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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의 질문들 | 위선에 대항하는 정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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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필벽성옥 작성일17-11-14 00:06 조회65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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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의 질문들] (11) - 『도련님』

 

위선에 대항하는 정공법

 

박 성 옥

 

1. 햇병아리 섬마을 선생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에, 앞뒤 가리지 않는 행동파 청년이라니, 소세키 소설에서 쉽사리 만나기 어려운 캐릭터이다. 더러 발랄하고 가벼운 인물이 나오긴 해도 조연급이지 대다수 주연급 인물은 고민은 많고 불안은 깊어서 내면의 심연으로 가라앉는 인간들이다. 뭐니 뭐니 해도 소세키의 전문분야는 자의식에 시달리는 신경과민형 인간이니 말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탐구에 질린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고 모처럼 유쾌, 상쾌, 통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생각과 행동 사이에 간극이 없는 단순 솔직한 청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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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련님은 어릴 때부터 장난이 심해서 집안의 골치 덩어리였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화가 나서 용돈을 안 줄 정도일까. 동네에서는 악동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하녀 기요만은 말썽을 피우다 혼나기 일쑤인 도련님을 애지중지 감싸준다. “도련님은 올곧고 고운 성품을 지녔어요.” 칭찬이 마르지 않는다. 기요는 늘 도련님이 출세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격려해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데 하물며 사람이랴. 도련님은 기요 덕분에 자기가 뭐가 되어도 될 것 같은 긍정적인 기분이 든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형은 집을 팔아서 도련님에게 6백 엔을 주고 다른 지방으로 떠난다. 도련님은 형이 유산을 공정하게 나누었는지 계산을 따지지 않는다. 돈에 욕심이 없는 태평한 기질이다. 형에게서 받은 돈으로 물리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무일푼이 되었다. 도련님은 중학교 수학교사로 취직을 하게 된다. 소설은 스물네 살 도련님이 섬마을 선생님으로 출근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세상이야기다.

 

 지도를 보면 바닷가에 바늘 끝만큼 작게 표시된 곳. 시코쿠는 벌거벗은 몸에 훈도시만 겨우 걸친 뱃사공이 노를 저어가는 깡촌이다. 처음으로 도쿄를 떠나 작은 어촌마을로 가게 된 도련님은 어떤 세상과 만나게 될까? 아직 화폐 중심의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인정 넘치는 전통사회? 순수하고 아리따운 섬마을 아가씨와의 풋사랑? 이런 낭만적인 기대를 했다면 오산이다. 도련님이 만난 섬마을 사람들은 순박하지 않았다. 여관 주인은 팁을 주지 않으면 무덥고 좁은 방을 주면서 골탕을 먹이고, 하숙집 주인은 골동품을 팔려고 온갖 속임수를 쓰며 치근덕거린다. 세상은 입 발린 소리로 친절을 가장하고 있는 사기꾼으로 가득하다.

 

 학교라고 다를 바 없다. 배울 만큼 배운 엘리트 집단의 위선은 한 술 더 뜬다. 교감(빨간 셔츠)은 문학사라는 높은 학력과 지위를 내세워 남의 약혼녀를 빼앗고, 뒤로는 기생집을 드나드는 비열한 사람이다. 하는 말이나 취향을 보면 나무랄 데 없이 고상하다. 도련님이 보기엔 느글거릴 정도로 문화와 교양을 표방하고 있다. 위선을 지탱하는 힘은 돈이다. 교감 옆에는 미술선생(알랑쇠)이 딱 붙어있다. 권력에 붙어서 아부하고 부정한 짓을 비호하는 세력이다. 그들은 햇병아리 교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교묘하게 조종한다. 도련님이 싸움판에 끼어들도록 유도하고 악의적인 신문기사가 실리게 하는 등 뒤통수를 친다. 교사들의 위선은 세련된 화술로 포장되고 있어서 참인지 거짓인지 분별하기 아리송하다. 도련님이 마주친 현실은 아찔할 정도로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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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선은 자기 이익을 위하여 관계를 포장하는 기술이다. 위선은 가짜임이 밝혀지는 순간, 끝없이 또 다른 위선을 덧씌워서 흉측한 본성을 감춘다. 도련님은 겉으로 훌륭한 교사인 척 하지 않는다. 아양을 떨거나 입발림 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교장에게 임명장을 받는 장면은 단적으로 도련님의 성격을 드러낸다. 교장은 임명장을 주면서 교사가 갖춰야 할 자질을 연설한다. 교사는 학생에게 모범을 보이라느니, 존경을 받아야 된다느니, 덕으로 학생들을 교화하라느니...장황하다. 이 말을 듣는 도련님은 “그렇게 훌륭 사람이 월급 40엔을 받으려고 이런 촌구석까지 올 리가 있나”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교장선생님 말씀대로는 도저히 못할 것 같으니 임명장을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쿨 하게 말한다. 이런 솔직한 사람이 있나. 교사로 취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거짓이라도 최선을 다 하겠다고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게 일반적인 처세술 아닌가. 너무나 솔직한 태도에 교장이 화들짝 놀라며 일장연설을 거두어들인다.

 

2. 정공법으로 대응하다

 

 학생들은 신참 교사를 골리려고 숙직실 이부자리에 메뚜기를 잔뜩 숨겨놓는다. 도련님은 끝까지 학생들의 사과를 받아낸다. 문제는 학생들이 솔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장난을 쳤으면 벌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게 도련님의 신조다. 거짓말을 해서 벌을 피할 생각이면 처음부터 장난을 치지 말아야지 비겁한 건 못 봐준다. 도련님은 자신의 평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의 단순하고 진솔한 태도는 사람들에게 먹힐까? 그럴 리가. 세상물정 모른다고 비웃음만 산다. 능란한 아부 기술도 없고 논리적으로 따지는 화술조차 없는 그는 어떤 방식으로 위선과 허위에 맞설까?

 

 교감(빨간 셔츠)은 군자처럼 점잖은 영어선생(끝물호박)을 치사한 계략을 세워서 전근시키고 자신들의 비리를 잘 알고 있는 수학선생(산미치광이)도 교직에서 자른다. 그리고 당장 수업에 필요한 도련님을 월급인상으로 매수하려 한다. 도련님은 월급을 올려준다는 회유를 당당하게 거절한다. 그는 돈 앞에 비굴하지 않다. 도련님은 수학선생과 힘을 합쳐서 불의에 맞선다. 두 사람은 밤새 잠복했다가 기생집을 나오는 교감과 알랑쇠를 흠씬 패준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힘이 정의다. 돈보다는 정의, 이득보다는 의리다. 주먹으로 불의를 응징하고 도련님은 교직을 때려치운다. 도쿄로 돌아온 도련님은 철도기수원이 된다. 월급이 교사 절반밖에 안 되지만 위선을 떨며 살 필요가 없다.

 

도련님이 위선과 허위에 대항하는 정공법은 통쾌하다. 어느 시인은 유쾌, 상쾌, 통쾌를 이렇게 정리했다. “유쾌한 사람은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할 줄 알며, 상쾌한 사람은 고민의 핵심을 알며, 경쾌한 사람은 고민을 휘발시킬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고민을 역전시킬 줄 안다.”(김소연, 『마음사전』, 마음산책, 2017, 70쪽) 도련님은 통쾌하게 고민을 역전시킨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는 천부적으로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이다. 그가 앞뒤를 가리지 않는 이유는 앞뒤가 똑 같기 때문이다. 이익인지 손해인지 재고 따지지 않고 겉과 속이 투명하게 일치한다. 손해는 볼지라도 자신에게 솔직하고 남에게 떳떳하다.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느끼는 대로, 곧이곧대로 행동한다.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 부패하고 복잡하게 얽힌 세상살이의 매듭이 풀리지 않으면 가위로 싹둑 잘라버린다. 앗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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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고발로 끝나지 않는다. 위선과 허위가 독버섯처럼 늘어나는 이유는 인간관계가 화폐에 얽혀서 삭막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모든 것을 수치로 환산해서 계량화하는 균질화 된 사회다. 여기서 가치척도가 되는 것은 단연 화폐다. 화폐를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서열화 된다. 근대인의 상식으로는 신세를 지면 그만큼 되갚아야 한다. 아니 조금 더 붙여서 되갚아야 한다. 선물한 사람도 속으로는 언젠가 상대방에게 이익을 되돌려 받을 것을 기대한다. 자본주의의 원리는 확대재생산이다. 채무자는 원금에 이자를 붙여서 변상한다. 총칼을 앞세우는 대신 계산기를 들이대는 치명적인 교환관계이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을 넘어서 불균형적인 화폐관계를 증폭시킨다.

 

3. 연인보다 애틋한 증여관계

 

소세키는 화폐관계에 대항하는 대안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도련님과 기요 사이에는 아주 특별한 연대감이 흐른다. 기요는 도련님의 집에서 10년 넘게 살림을 해준 할멈이다. 기요는 엄마를 일찍 여읜 도련님을 감싸주며 자기 돈으로 과자를 사주고, 신발, 양말, 공책도 사준다. “용돈이 없어 궁하지요, 쓰세요.”하면서 3엔이나 빌려준 적도 있다. 도련님은 5년이 넘도록 기요에게 돈을 갚지 않는다. 심지어 교사가 되어서 돈을 벌고 있는데도 기요는 우편환으로 용돈을 부쳐준다. 가난한 하녀에게서 상대적으로 돈 많은 도련님에게로 거꾸로 돈이 흘러간다. 어떻게 이런 기이한 흐름이 가능할까?

 

 여기서 잠깐, 도련님과 수학선생 사이에 벌어진 빙수사건을 되짚어보자. 수학선생은 처음 도련님을 만난 날 빙수를 사준다. 며칠 후 도련님은 수학선생이 뒤에서 비열한 짓을 한 걸로 오해하게 된다. 그러자 도련님은 빙수값 1전 5리를 수학선생에게 되돌려준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에게는 빙수를 얻어먹을 수 없다는 뜻이다. 수학선생은 아무런 변명 없이 그 돈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돈 위에 먼지가 쌓여가고, 두 사람의 관계는 냉랭하다. 출근할 때마다 그 돈을 바라보는 도련님의 마음은 불편하다. 한참 지나 오해가 풀리자 도련님은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집어서 자기 주머니 속에 넣는다. 돈을 안 갚아도 되는 사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진한 우정의 관계를 맺게 된다.

 

푼돈에 불과한 빙수값 1전 5리도 납득이 되지 않으면 기어코 돌려주는 도련님이 왜 기요에게는 3엔이라는 큰돈을 갚지 않았을까. 도련님의 셈법을 보자. “돈을 갚지 않는 것은 기요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기요를 나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7년, 80쪽) 도련님은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게 상대를 인정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남남이라고 생각하면 깔끔하게 더치페이를 하면 그만이다. “남에게 얻어먹고 마음속으로 고맙게 여기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보답”이라는 게 도련님의 논리다. 자본주의적 교환방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셈법이다. 감사한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이런 논리가 궤변일까?

 

 기요와 도련님은 순수한 증여관계를 보여준다. 기요와 도련님 사이에 오고가는 돈과 물품은 교환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증여의 뜻을 담은 순환관계이다. 기요는 조건 없는 나눔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근대의 화폐관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진실한 인간관계는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런 이득을 바라지 않는다. 도련님과 기요의 관계는 더 이상 주인과 하인이라는 고용관계가 아니다. 도련님이 섬마을에 갔을 때 기요는 120센티미터나 되는 길고 긴 편지를 보낸다. 두 사람은 연인보다 애틋하다. 서로를 인정하고 성장시키는 동반자의 관계이다. 도쿄로 돌아간 도련님은 다시 기요와 함께 살아간다. 기요는 법원 서기로 있는 조카와 사는 것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도련님과 사는 게 좋다. 도련님은 기요가 죽은 후 자신의 가족묘가 있는 절에 묻어준다. 죽어서도 헤어지지 않는 가족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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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련님에게 기요는 “교육도 받지 못했고 신분도 낮은 할멈이지만, 인간으로서는 굉장히 고귀한 사람”( 『도련님』, 57쪽)이다. 존중하고 배울만한 스승이다.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공감을 이루는 친구이기도 하고, 연인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하다. 그런 사이에 화폐를 매개로한 교환관계가 성립할 수가 없다. 증여는 돈이 남아 돌아서 베푸는 잉여나 동정이 아니다. 소유와 축적의 벡터를 벗어나 물질을 순환시키는 운동이다. 기요와 도련님이 보여주는 증여관계는 혈연보다 더 진한 연대의식으로 공동체를 이룬다. (2017.11.14.)

댓글목록

진실님의 댓글

진실 작성일

글 잘 읽었습니다.
'통쾌'는 못 되어도 '경쾌'의 경지에는 이르고 싶어요^^
도련님과 기요의 따뜻한 증여도 흐뭇하네요~

필벽성옥님의 댓글

필벽성옥 댓글의 댓글 작성일

<도련님>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처럼 소세키의  초기 작품들은  매우  경쾌한 톤으로  세상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해학과 익살이 있지요. 저는  덜 어두운  초기작이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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