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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되기 | 타인의 죽음으로 얻어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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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5-05 07:00 조회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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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죽음으로 얻어지는 것들

 

 

 

 

문미선(5조)

  

 

죽음과 관련된 나의 첫 기억은 아마도 5,6살 때 인듯 하다. 나는 곧잘 근처에 살던 먼 친척뻘 되는 아주머니네 집에 놀러 가서 간식을 얻어먹었다. 그 당시 서울에는 또래 친척 형제들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 대한 대접이 후했다. 어느 날 나는 그 아주머니네 집 안방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젊은 여자가 나에게 “넌 울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아주머니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나는 죽음이 뭔지 몰랐고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젊은 여자로부터 호의적이지 않은 느낌을 받았고, 울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때 나는 고3이었고, 부모님이 부르지 않았으므로 큰댁에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전화로 할머니의 죽음을 알렸다. 엄마는 운 것 같았다. 상은 큰댁에서 직접 치뤄졌다. 병풍 뒤로 할머니의 시신이 있다고 했다. 아빠는 그 당시 4살이던 남동생을 병풍 뒤로 데리고 가서, 생전에 할머니가 예뻐 하셨으니 인사를 하라고 했다. 친척 언니 오빠들 모두 눈물을 흘렸다. 나는 어쩐지 불편하고 어색해서 자리를 피했다. 그날 저녁 식구대로 큰댁에서 잤는데 잠이 오지 않아 혼자 3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답답한 마음에 위를 올려다 보니 달이 엄청 크고 밝았다. 또렷한 형태의 구름 덩어리들이 당장이라도 아래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너무 두려워서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왔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사촌 언니의 남편이 5~6년 전에 죽었는데, 그다지 교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된 언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말없이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언니도 함께 눈물을 흘렸는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손과 등을 두들기는 느낌 속에 무언가 교감되는 것이 있었다. 형부가 능력 있는 남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로 의지하며 살았을 텐데, 그런 대상을 잃어버리다니 언니가 너무 딱했다. 아마도 그 때의 행동이 장례식장에서의 나의 태도로서 가장 바람직했던 것 같다.

  

소소하고 밋밋한 죽음들이 내 안에서 한때의 이야깃거리로서 잠시 존재하다 금방 사라졌다. 그런데 아직 죽지도 않은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슬퍼진다. 나에게 죽음은 그 자체로 슬픈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내가 상실감을 느낄 수 있어야 당당하게 슬퍼할 수 있는 것 같다. 그게 안된다면, 남겨진 사람의 슬픔에라도 감정이입을 해야 한다.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나는 뭔가 죄를 짓는 기분이다.

  

최근 친척언니의 죽음은 나에게 또 한번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언니는 비슷한 또래로 어릴 적엔 꽤나 친하게 지냈다. 밝고 활달하고 웃기기도 해서 나에게는 연예인 쯤으로 생각되던 사람이었다. 언니는 줄곧 자신의 끼를 펼치지 못하다 죽기 몇 년 전부터 레이싱모델의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운명의 장난’ 처럼 위암 말기 판정이 내려졌다. 

  

그때 나는 꿈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변해가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나'에 대한 틀이 깨지면서 자기객관화와 거리두기를 맛보았다. 그것이 너무 기뻐서 나는 또 하나의 틀을 만들었다. 세속적인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통찰하고 관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니가 삶을 정리하고 조금 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으면 했다. 하지만 언니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언니가 집에 놀러 왔을 때 에이전시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언니는 아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런 언니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후 나는 언니가 집에 놀러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약속을 핑계로 언니와 함께 있지 않았다.

  

언니는 얼굴과 팔다리에 뼈밖에 없었고 배에 물이 차서 배만 볼록했다. 발가벗고 다니지는 않았으므로 그냥 보기에 몸매관리를 좀 엄격하게 하는 사람 같았다. 어느날 지하철에서 언니를 닮은 여자를 보았다. 삐쩍 마르고 하얀 얼굴에 유난히 머리가 시컴했다. 그 여자가 너무 무서웠다. 마치 죽음의 사신 같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언니의 입원소식을 들었다. 많이 힘들어 한다고 해서 어머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날 회식이 있어서 내일 가야겠다고 했다. 다음날 출근을 했는데 연락이 와서 언니가 죽었다고 했다. 병문안을 갔어야 했는데 장례식장에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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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죽음에 당당하게 슬퍼할 수 없었다. 죽어가는 마당에 삶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내려 놓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해 주길 바랬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역시 죽어가는 사람임에도, 사실 나는 단 한 순간도 죽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죽음을 내 것이 아닌 언니의 것으로 했다. 삶에 집착하고 욕망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과, 언니의 죽음으로 확인하게 되는 삶에 대한 욕구가 충돌했다. 나는 살기를 욕망한다. 그리고 언제든 죽을 거니까 눈물 흘리지 않는다고 해서 죄스러울 것 없다.

  

여기 적은 죽음은 소소하고 밋밋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들이지만, 가장 최근이었던 언니의 죽음조차 다이어리를 펼쳐 들고서야 그것이 2015년 겨울이었음을 알았다. 어린시절 돌아가신 아주머니도 사돈 되는 분으로 큰어머니가 자신의 친정집에 나를 데려갔던 것이라고 한다. 나의 기억이란 모두 다 나 중심적인 것이어서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의 기억을 더듬다 보니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 어머니는 걱정이 되셨는지 왜 그런걸 물으냐고 하셨다. 어머니도 어릴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누군가 왜 안 우냐고 해서 얼른 눈가에 침을 발라 우는 척을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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