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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되기 | Q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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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1-13 07:00 조회1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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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의 선물

 

 



설찬희 (1조)

 

 

2014년 겨울, 지금도 그렇지만 추운 밤 외출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모자와 장갑, 목도리에, 겹겹이 입어 지상의 우주인 모습으로 길을 나섰다. 송년 모임보다는 봄꽃 화사한 4~5월의 나들이가 나으련만, 친구들은 돌아가면서 문자로 당부했다. 꼭 나오라고. 

 

다행히도 매서운 바람이 불지 않았다. 시간에 늦을까봐 일찍 길을 나서서, 네이버 길 찾기로 지도를 확인하며 도착한 청담동 골목의 카페 겸 레스토랑. 중형 주택을 개조하여 만든 그 음식점은 접이식 창호를 이용하여 테라스 카페 분위기를 냈다. 그러나 겨울밤에 활짝 열린 유리문이라니! 안쪽의 열기와 바깥의 냉기가 부딪쳐서 창 표면에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혔다 흘러내렸다. 

 

초등학교 동기들 중 U가 제일 먼저 와있었다. 그다음은 P, K, G....... 약속 시간을 넘기고도 네다섯 명이 더 왔는데, 이렇게 오는 순서는 거의 반복되는 패턴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것에 대해 뭐라 하거나 변명하는 사람이 없다. 다른 모임이나 개인별 약속인 경우에는 불쾌한 표정을 짓거나 한마디라도 하는데, 초등 동기들 간에는 늦게 오건 말건 도착한 사람들끼리 얘기에 열중하느라 그렇다. 

 

희한한 건, 초등 동기들을 만나면 분위기가 초등학교 때의 그것으로, 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대학생 때의 모습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수업 종이 울리기 전 떠들어대는 악동들에게는 누가 일찍 오는지, 지각하는지는 아무 관심 사항이 아닌 것과 같았다.

  

년의 몸에 초등생의 기억이 버무려진 독특한 공기는 식사 시간과 이후에도 적용되었다. 그날 Q는 한턱을 내겠다고 했다.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진 그녀가 저녁 식사를 제안하자 평소보다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녀는 그날 모임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어서 모두들 그녀에게 맛있게 먹었다고 답례하며, 그녀의 말이라면 대부분 응, 응,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그랬을 터였다. 

  

그녀는 전자피아노를 수준급으로 치고 작곡도 하며 그림도 곧잘 그리고, 어학 실력은 탁월한 데다 친구들에게 살갑게 대한다. 단지 상당한 재산 덕에 그것을 관리하느라 그 소중한 재능이 빛을 펼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추측할 뿐이다. 그런 그녀에 대해서 친구들은 한 번씩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했지만, 그건 사람들 사이에선 언제나 있는 일이다. 나에 대해서도 누가 뒷얘기를 했다고 다른 친구가 귀띔을 해준 적이 있었다. 뭐, 어쩌겠는가. 나라도 그 릴레이에서 슬쩍 비껴서거나 아니면 열심히 참여해서 뒷담화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든지 해야 하는데, 대부분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냐에 따라 다르지만, 한두 달 속으로 끙끙 앓다가 만다. 펄펄 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개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의 가십을 퍼트리고, 동시에 소문의 당사자가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주거니 받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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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다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친구들은 자리에 엉덩이가 닿기 전부터, 조금 전에 먹었던 메뉴가 맛이 어땠느니, 아까 무슨 말을 했었냐, 거리가 멀어서 못 들었다는 둥 새로 수다의 판을 펼쳤다. 한 남자동기가 그제야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수입 잡화류를 판매하는 친구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Q는 “가져왔어?”라고 물었고, 그는 몸을 돌려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두 개의 쇼핑백을 들고 온 그는 “여기!” 라고 했고, Q는 “어디 봐, 너,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광고해줬는지 알지?”하더니 하나는 자신의 의자 바로 옆에, 다른 하나는 내게 건넸다. “이건 너 가져.” “이게 뭔데?” 어리둥절했다. “신발 사이즈는?” “235” “이거 H가 친구라고 1+1으로 준거야. 너 가져.” 쇼핑백 안의 신발은 검은색 레자 슬립온이었다. 친구들의 시선이 일시에 나의 발과 슬립온에 닿았다. 신었더니 뒤꿈치가 쑥 빠졌다. 그것을 보고도 Q는 “괜찮아, 그럴 땐 깔창을 두 개 깔면 돼.” 하더니 막무가내로 신발을 내게 넘겼다.

  

TV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갑자기 무대로 불려 나온 두 사람에게 사회자가 참석자들을 선동한다. “뽀뽀해, 뽀뽀해!” 연호를 하면 한참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억지 춘향이처럼 시키는 대로 하고 마는. 

  

그 시간의 내가 그랬다. 그날의 물주인 Q가 ‘선물’을 주었고 다른 친구들은 관심 있게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단호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그 ‘선물’로 그 시간 이후는 계속 불편했다. 밥이야 모두 얻어먹었으니 상관없지만 따로 신발을 받는 건 달랐다. 게다가 “이건 얘한테 필요한 거”다, “찻값은 형편이 더 좋은 다른 친구가 내”라는 말은 나를 위하는 것 같았지만, 개운치가 않아서 그 속내를 묻고 싶었다.  

   

카페를 나와서 친구들과 굿바이 인사를 하는데, Q가 이렇게 당부했다. “집에 가면, 그것 사진 찍어서 동기 밴드(N사의 sns채팅방)에 올려, 알았지?” 그런 거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또 몇 번이고 그러라고 했다. 공짜로 먹은 피자와 치킨이 위 안에서 삭지 않고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츳츳 혀를 찬다.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길을 나설 때와는 달리 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엄동설한, 신발이 담긴 종이가방은 집으로 가는 내내 종아리에 부딪쳤다. 

   

지금은 Q와 만나지 않는다. 그 뒤에도 불편한 관심을 계속 보여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가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아마 앞으로도 그녀를 볼 일은 없겠지만, 묻고 싶기는 했다. 내게 신발을 ‘선물’했던 그 날과 그 후로 보였던 그녀의 관심에 대해, 나와 그녀가 각각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 퍼즐을 맞춰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침묵으로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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