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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좋다 | 진정한 수행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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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9-01-14 07:00 조회2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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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수행이란 무엇인가

감이당 일요 대중지성팀 정리 

 

 

질문자 1 : 어떻게 해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까요?

1년 동안 공부하면서 일상에서 접하지 않았던 철학, 경제 책을 접했습니다. 1년 동안 공부하며, 책에서 엄청난 답을 찾으려고 하는 제 모습을 본 것 같아요. 재밌게 하려고 왔는데, 점점 더 대단한 것을 찾으려고 하는 저의 모습을 발견했어요. 나 스스로가 ‘지금 책 읽는 것도 나 자신이 노동하는 것처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특히 감이당은 공부로 실험하며 다른 방식으로 산다고 해서 왔는데, 아직 그런 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공부를 삶에서 재미있게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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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


어떤 사실을 판단하려면, 그 사실에 대해서 가장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과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읽어보니까. 그래서 인문서적을 몇 권 읽을 때 반드시 과학서적을 끼워 가지고 다른 곳에서라도 그것을 읽어서 그것을 연결시키는 힘을 자기가 만들어야 해요.

두 번째,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이 보는 세계상을 써놓은 거예요. 요즘 뇌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지구에는 70억 개의 세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각 사람마다 다른 세계상을 가지고 지구와 우주와 접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한 우주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우주에 접속하고 있는 자기의 지도는 각 사람마다 다르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가 70억 개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훌륭한 사람이 책을 썼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분이 접속한 세계 속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거기에서 어떤 부분은 나와 공감하는 것도 있겠지만, 다른 부분들은 전혀 나와 다른 세계상을 펼쳐놓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세계관으로 이야기하려면 실패할 확률이 있습니다.

독서에는 일정한 양이 있어야 이것들이 안에서 화학작용을 해서 자기 이야기를 붙여서 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을 때, 과학책을 어느 정도 읽은 다음에, 인문책을 읽고, 그것을 자기와 대면해서 글을 쓰는 훈련을 하면 좋겠습니다. 

 

사실을 밝히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자기 이야기는 자기 세계상과 접속된 이야기를 써야합니다. 그 중에서 다른 사람과 공감되는 부분은 좋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도 어떤 부분은 전혀 다른 혼자만의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공감된 부분만 자꾸 쓴다면 그것 또한 헛헛할 수 있습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한테 공감되는 이야기를 써주기는 하는데, 실제로 자기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드는 것은, 공감되지 않는 부분조차도 자기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성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펼칠 수 있는 힘은 경험과 독서. 독서는 간접 경험인데, 간접 경험들을 인문서적만 보지 말고, 과학서적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을 몇 년간 쭉 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주로 물리, 진화론, 뇌과학 이 세 부분을 중심으로 보고 있습니다.

 

 

 

질문자 2 : 진정한 수행인란 무엇인가요?

여러 번 정화스님의 강의를 챙겨본 적이 있습니다. 현재 동국대에서 서양철학공부 중이고 출가한지 14년째 됩니다. 처음 출가시작 할 때는 성철스님이나 숭산스님처럼 도를 이루고 일가를 이루는 것을 원을 세웠으나 아직 확신을 가지지도 못했고 깨달음에 이르지도 못한 듯합니다. 주변에서 명상이나 수행과정 중에 ‘공’을 체험했다고 하는 이도 더러 보았으나 그들이 그 후에 생활하는 것을 볼 때 이전과 삶과 그렇게 달라져있어 보이진 않아 ‘과연 저게 깨달음일까’라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또한 저 자신의 근기에 대한 확신도 없어 요즘은 믿음과 깨달음 부분은 잠시 괄호쳐두고 제가 하고 싶은 공부나 하자는 마음에서 동국대석사과정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오래잡고 있던 세계가 희미해짐에 따라 방황하는 마음도 커지고 ‘나는 왜 승복을 입고 있나’라는 자괴감도 생깁니다. ‘진정한 수행은 무엇인가’ ‘승려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라는 고민이 늘 마음 한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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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


우리나라의 불교의 주류는 대승불교인데 그 뜻은 ‘생명으로서 하나 됨’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개체로서 하나하나의 생명활동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큰 수레 하나에 타고 있는 생명공동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재물보시’ ‘복 보시’ ‘무외보시’ 등만 가지고도 깨달음을 완전하게 이룰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보시해야 하는 이유가 우리는 생명공동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연기의 핵심이지요. 스님께서 이 일을 하고 있으면 불교수행을 하는 것이고 하지 않는다면 생명공동체적 삶과 유리된 현상이 자기 앞에 보이기 시작하지요. 헛헛함이 생긴다거나 활기가 없다거나 하면서요. 출발은 ‘생명공동체’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이 말과 생각과 행동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신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이 수행인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한 이들 즉, ‘공’을 체험하고도 행동이 전과 같다는 사람들은 이 신체화과정이 빠져서 그렇습니다.

그 체험을 해석하는 것의 문제이기도 한데요. 전 세계적으로 그런 체험은 불교와 상관없는 모임이나 단체에서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명상수행을 하게 되면 3층 구조의 뇌에서 1,2층이 담당하는 부분이 희미해지면서 일상의 시공간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대승에서 말하는 생명공동체 혹은 연기적인 부분을 체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말씀하신 그런 분들은 ‘공’ 체험은 했으나 그것을 불교적으로 해석하는 기반이 안 되어있거나 행동할 신체를 못 만든 것이지요. 어떤 것을 미워하고 좋아하는 감정 없이 신체를 만드는 과정이 초지, 2지, 3지....... 등으로 나뉘는데요. 초지에만 들어가도 내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바 없이 몸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경험이 중요한 것도 있지만 그 경험들을 온전히 신체화 했느냐 안했느냐가 그 답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신체화 된 것들은 퇴보가 거의 안 일어납니다. 7지, 8지, 9지, 10지는 거의 이타행위를 하기 위한 신체가 되어가는 과정이지요. 6지까지는 이타도 하지만 자신의 해탈이 더 중심이 되는 수행이지만 7지부터는 이 힘을 가지고 생명공동체로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원을 세우고 힘을 키우며 방편을 가지고 이타적 지혜의 행을 펼치게 됩니다. 경험 없으면 계획만 하다말고 경험은 있는데 해석하지 않으면 다른 것이 되고 경험은 있되 신체화 되지 않으면 그 경험조차 퇴보하게 됩니다. 기억의 정보 층에 있는, 불교식 용어 아뢰야식의 운용방법에 일정부분의 수행강도가 들어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임계점을 넘지 않으면 지식이 지혜로 바뀌지 못합니다. 완벽하게 신체를 만드는 것이 습을 떨치는 일입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어떤 상황이 되면 지혜롭게 펼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일을 안 해 놓으면 ‘사이비’가 되기 쉽습니다.

 

[질문자] 몸을 만드는 것이란 무엇인가요?

[정화스님] 그런 경험이 오면 그 경험 속에 온전히 깊이 들어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생각만하면 그 속을 언제라도 자유자재로 들락날락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순간에 ‘공’을 생각 만해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상태를 신체화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앉아서 집중만 해도 온몸의 감각지가 사라지는 경험에 드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게 신체화이지요. 그런 공체험이 왔을 때 온전히 그것이 자기 뜻에 따라서 발생하고 사라질 때까지 밀고 나가야해요. 다른 부분은 최소화시켜야죠. 그래서 아라한이 될 때까지 나아가는 것이죠. 아라한은, 예를 들어 저녁에 잠시 잠이 들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의식과 몸이 바로 그 상태에 이르는 겁니다. 그리고 8시간 뒤에 깨고 싶다면 또 그렇게 깨어나는 것이죠. 완벽한 깨어남과 완전함 잠 듦. 그것이 아라한의 208가지 수행 중 한 가지입니다.

 

[질문자] 수행방법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나요? 화두수행이나 남방 수행 등 어떤 것이라도?

 

[정화스님] 그건 상관없고 경험한 것이 신체화 되도록 하는 것이 다만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을 늘려나가면 되는데 논서에 의하면 16가지 단계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특이체험 끝에 16번째 단계는 이때까지 한 것을 생각만 하면 바로 그런 상태가 되는 경지라고 합니다. 빛을 경험한 단계가 아니라 빛을 펼치는 단계지요. 아라한이 될 때까지 수행, 또 수행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질문자] 그런데 저는 그런 행을 않고 학교에서 책만 보고 있는데 어떡하지요?

[정화스님] 조금 전에 말한 대로 보시만 해도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 1단계는 연기적으로 생명공동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다음은 보시 행을 하는 것이지요. 생각과 행위를 하는데 머무르지 않는 것, 무주상이라는 신체를 만드는 것이지요. 스님 같은 경우는 학습을 해가지고 ‘법 보시’를 할 수 있는 신체를 만들어 펼칠 때 무주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는 기본적으로는 보시입니다. 보시의 특징은 저절로 무주하는 마음을 만드는 것이고 그것이 되지 않으면 그저 선업을 쌓는 것이지요. 무주하는 마음이 되었을 때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 대승의 사상이고 육조단경 같은 데에서는 무주로 이 도를 쌓는다고 말하지요.

 

[질문자] 무주란 머무르지 않음이니 ‘아상’이 먼저 없어져야 하는 거겠지요?

[정화스님] 처음엔 쉽지 않으나 (아상에 상관없이) 계속 하다보면 나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가 옵니다. 이 상태가 명상에서 공성체험을 하는 상태와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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