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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씨앗문장 | 누구에게 어떻게 자비를 베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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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물길 작성일17-10-11 08:53 조회1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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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생명이건 어떤 것이나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남김없이,

길다랗거나 커다란 것이나

중간 것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미세하거나 거친 것이거나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사는 것이나 가까이 사는 것이나

이미 생겨난 것이나 생겨날 것이나

모든 님들은 행복하여지이다.


서있거나 가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깨어있는 한

자애의 마음이 굳게 새겨지이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청정한 삶이옵니다.

 

 

불교는 평화와 자비의 종교이다, 라는 말은 흔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아힘사, 즉 불살생과 비폭력의 정신 그리고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자비. 당연한 말이겠지만, 여기에는 빈부와 신분에 따른 차별이 없다. 인간과 비인간에 따른 차별도 없다. 환경문제가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현대산업사회에서 불교를 호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 좋다. 그렇지만 자비심이라는 말은 뭔가 너무 거룩하고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안그래도 너무 거룩해서 거리감 느껴지는 자비라는 말에 클 대()자까지 붙여서 대자대비라고도 한다. 이쯤 되면 자비란 뭔가 특별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도 든다. 왜 우리는 이런 마음을 특별한 것이라고 여길까? 거꾸로 한번 생각해 보자. 자비심이 없는 사람이 있나? 그럼 이번엔 자비심이란 전혀 특별하지 않은 마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자비심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 안에 있는 자비심을 자각하면 쾌락과 욕망을 추구하는데 방해가 된다거나 하는.

 

마침 숫타니파타에 자비에 대한 경이 있다. 이름하여 <자애의 경>, 빠알리어로는 멧타숫타mettasutta이다. 이 경은 초기 불교의 경전 중 가장 유명한 수호경이며 지금도 남방불교국가에서 항상 외우는 예불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자애의 경>은 특별하고 지고한 상태를 위한 경이 아니라 대중이 일상적으로 암송하는 경이며 이 경을 읊는 자와 듣는 자 모두를 보호해주는 경이라는 말이다. 수호경이라는 단어에서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주문을 떠올린 나로서는 순간 자비와 수호의 조합이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맞다. 자비로운 마음을 증폭시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수호다!

 

재밌게도 이 <자애의 경>에는 우리가 어디의 누구를 향해 자비의 마음을 지녀야 할 지에 대한 방대한 리스트가 실려 있다.살아있는 생명이건 어떤 것이나,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남김없이, 길다랗거나 커다란 것이나, 중간 것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미세하거나 거친 것이거나,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사는 것이나 가까이 사는 것이나, 이미 생겨난 것이나 생겨날 것이나라니, 이 얼마나 세밀하고도 광범위한 목록인가! 소리내어 읽으면서 음미해보자. 생명과 비생명, 이 첫 목록에서 이미 우주 전체를 포섭했다. 그럼 나머지는 불필요한 반복이자 과잉된 표현의 낭비일까? 아니다. 이제 자비의 목록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변한다. 동물과 식물, 길이와 크기, 감촉에 따라 살피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멀리 사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아직 생겨나지 않는 것! 안이비설신의라는 우리 몸의 감각을 시공을 초월한 영역으로까지 확장하지 않으면 이런 리스트는 나올 수가 없다.

 

, 이런 전 우주적 대상에 대해 감각하고 전 우주적 존재에 대해 자비를 방사하는 존재라니, 멋지지 않은가. 이러한 마음을 어떠한 태도로 지녀야할까? 그 답 또한 명문. 이런 건 외워야 한다. 서 있거나 가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깨어있는 한, 자애의 마음이 굳게 새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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