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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되기 | 치느님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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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3-17 07:00 조회2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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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느님¹의 세상

 

 

 

 

이윤지 (4조)



치킨에 대한 숭배가 천지를 창조²했다는 말을 들으면 당신은 믿겠는가? 그런 어리석은 소리가 어디 있냐고 당신은 외면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지하다. 닭이 신이 된 세상이 우리 곁에 있는 것을 나는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닭은 본래 인간이 오랫동안 즐겨 먹는 조류였는데 비록 날지 못하지만 제대로 자란 닭을 자세히 관찰하면 영민하고 아름다웠다. 오래전 집이나 농가에서 닭 몇 마리씩을 키우는 것이 흔했으나 요즘에는 살아있는 닭보다 요리된 닭을 보는 것이 더 흔해졌다. 닭을 다루는 인간의 기술이 발전한 것인지 퇴보한 것인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으나, 닭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 이 나라에서 1년에 사람이 먹어치우는 닭은 9억 마리가 넘는다. 닭들의 영민함이란 낯선 진실이 되었다. 모이를 쪼기 위해 대가리만 겨우 내민 작은 닭장 속에서 주사를 맞아 흐릿한 정신으로 30일을 채 살지 못한 채 닭들은 단돈 천 원에 팔려가는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닭의 삶이 이러한 신세로 전락한 것은 닭 맛에 홀린 인간 식탐의 힘 그리고 닭 맛으로 돈맛을 우려내는 돈을 탐하는 힘이었다. 

  

9억 마리의 닭들은 각종 음식이 되었다. 양념치킨, 프라이드치킨, 치킨까스, 치킨버거, 삼계탕, 닭갈비... 과거에는 집에 경사가 있어 닭을 잡고, 아픈 사람 고치려고 닭을 잡고, 배고픔에 닭을 잡았다. 이제 인간은 날마다 기계적으로 닭을 잡는다. 닭들은 비록 일찍 생을 마감했으나 이제 치킨으로 다시 태어나 인간의 미각을 장악했다. 닭들은 동네 곳곳에서 기름 속에 튀겨져 밤늦은 시간 사람들에게 따끈하게 배달되어 간다. 톡 쏘는 콜라와 함께. 그래야 사람들은 닭을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탄산으로 ‘꺼억’ 트림을 한바탕 하고 나면 다시 입맛이 당긴다. 1인 1닭쯤은 그래서 문제없다. 

  

그렇게 사람들은 치킨의 맛에 점점 길들여져 갔다. 치킨을 맛본 혀에는 쾌락의 흔적이 남았다. 흔적은 자신의 일부가 되고 사람들은 이 흔적에 깊은 애착을 느꼈다. 그래서 이 흔적이 사라지지 않기를, 이 미각의 쾌락이 영속되기를 열망했다. 사람들은 미각의 쾌락을 충족시키고자 끊임없이 대상을 찾았다. 쾌락이 충족되었다가 사라지면 다시 찾고 또 찾고. 끝없는 반복.     

  

닭으로 돈 국물을 우려내는 기업의 나으리들은 그들의 열망에 응답했다. 바삭한 치킨, 매콤달콤한 치킨, 속살이 부드러운 치킨... 다양한 종(種)으로 재탄생한 치킨들이 방송과 광고로 사람들의 눈과 혀를 유혹했다. 흐릿한 눈으로 고인 침을 넘기는 사람들은 그러나 이 유혹의 위험을 알아채지 못했다. 서서히 미각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치명적인 유혹. 

  

이 유혹을 째려봐야 한다. 침이 고이려는 이 혀, 부드러운 속살을 탐하는 이 마음을 째려봐야 한다. 너는 그렇게 노예가 되려는 것이냐? 그렇게 침이 고인 순간 너는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째려보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기름에 튀겨져 환호받는 저 살덩어리를 보고 마음이 만들어 내는 탐욕의 정체를 째려보라. 저 맛을 기어이 네 것으로 만들려는 집착의 정체를 째려보라. 그리고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뱃속의 노예를 째려보라. 이 모든 것이 가짜임을 째려보라!  

  

째려보지 못하는 흐릿한 시선을 가진 자는 가짜 식욕에 굴복해 치킨을 주문한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앞에 닭 뼈가 수북하다. 포만감에 언뜻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잔뜩 배가 불러 조금 불쾌함을 느낀다. 포만감엔 배부른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식탐은 한순간의 충동이었고 이젠 널브러진 닭 뼈들 앞에서 헛헛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입맛을 다시며 다음엔 ‘양념 반 올리브유 반’으로 주문할 것을 다짐한다. 기업의 나으리들은 쾌재를 부른다. 

  

명을 보존하기 위해 먹는다는 행위의 존엄함은 미각의 쾌락에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그 순간의 짜릿함. 혀에 접촉하는 그 순간의 달콤함. 치킨의 모양과 맛과 향과 촉감과 씹히는 소리를 탐하는 정신과 신체는 이제 치킨에 종속되고 말았다. 끊임없이 치킨에 갈증 내는 사람들이 탄생되고 사람들의 미각은 점령되었다. 한 달에 27마리 치킨을 먹는 남자, 치킨 없이 밥을 못 먹는 어린아이 모두 치킨 제국의 치느님이 탄생시킨 새로운 인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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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 중 치킨을 먹되 혼자서 먹고 혼자서 먹되 누군가와 말을 나누며 먹고 싶은 마음을 지닌 종족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이들은 각자의 컴퓨터를 마주하고 한 사람이 먹는 모습을 쳐다보고 화면으로 말을 나누기로 했다. “자, 먹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는 다리를, 가슴살을, 날개를 차례차례 깔끔하고 적나라하게 씹어댄다. 닭 다리를 화면에 들이대고 어떻게 생겼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것을 입속에 넣는 모습도. 이어서 닭을 씹는 소리, 목구멍에 콜라 넘어가는 소리, “캬!”하는 소리, “아아!” 맛있다고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몽롱한 시선으로, 수동적 자세로 화면을 바라보는 6,000명의 입속에 침이 고인다. 어떤 이는 치킨을 주문해서 화면을 보며 같이 먹는다. 배불러도 탐하는 허위의 식욕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탓하며, 외로움을 탓하며, 다이어트 중의 대리만족으로 사람들은 컴퓨터 화면 앞에 앉는다. 한밤중의 기괴한 인터넷 파티. 한 시간 내내 사람들은 화면 속에서 오물거리며 뼈를 발라내는 입과 양념 발린 치킨의 살들을 자세히 바라보고 먹는 소리를 들으며 침을 흘린다. 실제로 먹고 상상으로도 먹는다. 화면 속 채팅방엔 잡담들이 오가고 별풍선³이 떠다닌다. 오직 맛을 탐하는 쾌락이 있다. 먹고, 씹고 마시는! 혀에 닿을 때의 느낌과 씹히는 식감, 바삭함의 정도와 살짝 매콤한 끝 맛을 그들은 끝없이 분별하고 논한다. 미세하고 미세하게 분별해갈수록 이제 자유는 그 미세함만큼만 존재한다. 그 미세한 미각 밖의 세상은 고통이 된다.    

  

그들은 치킨을 숭배하고 치킨에 복종한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묻지 않는다. 오직 먹을 뿐, 오직 탐할 뿐! 이리하여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었다. 그들은 튀겨진 닭을 놀랍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써프라이드’(Sir-Fried) 라고 부르기로 했다. 맛의 깊은 진리를 찾아 그에게 복종하고 깊은 맛이 주는 은총과 기쁨의 세례를 바라며! 흐릿하게 취한 눈으로 침을 흘리면서 그들은 기꺼이 신의 종이 되기를 바라고 신에게 헌신한다. 

  

      “바삭하고 깊은 맛의 볶음을 전파하라. 고소한 맛과 함께 기뻐하라. 의심하지 말지어다. 달콤하고 깊은 맛이 너희를 구제하리니.”

 

이리하여 치느님의 세상이 도래했다. 

 

<끝>

 

 

각주 1)치느님: 치킨과 하느님의 합성어

        2)‘천지창조’는 치킨 회사 BBQ의 2017년 신메뉴 서프라이드 광고에 등장한 표현 

        3)별풍선: 아프리카 TV 인터넷 방송에서 방송을 하는 VJ들에게 시청료를 대신해서 주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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