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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달인

루쉰-되기 | 어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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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2-03 07:00 조회4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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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애





박소담 (1조)


나는 단과 대학의 풍물패 동아리에 속해 있다. 2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학번이 운영진을 맡았다. 1학기가 끝나갈 쯤에 패장이었던 친구가 유급을 맞아 버린 적이 있었다. 패장이 공석으로 있던 것을 우려했던 한 선배는 나머지 운영진 중에서 패장을 뽑고자 제안했다. 그 선배가 역시 운영진 중의 한 명인 나에게 물었을 때였다. “패장할 생각이 있냐”는 말에 간결하고 명료하게 “아니요”라 대답했다. 문제는 그다음 말이었다.

 

      “그래도 너는 패장 욕심이 없는 애는 너밖에 없네.”

      “네?”

      “다른 애들은 패장 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 다 조금씩 망설였는데, 너만 곧바로 없다고 대답했어.”

 

이상하게도 패장 욕심이 없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내 가슴은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그 선배가 패장을 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어보았을 때 혹시 목소리가 떨리진 않았는지, 표정이나 행동은 어색하지 않았는지를 점검해보았다. 그가 욕심이 없다고 나를 단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여 그 말이 나를 비꼰 것은 아닌지, 내 거짓말이 들통이 난 게 아닌지 의심했던 것이다. 결국 나에게는 패장 욕심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루쉰-되기 수업에서 나는 이 사건을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그때 패장이 되고 싶다는 걸 내색하지 않은 나의 행동을 ‘눈치 보기’라 결론지었다. 하지만 누구의 눈치를 봤던 것인지, 왜 눈치를 봤는지까지는 쓰지 못했다. 그래도 나름 괜찮게 정리했다고 생각하며 조별 토론에 가지고 갔다. 그리고 조원들끼리 피드백을 시작했다. 이미 조별 토론에 들어간 지 3주차가 되는 때였지만, 나는 이전의 주제를 버리고 새로운 ‘패장 이야기’를 가져 왔다. 피드백을 받기에 앞서 튜터 샘이 ‘주제를 바꿨군….’하며 탐탁지 않은 눈치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 글만 본다면 모두 자지러지고 말 테니까!’

 

그리고는 당당하게 글을 읽어 내려갔다. 분량을 채우기 위해 자세하게 설명한 부분을 지나쳐 클라이맥스를 읽었다. 옆에서 ‘피식’하는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뿐이었으며 그것마저도 한 사람뿐이었다. 상상 속의 폭소는 없었다.

 

그러고는 피드백을 받았다. 조원들은 앞부분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시킨 선배가 중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뒤에 이상하게 패장 얘기가 나와 당황했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어느 쪽에 중심을 두어야 할지 정하는 편이 좋겠다고 충고를 주었으며, 심지어 튜터 샘은 그 선배에 대해 더 깊게 파 보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사실 그 이상한 패장 얘기가 중심인데….’

 

그렇게 억울해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민망함을 숨기고는 한술 더. 떠서, ‘그래, 내가 원래 쓰고 싶었던 건 그 선배의 얘기였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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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원래 쓰고 싶었던 그 선배에 대한 글을 중심으로 쓰게 되었다. 퇴고를 한 다음 주에는 “그 선배에 대해 더 탐구해 와라”는 말을 들었다. 그 선배에 대한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를 모조리 끄집어내 살을 덧붙였다. 새롭게 퇴고를 한 다음주에는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 그 선배에 대해 쓰기로 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조원들은 생각했던 듯하다. 그랬던가? 어쨌든 그렇게 5주가 지나니, 이제는 여태껏 써온 것을 되돌릴 수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발표의 날이 왔고, 아니나 다를까 고 샘의 질문은 그랬다. “튜터 샘이 누구야?” 그리고 그 순간, 한때 글 발표에서 당당했던 내가 돌아왔다.

 

      ‘그러게 내가 그 선배는 아니라고 했건만…!’

 

비웃음을 들으면서 자리로 돌아간 나는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조원들과 튜터 샘을 원망했다. 그렇지만 조원들과 튜터 샘이 내 글을 직접 써 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 혼자 신경 써서 써 갔던 부분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실망했을 뿐. 그리고 그 실망조차도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나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이전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솔직히 말하는 친구들이 싫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남들 입장도 고려하지 않는 어린애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짜 어린애 같은 사람은 자기 욕심을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욕심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그 어린애가 자라면 욕심을 숨기는 법을 알게 된다. 욕심을 숨기면 아무도 자신의 욕심이 이루어졌는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속으로 욕심을 숨기는 어른애가 실패하면,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속이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속인다. 그리고 믿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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