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심심합니다 > 불교가좋다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양력 2018/12/10 월요일
음력 2018/11/4

절기

불교가좋다

불교가좋다 | 사는 게 심심합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MVQ 작성일18-11-12 07:00 조회200회 댓글0건

본문

 

  

 

사는 게 심심합니다

 

 

 

 

요대중지성팀 정리

 

질문1 | 요즘 들어, 사는 게 심심합니다

 

요새 심심하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특히 돈을 쓰는 일은 더 재미가 없는 거 같고요. 친구 등 누군가 같이 하는 일이 재밌게 느껴집니다.

  

 

정화스님


누군가 같이 해야 재밌다는 것은 저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저는 혼자 있어도 재미도 없지만 싫지도 않아요. 책도 보고 신문도 봐요. 저는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얻기 위해 신문을 하루에 3부씩 봅니다. 매일 신문 사러 나가야 해요. 기왕이면 집에서 가까운 데서 사지 않고 멀리서 신문을 사고 커피 한잔 먹고 글 쓸 걸 가지고 가서 한 몇 시간 써요. 이런 식으로 무엇이든 자기가 하는 일을 만들어서 습관을 들여야 해요.

 

요즘 시대의 특징을 보자면 누구라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어요. 그 이야기 속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내 경험과 간접경험이 잘 버무려져야 다른 사람이 들을 만해요. 그런데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해요. 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시대에요. 저도 책을 열 권이나 내었는데 별로 읽는 사람도 없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면 들어줄 만한 컨텐츠를 만들어야 해요. 앞으로 젊은 사람들은 AI와 이야기 할 만큼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거예요. 소설을 AI가 쓰는 거예요.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아까 말한 대로 6, 7만 년 전에 생긴 문화적 소양입니다. 바꿔 말하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누구라도 노동으로부터 벗어나서 문화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시대에 우리가 들어왔어요. 로봇이나 AI의 도움을 통해서. 우리들의 직업을 뺏어갔지만 사람이 직업이 없는데도 정부가 ‘너 직업 없으니까 굶어죽어’, 이렇게 해서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너 이거 사’, 라고 언젠가는 계속 만들어줘야 하는 시대가 정치인들에게도 당연한 과제로 와있어요. 그래서 이야기하는 것이 ‘로봇한테 세금 먹이자’, ‘기본소득 주자’, ‘아무 일도 안하는데 혼자 살 수 있는 돈을 주자.’

 

그런데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 있어요. 내가 늙어죽을 때까지 하루 세 끼 먹고 어느 정도 살만한 돈을 정부가 보증을 한다. 이 말로 인해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청나게 없어질 수 있어요. 기본소득을 준다는 것이 엄청나게 느껴지지만 바꿔 말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어지는 사회를 만들어내면 정부가 다른 것에서 지출되는, 즉 불안을 현실화시키는 안 좋은 사건들이 현저히 줄어들어서 처음에는 세금을 왕창 집어넣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훨씬 안전한 사회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심심하다’라는 말이 뭐냐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더 이상 재미없다고, 몸이 ‘다르게 살아’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다르게 살 것인가? 옛날 사람들 이야기 중에서 남아 있는 예를 들어 논어라는 책은 자기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하는 거예요. 듣는 사람도 굉장히 뭔가 있고 그 당시에만 설득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2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설득력이 있는 거예요.

 

지금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별로 없어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들어주지 않는 시대라고 했잖아요. 2500년 동안이라도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을 만큼 우리가 컨텐츠를 만드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래야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해요. 그러면 심심하지 않아요. 주변에서 가서 이야기하다 보니까 ‘재미가 있어’, 그러면 그런 것이 모여들어요. 훈련해야 해요.

  

 

c87bd60e4b73b106bcd67d15ebb2d86c_1541310 

‘심심하다’라는 말이 뭐냐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더 이상 재미없다고,

몸이 ‘다르게 살아’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질문2 | 한계를 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제가 스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은 제가 시작은 잘하는데, 마무리를 약간 못하는 점이 있어요. 실천을 마무리를 잘 할 수 있는 것 질문 한 가지랑, 두 번째 질문은 공부를 하건 무언가를 했을 때 한계가 오잖아요. 그 한계를 넘는 것을 잘 못 하는 것 같다는 거예요.

  

 


정화스님

 

한계를 넘는 것은 전체적으로 사유의 양이 일정량을 넘어야 돼요. 그것이 넘기 전까지는 극복이 안 일어나요. 두 번째는 자기 하는 일에 대해서 그 과정 자체를 충분히 잘했다고 자기한테 늘 말해줘야 돼요.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그 과정을 충분히 납득하질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 이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면 결론을 못내요. 내가 내 스스로 결론을 못내는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일도 그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 하는 일들은 자기가 하는 과정과 내는 결론 밖에 자기 인생이 없어요.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할지라도 ‘내 인생인데’라고 말하는 훈련을 계속하다보면, 그때그때마다 결론이 생겨요. 결론에 충실하려고 하고 사유의 변화가 일어나려면, 지식 정보량이 일정히 쌓여야 돼요.

 

 

c87bd60e4b73b106bcd67d15ebb2d86c_1541310 

한계를 넘는 것은 전체적으로 사유의 양이 일정량을 넘어야 돼요.

 

 

옛날 사람들은 말도 많이 했지만, 듣기도 계속 했어요. 그래서 직접적인 경험과 간접적인 경험이 풍부해지는데, 대부분이 여행가들이에요. 부처님도 깨닫고 나서 49년 동안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만한 땅을 계속 걸어 다녀요. 각국마다 이야기가 많아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아요. 사유의 양들이 많아지고 그 정보의 양이 일정을 넘어서 자기의 색깔이 만들어졌을 때, 들을만한 이야기가 돼요. 그 다음부터는 다른 색깔이 형성되는데 다른 사람들이 들어보니까 '그래'라고 말할 수 있는 신체가 만들어져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잘 살고 있으면서도 불안해요. 왜 불안하냐면 6-7만 년 전에 처음으로 사람들은 내일이라는 것을 추상하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내일이라는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내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 ‘내일은 이래야지, 뭐가 오겠지’라는 자기 추상과 경험한 내일이 다르니까, 추상을 하면서 불안해요. 사람들은 불안의 대가로 추상을 믿었다고 봐요. 불안이 커졌어요.

 

내일은 추상한대로 안 이루어지는 게 원칙이에요. 할 수 있는 일은 추상만 하는 거예요. 인제 괴로움을 감수해야 해요. 불안 하지 않은 내일을 만들 수가 없어요. 지금 미래에 대한 불안은 추상을 통해서 미래를 준비하며 생기면서 동시에 병이에요. 동시에 결론이 똑같은 거예요. 결론이 되어버리면 여기에 대해서 누군가 무슨 말을 할 때 결론을 못내요. 외부의 눈에 너무 기대한 것에 내적 불안이 삽입되면 될 수 없어요. 할머니들이 글을 배워서 글을 쓰다보면, 글자를 모르시는 할머니들이 시를 쓰다보면 굉장히 감동적인 글을 쓰는 거예요. 그분들이 이 글을 써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 기대하지 않는 거예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를 써온 시인은 불안이 있지만, 생전 글을 몰랐던 시골 할머니는 글을 배워서 시를 쓰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에요. 다른 사람이 좋아해 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동시에 경험, 여행의 폭과 넓이만큼 바뀌어요. 그 여행은 직접 갈수도 있고, 책을 통해서일 수도 있어요. 그 힘이 일정량이 쌓여야 인형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게 되요. 세상에 나왔지만 자유를 견디지 못해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되요.

 

앞으로의 사회는 일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사회가 오는 거예요. 일자리로 돌아갈 수 없어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정부에서 일자리를 만들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로봇 사용률이 전 세계에서 우리가 1등이에요. 그리고 굉장히 빨리 빨리 AI로봇을 도입하고 있는데 암센터에서 들어오는 그 로봇은 그 1300만 페이지 암 지식이 그대로 다 들어있어요. 보이는 것을 필요하면 바로 찾아 쓸 수 있어요. 아울러서 매년 새로 나오는 암 논문을 단 몇 분이면 완벽하게 습득해요. 전 세계 어떤 의사도 그럴 순 없어요. 그러면은 로봇과 의사의 협진을 받은 환자가 잘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꿔 말하면 병원에서 이제는 로봇의사를 안 쓸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죠. 그리고 이제 또 AI로봇에 대법원 판례를 딱 집어넣으면 전 세계에 있는 어떤 변호사보다도 그 분야의 판례를 바로바로 해결해 버립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판사가 판례 연구를 AI로봇에게 맡겨요. 앞으로는 다 그렇게 됩니다. 계속 그렇게 해서 이제 인간은 하루에 4시간만 일하고 노는 것이지요. 50년 이후에 그렇게 될 것 같은데 따라서 청소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됩니다. 지금 은퇴한 분들이 많이 당황스러워 해요. 앞으로 50년은 살아야 돼요. 그 50년의 삶을 다른 사람들이 들어줄 만한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옛날로 치면 전부 다 이야기꾼이고 그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전이에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mail : mvqblo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