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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되기 | 정면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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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1-20 07:00 조회5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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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돌파

 

 

 

 

김나영(1조)

 

 

2년 전 나는 한 사립 남자 고등학교에서 2년간 영어 강사로 근무했다.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 머리가 백발인 50대 초중반의 남자샘이 나에게 수업 전반에 대해 알려 주었다. 이 사람은 뭘 가르쳐 주고 나면 항상 “고맙지?” 라면서 꼭 악수를 하면서 손을 잡았는데, 때로는 “꽃등심 1인분!” 이라고 하면서 나중에 한우를 사겠다는 쪽지를 쓰게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장난을 잘 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학교에 갓 들어와 아무것도 모르는 계약직 여자 교사들에게만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밥을 먹을 때도 혼자 떨어져서 먹었고, 필요한 말이 아니면 동료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십 년 넘게 같은 학교에서 일한 동료들도 이 사람이 혼자 사는지, 자식은 몇 학년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 사람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꼭 쓸데없는 말을 걸었는데, “어디가?” “화장실이요.” “그래, 잘 싸고 와.” 하는 식이었다. 일 년쯤 지나고 보니, 복도에 다른 교사들이 있을 때는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한번은 대뜸 “진도는 잘 나가고 있어?” 라고 묻길래, 나는 의아해하며 “2과 중간 나가고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과 나는 가르치는 책이 달라서 진도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아니, 그 진도 말고 다른 진도.”라고 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는데, 나와 남자친구가 어디까지 갔는지 물어본 것이다.

  

동료 교사 평가 때문에 이 사람 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었다. 이 사람은 영어와 일본어를 둘 다 가르쳤는데, 내가 들어간 시간은 일본어 수업이었다. 일본 문화에 대해 설명하는데, “일본은 말이야, 목욕 문화가 발달해있어. 목욕탕에 목욕물을 받아놓고, 거기에 시아버지도 들어가고 며느리도 들어가... 온 가족이 다 같이 써.” 라고 했다. 또 다른 예를 들면서, “일본은 다다미방이야. 시멘트벽이 아니잖아. 방음이 잘 안 돼. 그래서 옆방의 신음 소리가 아주 잘 들려.” 그 수업에 참관한 교사는 나와 젊은 중국어 여자샘 둘 뿐이었다. 우리가 들어온 뒤에 그런 얘기들을 일부러 더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혈기왕성한 남학생들에게 성적으로 이상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얘기를 수업 중에 대놓고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무한 지 일 년쯤 된 겨울방학 보충 수업 기간이었다. 4교시가 끝나고 복도에서 이 샘과 마주쳤다. “점심 먹었어?” “아니요.” “그럼 떡볶이 먹으러 갈까?” 지금 같으면 절대로 둘이서 밥을 먹으러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떡볶이는 길거리 음식이니 빨리 먹고 헤어질 수 있고, 더 이상 꽃등심 타령을 못하게 떡볶이로 퉁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내가 속한 부서의 부장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교무실에서 커피나 음료수를 돌릴 때 나만 빼놓고 돌리는 식으로 은근히 사람 차별하고, 나에게 뭔가 못마땅한 게 많아 보이는 부장 얘기를 이 학교의 누군가한테라도 말하고 싶었던 차였다. 이 사람은 부장과 친하지도 않고, 설사 부장한테 내 말을 한다 해도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한 말이 부장 귀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교문을 나서자마자 떡볶이는 돌솥비빔밥이 되었고,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밥을 먹으면서 딱히 할 말이 없어 어제 한숨도 못 잤다고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그럴 땐, 나한테 문자 쳐. 전화해.” 라고 하는 것이었다. “네?” “밤에 잠 안 올 땐 나한테 전화해. 문자 쳐.” 뭔가 불쾌했지만 장난하는 거라고 여기고 넘어갔다. 그리고 부장 얘기를 꺼냈다. 그 사람은 듣더니 “진짜 그랬다면 부장 노릇을 못 한 거지.” 라고 했다. 나는 이어 내년에 교무실 자리를 옮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교감한테 가서 나랑 같은 교무실 해달라고 해. 김OO샘이랑 같은 교무실.”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지만, 그런 말을 안 하면 되므로 그냥 넘어갔다. 밥을 다 먹어갈 때쯤 그 사람은 “이제 다른 놈팽이들 만나야지? 남자를 만나러 갈 땐 말이야,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어. 짧은 미니스커트.” 라고 하는 거였다. 농담이라고 넘기기에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밥 먹다가 갑자기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지금 같으면 성희롱죄로 고소당하고 싶으냐고 조용히 맞받아치거나, 그 자리에서 바로 나왔겠지만, 그때는 그 상황들을 꾸역꾸역 다 넘겼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제야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 사람 차를 타는 것도 싫었지만, 내가 어디에 사는지가 알려지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 번이나 괜찮다고 했다. 밖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 사람은 “내가 영어과 남자 중에 제일 잘생겼지? 너는 영광인 줄 알아.”하는 드립을 계속했다.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빨리 헤어지려는데, “그래, 잘 먹었지?” 하더니 갑자기 악수를 했다. 나는 얼떨결에 손을 잡혔고, 나머지 손마저 악수를 또 했다. 다음 날 이 사람은 날 보더니 더 반가워하며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나는 급한 일이 있는 척 자리를 피했고, 그 사람은 서울대 나온 머리로 내가 자길 피하는 걸 두 번 만에 눈치챘다. 이후에는 내가 인사를 해도 받지 않고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얼마 후엔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수업 똑바로 해. 애들 좋은 대학 가야 하잖아.” 라며 훈계를 했다. 그렇게 말한 그 사람은 나중에 방학 보충 수업을 EBS 문법 방송으로 때웠다.

  

이후 나는 과 협의회나 회식 자리에서도 말을 섞지 않고, 최대한 저 사람과의 접촉을 피했다. 내가 겪었던 일을 친한 또래 여자 선생님 몇몇을 빼고는 다른 동료들은 모르는 채 반년 정도 시간이 지났다. 나는 올해까지만 일하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내년에는 다른 학교로 가서 저 인간을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늦가을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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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루쉰-되기! 글에 쓰려던 내용은 나는 왜 항상 벼락치기로 글을 쓰는지, 나는 공부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조모임을 할 때 왜 교사를 그만두면서 연구실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이 있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둔 이유를 생각하려고 하자, 곧 이 영어 선생이 떠올랐다. 별다른 큰 문제가 없었다면 해마다 계약을 연장했을 것이고, 나는 그 학교에서 6년을 더 근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학교를 그만둔 건 다 저 인간 때문이다. 성희롱을 하는 변태와는 같은 곳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 사람 때문인가? 좀 더 생각을 해보니, 그 인간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언젠가는 학교를 그만두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권 속에서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에 관심 없는 학생들을 억지로 데리고 아침부터 밤까지 목이 터져라 오로지 성적 하나만을 위해 가르치는 입시 교육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까지 내가 학교를 그만둔 이유를 그 변태 때문이라고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글을 쓰면서 알게 된 나의 문제점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너무 수동적으로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었다. 이 선생의 경우에도, 나에게 이상한 말을 하거나 성희롱 발언을 할 때, 초반에 내가 확실하게 의사 표명을 했으면 그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넘기고, 나중에는 싸우지를 못해서 그냥 넘겨 버렸다. 뭔가 불쾌한데도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 버린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제까지 이 사람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정면 돌파를 하지 않고 그 문제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혼자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아예 관계를 단절시키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관계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상대방이 이상한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관계는 둘이서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관계가 이렇게 된 데에는 내 책임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관계를 어떻게 능동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항상 상대방이 문제라는 오류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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