이에요. 또래 모델들보다도 너무나 적게 먹다보니 나중에는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하게 돼서 결과적으로 굶어 죽었어요. 옛날에는 카메라가 찍으면 좀 퉁퉁하게 보였어요. 그래서 몸을 줄이려고 했어요. 남성들에게는 별로 안 그러는데 여성들한테 굉장히 그걸 요구했어요. 그래서 살찌는 것을 먹는 사람들을 마치 자기 관리를 못하는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실제로 맛있는 걸 먹고 열심히 놀면 관계없는데, 그렇게 노는 것 자체가 마치 여성이 자기 관리를 못한 것처럼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많아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수십만 명이 연예인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연예인의 가장 기본 특징이, 여성들은 살이 쫙 빠졌어요. 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 나한테 내가 의식적으로 주도적으로 하는 걸로 보여도 실상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것으로 자기를 끌고 가는 거예요. 맛있는 게 있으면 그냥 맛있게 먹어도 괜찮아요. 지금까지는 그런 것들이 정답인 것처럼 주어지고 정답들을 통해서 세상을 보다 보니 내가 잘못한 것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맛있는 게 있으면 맛있게 먹는 훈련을 하세요. 그리고 먹고 나서 몸을 튼튼히 하려면 적당히 뛰어 놀면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 먹는 것을 볼 때 내가 만들어놓은 이미지는 지금 당장 고쳐지지 않아요. 그런데 방금처럼 이것은 나와 사회 등등이 암묵적으로 사실이 아닌데도 사실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자꾸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맛있게 드시고 열심히 뛰어놀면 됩니다.

 

 

 

질문 2│우울증 약을 끊고 나니 멍하고 힘이 없습니다.

작년에 일 년 동안 우울증 약을 먹었는데, 약에 의존하는 거 같아 약을 끊었어요. 지금은 직장을 잡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냥 멍하고, 힘이 없고, 에너지가 자꾸 빠져 나가는 거 같아요. 이게 제가 문제인 건지 아니면 양생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그런 건지, 어떻게 하면 이걸 좀 잡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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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스님 

 

어떤 변호사가 종편인가 뭐 어디 나와 가지고 정치인들하고 토론을 할 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정치인이 ‘법은 약자들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느냐’ 그렇게 말을 하니까 변호사가 하는 말이 자기들이 학교에서 배울 때는 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법이라고 배웠다고 그래요. 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법이라고 배웠지 약자들을 위한 법이라고 배운 적이 없대요. 우리는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실제 변호사 말은 그렇지 않다 그래요.

 

요즘 판결 한번 쭉 보세요. 그러면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대부분 갑이 저지른 일은 좀 더 너그럽게 봐주고 을이 당하는 일은 굉장히 법대로 잘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법의 정신이에요. 지금 세상의 모든 법의 정신이 그런 거예요. 그러면 거기서 직장에 가면은 알게 모르게 이런 것들이 많이 갖춰져 가지고, 그 직장이 갑을에 대해서 그런 관계를 잘 설정했으면 (일 자체가 싫은 게 아니고)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가치가 증명이 되지 않아요. 월급을 많이 받든 적게 받는 것을 떠나 가지고, 그러면 그 직장에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자기한테는 우울한 쪽으로 나타나요. 그래서 한국의 젊은이라든가 가난한 사람들이 우울증이 많고 자살이 많고 그런 것은 갑이 아니면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크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기준은 돈을 얼마 가지고 있느냐는 거예요.

 

저는 근래에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은 그분이 인도에서 이재용씨를 만나는 순간 딱 느낌이 권력이 이동됐구나, 라고 느꼈어요. 정치권력에서 경제 권력으로 이동됐는데, 한 일 년 동안 경제 권력들이 대충 보고 있는 거지요. 거기서 계속 떠들면 고용을 안 하는 거예요. 고용을 강제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인제 가서 고용을 좀 많이 해 달라고 상호 이야기했다지만 심리적으로는 이미 갑을 관계가 바뀌어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직장 등등의 문화 등등이 내가 월급을 많이 받고 적게 받고를 떠나서 나로 하여금 존재가 마치 비천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상황으로 계속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이 본인의 우울증이 돼요. 그중에 그런 상태에서 어떤 사람이 별 말도 아닌데 특히 거기에 상사가 나이도 좀 어린 사람이 있거나 하면은 굉장히 이것이 오래 가는 거예요. 금방 자기 신체의 여러 감정 채널들로 하여금 ‘살고 싶은 세상이 아닌데’, 이런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이런 일들이 생겨요. 그래서 (중요한 건) 그 일하고 월급만이 아니에요. 거기에서 그런 사람들이 주는 언어나 행동으로 자기의 존재 가치가 증명된다고 보는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어디 가서나 그렇게 되기가 쉬워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잘못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적당한 선에서 자기 의지를 이야기할 수 있고, 분노할 수 있고 하는 힘을 길러내지 않으면 착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내부적으로는 굉장히 비참하고 우울한 것을 쌓아가는 거예요. 착한 것이 답이 아니에요.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중산층이 가지고 있는 5가지 덕목 중 하나가 공분이에요. 이런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이렇게 하면 안 될 때 함께 공분하는 네트워킹이 형성되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함께 공분하는 네트워크가 거의 형성이 안 돼 있어요. 그래서 이제 서서히 그런 게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도 모일까 모르겠습니다만 그 어떤 도지사의 판결에서 여성들이 모인다 하잖아요. 그런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사회적 공분, 사회적 공분은 혼자 아파하고 욕하고 성내는 거랑 다른 거예요. 거의 함께 사회를 바꿔가는 축제와 비슷한 거예요. 그것의 가장 큰 예가 촛불집회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조금씩 그런 것들이 형성되어 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 그런 신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함께 그런 일을 할 수 있거나 내가 해서 감내되는 손해를, 처음 하는 사람은 손해를 감당해야 해요. 그런 일을 했을 때 사람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다른 식으로 증명되면 그런 일들이 점점 적어지는 거예요.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갑들이.

 

그리고 거기에 저항을 하게 되면, 예를 들어 삼성을 상대로 재판에서 이길 수가 거의 없어요. 왜 없습니까? 왜냐면 거기는 굉장히 돈을 줘서 초빙한 유능한 변호사 그룹들이 있어요. 그래서 전문적으로 이런 것을 해요. 그런데 거기에 있는 ‘반올림’ 같은 데에는 경제적 사정도 안 좋고 힘도 없어 가지고 백전백패가 되는데, 촛불 등등을 통한 사회적 공분의 강도가 커지니까 삼성도 하나 둘씩 양보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전에는 거의 90대 10 정도로 이렇게 하다가 지금은 80대 20 정도로. 아직도 50 대 50은 한참 남았지만은 조금씩 이것이 공분의 힘이고, 이 공분이 인간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일이나 월급만이 자기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것이 없어도 나는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라고 하는 자기애가 정당하게 만들어져야 돼요. 그런데 그런 것 아니고 만들어진 가치 체계로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면 0.1% 갑을 제외하고는 그 존재를 증명할 길이 없어요. 전혀 그것은 존재를 증명하는 가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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