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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과 의역학 | ‘뭐라도 해야 하는’ 우리들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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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11-23 19:11 조회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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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임경아

 

 

영화 완벽한 타인은 서로의 배우자들끼리도 친분이 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끈끈한 우정을 쌓아온 이들이 의사 친구의 집들이에서 갑작스레 핸드폰 오픈 게임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누구나 예상 가능하듯이 서로 비밀이 없다고 큰소리 치던 이들의 핸드폰으로 들어오는 이메일, 전화, 문자 등이 공개되면서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민낯이 드러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그 영화에서 석호(조진웅)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독학하여 명문대를 졸업하고 성형외과 의사로 자수성가한 인물인데, 20대 초반 불같은 사랑(이라 읽고 사고를 쳤다고 부른다 ^^)을 해서 부잣집 딸내미와 결혼한 사람이다.

 

본인은 성형외과 의사, 아내 예진(김지수)은 정신과 의사, 그들의 딸은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하였으며, 이 두 사람이 새로 산 큰 집에서 집들이를 한 것이다. 이렇게 석호는 사람들이 흔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업, , 명예, 아이교육까지 모두 성공한 것으로 보일 뿐 아니라 아내와 대학생 딸 사이에서 소통을 매개할 정도로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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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영화 도입부에서 그와 아내 사이의 삐걱거림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중반쯤 석호가 심리 상담을 받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예진이 왜 상담을 받느냐고 묻자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나중에 우리가 이혼하게 되도 그래도 내가 노력은 했었구나. 하고 싶었다고 답할 때 어머 두 사람 이혼 얘기까지 나올 정도인가? 해서 한편 놀라고 한편 뭉클했다. 태생적으로 품이 넓어 보이고, 딸에게도 다정하고 현명한 조언(영화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이자 사람들이 명대사라고 말하는 장면)을 해주는 그조차도 모든 것이 안정되니 곧바로 찾아온 권태, 혼돈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것이 공감되었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물질을 분자, 원자, 쿼크라는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 환원할 수 있다. 경험의 세계에서도 3가지 원초적 구성 요소가 있다. 연극과 소설도 따지고 보면 이 요소들의 상호 작용이다. 그중 하나가 혼돈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질서, 마지막 하나는 혼돈과 질서를 중재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요즘 말로 하면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중략>

우리는 질서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질서의 세계는 혼돈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이미 알려진 영역을 차지하고 있고, 그 영역은 미지의 영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혼돈과 질서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을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라 혼돈과 질서, 음과 양으로 구성된 의미의 세계에 적응되어 있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환경과 조건이 혼돈과 질서에 의해 끊임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다른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으려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한 발은 질서와 안전의 세계에, 다른 발은 가능성과 성장, 모험의 세계에 디디고 서 있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때, 혹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엇인가에 몰입할 때, 그 순간 바로 혼돈과 질서의 경계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다. 그때의 느낌은 신경학과 진화론에 근거를 둔 본능적 자아의 반응이고, 가장 깊은 내면의 목소리다.<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B 피터슨, 메이븐, 64/76>

 

우리는 지금 많은 것들이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문명세계에 살고 있기에 우리의 다른 발은 혼돈의 세계를 딛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기 쉽다. 영화에서 내가 석호에게 가장 아쉬웠던 점은 그가 더 큰 경제적 부를 위해 부동산 투자를 하는 모습이었다. 같이 영화를 본 후배는 부유한 처가에서 인정받기 위해 그가 투자를 감행한 것이 아니겠냐고 했지만 그럼 그가 처갓댁에서 냉대를 받지 않았으면 그런 투자를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석호는 그냥 뭐라도 해보고 싶었던마음의 연장선에서 결국은 실패한 투자도 하게 된 게 아닌가 싶었고 더 나아가 예전에 도담샘이 말씀하셨듯이 어쩌면 그의 무의식이 살기 위해, 생존전략으로 실패한 투자를 선택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혼돈을 극구 사양(?)할 때 이렇게 무의식이 작동하는 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삶의 의미는 질서와 혼돈 사이에 있을 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에 있다는 말은 우리 인간은 안전 혹은 안정도 중요하지만 생명 차원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그 속에서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석호처럼 투자, 심리상담 등의 뭐라도(^^) 하는 행로를 밟거나 예진처럼 말도 안되는 사람과 외도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석호는 어쩌면 예진의 외도를 눈치 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때문에 그가 통념에 의해 스스로 못난 놈이라고 자책할 수도 있겠다 싶었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20대 초반에 집안의 반대에도 가난한 남자를 선택할 정도로 열정 있는 사람인데, 40대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 새로운 도전 과제가 없는 상태가 힘겨운 거라고. 그런 권태로움, 무기력함을 어쩌지 못해 헤매는 것일 뿐. 이건 당신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사실 살다보면 선악시비의 문제로 판단하기 어려운 일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런 경우 서로의 마음의 행로, 생각의 회로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쓸데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심리학자 조던 B. 피터슨은 이럴 때 진실을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미지의 것을 향해 탐험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언어라는 로고스를 통해 현실을 직면하는 것 자체가 미지에 대한 한발 내딛는 것이다.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나아갈 때 새로운 자아가 구성된다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어떤 유기체가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중추 신경계에서 새로운 유전자들이 활성화한다는 것이 최근에 확인되었다. 새 유전자들은 새로운 단백질들의 유전 암호와 연결되고, 이 단백질들이 구성단위가 되어 뇌에 새로운 구조를 형성한다. 우리의 많은 부분이 생물학적으로 여전히 발생기 상태에 있다. 정체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자기 생각을 당당히 말하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어디라도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미완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삶은 미완의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B 피터슨, 메이븐, 305>


영화에서 석호가 예진에게 솔직하게 다가갔다면 그것 자체가 그들에게 새로운 환경으로 작용하여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저자도 말하지만 해 보기 전에 아는 방법은 없다. 좋은 본보기가 있어서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서 소용없다. 누군가 본보기를 따라 성공했다면 그건 운 덕분이다. 따라서 답을 찾으려면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325)

그러나 적어도 위험을 감수한 사람은 그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어디라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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