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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좋다 | 그래도 좋아할 것인가 그러니 싫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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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9-10 07:00 조회3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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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좋아할 것인가 그러니 싫어할 것인가



감이당 일요대중지성팀 정리

질문 1│남편이 아이를 원하지 않아요.

올해 4월에 결혼을 했는데 연애를 오래 하고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연애할 때 남편이 '나는 애가 싫다'고 해서 그냥 그런 줄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결혼을 해서 아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자기는 정말로 애가 싫어서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연애를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렇게까지 아이를 싫어할 줄 몰라서 당황했습니다. 저도 꼭 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또 애 없이 살 생각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니라서 남편에게 '왜 애가 싫어?'라고 물어 봤어요. 제 남편 스타일이 '내가 왜 좋아?'라고 물으면 '그냥 좋아.' 라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애가 왜 싫어?'라고 물으면 '이런 부분 때문에 싫어'라고 이야기를 해 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냥 애가 싫어. 싫다고 했잖아'라고만 이야기를 해요. 저는 연애를 오래 하긴 했지만 결혼을 했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고, 또 요즘 불임도 많은데 애가 생길지 안생길지도 모르는 건데 이 부분에 대해서 남편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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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스님 

출산율에 대한 우리나라 통계가 앞으로는 0.9 이렇게 가요. 지금은 1.08인데 내년이 되면 0.9얼마가 된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결혼도 늦게 하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애를 갖고 싶지 않다는 사회에 진입을 한 거예요. 그런데 그 속에는 알게 모르게 굉장히 많은 게 들어 있어요.

좋게 말하면 '내가 사는 게 이런데 내 아들 딸들에게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게 무의식중에 있을 수도 있는 거고, 두 번째는 '지금 우리 사는 것도 버거운데 여러 가지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도 무의식 중에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것이 변하지 않는 한,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의식이 하는 게 아니에요. 이미 신체화되어 있는 인지통로가 '아기'라고 하는 것이 올라오는 순간 남편한테 '가져서는 안 돼.'라는 감정과 동시에 올라와요.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변연계라고 하는 뇌 중에서도 먼저 생긴 뇌가 작동을 해요. 훨씬 역사가 오래되었어요. '이성적으로 잘 생각 해 보니까~' 하는 것은 역사가 짧아요. 물론 이성과 서로 협력을 하기는 해도 무의식적으로 자기 살아온 어린 시절의 과거, 시대적 환경 등 남편에게는 '아기'라고 딱 하는 순간 '가져서는 안 돼.'라는 의지가 동시에 올라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애기를 자발적으로 갖는 걸 동의하긴 어려워요. 동시에 그런 상태에서 애를 가지면 그것을 견디는 걸 너무나 힘들어 하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예를 들면, 나는 애기만 생각하면 '갖고 싶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아이를 갖는 것이 즐거워' 둘이 극이 되어 있어요. 이게 풀리겠습니까? 안 풀려요. 살다가 어느 순간 이것이 얼음 녹듯이 녹아가지고 풀리기 전에는 그런 문제를 가지고 상의를 한다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요. 왜냐면 이미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싫어'라는 것이 아주 강력히 따라 오는 것이고 한 사람은 '좋아'라는 것이 따라 온 거예요. 이 두 개는 풀릴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아까 말한 대로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니까 싫어할 것인가, 내가 애기를 좋아해도 그냥 남편을 내가 좋아하는 감정으로 대할 것인가 그것 밖엔 없어요. 그 문제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상극이 딱 되어 있는 거예요. 해결 안 되는 거예요. 그런 상태에서 인생을 괴롭지 않게 사는 방법은 그런 남편을 그냥 어지간하면 좋아하는 것 밖에는 없어요. ‘그 생각이 바뀌면 좋아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60-70대까지 좋은 결혼생활을 못 만드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에요. '바뀌면 좋아할 것이다.'라고 하는 말은 거의 '내 결혼 생활은 슬픔으로 채워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하고 똑같아요.

이왕에 결혼하셨으니까 애기 문제 가지고 자기 인생을 괴롭게 할 이유가 없어요. ‘상극인데 어떻게 합니까.’ 이것은 부모니 논리니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것이 딱 올라오면 이성이 '이건 너무나 싫어요.'라고 말해버리는 거예요. 그 이야기 자꾸 하면 뭐가 되겠습니까? 부딪히는 것 밖에는 없죠. 살다가 남편이 생각이 변해서 애를 가지면 좋고, 또 나도 '애 갖기 싫어'라고 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 문제 가지고는 '이야기를 해서 한번 풀어 봅시다.'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거 고민할 것 없어요. 아무 고민하지 마세요. 오늘부터는 그냥 내가 하는 것은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이 좋아서 결혼 했으니까 좋아하겠습니다.' 라고 자기 생각을 연습 하는 거예요. 그것이 자기의 결혼생활을 괴롭게 하지 않을 방법이에요. 둘 중에 선택 하는 것이죠. 그래도 좋아할 것인가 그러니 싫어할 것인가.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내가 싫어하면 이 사람이 바꿀 것 같아요? 절대 안 바꿔요. 그러니까 괜히 감정 소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 2│제 생활이 변화하는 순간이 올까요?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최근에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고 좋아하는 일을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는데요. 하지만 그런 일이 잘 찾아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점점 시간은 가고 있는데 정말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여러 강연들을 보다보니까 다들 어떤 책이나 어떤 강연장에서 깨우쳐서 생활이 변화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여러 강연을 보면서 그런 변화 지점을 찾고 있는데요. 과연 저한테도 그런 순간이 올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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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스님 

 

아마도 그런 기회가 지금 말씀하시는 분께는 올 것 같아요. 왜 그러냐면 질문자의 고민과 질문의 강도가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고민과 질문의 강도가 커지지 않으면, 일정한 정도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수용기 크기가 작기 때문에 어떤 소리를 해도 아직 안 들려요. 계속 고민과 질문의 크기가 커져 가면 특별한 수용기의 확장기가 커져가다가 내부의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반대로 고민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으면 자기 것이 다른 것을 보는 통로가 열리지 않는 거예요.

 

질문자: 그런데 제가 긴 시간 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상태로 지내는 게 중고등학생 시절 이후 처음이에요. 저도 3개월 만에 뭘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는 아닌데 이렇게 자유 시간이 많아지니 자꾸 조급한 마음이 생깁니다. 스스로는 계속 두 가지 마음이 생겨요. ‘그래, 너 좀 더 오래 쉬어도 돼.’라고 생각하면서도 가만히 쉬고 있는 나를 인정 못하는 거예요. 지금의 제 모습이 한심하고 무능하게 느껴지고 ‘계속 이렇게 살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있습니다.

 

 

정화 스님: 그런 심리에 대해 써놓은 책이 있어요. 에리히 프롬이라는 철학자가 써놓은 책입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요. 우리는 자유를 온전히 느낄 수 없도록 신체화되어 있어요. 예를 들면, 인형의 집의 ‘로라’ 라고 하는 여성이 집을 뛰쳐나와요. 이렇게 뛰쳐나오니까 자기를 가두는 것으로부터는 벗어났어요. 그런데 그것을 견디지 못해요. 그래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요. 자유를 자기화할 수 있는 신체가 안 만들어졌기 때문에, 마치 그 전에 것은 싫지만 거기만 아니면 다른 울타리 속에 들어가면 마치 그것이 자기가 온전한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느끼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자유가 주어져도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만한 성숙한 신체가 못 된다는 것이 그 사람 책의 내용이에요.

 

그 다음에 에리히 프롬의 다른 책인 “건전한 사회”의 제2장을 보면, 자기가 자기한테 어떻게 소외되는가를 알 수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고 해요. 그 우상숭배의 가장 큰 것은 신인데, 신을 한번 그려보세요. 신은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없는 상태를 머릿속에 그린 것이 신이에요. 그것은 자기 인생의 롤 모델과 똑같아요. 말은 신이지만. 그 롤 모델을 막 그리고 있으면 내가 그 롤 모델의 품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뇌에서 느껴요. 배가 고픈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배부른 상태를 느끼는 것과 똑같아요. 그렇게 허상이 내부적으로 만들어져요. 거기 안에서 내 인생에서 절정의 기쁨을 경험하게 하는 불이 딱 켜져요. 그런데 그 불이 일생을 가는 것이 아니고, 또 불이 꺼져요. 그러면 또 자기 부족이 일어나요. 그래서 계속해서 자기존재를 허상의 존재로 비유해서 점점 무너져요. 그래서 완전무결한 신을 생각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이 완전하지 못한 것을 자각하게 돼요. 자기 자신이 왜 나는 이런 존재냐고 자기 자신을 미워해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이 커진 사람일수록 전부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기로 변해가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제대로 된 신앙 활동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삶을 잘 살아낼 수가 없어요. 그런 사람이 없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라는 말을 하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써놓은 책이, 그것을 잘 이야기 하는 책이 “존재냐 소유냐”란 책이에요. 존재로 살 것이냐 소유로 살 것이냐. 소유란 내가 가지고 있는 상장 같은 거예요. 얼굴의 상장, 권력의 상장, 재물의 상장. 그 상장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자기 존재가 빛나는 것이라고 착각해요. 그런 상장을 많이 가진 사람을 만나보세요. 그런 사람은 자기 존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해요. 상장은 상관이 없어요. 그런 상장 안에 사는 사람은 자기소외를 하게 되어 우상을 숭배하게 되고 자유를 누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뭔가 하고 있는 중이지만 자유를 온전히 존재가치로 지낼 수 있는 힘이 없는 거예요.

 

이제 어디를 찾아 가면은 안온한 어떤 곳에 들어가서 안정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좀 지나면 다시 자기를 불안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온전히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가 있어요. 이제 그런 질문과 고민을 가지고 있으니까 질문과 고민을 계속 하다보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기가 커져서 어느 날 툭 들어올 거예요. 3개월 정도 놀았으니까, 한 3년 정도 쓸 돈이 있으면 2년 9개월까지는 계속 놀다가 할 일을 찾아봐도 괜찮아요. 누가 뭐라 그러면 난 돈 떨어질 때까지 놀겠다고 하시면 돼요.

 

제가 아는 분 중에 글을 쓰는 여자 분이 있는데, 결혼을 했는지 이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이 직장을 뚝 다니다가 안 맞아서 직장을 때려 쳤어요. 그리고 월세 보증금을 빼서 천만 원 정도 가지고 인도 순례를 하고 그런 것을 글로 썼어요. 그런데 그 글이 잘 팔려서 돈을 전 재산보다 몇 배 더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그 번 돈을 주식에다 투자해서 바로 망했어요. 지금은 그냥 다시 여행기를 쓰면서 사시고 있어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 전에는 그냥 여행을 하면서 살려고 했는데 우연히 여행기록으로 쓴 책이 잘 팔려서 주식을 하게 되고, 망하고, 지금은 다시 글을 쓰고 살고 있는 거예요.

 

주식해서 일반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워요. 천국을 가는 것보다 더 어려워요. 가난한 사람이 돈 벌 확률은 어렵다는 거예요. 그 룰을 만들어놓은 사람들이 돈을 버는 거예요. 법이 을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요즘 내려진 한 판결을 보면, 이래요. 판사가 판결을 내릴 때, 너는 피해자다움이 없다고 하면서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고 가해자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거예요. 그것만이 아니라 사회는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많아요. 재판이 3심까지 가잖아요. 대법원에서는 대법관을 한 사람이 변호사로 명의만 빌려주면 (이름만 빌려주면 3천만 원을 줘요.) 대법관에서는 자기 동료가 변호사로 올라온 사건에 대해서는 바로 심의를 시작해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몇 년이고 계속 미뤄져요.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먼저 왔기 때문에 먼저 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할 순서가 정해져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는 사건을 먼저 하는 거예요. 일본에서는 일본징용사건은 계속 미룬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울타리 속에서 빠져나와서 사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 한, 뭐 그런대로 살긴 하겠지만 심란해요. 벌어놓은 돈이 있으면 투자해서 돈 벌 생각 말고 거의 떨어질 때까지 놀면서 이것저것 해보고 그러다가 적당히 벌어서 먹고살만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하면 돼요. 부자 될 생각은 아예 내려놓아야 해요. 아예 꿈틀거리지 말도록 해야 해요. 돈을 벌 수 없도록 되어있어요. 그리고 돈을 많이 벌어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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