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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꺽정시대 | 운명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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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차리 작성일18-09-19 01:20 조회2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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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리뷰 ⑥

 

운명을 사랑하라

성승현

 

 

 

“그래 그자가 제명에 죽겠소?” “아니면 능지처참을 당하겠소?” 

병해대사(갖바치)에게 덕순이 묻는다.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으로 들어가 불교를 부흥시켰으나, 동시에 전고에 드문 요승이라 불리기도 했던 ‘보우’라는 중의 미래를 묻는 것이다. 이에 대사는 “그까짓 것은 분명히 알아 무엇하시오?”라며 말을 자른다. 보우가 다음날 혹독한 형장 아래에 맞아죽을 것을 미리 안다면 지금 호강이 맘에 좋을 것이 없을 것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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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해대사의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운명이란 게 있다고 하자. 미래에 형장 아래 맞아죽을 운명이다. 그런데, 미래의 형장이란 게 피할 수 있는 것인가? 흉함을 길함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인가? 대부분은 이러한 패턴으로 운명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보자. 보우를 어떻게 평가해도 좋다. 꺼져가던 불교의 불씨를 살리는 데 성심을 다한 사람일 수도 있고, 불교를 이용해 ‘성’과 ‘권력’을 잡으려던 요승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도 그는 형장 아래 맞아죽는다.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가 승려라는 것과 맞아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승려,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달라질 수 있지 않았겠는가. 

 

 

권력과 에로스의 만남


“높은 데 서서 내려다보는 맛이라니! 내가 이왕 중이 된 바에는 한번 천하 중을 눈아래로 내려다보아야 할 터인테.”(2권, 379쪽)

보우는 승려 중에서도 최고가 되고 싶어했다. 그에게 불교는 수행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권력욕에는 어김없이 에로스가 따라왔다. 보우의 권력욕과 문정왕후의 극락에 대한 탐심이 만났다. 그 중심에는 에로스가 있었다. 

 

“무슨 공덕을 쌓아야 극락을 가게 될까요? 나는 나이 벌써 오십이 가까웠으니 속한 길을 가르쳐주시오.” (3권, 226쪽) 

보우는 문정왕후(이하, 대비)가 이같이 묻자 “환희불이 육신성불하는 비밀 법문이 있으니 이것이 극락 가는 데 가장 속한 길이올시다.”라며 불법을 비밀리에 전수했다. 환희불이란, 성적 행위에서 오는 열락을 통해 무상열반에 이르는 수행방법을 말한다. 환희불도 수행방법이기는 하나, 보우는 마치 비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하여 대비와 성적 행위를 했고, 이후로 보우는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보우는 대비로 하여금 자기를 믿도록 만들었는데, 나중에는 보우가 감나무에 배가 열렸다 해도 의심을 않고, 소금섬을 물로 끌라해도 주저하지 않을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우는 국정에도 간섭을 하며 전횡을 휘두르기에 이르렀다. 또 국가의 내탕금을 아무렇지 않게 끌어다 쓰고, 머리에는 비단건을 쓰고, 비단의복을 입고, 자리는 비단으로 치장했다. 사람들은 “원형 하나도 과하거니 보우까지는 심치 아니하냐. 국가는 장차 어찌되며 백성들은 장차 어찌되랴”며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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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에게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보우는 설법을 한답시고 다른 여인들에게도 손을 댔다. 나중에는 원형의 아내인 난정과도 관계를 맺는 등 행동이 좋지 않았다. 이런 행실이 대비의 질투를 낳았고, 결국 궁에서 나오게 됐다. 에로스로 흥한 자, 에로스로 망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서로가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인연은 이어졌으나 곧 대비가 죽었고, 보우의 운도 끝이 났다. 

 

 

운명에 대한 태도   

보우가 대비의 신임을 받기 한참 전, 병해대사와 보우는 금강산 수미암에서 한 차례 만난 일이 있었다. 그때 보우는 자신을 깔보듯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병해대사에게 “부처님이 전생에 상불경보살로 재세하셨을 때, 경멸하는 사람이나 모욕하는 사람들을 한결같이 공경하셨다 합니다. 여래로 출세하셔서 인천대중의 찬양을 받으실 때 그 경멸하고 모욕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 것이옵니까? 아귀도, 축생도에들 빠져서 세존을 우러러뵈옵지도 못하였을 것이 아니옵니까?”라며 일갈한다. 자신을 경멸하고 모욕하면 나중에 아귀나 축생이 될 것이라는 저주 아니겠는가! 대사는 “네가 법화경 삼천 번도 읽지 못한 것이 머리를 땅에 대지 못하느냐? 수악청산설월권이란 되지 못한 글 한 짝이 법화경 대신이냐!며 고함을 질렀다. 이에 보우는 사실을 들킨 듯 꼼짝도 못하고 물러났지만, 분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그날 밤 식칼을 찾아 병해대사를 죽이려다 들켜 도망치듯 쫓겨난 일이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대비가 무차대회를 건설하려고 명승을 팔도에 구했다. 보현사의 휴정은 공부가 놀라웠고, 찰장사의 병해는 도술이 놀라워서 각각 유명했으나 두 중은 모두 거절했다. 결국 문수사에 있던 보우가 서울로 올라와 무차대회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때 문정왕후의 눈에 들었고, 이를 계기로 보우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보우가 전횡을 일삼는 것을 알고 병해대사가 한번 나선다. 회암사에서 재를 올리는 행사에 찾아간 것이다. 보우를 불러 크게 꾸짖고는 돌아오는데, 동행한 꺽정이 “이게 무슨 싱거운 일이냐”고 묻는다. 모가지를 돌려앉히고 올 줄 알았더니, 버릇 조금 가르치려고 회암사까지 먼 걸음을 했냐는 것이다.

 

“그자가 아직도 십년 운수가 남아 있는 것을 억지로 어떻게 하나.” (295쪽) 

대사는 자신이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나마 버릇을 가르칠 수 있다며, 자기가 할 일에 선을 긋는다. 하늘을 거스르는 일까지 해서는 안된다고.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죽일 놈이라고 해도, ‘운’이라는 것이 있기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보우에게 조금이나마 맑은 구석이 남아 있었다면, 병해대사의 가르침을 알아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자. 본성에 어긋나는 일을 계속하게 되면 불편함이 있다. 번뇌나 망상이 많아지거나, 좋았던 관계가 틀어진다거나, 두려움 등으로 공황장애를 겪게 된다던가… 그것을 일종의 기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이 밝은 자라면, 그러한 기미를 알아챌 깨끗함이 남아있다면, 방향을 전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우에게 있어 동력이 되는 것은 탐심이었다. 공부도 제대로 하는 법이 없다. 법화경을 말하려면 삼천번쯤을 읽고 나서야 말할 수 있는 것일텐데, ‘수악청산설원권’이란 말 한 마디로 법화경을 다 아는 척 한다. 대비가 극락에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하자 ‘환희불’이라는 단어를 가져와서 써먹지 않았는가. 대사의 꾸지람으로 혼쭐이 난 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그 사건을 이용해먹는다. 무차대회에 보살(병해대사)이 강림했다는 이유를 들어 대비에게 큰 재를 올려야 한다고 속인다. 보우에게는 모든 것이 수단으로 작용할 뿐이다. 본인은 운명을 개척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꼼수로 인생을 장식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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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운명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좋은 예가 있다. 오래 헤어져 지내던 봉학이가 꺽정이를 찾아와 함께 전장에 나가자 했다. 꺽정이가 가기 싫다는 것을 병해대사와 덕순이, 봉학이가 힘을 합쳐 설득을 해 나가기로 했는데, 정작 군총에 뽑히지 못했다. 군총 시험에서 ‘소백정’의 아들이라고 했다가 떨어진 것이다. 꺽정이가 처음에는 분이 나서 당장 집에 내려갈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가 어째 맘이 쏠렸든지 한번 나가기로 작정한 것을 지금 와서 아니 나간다기가 싫으니까 나는 나대로 전장에를 나갈 터이다.”라며 나홀로 전장에 참여키로 한 결심한 것이다. 

 

꺽정이는 봉학이의 성공을 도와줄 겸 왜진을 한번 구경하려고 출전할 맘을 먹게 된 터이라, 전장에서 전공을 세우더라도 공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바라지 아니하므로 항오에 끼여서 군율에 얽매이느니보다 필마단기로 맘대로 진상에서 출몰하는 것이 수단을 다하기에 도리어 낫다고 생각하였다. (385쪽) 

그렇게 꺽정이는 홀로 전장을 누비다가, 봉학이의 군사가 왜에게 앞이 막히어 옴쌀달싹 못할 때 칼을 번개같이 놀리며 등장해 길을 터주는 등 도움을 주었다. 꺽정이가 백정인 것은 팩트다. 그의 운명인 것이다. 무엇을 해도 그놈의 신분 때문에 번번이 좌절하거나, 치욕을 겪는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까? 그도 아니면, 보우처럼 백정 중에 왕이 되려는 마음을 먹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공을 세워 세상에 드러나기를 바라야 할까? 꺽정이는 무기력한 사람도 아니고, 권력이나 권세를 탐하는 욕망도 없다. 그래서, 운명과 맞설 수 있었다. 전장에 속할 수 없다면 혼자서라도 싸울 수 있는 길을 내는 것이 그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방법인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위대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공식은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운명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다른 어떤 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앞으로, 뒤로, 영원으로도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필연적인 것을 견디거나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고자 한다” (『니체를 쓰다』, 세창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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