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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과 의역학 | 생명력의 비밀, 하우의 유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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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경아 작성일17-10-27 07:02 조회8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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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의 유동, 기혈(氣血)의 순환

 

 증여의 고리를 통해 하우가 유동하면 생명을 가진 힘이 움직인다고 보는 관점은 우리 몸에서 기혈의 순환과 동일한 맥락 위에 놓을 수 있다.  

 

 혈은 물과 같고 기는 바람과 같다. 그러므로 혈과 기의 관계는 바람이 물 위로 스쳐지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기가 혈을 이끌기 때문에 기가 돌면 혈도 돌고, 기가 멈추면 혈도 멈춘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북드라망, 99쪽)

 

 타옹가를 움직이는 하우라는 개념이 혈(血)을 이끄는 기(氣)와 비슷하지 않은가. 혈은 음식물 중에서 정미로운 즙이 붉게 변한 것으로 타옹가처럼 일종의 물질이다. 기는 호흡과 음식 등 외부물질에서 에너지를 들여와 몸의 순환을 촉발시킨다. 하우가 정체되면 타옹가에 위험한 영력이 들러붙듯이 기혈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어혈瘀血이 생기고 오장육부의 기능이 저해되며 심하게는 정신질환이 일어나기도 한다.
  기와 혈은 둘 다 과도한 감정, 이른바 칠정에 의해 적체되기 쉽다.

 

단계가 말하길 “기로 처음 병이 생길 때는 그 증상이 매우 미미하다. 칠정이나 육기, 음식으로 인하여 진액이 잘 돌지 못하고 맑은 기와 탁한 기가 서로 섞여 기가 적積이 되고 적이 담이 된다. 이렇게 기가 막히면 답답하거나 통증이 생긴다”고 하였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북드라망, 61쪽)

 

감정이 지나치면 혈이 상한다. 지나치게 기뻐하면 심장이 요동치므로 피를 만들지 못한다. 지나치게 화를 내면 간이 상하므로 피가 저장되지 못한다. 또 근심이 지나치면 폐가 상하고, 생각이 지나치면 비가 상하고, 뜻을 잃으면 신장이 상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피를 요동치게 만든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북드라망, 101쪽)

 

 이렇게 기가 울체되어 제대로 혈을 이끌지 못하면 혈이 뭉쳐서 어혈이 발생한다. 그리고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어혈은 다시 기혈의 흐름을 방해해서 오장육부에 제대로 영양분을 보내지 못한다. 마치 하우가 움직이지 않으면 성장이나 번식과 같은 자연의 생명활동이 정지하는 것처럼 기혈이 막히면 오장육부의 기능을 저해하고 결국 정신활동까지 위축시킨다. 진액이 뭉친 담음과 달리 칠정에 의해 생긴 어혈은 일종의 블랙홀처럼 그 안에 다시 감정을 들러붙게 하여 그것이 산포되거나 전변되지 못하게 만든다. 한의학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을 위험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통증도 위치나 양상이 바뀌지 않는 것은 좋지 않은 예후이다. 그러니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한 곳에 머무르려는 어혈과 감정은 얼마나 우리 몸을 무겁게 하겠는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흐름을 타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상의 동선을 바꿔서 익숙한 패턴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재미있게도 혈이라는 것이 감정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모습, 즉 외부와 관계 맺는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SBS 스페셜 ‘심장의 기억’이란 프로그램에서 심장 이식 후 특이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다룬 적이 있는데, 그 중 매일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악몽을 꾸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소녀에게 심장을 기증해준 기증자가 살해당해 죽었던 것이다. 소녀는 꿈속에서 본 범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를 토대로 경찰은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는 심장 이식후 각종 스포츠를 즐기게 되었고 음악과 음식 취향이 바뀐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그에게 헐리웃 스턴트맨 출신 기증자의 취향이 전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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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감정만이 아니라 기억과 취향까지 담고 있다!

 한의학적으로 심과 혈은 같은 계열이며 심장의 기운은 혈에 나타난다. 그러니 위 예시가 살짝 으스스한 느낌을 주긴 해도 혈은 감정과 기억, 취향까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시공간을 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러니 혈에 병이 생겼다면 일상의 모든 활동을 살펴서 병증을 일으킬만한 태도나 습관을 바꿔야 한다. 이때 가장 변화하기 어려운 것이 고착화된 감정인데, 칠정으로 인해 혈병이 생겼다고 심장을 바꿀 순 없으니^^ 우선은 내가 외부와 관계 맺는 방식을 조금씩 다르게 조율해보면 맺혀있는 감정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혈을 이끄는 기가 울체되었을 때 쓰는 약이 교감단(交感丹)이라는 것이다.

 

교감단交感丹(향부자와 복신을 가루 내어 꿀로 반죽하여 알약으로 만든 것)은 여러 가지 기의 울체를 치료한다. 모든 공사公私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울적하고, 명성과 이익을 잃어 억울해하고, 칠정에 상하여 밥맛이 없고, 얼굴이 누렇고 몸이 여위며, 가슴이 그득하고 답답한 증상에 효과가 좋다. 이 약은 수기를 올리고 화기를 내린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북드라망, 61쪽)

 

 교감은 다른 사람 혹은 세계와 접촉하여 대화, 감정, 느낌 등이 통했을 때 쓰는 말이다. 그렇게 외부와 만나고 관계를 맺어야 기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아예 약 이름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결국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명성과 이익을 잃어 기가 울체되면 기존에 자신이 몸담고 있던 인연의 장을 떠나거나, 이전에 시도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으로 일상을 꾸려봐야 한다.
 마오리족은 그레이버의 말대로 무한히 이어지는 선물 교환을 통해 이웃과 호의 관계를 맺기 위해, 그리고 나카자와 신이치 분석대로 증여라는 행위에 담겨 있는 신뢰나 애정과 같은 다층적인 가치들이 흘러가는 것이 인간의 무의식에 편안함을 주기 때문에 하우라는 영력을 중요한 가치로 삼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공고하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를 조장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고립시키고 행복은 상품구매를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타지를 유포한다. 결국 증여의 기억은 생일이나 기념일을 챙기는 행위 정도에만 희미하게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쇼핑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려 하지만 어쩐지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은 물건의 종류만 바뀔 뿐 구매라는 동일한 행동의 반복이며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은 기본적으로 반복과 지루함에서는 살아있음을 느끼기 어렵다.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선 새로운 사유, 감정 등을 만나거나 기존의 것들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손에 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혈이 부족할 때 보혈(補血)을 위해 먹는 사물탕은 천궁을 써서 우선 파혈(破血)부터 하게 만든다. 일단 기존의 것을 깨서 틈을 만들어야 외부에서 이질적인 것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고통과 번뇌가 없다면 절대 편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몸 밖의 음식과 호흡을 통해 기혈의 원재료를 얻듯이 첫눈에 적인지 아군인지 가늠할 수 없는 외부와 적절히 관계를 맺을 때 기(氣)가 안팎으로 흘러 다니며 몸의 순환 동력을 높여준다. 물론 그 적절함은 매번 다를 것이다. 같은 혈허(血虛)여도 기가 너무 약하면 파혈작용이 강한 사물탕보다 기도 보하면서 혈도 보하는 당귀보혈탕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외부와 관계 맺어야 기혈의 순환을 추동할 수 있는 기에 대한 설명은 증여의 고리가 무한히 계속되어야 자연의 생명력을 지킬 수 있다는 하우의 개념과 고스란히 오버랩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모스는 『증여론』에서 ‘하우’를 일종의 바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하우’를 바람으로 떠올리는 것이 그 용법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사방 어디라도 드나드는 바람의 이미지가 기의 순환, 하우의 유동을 직관적으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일이나 생각이 진전 없이 꽉 막혀 있을 때 바람을 쐬고 싶은 것처럼 우리 몸과 일상이 어딘가에서 정체되어 답답하다면 어떤 방법으로 기와 하우를 흐르게 하면 좋을지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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