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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과 의역학 | ‘나’라는 자아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시점 혹은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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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경아 작성일18-10-26 06:44 조회1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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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고의 충격으로 AI가 인간을 대체하여 이제 정말 일자리가 없어지는 걸까? 라는 많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뒤로 하고, 올해 하반기 채용 과정에 AI면접을 도입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1차 면접으로 서류 전형에서 AI 기술을 활용하면 자소설(자기소개서와 소설을 합친 말로 꾸며낸 이야기로 만들어 낸 자기소개서)등을 걸러내기 쉽고 몇 만명이 넘는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단 하루 만에 분석할 수 있다. 또 AI면접을 진행할 경우 면접 장소나 면접관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서류심사 없이 지원자 전체에 대한 면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AI는 일정한 알고리즘에 따라 지원자의 적합도를 판단하기 때문에 면접관의 컨디션이나 편향성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라고 한다. 회사에서는 비용에 대한 우려만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면 공정한 채용시스템을 담보하는데다, 크게 품을 들이지 않고 적합한 인재를 찾을 수 있는 AI면접 과정을 검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AI면접은 공정성과 효율성면에서 도입되고 있다면 요즘 일상에서 사용되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점점 인간에게 정서적 안정감까지 줄 것이다. 음성인식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문자를 보낸다거나, 전화를 건다거나, 지도를 검색하는 등을 실현시켜주는 것을 넘어서, CF나 드라마에서도 나오듯이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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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스피커



 어릴 때부터 항상 내 옆에 있는 AI와 그날그날 나의 기분과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나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건 부모도 연인도 친구도 아닌 인공지능이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내 마음 나도 모를 때 AI는 데이터에 근거하여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이를테면 내가 구글에게 이렇게 말한다. “잘 들어봐, 구글. 존과 폴이 둘 다 나에게 작업을 걸고 있어. 둘 다 좋은데 좋은 면이 달라. 그래서 마음을 정하기가 너무 힘들어. 네가 아는 사실들을 모두 고려해 나에게 조언 좀 해줄래?”
 그러면 구글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네가 태어난 날부터 너를 알고 있었어. 네 이메일을 모두 읽었고, 네 통화를 모두 기록했고, 네가 좋아하는 영화들, 네 유전자 정보, 네 심장 기록도 모두 갖고 있어. 네가 데이트한 정확한 날짜도 보관하고 있으니, 존이나 폴과 만날 때마다 네 심장박동, 혈압, 혈당수치를 초 단위로 기록한 그래프를 원한다면 보여줄 수 있어. 필요하다면 네가 그들과 가진 모든 성관계의 정확한 순위도 제공할 수 있어. 그리고 당연히 나는 너를 아는 것만큼 그들도 잘 알아. 이 모든 정보, 내 뛰어난 알고리즘, 수많은 관계에 대한 수십 년에 걸친 통계자료를 토대로, 나는 너에게 존을 선택하라고 권해. 장기적으로 그와 함께할 때 더 만족스러울 확률이 87퍼센트야.”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전자책 657쪽>

  이 경우 AI스피커는 목소리를 구분자로 하여 사람을 식별하지 않을까 싶은데, 만약 얼굴도 목소리도 몸도 바뀌는 사람이 있다면 인간도 마찬가지이지만 AI는 어떤 방식으로 그를 동일한 사람으로 인지하고 데이터를 축적할까?
 “뷰티 인사이드”라는 드라마는 안면실인증이 있어서 상대의 머리모양이 바뀌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남자주인공(서도재)이 한 달에 한번 완벽하게 몸이 바뀌는 여자주인공(한세계)은 알아보는 설정이다. 몸이 바뀌면 아무도 자신을 한세계로 인식하지 못하는데 유일하게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운명적이라는 환타지를 품고 있는 설정인데, 성별, 국적, 나이 상관없이 변하는 사람을 어떻게 동일인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가 상당히 궁금했다. 아무리 남주인 서도재가 안면실인증이 있어서 얼굴로 사람을 구별할 순 없기에 타인을 인식하는 체계가 남다르다 하더라도 말이다.
 사소한 습관이나 말투, 걸음걸이 등으로 알아보는 것일까? 그런데 갑자기 노인으로 변하면 평소에 걸음걸이나 말이 빨랐던 사람도 신체적 조건이 달라지니 아무래도 좀 느려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목소리가 바뀌면 말투만으로 사람을 알아보기는 너무 힘들다. 그렇다면 남는 건 그 사람 특유의 기질과 성향, 기억과 같은 요소일 것이기에 드라마에서도 서도재가 갑자기 조금 전과 모습이 달라진 사람이 원래 한세계인지 확인하기 위해 두 사람만 아는 사실에 대해 팩트 체크를 하고, 시청자에게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 설득하기 위해서인지 한세계 특유의 술 마시고 귀엽게 주사 부리는 것,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오지랖을 발휘하는 성향이 몸이 바뀐 이후에도 그대로 재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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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모습란 없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잠을 자고 나면 매일 몸이 바뀌는 남주(남자주인공)가 나온다고 한다. 이 경우 되돌아갈 본래 몸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마치 공각기동대에서 네트를 유영하며 거주(?) 가능한 의체義體에 잠시 자신을 의탁하는 주인공처럼 말이다. 이때 ‘나’라는 의식,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인간의 뇌는 자아의 인식을 만들어낸다. 자아는 많든 적든 상당부분 통일성 있는 이미지를 가진다. 뇌는 일생에 걸친 경험을 받아들여 가공하고 수집하며 감각이 겪는 모든 경험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기억을 통해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이들 사이에 의미를 만들어내 연결 짓는다. 서로 아주 다른 경험들 간에 상호 관련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 곧 연상 능력은 뇌가 가진 가장 큰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기억들의 총합이 자아인 것이다. <『인간의 발명』, 레네 슈뢰더, 우르젤 넨트치히, 은행나무, 98쪽>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것의 99퍼센트는 자아의 이야기에서 누락된다. 인간의 뇌는 인지과정에서 일종의 카테고리로 경험들을 묶는데다가 통일된 자아 인식을 위해 의미화 작업이 가능한 경험들만 남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이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뇌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에 대해 하나씩 엄밀하게 따져서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없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네비게이션이 필요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고민이 있을 때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라는 조언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어릴 때부터 함께한 AI는 나라는 사람의 경험 데이터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이야기에서 누락했던 경험들을 토대로 결정을 내려주는 존재가 있으면 우리의 감정, 욕망은 더 이상 유의미한 지표로 기능할 수 없다. 한발 더 나아가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는 정체성도 나를 잘 아는 AI가 구성해줄 수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자아, 즉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만나는 ‘나’라는 개념이 희미해지면 타인과 나 사이의 경계도 흐릿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면 우리는 점점 감정과 욕망에 덜 끄달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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