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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되기 |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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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2-24 07:00 조회6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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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줘도 괜찮습니다





목영은 (2조)

 

 

나는 병에 걸렸다. “뭐든 잘하고 싶은 병.”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생각해보았다. 그 이야기에 아빠를 빠뜨리면 서운하다. 아무래도 격정의 파노라마가 펼쳐질 텐데, 고미숙 선생님의 한숨 쉬는 소리, 미간 찌푸려지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다. 에라, 모르겠다. 시작해보자. 

   

우리 아빠는 대단한 애주가이신데 운동신경도 좋고 언변도 화려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2~3일에 한 번꼴로 술을 마시고 들어오셨는데, 앞서 말한 재주들 덕분에 항상 사건 사고를 많이 일으키셨다. 꼭 식구들이 잠들만한 시간에 들어와서는 발차기, 휘두르기, 던지기, 독설하기 등을 마음껏 뽐내셨다. 

   

아빠는 특히 기본예절, 정리정돈, 학교성적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한 번은 술이 얼큰하게 취해 내 성적표를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라이, 대가리에 똥만 찬 년. 너는 부모 피나 빨아 먹는 아주 벌레 같은 년이야. 계속 이따위로 공부해서 공순이가 되려고 그러냐? 아니면 588에 가거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자꾸 년년 거리는 거야. 그래, 지금은 천구백구씹팔년이다 왜! 588이 어디야? 번지수야?’ 나중에 588이 그 588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악마를 보았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엔 알 수 없는 악령의 기운 같은 것이 생겨났는데, 이 힘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가 달라질 것 같았다. ‘없애버릴까, 뛰쳐나갈까, 살아남을까’ 그러나, 나는 살아남는 쪽을 택했다. ‘그래,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마. 아니, 그보다 훨씬 잘나고 위대한 사람이 되어 나한테 한 마디도 지껄이지 못하도록 할 거야!’

   

흥미도 없던 공부를 시작했다. 책상 앞에 ‘위대한 여성 지도자’라는 문구를 붙여놓고 그것을 생명줄 삼아 집념을 불태웠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모조리 외워버렸다. 중학교 때 30점 수학 성적을 96점까지 올리기도 했고, 운 좋게 학창시절 내내 임원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아빠는 또 다른 것으로 타박을 하였다. 계집애가 되어서 집안일엔 통 관심이 없다며, 한번은 베란다 문을 열더니 뛰어내리라고 했다. “너 같은 건 뒈져버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내 존재를 인정해주기 바랐다. 그러나 유년시절부터 시작된 지옥훈련은 끝날 줄 몰랐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은 생각에 하루는 집 근처 모텔에 들어가 생을 마감하려고 했다. 그러나 옆방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춤사위가 어찌나 격정적이던지 영 집중이 안 되는 것이었다. 덕분에 여태 숨을 쉬고 있다. 

   

아빠로부터 비롯된 인정욕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고, 어느새 모든 타인에게로 향했다. 어딜 가나 타인의 평판에 극도로 민감했으며, “잘 한다”는 칭찬을 들어야만 내 존재를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싫은 소리라도 들으면 절인 배추마냥 쪼그라들곤 했다. 

   

인간관계도 편안하지 못했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했다. 자존감이 강하고 성격이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말투나 행동을 유심히 봐뒀다가 마치 내 것인 양 따라 했다. 온통 좋아 보이는 것들로 짜깁기한 인생. ‘제발 날 봐줘! 내가 여기 있어!’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불태울수록 나라는 존재는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가장 최근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부서장님, 정말 서운합니다. 왜 저에게 수고한다는 말씀을 안 해주시나요. 매일 야근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러나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담당자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건데, 왜 꼭 그 말을 들어야 하지?” 그 날 면담 이후로 부서장에게 찍혔는지, “잘 한다”는 말은커녕 역량평가에서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곳을 뛰쳐나왔다. 

   

그렇게 올해 초 백수가 되었다. 삶이 뭔가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린 느낌이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항상 불안하고 초조한 건지, 왜 시도 때도 없이 우울한 건지 알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던 차에 카더라 통신이 들려왔다. “감이당에서 공부하면 인생이 바뀐다더라.” 이거다 싶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감이당에 왔고 루쉰을 만났다. 그러나 내 감정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처음 다짐과 달리, 과제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만 집착했다. 여전히 “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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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쓰면서 계속 들었던 코멘트가 있다. ‘아버지의 영향이 자식들에게 똑같이 적용되었을까? 유독 나만 인정욕망이 강하게 나타났다면, 그 이유는 뭘까? 그 내면을 좀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처음에는 내 결핍을 풀어내는 데만 집중하느라 흘려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과정에서 분명 어떤 만족감 같은 것이 있었다. 

   

아빠의 인정을 받고자 시작한 공부였지만 성적이 올라가면서 성장의 기쁨이 있었다. 반장이 되어 조용히 하라고 외치면 50여 명의 학생들이 잠잠해지는 걸 보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힘 있고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는 고객들의 입바른 말에도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인정욕망은 내 삶에 동기부여가 되었고 더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교묘하게 잘 활용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학창 시절, 아버지의 횡포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웠다면 지금과는 좀 달라졌을까? 아버지가 뱉은 말들은 자식에게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고통을 감내하며 아버지에 눈에 들고자 했을까. ‘내가 이 순간만 잘 참으면 다른 가족들에게 피해가 덜 갈 테니까, 당신이 원하는 바를 맞출 수 있다면 이 지옥도 끝이 날 테니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변한 게 없었다면 나는 격렬하게 저항했어야 했다. 

   

하지만 상처받기 싫고 귀찮고 힘드니까 인정욕망을 구실 삼아 적당히 봉합해버렸다. 그리고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남 탓과 세상 탓을 하며 살아왔다. 문제 해결이 먼저였음에도, 그것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파헤치기보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스스로를 기만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감이당에서 공부하며 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불안감이 해소되는 기미가 보이자 어느 순간 이곳에서 구원의 길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또다시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안락해 보이는 곳에 발을 걸치고 세상으로 나아가길 주저하고 있었는지도.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잃어버린 자존감은 내 스스로 회복해야 한다. 그 길은 딱히 어느 곳에 정해져 있지 않다. 때문에 진짜 ‘목영은 찾기’는 어느 곳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 직접 부딪히고 맞서 싸우며 가보자. 아무도 몰라줘도 괜찮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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