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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한서라는 역사책 | 혜제의 재발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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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9-01-12 10:05 조회5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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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제의 재발견 (2)







강 보 순

 

 

황제 혜제가 봄의 기운을 쓰는 방식

 

유방 사후, 태자 영은 많은 신하들과 엄마의 염원을 담아 한나라의 2대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 황제 자리는 자신의 노력이 아닌 엄마 여후가 만들어준 자리였다. 사마천은 이 시기부터 모친 여후의 섭정에 주목하였으나, 반고는 늘 모친이 하란 대로 움직이던 혜제가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장면에 주목하였다.

 

 

태후는 조왕(유여의)을 불러 죽이려 하였다. 사자가 세 번이나 갔으나 조상인 주창은 조왕을 보내지 않았다. 태후가 조상(주창)을 소환하자 조상은 장안에 왔다. 태후는 사자를 보내 다시 조왕을 소환했고 왕이 장안에 왔다. 인자한 혜제는 태후의 분노를 알고 있었기에 직접 패상에 나가서 조왕을 데리고 들어와 기거와 음식을 같이 하였다. 몇 달 뒤, 혜제가 새벽에 사냥을 나가자 조왕은 일찍 일어나지 못했는데 태후는 조왕이 홀로 있는 것을 알고 사람을 시켜 독약을 먹였다. 

- 「외척전」, 『한서』 9권, 명문당, 423쪽

 

혜제는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아들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결핍감으로 인해 열패감에 시달려 인생 막장을 구가했어야할 인물. 하지만 혜제의 마음은 결핍보다는 늘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다. 자신을 밀어내고 태자가 되려 했던 동생을 보듬는 성정이라니.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것저것 알려주는 따듯한 형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러한 장면은 2천년의 어느 정사 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니다. 오히려 여태후가 보여주었듯 경쟁자를 독살하고,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려하는 자를 죽이는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숱하게 보아온 역사의 장면이지 않은가. 하지만 혜제의 마음씀은 그러한 복수에 있지 않았다. 주창과 숙손통 그리고 상산사호가 보았던 ‘태자의 인함’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으리라. 혜제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생의 기운이었다. 유방과 여후 사이에서 이런 어질고 착한 아들이 태어난 것은 참으로 미스테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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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생의 기운이었다

 

 

여후는 조왕 여의를 끝내 죽이고, 복수의 칼끝을 척부인에게 향했다. 

 

 

  여태후는 마침내 척부인의 수족을 자르고 눈을 파내고 귀를 멀게 하였으며 약을 먹여 말을 못하게 하고 지하에 살게 하면서 ‘인체(사람돼지)’라고 불렀다. 몇 달 뒤 혜제를 불러 인체를 보게 했다. 혜제가 보고 물어 척부인인 줄 알고서는 통곡했고 병이 나서 1년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사자를 보내 태후에게 주청했다. “이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제가 태후의 아들이지만 이제는 다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후로는 날마다 술을 마시거나 음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재위 7년에 죽었다. 

- 「외척전」, 『한서』 9권, 명문당, 423쪽

 

소름끼칠 정도로 강렬한 위 일화는 그 유명한 척부인 ‘인체’사건이다. 읽기만 했을 뿐인데도 공포감이 엄청나다. 그런데 이 장면을 실제로 보면 어떤 마음이 생길까? 아니나 다를까, 이 장면을 본 혜제는 충격으로 쓰러져 1년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그런 일을 하는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혜제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혜제는 ‘정치포기’를 선언함으로써 엄마와 아들이라는 운명공동체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자신만의 정치를 구성하기 위해 움직인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혜제는 분명 정치포기 선언 이후 날마다 술을 마시고 음락에 빠져있었다고 『사기』와 『한서』는 전한다. 그런데 자기식의 정치를 구성하기 위한 활동이라니. 이것은 무슨 말일까? 사마천은 혜제가 술과 음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어 혜제를 사실상 황제로서 부정한다. 그러나 반고의 방점은 정치포기 선언 이후의 혜제의 행보에 있었다. 혜제가 ‘여태후에게 지덕(至德)을 훼손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딛은 발걸음에 주목한 것이다. 

 

 

혜제와 제왕(제도혜왕 유비)은 태후 앞에서 술을 마셨는데 형제의 예로 제왕(도혜왕)이 상석에 앉았다. 화가 난 여태후는 사람을 시켜 두 개의 잔에 독주를 따라 놓게 한 뒤 제왕에게 축수를 하라고 하였다. 제왕이 일어서자 혜제도 일어나서 같이 축수를 하려고 하였다. 태후가 겁이 나 일어서며 일부러 잔을 엎어버렸다. 제왕은 이상하다 생각하며 더 마시지 않고 취한 척하며 나왔다. 

- 「고오왕전」, 『한서』 2권, 명문당, 437쪽

 

제(齊) 도혜왕은 고조의 맏아들이지만 정실황후의 자식이 아니었기에 태자가 될 수 없었던 혜제의 배다른 형이다. 혜제는 오랜만에 만난 형 유비를 형제의 예우로 자신보다 상석에 앉게 했다. 그런데 그것이 여후의 분노를 불러올 줄이야. 여후는 아무리 형이라도 자기 아들보다 윗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위인. 척부인 인체 사건의 여운이 체 가시기도 전에 여후는 다시 한 번 살인을 준비한다. 그러나 혜제는 눈치 빠른 아들이었다. 어머니가 형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직감하고 축수할 때 형과 동시에 일어나 형을 위기로부터 구해준다. 끊임없이 살리려 하는 아들과 끊임없이 죽이려 하는 엄마. 이렇게나 다른 기운을 쓰는 모자지간이라니.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막장’에 가까운 여후의 행위가 전한시대의 봄이라고 불리는 시기에 전부 일어났다는 점이다. 보통 이러한 행위는 나라에 망운이 드리울 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한나라는 안정을 구가했다. 왜일까? 황실내부의 권력다툼이 정치의 근간은 흔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태후 만해도 자기의 형제들을 왕으로 분봉했지만 정치의 주축이었던 재상과 같은 자리는 탐하지 않았다. 황제는 철저히 무위하되, 신하는 철저히 유위해야하는 황로의 무위지치를 지켜나간 것이다. 

 

 

 

무위의 군주, 혜제

 

반고의 시선으로 혜제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니 전에는 지나쳤던 혜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혜제가 당대의 명재상 소하, 조참과 대화를 나눈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 대화에서 다스림에 대해 고민하는 군주 혜제를 만날 수 있었다.

 

 

고조가 붕어하자 소하는 혜제를 섬겼다. 소하가 병이 나자 혜제가 몸소 소하를 찾아 문병하면서 겸사해서 물었다. “승상이 100세가 된 뒤에 누가 승상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소하가 대답하였다. “신하에 대해서는 주군이 가장 잘 아십니다.” 혜제가 다시 물었다. “조참이 어떻겠습니까?” 소하는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폐하께서 바로 보셨으니 저는 죽더라도 한이 없습니다.” 

- 「소하열전」, 『한서』 2권, 명문당, 491쪽

 

이것은 혜제 2년, 그러니까 혜제가 정사에 신경 쓰지 않았다고 생각한 그 시점의 기록이라는 점을 주목해서 보자. 혜제는 나라 살림을 도맡아 했던 소하가 건강이 좋지 않음을 알고 문병을 한다. 이 모습은 황제가 신하에게 문병을 가는 한나라 역사의 최초의 사례다. 고조가 붕어하기 전, 여후는 일일이 다음 후사를 유방에게 물어본 일이 있었다. 사실 여후가 후사를 묻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장면인데, 죽어가는 황제에게 재상의 후임을 물어보는 황후는 역사적으로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후가 후사를 묻는 행위는 중요하다. 왜일까? 후사를 묻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이 정치를 주도하겠다는 간접적인 의사표시이기 때문이다. 혜제가 소하에게 후사를 물어보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혜제는 소하가 죽은 뒤의 한나라가 너무나 걱정되었던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치를 포기한 군주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날마다 술을 마시고 음락에 빠져있지만 재상은 챙기는 군주??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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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제는 정치를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소하는 유방이 여후에게 그랬듯 바로 대답해 줄 수도 있었을 질문을 ‘신하에 대해서는 주군이 더 잘 아십니다.’라는 말로 혜제의 답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혜제는 조심스레 ‘조참’이라 답한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결과를 다 알고 거시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조참 아닌가?’ 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린 황제가 그 많은 개국공신들 중에서 조참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혜제는 눈과 귀를 사방으로 열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조참과 혜제의 일화도 한번 살펴보자. 조금 길지만 무척 흥미로운 내용이다.

 

 

조참의 아들 조줄은 중대부였다. 혜제는 상국이 정사를 돌보지 않은 것을 괴이하게 여기며 ‘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조줄에게 말했다. “경이 휴가를 얻거든 틈을 보아 조용히 부친에게 ‘고제가 돌아가신 지가 얼마 안 되었고 폐하는 나이가 어린데 아버님은 상국으로서 날마다 술만 마시고 정사를 주청하는 일이 없으니 천하를 어찌 하시렵니까?’ 라고 말하되, 내가 부탁했다는 말은 하지 마시오.”

조줄은 세목 휴가일에 틈을 보아 자신의 뜻인 것처럼 부친에게 말했다. 조참은 화를 내며 조줄에게 2백 대를 매질하고 말했다. “빨리 궁에 들어가거라. 천하의 일은 네가 말할 것이 아니다.” 다음 조회 때 혜제가 조참을 나무라며 말했다. “왜 조줄에게 매질을 했소? 저번 일은 경에게 말하라고 내가 시킨 것이오.” 조참은 관을 벗고 사죄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스스로 생각하실 때 뛰어난 무예가 고황제에 비해 어떻습니까?” 혜제가 말했다. “짐이 어찌 선제를 쳐다보기나 하겠습니까?” 조참이 물었다. “폐하께서 볼 때 저와 소하는 누가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혜제가 대답했다. “경이 따라가지 못할 것 같소.”

이에 조참이 말했다. “폐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고황제와 소하가 천하를 평정하시면서 법령이 다 갖추어졌으니 폐하께서는 팔짱을 끼고 계시며, 저희들은 직분을 지켜 따르면서 실수만 안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혜제가 말했다. “좋은 말씀이오. 상국도 그만 쉬십시오!” 

「조참열전」, 『한서』 2권, 명문당, 511쪽

 

혜제의 자기평가와 정세분석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그러한 혜제의 평가와 분석이 결국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자신은 어리고 부족한데, 상국이란 자는 매일 술만 퍼마시고 있으니 나라 걱정이 안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은 혜제와 고후의 시대를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군주와 신하가 전부 쉬면서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혜제는 팔짱만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고후가 여주인으로 황제의 직권을 대행해 정치가 방안을 벗어나지 않았어도 천하는 편안했다.”(사마천,「여태후본기」, 『사기』, 민음사, 407쪽) 이 말은 자칫 잘못 해석하면 사마천이 ‘팔짱만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혜제의 무능력함을 비판하는 내용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비판이 아니라 혜제에 대한 칭찬이다. 조참은 혜제에게 고조와 소하가 만들어 놓은 것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야말로 갓 개국한 한나라의 안정에 필요한 정치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군주는 무엇인가를 계속 하려하기보다 오히려 팔짱만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이른바 무위의 통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혜제는 조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마천이 말한바, ‘혜제는 팔짱만 끼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혜제의 재발견

 

혜제와 여태후는 참 특별한 모자지간이다. 아들을 황제로 만들어준 사람도 엄마지만, 사실상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엄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특별한 모자지간은 살아서도 다투었지만, 사후에도 본기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다시 한 번 역사가들 사이에서 다투게 된다. 사마천과 반고도 이를 두고 다투지 않았던가. 

  

반고는 명실상부 황제였던 혜제를 본기에서 뺀 사마천에게 나름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반고는 사마천이 묻어버린 여태후와 혜제의 권력다툼을 전면에 내세워, 숙살지기를 쓴 여후와는 달리 혜제가 봄의 기운을 쓰는 방식에 주목했다. 봄이란 어떤 기운인가? 그것은 겨울 내내 얼어있던 땅을 뚫고 나와 새싹을 틔우는 힘으로 모든 만물이 생하려는 기운이자, 천지만물을 사랑하는 인한 마음 아닌가. 그 결과 반고의 시선에서 혜제는 사마천이 보여주었던 혜제와 전혀 다른 군주로 드러났다. 무능한 군주가 아니라 형제에겐 은애롭고 재상들을 공경하는 가히 ‘관대 인자한 군주’로! ‘봄의 군주’로! 재발견된 것이다. 반고가 혜제를 본기에, 그것도 봄의 군주로 당당히 수록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전한시대라는 단대사를 정리해야했기에 당연히 넣어야 할 필요성도 있었겠지만, 그렇게만 해석하기에 반고가 다룬 혜제의 비중이 결코 가볍지 않다. 반고에게 혜제는 진정 군주다운 군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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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는 혜제를 '봄의 군주'로 재발견한다

 

 

그런 혜제는 23살의 나이로 재위 7년 만에 죽었다. 봄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죽은 것이다. 봄은 끝내 싹을 틔워내는 힘이건만, 혜제는 생의 기운을 썼지만 그의 다스림은 끝내 싹을 틔워내지 못했다. 그 싹은 결국 엄마 여후가 틔워주는데, 혜제가 생전에 추진하려했지만 끝내 발의하지 못한 법을 실현시켜준 것이다. 그 법은 무엇일까? 그 법은 놀랍게도 삼족죄(연대죄)와 요언령(무고죄) 폐지였다. 혜제가 죽는 순간까지 추진하려 했던 법은 결국 사람을 살려내는 법이었던 것이다. 

  

혜제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어머니의 그늘에 가려 황제의 역할을 할 수 없었던 황제, 유약하여 정치적 역할을 포기한 황제로 각인되어 왔다. 그래도 다만 혜제의 이러한 성정과 군주로서의 비전을 우리가 한 번쯤은 알아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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