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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한서라는 역사책 | 한나라 탄생의 열기와 열망 (2)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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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12-31 10:42 조회2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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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탄생의 열기와 열망 (2) - 1

 

 

 

 

 

 

 

길  진  숙

 

 

1. 유방을 선택한 천하의 인재들

 

진나라의 멸망과 한나라가 건국되기까지의 일을 다시 정리해보자진승으로 인해 진나라가 망하면서 천하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깃발을 들고 일어났다진승은 스스로 왕이 되어 국호를 장초라 했으며무신은 한단에서 조나라 왕이 되었고한광은 연나라의 왕이 되었으며전담은 제나라의 왕이 되었고위구는 위나라의 왕이 되었다얼마 뒤진승은 왕이라 불린지 6개월 만에 피살되고조나라 왕 무신 또한 피살되었다항량이 초회왕의 손자 심을 회왕으로 세워 초나라를 이었으나결국 항우가 초회왕을 죽이고진나라 왕 자영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서초패왕으로 군림하게 된다패현에서 소하조참번쾌와 함께 일어난 유방은 패공이 되어 초회왕의 신하로 진나라의 함양을 함락한다유방은 초왕 항우에 의해 한왕으로 봉해졌으나초나라로부터 자립하여 항우와 대결하게 된다마침내 중국은 항우와 유방의 천하로 이분되어 초한쟁패의 시기를 맞게 된다유방의 천하통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격전은 그치지 않았다.

 

이런 난립은 사람들의 욕망과 능력을 일깨웠다세상의 혼란은 위기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잠재되어 있던 재능과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지혜는 한 사람의 전유일 수 없는 것영웅들도 인재가 필요했다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대의 영웅을 찾아 나섰다아마도 이 혼란의 시절에 이르러 자신도 미처 가늠하지 못했던 능력의 정도를 비로소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인재들은 중국 천하의 주역이 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하고그에게 자신의 능력을 어필했다

 

패현에서 소하와 조참과 번쾌를 만나 현령으로 추대된 유방은 시작부터 운이 좋았다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동지들 덕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유방은 이들 덕분에 천하를 차지할 왕으로 성장했고이들 덕분에 귀를 열어 두었던 것이다그러나 잘난 항우는 동지를 믿기보다 자신을 더 믿었기에 자신을 지켜주는 범증의 말조차 듣지 않았다이 싸움에서는 소하조참번쾌의 보좌를 받는 유방이 항우보다 더 유리했다인재는 인재를 부른다인재들은 유방에게로 몰려들었다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대지가 유방임을 알아 보았던 것이다유방이 인재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사실 인재들이 유방을 선택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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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은 운이 좋았다고향 패현에서 맺었던 소하와의 인연이 유방에겐 행운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법률지식을 갖춘 관리 소하는 유방이 한량으로 노닐 때부터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다소하는 한결같아서 유방이 정장일 때도 도와주고함양으로 복역하러 갈 때도 5백전을 보태주었다그만큼 유방을 믿었기 때문이리라그런 소하가 진나라의 혼란기에 반기를 들었고그때 유방을 추대했던 것이다유방이 소하를 알아준 게 아니라 소하가 유방을 알아본 것이었다그렇게 소하는 유방의 신하가 되어 유방이 기세를 잡을 수 있게 했으며건국 이후에도 재상으로서 한나라를 안착시켰다

 

유방이 함양을 점령했을 때여러 장수들은 재물 창고에 다투어 달려가 금과 비단을 나눠가졌으나 소하는 홀로 승상부와 어사대부의 관청에 들어가 율령과 도서를 챙겨 보관하였다유방이 천하의 요새지나 호구의 다소와 부강하고 빈약한 지역백성들의 괴로움을 잘 알 수 있었던 것은 소하가 획득한 진나라의 도서 때문이었다또한 전장에서 뛰지는 않았지만전쟁의 와중 파촉 지역을 다스리면서 백성을 안정시키고 군량을 공급했으며이후 함양 일대를 다스릴 때는 관중 땅을 지키고 법령을 제정 실행하고 종묘사직과 궁실을 세우고 세금을 안정적으로 거두며 군량을 운반 공급하고 군졸을 징발하여 보냈다유방이 전쟁에서 패하면서도 다시 전열을 다듬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소하 덕분이었다일선에서 싸우지 않고도 천하통일의 일등공신으로 인정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소하가 유방을 윗사람으로 세우고 신하를 자처한 데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유방의 자질을 알아본 것도 있지만 천하의 안정을 바랐기 때문이었다그리하여 그는 사심 없이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었다

 

소하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한신의 능력을 천하에 펼칠 수 있게 한 사람이 바로 소하였다소하가 아니었으면 전쟁의 신 한신은 유방의 장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소하는 한신의 능력을 알아보고도망가는 한신을 데리고 와서 유방을 설득했던 것이다. “왕께서 한중의 왕으로 있겠다면 한신을 쓸 일이 없지만 천하를 놓고 다투겠다면 한신을 빼놓고선 일을 같이 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유방은 한신을 장군으로 등용하였다유방이 한신을 대장으로 제수하면서도 어린아이 부르듯 하니소하는 유방을 나무란다예의 없이 신하를 대하니 도망가는 거라고소하의 말에 유방은 택일하고 목욕재계하며 단과 장소를 마련해 예를 갖춰 한신을 대장으로 임명했다거칠고 무례한 유방은 소하에게 단련되면서 왕으로 거듭났다소하로 인해 천하의 유방이 있고천하의 한신이 있게 된 것이다

 

유방의 지연들은 막강했다소하의 밑에서 패현의 옥리로 일했던 조참은 유방과 함께 전장을 누볐다소하가 후방을 다스렸다면 조참은 전방을 다스렸다유방에게 조참이 없었다면 중원을 아우르기 힘들었을 것이다그렇지만 조참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건국 이후 한나라가 혼란 없이 안착하는 데 조참이 없었다면 이 또한 불가능했을 것이다한나라는 건국 후 유방의 친인척과 공신들에게 땅을 봉해주었다진나라의 군현제와 주나라의 봉건제를 합친 군국제(郡國制)에 의거해 나라를 다스렸던 것이다군국제는 제후를 세우되 관리는 중앙에서 파견하는 제도로 강력한 군주전제이면서 동시에 지역 방어를 위해 일종의 혈연적 종법을 활용한 조처였던 것이다조참은 승상으로 제나라에 파견되어 70여개의 성을 다스렸다조참은 통일의 주역으로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다장군의 역할에 머물지 않았던 것이다승상이 되자 조참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고민했다정당에 머물지 않고 황로학자 개공과 함께 생활하며 그에게서 치국의 도를 배웠다그 결과 백성을 괴롭히지 않는 무위의 정치청정의 정치를 실행했다한나라의 수성은 많은 부분 조참의 공으로 돌려야 한다조참은 진나라처럼 되지 않으려면더불어 천하의 백성을 안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것이다조참은 유방의 신하였지만자신을 천하의 주인으로 여겼기 때문에 천하를 지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유방에게 온 인재들은 유방을 통해 천하를 안정시키려는 자들이었다유방의 심복으로 그쳤다면 한나라의 건국도수성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소하와 조참만 천하의 주인으로 자처했던 것이 아니었다위기에서 유방을 구했던 책략의 귀재 장량도 그랬다

 

장량은 한나라의 재상 집안 출신으로 진나라에 대한 복수를 꾀했던 인물이다자객을 고용해 진시황을 저격했으나 실패하여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유방이 장량을 알아보고 기용한 것이지만사실 따지면 장량의 복수를 향한 일념이 유방을 만나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장량은 도망자 시절한 노인을 만나 태공병법을 얻게 되고 이를 익혀 책략의 귀재로 거듭난다.  유방과 장량의 염원이 합치되어서인지장량의 책략은 유방만이 알아들었고그 책략에 따라 한나라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장량은 뜻이 원대한 책략가로서 천하의 대계를 중시했다유방이 진나라 궁궐을 점령하면서 궁궐의 규모금은보화부녀자들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여기에 머물고자 했을 때였다유방은 번쾌가 말려도 듣지 않았으나 장량이 말하자 군사를 철수했다장량은 천하 사람들의 마음으로 유방을 설득했다. “천하를 위해 잔인하고 흉악한 무리를 제거하려면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지금 진의 궁에서 안락을 즐긴다면 이는 폭군을 도와 잔인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장량전한서2명문당, 523

 

유방을 굳건히 보좌한 인재들은 이 세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진평왕릉주발 등 많은 사람들이 유방에게로 와서 천하를 평정하는 데 앞장섰다진평은 제사의 고기를 공평하게 나누었던 사람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데도 냉정했다. “나는 음모를 많이 썼는데 이는 도가에서 금기하는 것이다내 세대에서 바로 망하다면 그뿐이지만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나의 음모에 대한 재앙일 것이다.”(진평전한서2, 582진평은 이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욕심없이 한나라의 건국과 수성에 전력할 수 있었다

 

왕릉은 꾸미지 않고 곧이곧대로 행동하며 직언을 잘한 인물로그 어머니는 아들이 유방을 선택한 것으로 항우에게 잡히게 되는데 아들이 두 마음을 갖지 않기를 바라며 자결했다그 어머니에 그 아들다웠다주발은 군사를 이끌고 도로에서의 전투를 가장 많이 한 장군으로여태후가 집권하면서 여씨의 세력이 강화되었을 때 진평과 함께 이 여씨들을 물리치고 유방의 아들을 황제로 세워 한나라의 수성을 이끌었다.                 

 

여태후가 한고조 유방에게 재상에 대해 물었을 때 유방은 이렇게 대답했다. “진평은 지혜가 넘치고왕릉은 약간 미련한 데가 있지만 서로 보좌할 만하고유씨 천하를 안정시킬 사람은 주발이 틀림없다.” 유방은 세 사람의 자질을 알았다인재들이 유방에게 왔고유방은 그들을 알아보았다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선택했던 것이다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었다유방도유방에게 온 인재들도 모두 천하를 안정시키는 주인으로 자처했다하여이 인재들은 유방과 함께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천하를 만들어 나갔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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