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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한서라는 역사책 | 한나라 탄생의 열기와 열망 (2)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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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12-31 10:48 조회3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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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탄생의 열기와 열망 (2) - 2

 

 

 

 

 

 

 

 

 

 

길  진  숙

 

 

2. 천하 인재들의 열망한나라의 안착

 

한나라를 안착시킨 공로를 유방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반고가 말한 바이렇게 정리될 것이다. “고조는 문학을 하지는 않았지만 천성이 명철 통달하였고 책모를 잘 썼으며 즐겨 경청하였으니 마을의 문지기나 수졸일지라도 오랜 벗처럼 상견하였다초기에 민심에 순응하여 삼장의 약법을 정하였다천하가 안정된 뒤로는 소하에게 명하여 율령을 정리하게 하였고한신에게는 군법을 요약케 하였으며 장창에게 명하여 법규를 정비하고 숙손통을 시켜 의례를 제정케 하였으며 육가에게 신어를 편찬케 하였다.비록 재위 기간이 많지 않았지만 그 치적의 규모는 크고도 멀리 내다본 것이었다.”(고제기한서1명문당, 168)

 

한고조는 통일된 천하를 탁월하게 다스렸다초한쟁패의 혼란기를 평정할 때도 그랬듯이 인재를 잘 썼기 때문이다한고조는 누구보다 천하의 민심을 잘 읽었기에 한나라의 창업을 어렵지 않게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그렇다한고조는 누구보다 귀가 열려 있었다그렇지만 한고조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욕심도 과오도 많았다만약 욕심과 과오를 지적하여 고치게 하고왕이 가야할 길을 제시해주는 신하들이 없었다면 한나라의 안정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한고조의 신하들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동지로서 한고조의 욕심과 과오에 눈을 감거나 입을 닫지 않았다이들은 한고조를 세우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천하의 안정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먼저였기 때문에 한고조의 처신에 예민하게 반응했다사방의 신하들이 왕을 감찰하는데유방이 듣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하고 싶은 말을 감추지 않는 신하들그리고 잘 듣는 왕시작이 좋지 않을 수 없다.

 

유방이 패현에서 추대될 때부터 함께 했던 번쾌는 바른말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번쾌는 고조의 안일을 묵과하지 않았다번쾌가 여후의 여동생인 여수를 아내로 삼았으므로 다른 장수들보다 황제와 가까웠다고 한다가까워서 바른말을 할 수도 있지만 가까워서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그러므로 번쾌의 사람됨이 원래 그랬던 같다경포가 배반했을 때 고조는 병이 깊어서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면서 궁중에 누워 문지기에게 신하들을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였다강후 주발이나 관영 등 신뢰하는 신하들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10여 일이 지나서 번쾌는 곧바로 문을 밀치고 들어갔고 여러 대신들도 번쾌의 뒤를 따라갔다고조는 혼자 환관을 베고 누워있었다번쾌는 고조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전에 폐하와 저희들이 풍패에서 기의하여 천하를 평정할 때 그 얼마나 씩씩했습니까이제 천하를 다 평정하였는데 어찌 이리 지치셨습니까또 폐하의 병환이 심하다고 대신들이 모두 두려워 떨고 있는데 저희들을 만나 일을 논의하지 않고 환관 하나와 함께 세상을 버리려 하십니까그리고 폐하께서도 조고가 했던 짓을 어찌 모르겠습니까?”(번쾌전한서3명문당, 24고조는 번쾌의 말에 웃으며 일어났다고 한다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는 호해를 황제로 추대하고는 황제를 정사에서 멀어지게 하고 제멋대로 진나라를 주물렀다진나라가 호해 즉 시황 2세 때 멸망했으니조고의 환관 정치는 한나라 정치인들에게는 반면교사였던 것이다천하의 평정은 한고조의 염원일 뿐 아니라 신하들의 열망이기도 하니왕은 병이 들었어도 환관을 베고 누워서는 안되는 것이다이 열망에 유방은 쉴 수도 없었다왕이 신하들을 쓰는 것인지신하가 왕을 쓰는 것인지한나라의 시작에 이런 경계는 없었다.

 

한고조에게는 주창이란 신하도 있었다주창은 사람됨이 고집이 세면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소하나 조참과 같은 신하들도 주창만 못했다주창이 황제가 한가한 시간에 업무를 상주하러 들어갔더니 고조는 척부인을 껴안고 있어서 주창은 돌아나왔다머쓱했을 고조가 따라 나와 주창의 목에 올라타고 물었다. “나는 어떤 군주인가?” 주창은 고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폐하는 꼭 걸주와 같은 주군입니다.” 이 말에 고조는 웃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주창을 더욱 어려워 했다공자도 그러지 않았는가천하의 모든 악은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과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에게로 모인다고사실 걸주가 그 정도로 악하지는 않았으나 망국의 왕으로 모든 악의 상징으로 거론되었던 것이다척부인에게 빠져있던 고조를 보고 주창은 거침없이 걸주와 같다고 했으니이는 악의 싹을 틔우지 않으려는 의도였으리라.

 

직언의 달인 주창은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말은 더듬지만할 말을 멈춘 적은 없었다고조가 태자를 폐하고 척부인 소생의 여의를 태자로 삼으려 할 때 대신들이 완강히 간쟁을 하여도 통하지 않았다주창이 조정에서 강력히 따지자 고조가 말을 해보라고 했다주창은 말을 더듬으면서 크게 화난 모습으로 말했다. “신이 입으로는 말을 잘못하지만 신은 마음속으로는 그그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압니다폐하께서 태자를 폐하려 하더라도 신은 기기필코 명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고조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실소하면서 조회를 파했다여후가 동쪽 복도에서 엿듣고 있었는데 주창을 보고서는 무릎을 꿇고 사례하며 말했다. “경이 아니었으면 태자를 거의 폐할 뻔했습니다.”(주창전한서』 3명문당, 74-75)

 

한고조의 신하들은 한결같이 황제를 단련시켰다미인도 좋아하고 금은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고 예의도 없어 거칠기 짝이 없던 유방은 한왕이 되어 싸울 때도통일을 하고 한나라의 황제가 되었을 때도 함께 했던 동지들의 엄정한 채찍질을 피할 수 없었다제멋대로이고욕심도 많았던 한고조가 무사히 황제의 직을 수행한 것은 전적으로 좌우에 포진된 동지이자 신하였던 인재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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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를 창업한 뒤에 만난 인재들도 고조를 만났을 때 거침이 없었다이들 인재들도 한나라가 진나라처럼 금방 사라지지 않고 오래가기를 열망했다낙양에서 만난 제나라 사람 유경이 그러했다당시 고조는 도읍을 정하는 문제로 신하들과 설왕설래하고 있었다많은 신하들이 주나라가 장구하게 지속되었음을 이유로 낙양을 수도로 정하자고 주장하던 중이었다관중지역의 장안은 진나라의 수도로 2대 만에 멸망하였기 때문에 많은 신하들이 반대했던 것이다이때 만난 유경은 다르게 말했다유경은 한나라 건국의 현실을 아주 냉철하게 분석하면서 장안을 도읍으로 정할 것을 건의했다.

 

폐하께서는 풍패에서 기의하시면서 3천명 사졸을 거느리시고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싸워 촉과 한을 차지하셨고 삼진을 평정하셨습니다항우와 형양성에서 싸웠고 큰 전투를 70여 차례작은 전투를 40여 차례 겪는 동안에 천하의 백성들은 피를 흘려 땅을 젖게 하였고 들판에 나뒹구는 부자의 해골을 이루 다 셀 수가 없으며 통곡 소리가 그치질 않으며 다친 사람들은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이러한 때에 폐하께서는 주나라의 성왕과 강왕과 같은 태평성대를 이루기를 바라십니다그러나 신의 생각으로 주 왕실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또 진나라의 옛 땅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큰 강이 두르고 있으며 사방이 막힌 안전한 땅이며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면 백만의 군사를 준비할 수 있는 곳입니다진의 옛 땅이지만 본바탕이 좋은 기름진 땅이기에 이곳은 소위 하늘이 내준 창고라 할 수 있습니다.

유경전한서』 3명문당, 128쪽

 

한나라가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었는가유경은 수많은 사람들의 원한 위에 세워진 나라가 한나라인데어찌 주나라와 같은 태평성대를 바랄 수 있냐고 말한다나라의 안정은 방어에 있다는 것이 유경의 판단이었다전쟁으로 일어난 나라는 또 다른 전쟁을 부를 수 있다는 냉정하고 엄정한 현실 인식은 고조를 움직였다고조 또한 유경만큼이나 냉철했던 것이다안주하지 않는 긴장이 시작의 기운일 것이다싹을 튀우고 뿌리를 단단히 내리게 하려는 마음의 간절함이 있다면 절대 안주할 수 없는 것이다안주하지 않기에 소통이 가능하다인재들도 긴장하기 때문에 입을 열고 있는 대로 이야기하며황제도 긴장하기 때문에 귀를 열고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한나라의 수도 장안은 이렇게 탄생했다.

 

승상 조참이 칼을 쓰는 무장에서 백성을 살리는 승상으로 거듭나기 위해 공부를 했듯고조에게도 그러한 인재가 나타났다육가였다육가는 중원이 안정된 후 기용되어 중원 너머 사신으로 파견되었다반고는 육가에 대해 사신으로 천하를 평정하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했다육가는 말할 때마다 언제나 시경이나 서경의 글을 인용하였다고조는 육가에게 욕을 하며 말했다. “네 아비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는데 언제 시와 서를 배웠겠는가?” 고조는 말만 앞서는 유생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육가의 말을 탐탁지 않아 했다육가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마상에서 천하를 차지했다 하여 무력으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그리고 탕왕과 무왕도 무력으로 얻었지만 이룬 것을 인의로 지켰으니 문무를 병용해야만 나라가 오래갈 수 있습니다옛날에 오왕 부차와 진의 지백은 끝까지 무력에 의존하다가 망했고 진에서는 형법에 의한 통치를 바꾸지 않았기에 결국 망했습니다지난날 진이 천하를 통일한 뒤 인의의 정치를 하고 선성을 본받았다면 폐하가 어찌 천하를 얻고 또 소유할 수 있었겠습니까?

- 「육가전한서』 3명문당, 114

 

전쟁의 때와 평화의 때에 다스림은 달라야 한다전쟁이 끝났는데도 백성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없는 법육가는 인의의 정치를 알아야 한나라를 지킬 수 있음을 강변했다고조는 육가의 말에 불쾌해하면서도 또한 부끄러워했다그리고는 육가에게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사례와 방법을 찾아 저술하라고 명령했다육가는 고조에게 12편의 신어를 저술하여 올렸다매번 한 편씩 올릴 때마다 고조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주변의 신하들은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고조의 매력과 힘은 이런 데 있다기분 나빠하면서도 실수를 하면서도들을 말은 듣는 겸손과 감응의 태도한고조 때는 이렇듯 활기가 넘쳤다황제와 신하가 하나의 열망을 품고 서로를 단련했던 것이다굴하지 않고 말하는 신하와 부끄러워하면서 수용하는 황제이런 소통이 한나라를 자리잡게 했다누가 누구를 불렀다고 할 수 있을까천하가 평정을 염원하는 때그런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접속한 게 아닐까이런 발심이 모이지 않았다면 한나라의 시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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