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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씨앗문장 | 우리는 어떻게 자기 견해에 사로잡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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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물길 작성일17-11-15 09:06 조회4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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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생각으로 남을 비방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진실이라고 믿으며 비방하는 것이다.

그러니 성자는 비방이 생겨나더라도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자에게는 어디에도 장애가 없다.

 

욕망에 끌리고 좋아하는 것에 붙들린다면,

어떻게 자기의 견해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 완전한 것이라고 완결지어

아는 것처럼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할 때는 고결한 삶을 산 사람은 우리처럼 찌질한 오해, 시기 질투, 구설수 등에 휩쓸릴 일이 없을 것 같다. 내 딴엔 착하게, 진실하게, 선하게 살다가 횡액을 당하면 더 화가 나고 억울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착하게 산 내가 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참고 살았는데저렇게 방탕한 사람은 괜찮고 어째서 내가? 그간 착하게 살려 했던 노력만큼 더 억울해지는 셈이니 그간 애썼던 게 외려 화로 돌아온 꼴이다. 억울한 마음은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미움도 증폭시킨다. 때론 이 모든게 다 내가 모자라서 생긴 일이다하는 자괴감도 든다. 모처럼 잘 살아보려던 마음도 부질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경을 보면 분명히 알게 된다. 붓다도 비방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대단한 인물치고 비방당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럼 그들과 나는 뭐가 다른 걸까?

 

여기 이 경은 얼토당토않은 음모와 그로인한 구설수에 시달리는 사건을 겪은 직후 붓다가 설한 것이다. 붓다는 비방이 생겨나더라도 관여하지 않는다, 장애가 없다라고 간단하게 말하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은 이렇게 간단치 않았다. 붓다의 명성이 높아지고 교세가 커지자 이를 시기한 이교도의 수행승들은 붓다가 거처하는 제따 숲으로 여자를 보냈다. 그녀에게 화환과 향료와 과일을 들려주고 누가 묻거든 고타마를 만나러 간다고 말하라고 시켰다. 매일 저녁 숲에 들어갔다가 아침에 나오던 그녀는 어느 날 숲 근처 수풀더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렇게 되자 인근 마을은 물론이고 승가 내부에서도 붓다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교도들은 시체를 들것에 싣고 다니면서 싸끼야의 수행승이 한 짓을 보라!”고 외쳤다. 정사, 살인, 의혹의 소용돌이가 폭풍처럼 모든 사람을 휩쓸었다. 붓다의 충실한 시자 아난다조차 이 곳을 떠나 피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붓다는 그 가운데 홀로 고요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답은 이 경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의 시작은 좀 이상하다. “그들은 진실이라고 믿으며 비방한다? 아무리 사악한 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라도 자기 스스로는 옳다고 믿고 있다는 말인가? 이건 좀체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쁜 줄 알고, 이게 비겁한 짓일 줄 알고도 욕망을 이기지 못해서 죄를 범하는 경우가 보통 아닌가? 경을 더 읽어보자. 욕망에 끌리고 좋아하는 것에 붙들린다면, 어떻게 자기의 견해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이건 욕망에 사로잡히면 자기 견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 같다. 그 자기견해란 스스로 완전한 것이라고 완결지어 아는 것일 테다.(이 경의 번역자는 가능한 한 직역을 추구해서 종종 우리 말로는 어색한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의미를 분석하기에는 직역이 더 나은 것 같다.) 자기 생각이 완전하다고 믿고 더 생각하지 않으려면 굉장히 높은 수준에 올라야 이 정도 확신을 가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들은 확신범인가?

 

아니다. 이들의 자기 확신은 욕망과 상관있다. 붓다는 욕망에 붙들려서야 어떻게 자기 견해를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묻고 있다. 이 말은 욕망이 자기견해를 만든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 견해란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견해다. 어떻게든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견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완벽한 논리가 그 안에서 구성된다 할지라도 결국은 이것은 집착이다. 욕망에 대한, 쾌락을 지속하기 위한 집착. 그리고 논리로 무장된 집착은 자신조차 완벽하게 속일 것이다. 붓다는 스스로 진실이라 믿는 것’, 소위 자기의 견해의 뿌리가 욕망임을 안다. 부당한 비방을 받아도 관여하지 않을 수 있는 붓다의 태도는 이러한 앎에서 비롯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생각, 견해의 뿌리에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는 채고 있었던 것 같다욕망을 견해 아래 숨기고 논리로 포장하면 나중엔 자기 생각이 진실되다고 믿게 된다. 욕망과 믿음은 결부되어 있다. 이 고리를 끊는 것은 환히 보고 환히 아는 것, 그뿐이라는 것을 이 경에서 다시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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