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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달인

루쉰-되기 | 까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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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6-23 07:00 조회2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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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


 


이여민(감이당 장자스쿨)


지난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지금 따뜻한 봄 햇살을 온 몸 가득 느끼고 있으니 작년 겨울이 아득한 옛 일로 느껴진다. 
  
한강 물이 꽁꽁 얼었던 어느 날, 나는 꼬리가 짧고 뭉툭한 까만 어린 고양이 한 마리를 병원 주차장에서 만났다. 1층 중국집 배달 청년이 주는 돼지고기를 받아먹곤 했던 이 녀석은 나를 보고도 겁내지 않았다. 마침 차 안에 고양이 간식이 있어서 캔 뚜껑을 따고 이 까만 고양이 앞에 멀찍이 내려놓으니 얼른 다가와서는 먹이를 맛있게 먹었다. 이 날부터 나는 이 고양이를 ‘까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었지만 그 녀석들은 나를 보면 혼비백산하고 도망갔다. 그러나 까망이는 출퇴근 시간에 야외인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 기온이 매일 영하 13도 정도였다. 나는 이 녀석이랑 놀고 싶어서 패딩을 두 세 벌 끼어 입고 출근했다. 등산용 야외 돗자리도 준비하여 주차장 땅바닥에 털버덕 앉아 먹이를 먹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무릎 위로 올라온 까망이 털을 빗어주며 놀았다. 하루는 날씨가 너무 추워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으니 까망이는 차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앞좌석 뒷좌석의 냄새를 맡으며 자동차 탐사를 하더니 내 무릎에서 잠들었다. 나는 그날 저녁 영화 보려고 한 계획을 취소했다. 연이은 추위에 동사할까봐 걱정이 되어 병원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도 했지만 까망이는 주차장 경계를 넘어 오지는 않았다. 가끔 출근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먹이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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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일 정도 만났나? 기억이 이미 희미하다. 거의 매일 보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까망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주차장에 둔 먹이는 꾸준히 사라졌다. 하루 이틀 못 보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너무 추운데, 아픈 것은 아니겠지? 차사고가 났나?’ 나의 기우(杞憂)였다. 간호사, 제약 회사 직원, 약사님들이 나에게 제보를 해 주었다. 까망이가 비슷하게 생긴 두 마리 까만 고양이들과 같이 다니는 것을 목격했고, 주차장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것도 봤다고. 병원 앞 다이소의 종이 박스를 쌓아둔 곳이 까망이가 잠을 자는 곳인 것 같다는 간호사 이야기를 듣고 나는 틈만 나면 그 근처를 걸어 다니면서 “까망아.”하고 이름을 부르고 다녔다. 병원에서 키우는 회색 고양이 예삐와 놀다가도 거리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3층 계단을 단숨에 뛰어 내려갔다. 순간 ‘아, 이게 바람난 사람이 하는 행동이구나. 집에 있는 오래 된 고양이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바람같은 까망이한테 내가 홀려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나는 정토불교대학 저녁 반을 다니고 있었다. 공부가 끝난 뒤 ‘나누기’ 하는 시간에 까망이를 하루 종일 생각하는 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느 날 ‘나 없이도 잘 살았던 고양이 걱정을 나는 왜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까망이와 만났을 때의 가슴 두근거림, 부드러운 털을 만질 때의 기쁨, 내 무릎에 올라와서 잠들었을 때의 온기를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었거든요. ‘까망이한테 집착을 하여 번뇌를 일으키고 있나?’하는 마음이 듭니다.”
  
까망이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은지 2달 쯤 지났을 시기 즈음하여 주차장에서 그 녀석이 먹이 먹는 모습을 본 사람이 나타났다. 그 이후에도 사료는 계속 비워졌다. 누렁이, 회색 줄무늬 고양이, 까맣고 뚱뚱한 다른 고양이들도 와서 먹었다. 까치, 비둘기들도 먹이를 쪼아 먹었다. 그러나 나만은 까망이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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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마친 뒤에도 내가 까망이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이 그 녀석을 만지면서 느낀 기쁨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했다. 잡문 발표 현장에서 고미숙 선생님께서는 “털 있는 고양이가 동사한다고 생각한 것은 선생님의 과학적 무지예요! 무릎에 올라와서 잠든 고양이를 나가라 하고 영화를 보셨어야지요. 그 집착의 근저에는 ‘내가 까망이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이 있네요. 그게 아상(我相)이고 이 지점을 파헤쳐야지!”라고 하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까망이는 내가 먹이를 주는 순간에도 1층 중국집 배달 청년이 생고기를 가져오면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이 아저씨가 중국집을 그만 두는 바람에 나에게 온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인과관계를 슬쩍 무시했다. ‘나는 너에게 특별하니까 나의 영화를 너를 위해 취소해. 너는 어리고 연약해서 내가 돌봐줘야만 하는 거야.’ 까망이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것처럼 내가 없으면 그 녀석이 못 살 것이라 걱정을 했던 것이다. 잡문 발표 시간을 지나 글의 마지막에 이른 현재, 처음으로 까망이 입장으로 상상해보았다. ‘난 먹이를 먹을 수 있어서 이 주차장으로 왔고, 2018 년 1월의 혹독한 겨울이 너무 추워 가끔 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신기하고 따뜻했어. 그런데 이젠 다른 곳에서 먹이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영역을 옮기게 된 거야.’ 이렇게 생각하니 까망이를 만나러 가던 나의 모습이 그에게 유일한 사람이라는 자만심과 자기만족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다. 또한 그가 옮긴 영역이 어쩌면 이 세상이 아닐지라도 특별한 만남이 이뤄졌던 주차장 한켠에 따스한 추억이 자리 잡았음을 느낀다. 

  

그래도 내가 까망이를 만나는 동안 그 녀석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 덕분에 행복했던 것은 사실이다. 자기 길을 찾아간 까망이 덕분에 나는 앞으로도 ‘나의 특별함’이란 아상(我相)에 걸릴 때, 그리고 주차장을 들어설 때 종종 따스한 기분으로 까망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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