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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꺽정시대 | '조건 없는 인연'이 만들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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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차리 작성일18-11-07 12:27 조회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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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리뷰 ⑨

 

'조건 없는 인연'이 만들어내는 것

성승현

 

  

 

『임꺽정』에서 주목하게 되는 부분 중 하나는 ‘혼인’이다. 일단 지금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지금은 ‘先연애 後결혼’이라 말할 수 있다. 조건을 따져 연애를 하고, 겪어본 후에 결혼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겪을 대로 겪어보고 ‘안전하다’고 판단이 되면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꺽정』에서는 혼인과 동시에 관계가 시작된다. 매우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막봉이, 소금 팔러 갔다가 장가가다

 

힘이 장사인 막봉이가 유일하게 형님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임꺽정이다. 막봉이도 힘으로는 뒤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막봉이는 소금장수인데, 열다섯부터 시작해 오륙년이 되었다. 소금을 짊어지고 다니며 소금을 파는데, 하루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적가리라는 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사내 여편네 두 사람을 만나 “적가리가 여기서 얼마나 되나요?”라고 물었다가 수작이 붙었다. 여편네라는 이가 말이 많았는데, “우리도 소금을 받아야겠는데”를 시작으로, 이 위로 올라가면 산 밑에 외딴집이 자신의 집인데, 지금은 딸 귀련이가 혼자 있으니 내일이나 오라는 것이다. 할 말 안할 말을 다해놓고 “우리 집에 들르지 말고 바로 적가리로 가게”라고 신신당부를 하니, 막봉이는 가지 말라고 당부하던 여편네의 꼴이 밉살스럽게 느껴져 귀련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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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봉이가 찾아가 “삽작 좀 열어주”라며 삽작을 마구 흔들었다. 귀련이는 막봉이를 도적으로 알고 “우리 집에 가져갈 것이라군 아무것도 없소”라며 얼마든지 뒤져보라고 한다. 부모의 도적 다루는 것을 익히 본 까닭에 겁 없이 말을 한 것이었는데, 막봉이는 희한하게 대담한 여자라고 생각을 하게 됐다. 막봉이는 장난을 그만두고 소금장수라 실토를 하고는 저녁밥을 얻어먹었다. 저녁밥 먹은 김에 하루 신세를 지겠다, 안된다 실랑이를 하던 중에 귀련이와 혼인의 말이 있던 김풍헌의 손자가 여러 총각을 데리고 왔다. 귀련이 혼자 있는 집에 사내가 들어갔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지만, 막봉이는 힘을 별로 들이지 않고 혼을 내니 모두 달아나버렸다. 이 일이 있은 후, 막봉이와 귀련이는 밤을 함께 보낸다. 

 

다음 날, 부모가 와서 둘이 있는 것을 보고 기함을 했지만 이미 돌이킬 없는 일이었다. 막봉이가 데릴사위 될  의향이 있다고 하여, 혼인이 진행된다. 이로써 막봉이는 데릴사위 노릇을 하며 적가리에 살게 되었다. 두서너 달이 지날 동안, 내외간은 의초 좋게 지냈으나 장모와는 서로 뜻이 맞지 아니해 말다툼이 여러 번 났었다. 장모의 잔소리가 갈수록 심해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는데, 막봉이가 심부름 한번을 잘못했다가 혼쭐이 났다. 장모는 “그게 무슨 놈의 정신이야. 까마귀고기 먹었나!”라며 천둥같이 화를 내고, 귀련이도 신경질을 내며 막봉이를 탓했다. 골이 난 막봉이가 골김에 귀련이 어깨를 한번 탁 쳤는데, 이걸 보고 귀련이 어머니가 앞뒤 생각 없이 사위를 내보내자고 주장하여 막봉이는 쫓겨나게 되었다. 

 

쫓겨난 막봉이가 집으로 돌아갔지만 “네가 어딜 가면 조신하겠니.”라며 냉대하여, 집에서 도로 나와서 매일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오가의 권으로 청석골 와서 같이 있게 되었다. 이처럼 막봉이의 혼인은 허무하게 끝나게 되었고, 청석골이라는 새로운 장으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양쪽 집안에서 ‘문제아’ 취급을 하니, 그 장을 박차고 나와버린 것이다. 가족 안에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혼인을 통해 ‘조신하게 살 수 없는 신체’인 것을 안 것도 나름 수확이지 않은가. 

 

 

천왕동이, 장기 두러 갔다가 장가가다

 

천왕동이는 임꺽정의 처남이다. 누이를 따라 백두산에서 내려와 지내고 있는 중인데, 아직도 총각 딱지를 떼지 못했다. 취미라고는 장기를 두는 일인데, 끼니를 놓치는 일이 많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장기 잘 두는 이가 있다면 어디든 찾아갈 기세였는데, 한번은 봉산에를 가게 됐다. 봉산에 장기 잘 두는 이방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마침 유복이가 봉산물이 좋다 하여 약물 먹으러 간다 하여 동행을 한 것이다. 

 

 

봉산에 도착해 주막에 묵었는데, 이방을 찾아간다 하니 모두가 “사위 취재를 보러 왔냐?”고 물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봉산 이방에게 어여쁜 딸이 있는데 그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7년째 사위 취재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취재는 쉽지 않았는데, 1차가 벙어리 노릇, 2차가 장기 내기, 3차가 점쟁이 노릇이었다. 1, 2차까지 통과한 이가 몇 있기는 했으나, 3차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점쟁이 아니고는 알아맞힐 수가 없어 모두 탈락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유복이는 “힘센 장사를 구한다든지 또는 칼 잘 쓰는 구한다든지, 활 잘 쏘는 한량을 구한다든지, 그래야 취재 본다는 말이 되지 않소?”라며 우스워한다. 사위 취재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황되다는 것이다. 그랬다. 이방은 ‘이인(異人) 사위’를 구하고 있었다. 사위 취재를 정할 때에도 부엉바위 용추 위에 있는 당집에 가서 백일간 치성을 드리고 정할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천왕동이가 창피를 당하기 쉬워 취재보기를 망설였지만, 결국 취재를 보기로 결심하고 이방을 찾아간다. 총각의 얼굴이 해사하고 이목구비가 단정한데, 그중에 눈의 열기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것에 이방의 마음에 들었다. 전에 없이 사는 곳이며, 부모님 이야기를 묻는 것부터가 달랐다. 드디어 사위 취재가 시작됐다.

 

 

이방이 한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다른 손의 엄지손가락을 치어들어 보이니 천왕동이는 한손의 새끼손가락을 앞으로 내밀고 다른 손의 손가락 하나로 자기의 볼을 똑똑 두드리었다. 그 다음에 이방이 손가락으로 다섯을 꼽아서 내보이니 천왕동이는 별로 지체도 않고 셋을 꼽아서 마주보였다. (191쪽)

처음 이방이 “사내가 엄지손가락과 같지?”라고 묻자 천왕동이가 “새끼손가락이 여편네요.”라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오륜을 아느냐?”고 묻자 “삼강까지 아오”라고 대답한 것이다. 당연히 합격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동상이몽이었다. 천왕동이는 이방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거만을 떨자 엄지가락 장기라고 잘난 척하다가 새끼가락 장기가 되면 부끄럽다 대답한 것이고, 이방이 다섯손가락을 펼친 것은 한 번에 다섯 수씩 본다는 자랑으로 알고 자신은 일곱 수를 본다며 두 손가락을 접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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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서로 다른 질문과 답으로 1차 취재를 합격한 후, 장기로 2차 취재 합격까지 했다. 문제는 3차 취재였다. 궤짝 속에 든 물건을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방의 마누라가 천왕동이를 찾아와 그 답을 알려주고 갔다. 딸 옥련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이다. 하지만, 그보다 천왕동이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이방에게 “생기가 있어 보입디다”라든가, “그 눈에 열기가 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3차 취재까지 성공을 해서 천왕동이는 이방의 사위가 되어 처가살이를 하게 되었다. 사위 사랑 장모라 천왕동이가 이방 아내에게 사랑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방과도 옹서간에 의가 좋았다. 이방이 일이 없을 때에는 집에 들어앉아서 천왕동이와 장기를 두었다. 다만, 천왕동이가 가끔 곡경을 당하는 것은 이방이 사위를 ‘이인’으로 여기는 까닭이었다. 이방이 의심나는 일을 물을 때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하면 “네가 모를 리가 있나”라고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천왕동이가 “제가 점쟁이에요? 보지 않은 일을 어떻게 안단 말씀입니까?”라고 항변하자 “궤 속 물건은 어떻게 알아냈니?”라고 물었다. 천왕동이는 마침내 장모가 객주에 와서 가르쳐준 것을 토설하여 이방은 듣고 어이가 없어 한동안 벌린 입을 닫지 못하였다. 첫날 취재를 복기해 하니, 천왕동이가 말하는 뜻이 자기의 뜻과 틀려도 여간 틀리지 아니하여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그러구 보면 내가 취재 본 보람은 없다마는 그것도 막비연분(莫非緣分)이지.”(229쪽)

이방은 아닌 게 아니라 하늘에서 마련한 인연이라며 눙치고 만 것이다. 칠년 공을 들여 사위를 얻었던 것이 허무해질 듯도 한데, 천왕동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한 탓에 이렇게 눙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천왕동이는 이방의 추천으로 통인으로 뽑히어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 “네 사위가 통인보다도 장교감이니 장교를 박도록 해라”는 명령이 있어 바로 승진을 하였다. 이리하여 천왕동이는 장인 장모에게 귀염을 받고 아내에게 사랑을 받으며 봉산서 장교를 다니게 되었다. 

 

이인 사위를 얻겠다는 이방의 바람은 유복이 말처럼 허무맹랑한 것처럼 보인다. 사위를 뽑는 기준이 통상적이지를 않다. (^^;) 대단한 조건을 갖춘 이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기’를 가진 이를 바랐고, 그러한 천왕동이가 갑자기 굴러들어왔다. 천왕동이는 그 집 사위가 된 이후로 백수생활을 청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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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데릴사위가 된 것은 막봉이나 천왕동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 다르다. 천하의 밉상이 되어 장모에게 쫓겨난 막봉이와 달리, 천왕동이는 달콤한 처가살이를 마음껏 누리게 되었다. 그야말로 혼인 이후 승승장구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두 사람의 삶이 혼인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에 있다. 막봉이는 열 네 살 때부터 소금을 지고 다니며 장사를 했다. 착실한 사람이었던 거다. 그런데, 혼인을 하여 가족이라는 장으로 들어가자, 견디지 못하고 튕겨나온다. 반면, 천왕동이는 서른이 넘도록 백수로 지내며 누이에게 얹혀 살고 있었다. 마냥 어린애 같았던 것이다. 그랬던 천왕동이가 결혼을 하자 사람들과 너무 잘 지내고, 정규직까지도 잘 소화해냈다. 

 

어떻게 보면 우연의 연속인 것처럼 보인다. 지나가던 여편네의 한 마디 때문에 막봉이는 귀련이와 연을 맺고, 국수(장기 잘 두는 사람) 백이방과 장기 한번 두려다가 천왕동이는 옥련이와 연을 맺게 되었다. 이 인연법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조건이 있다면 ‘그냥’ ‘우연히’랄까. 하지만, 이 조건 없음이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놓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조건을 원해’라는 전제가 많은 사람일수록 다가오는 변화들을 감지하지 못한다. 자기 안에 있는 잠재력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하고 싶다면, 자기 안의 전제들을 제거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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