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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되기 | 우리가 서로에게 보시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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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2-17 07:00 조회5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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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에게 보시한 것들

 




초선 (2조)



휴대폰 꺼두는 걸 깜빡했다. 하필 중요한 순간에 벨이 울렸다. 딸의 귀가 시간이 궁금한 엄마의 전화였기에 지금 안 받으면 또 울릴 것이다. 침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니?” “친구랑 차 마시고 있어요. 먼저 주무세요.” ‘엄마도 이해하시겠지. 남자랑 모텔에서 손만 잡고 있다고 할 수는 없잖아’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데 그가 말했다. “부모님께 거짓말하는 게 죄송한데, 오늘은 그냥 나갈까?” 나는 건강한 20대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건 죄송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여자가 이런 말 하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남들 눈을 피해 힘들게 들어왔는데 이대로 나가는 건 더 싫었다.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몰입했지만, 죄송하다는 그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섹스가 재미없을 수 있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우리는 산악자전거 동호회에서 만났다. 180센치 키에 말 근육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는 자전거도 잘 타고 힘도 좋아서 중년 남성들의 부러움을 샀다. 나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갖고 싶었다. 그의 자전거 실력은 선수였지만 연애는 초보자였다. 손잡는 것부터 키스하는 것까지 나는 그의 선생님이 되었고, 다행히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우등생이었다. 혈기왕성한 청년이 욕망에 눈뜨는 과정을 보는 게 재미있었고 나는 이 청년의 몸과 마음을 모두 지배하고 싶었다. 

    

그와 5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주변에 여자가 끊이지 않던 아버지로 인해, 나는 배우자의 조건으로 ‘여자 문제가 없을 만한 사람’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여자를 잘 모르고 성욕을 절제할 줄 아는 그가 제격이었다. 그는 60대에도 섹스를 할 텐데 지금부터 아껴야 질리지 않을 거라고 했고,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도 이 말에 동의했다. 결혼 후 나는 회사 일로 무척 바빴고, 야근과 출장으로 집을 자주 비웠다. 연애할 때부터 먼저 잠자리를 요구한 적이 없었고, 혼자 보내는 시간도 좋아했던 그였기에 나는 부담 없이 회사 일에 올인할 수 있었다. 그가 내게 유일하게 요구한 것은 주말에 답답한 침대를 벗어나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을 가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 둘만의 공간에서 온전히 한 몸이 된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하기로 약속하고 아침에 눈 뜨면 밖으로 나갔다. 밤늦게까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등산을 하고 집에 오면 그는 항상 먼저 잠이 들었다. 나는 매번 다음을 기약하며, 잠들지 않는 욕망을 잠재워야 했다. 

    

결혼 후 2년 차 되던 해부터 그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증상은 점점 심해져 토하거나 체하는 날이 잦았고 자다가 코피를 쏟아 베개가 젖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돈은 나 혼자 벌어도 충분하니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고 했고 그의 병은 회사를 나온 다음 날부터 말끔히 나았다. 그가 당연히 내게 고마워할 줄 알았지만 그는 생각만큼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일을 끝까지 미루며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을 때, 나는 서둘러 결정했고 대신 책임지려 했다. 사랑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주는 순애보인 척 했지만 나 아니면 아무도 만나지 못할 ‘못난 남편’에게 ‘능력 있는 아내’로 자리매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나의 이런 욕망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그는 돈벌이와 육아로 고민이 많던 친구들에게 “와이프 잘 만나서 팔자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때부터 친구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취미와 교육이 주된 일과였던 그는 하나둘씩 그만두더니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활동적이던 남자가 하루 종일 집 안에 멍하니 있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는 100일 동안 휴가를 다녀오라며 그를 백일출가에 보냈다. 그곳에 다녀오고 잠시나마 밝아진 것 같았지만 다시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때마침 지리산의 한 마을에서 인문학과 철학, 불교를 공부하며 스님들과 생활하고 농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는 가기 싫다고 했지만, 서울에 있을 거면 취직을 하라는 내 말이 더 싫었는지 결국 이곳에 입학했다. 그의 강한 체력은 회사보다 농사일에서 더 빛이 났고 공부도 재밌어했다. 

    

그는 언젠가 지리산에서의 1년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시골에 사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진 탓에 한 달에 한번은 해야 한다는 잠자리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지 오래였다. 아이를 갖고 싶었던 나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몸의 변화를 겪으며 욕구를 참지 못할 때가 있었다. 내가 요구하지 않으면 몇 달이 지나도 아무 말이 없는 그의 본심이 궁금했다. 그는 어린 시절 겪은 일들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몇 살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자다가 밖에서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부모님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엄마가 위험에 처한 줄 알았다고... 군대 시절에는 선임들에게 이끌려 사창가에 갔다가 여자를 보고 도망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옆방에서 거사를 치르고 있던 선임들에게 붙잡혀 죽도록 맞았다고 했다. 이 사건들이 섹스에 대한 트라우마가 되었을까? 나는 그의 엄마도 아니고 모르는 여자도 아니었다.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항상 전력으로 질주했고, 그 끝에서 우리는 늘 충만했다. 그런데 그동안 거부감을 참으며 억지로 노력한 것일까? 나는 그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가 섹스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나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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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번 돈은 ‘우리의 돈’이 아닌 ‘내 돈’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나의 이런 태도에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나는 항상 부족한 듯 용돈을 주었고, ‘보시의 윗자리’에 서서 그에게 충분히 보시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돈이 더 필요할 때마다 내게 손을 벌렸고, 그 돈을 고마워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에서 보시할 만한 것을 찾았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그는 내가 몇 번이나 애걸해야만 몸을 보시해 주었다. 나는 그가 ‘보시의 윗자리’에 서서 나를 거부하고 성가셔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정말 간절하지 않으면 잠자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섹스를 시작하면 좀 전까지 동냥하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집중할 수 없었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잠깐의 쾌락을 위해 절대 동냥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의 단단한 몸과 따뜻한 촉감이 그리웠고 내 다짐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1년이 넘도록 서로의 몸을 만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 시간을 이전과 다르게 보냈다. 함께 명상 수행을 다니고 절에 다니며 법문을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젊은 부부가 참 멋지게 산다며 칭찬했다. 그는 이런 말을 좋아했지만, 싸울 일도 웃을 일도 없는 사이가 된 이때부터 우리는 권태기였다.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 나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직금과 보너스를 갖고 1년간 유럽과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큰 배낭에 며칠간 먹을 식량과 텐트를 잔뜩 짊어지고 매일 잘 곳을 찾았다. 그는 늘 앞에서 나를 리드하며 자신감을 찾아갔다. 여행 중에 몇 번 큰 싸움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낯선 곳에 나를 혼자 두고 가버리곤 했고, 이전처럼 쉽게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런 행동을 보고 이번이 마지막 ‘이혼여행’이 될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우리는 본격적으로 시골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그는 뜻밖에도 이곳에 남아 목공일을 하겠다고 했다. 늘 시골에 살고 싶다던 그였기에 이런 답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해 처음으로 얘기한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었다. 나는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고 했고, 그는 이 말에 당황했다. 나 혼자 가겠다는 말에 그는 서운해했지만, 나는 그를 설득하는 데 지쳤다. 결국 우리는 이혼에 이르렀다. 법원에 가기 전날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그는 연애도 결혼도, 이혼도 모두 당신이 원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12년의 시간이 이 말 한마디로 정리가 됐다. 나는 이 말에 화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이혼 사유를 말해주었다. “나는 더 이상 당신과 자고 싶지 않아” 끝까지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던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걸 허락하면 계속 같이 살 수 있겠어?” 나는 이 말을 듣고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부부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그에게 보시한 물건들을 적어 보았다. 그가 가장 아끼는 자전거 3대, 카메라, 옷가지 등등... 그리고 그가 잠자리에서 내게 보시할 때 썼던 유통기한이 이미 지난 콘돔 한 박스도 찾았다. 어쩌면 우리는 보시의 윗자리에 서고 싶은 욕망을 위해, 상대를 동냥치로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서로에게 줄 것이 없는 우리는 이제 각자 제 길을 떠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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