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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꺽정시대 | 욕망의 소용돌이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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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차리 작성일18-11-21 17:58 조회1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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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리뷰 ⑩


욕망의 소용돌이에 빠지다

성승현


색깔이 너무 다른 두 인물이 나온다. 한 사람은 돌석이인데, 넘치는 성욕이 늘 장애가 되는 인물이다. 다른 이는 봉학이인데, 벼슬에 대한 집착이 장애가 되는 인물이다. 돌석이가 제어되지 않는 ‘성욕’에 휘둘린다고 하면, 봉학이는 체질에 맞지 않는 벼슬을 놓지 못하니 ‘벼슬욕’에 휘둘린다고 해야 할까. 두 사람이 욕망에 어떻게 휘둘리는지, 그 양상을 살펴보자. 


색(色)에 빠진 돌이 

돌이는 역졸을 다니고 있었다. 전에 봉학이가 전장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돌석이도 그 전장에 있었다. 봉학이가 활쏘기로 주목을 받았다면, 돌석이는 돌팔매질로 주목을 받았었다. 난리가 끝나고 봉학이는 일이 잘 풀려 벼슬을 얻었지만, 돌석이는 술이 취한 끝에 방어사의 친척 되는 사람에게 칼부림을 해서 무명조차 타지 못하고 낙향하게 되었다. 할 일이 없어 머슴을 살다가, 김도사 댁이란 양반의 집에서 비부쟁이(계집종의 남편)이 노릇을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아씨가 계집종과 상관을 하는 남편을 단속하기 위해, 남편이 출타한 틈을 타 계집종을 혼인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막아질 일이 아니었다. 돌석이가 잠든 틈을 타서, 혹은 돌석이가 외박을 하는 날을 이용해서 계집종은 서방님을 만났다. 이에 돌석이가 겁을 줘서라도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게 하려고 일을 꾸몄다. 보름 대목장날 구경을 간다고 하여 집을 나섰다가 불시에 집으로 돌아와 현장을 잡은 것이다. 서방님에게 “계집을 속량해주구, 계집이 일평생 먹구살만큼 천량을 나눠주우”라고 청을 했고, 둘이 나가 살 작심을 했다. 하지만, 서방님은 글을 알지 못하는 돌석이를 속여 도둑질 모함을 덮으려고 했다. 돌석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둘 다 죽이려다가 ‘자자(얼굴이나 팔뚝에 흠을 내어 죄명을 먹칠하여 넣던 일)’ 해줄 생각이 났다. 계집에게는 “네년의 눈이 사내를 홀리게 생겼으니 눈에다 치장을 더 해주마” 하고 칼끝으로 눈자위를 돌려 쑤셨다. 서방님이란 자에게는 “네놈은 계집을 좋아하니 이마에 하나 붙여줄 것이 있다”하여 이마 위에 계집의 밑구녕 모양을 쑤시어 만들었다. 그날 새벽 김해 고향을 하직하고 서울로 올라와 고생이란 고생을 다 하다가, 동향 연줄로 황주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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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돌석이의 이런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황주에서 역졸을 다니게 됐는데, 거기서 과부와 혼인을 맺게 된다. 그런데, 그 젊은 과부 역시 남자만 나타나면 곁눈질을 자주 하는 것이 정이 잘 움직이는 스타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랫말 김가라는 자와 바람이 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돌석이와 김가 사이에 싸움이 붙었고, 결국 돌석이가 김가의 대가리를 박살냈다. 곧이어 과부 아내의 해골도 바수어 버렸다. “배돌석이가 살인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돌았고, 돌석이는 봉산으로 도망을 했으나 관군에게 잡히고 말았다. 돌석이의 죄가 귀양으로 끝나지 않고 죽게 될 것이라고 하자, 유복이가 돌석이를 빼돌려 청석골로 데리고 들어갔다.


물론 돌석이 본인도 이런 일들만 일어나는 게 답답했다. 오죽하면 “기집이라구 생긴 것은 모두가 흘레 암캐거니 생각하리까?”라고 했을까. 만나는 여자마다 바람을 피고, 돌석이에게 마음을 붙이지 못한다. 하지만, 이게 비단 여자 쪽의 문제일까. 돌석이는 청석골에 들어가서도 여자에 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살려준 은인의 아내에게 추근대지를 않나. 허구한 날 기집 타령을 하지를 않나. 자신의 마음이 욕정에 쉽게 흔들리는 만큼, 동류의 여자들만 만나게 되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 놓여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다. 


벼슬에 빠진 봉학이

봉학이는 본래 담대한 사람이었다. 두려움 없이 자기 길을 간다고 할까. 오래 전부터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워 벼슬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것이 부모의 원수를 갚고, 외조모의 소원을 이루는 길이라 생각했으니까. 처음에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이 되는 듯했다. 


봉학이는 돌이와 달리, 전장에서 공을 세운 공로로 앞길이 트였다. 전라도관찰사가 된 이윤경을 따라 예비비장으로 부임했다. 이윤경이 봉학이를 사랑하는 까닭에 봉학이는 주위의 시기와 질투를 받기도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봉학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큰 예방비장이 봉학이를 골탕먹이기 위해, 오래 전 폐방된 선화당을 그의 숙소로 추천한 것이다. 선화당에는 사연이 있었는데, 억울하게 죽게된 추월이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 울어댄다고 해서 귀신방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 방에만 들어가면 사람들 정신이 이상해져, 40여 년 동안 이 방에 거처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봉학이는 무섭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귀신이나 도깨비를 본 일이 없어 오히려 기다리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보이지도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봉학이의 마음에는 더 이상했다. 모두의 걱정이 있었지만, 봉학이의 선화당에서 아무 일 없이 지냈고, 선화당은 더 이상 금기의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 봉학이는 업무 수행 능력도 뛰어나다. ‘온 지방을 차례로 돌며 군사를 단속하고, 민간에 작폐가 없게 하고, 군량 이외에 지방 관원에게 침책이 없게 하라’는 명을 받았는데, 묵묵히 감사의 영을 수행한다. 술 먹자, 쉬자 등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감사 이윤경의 그늘 아래에 있을 때의 봉학이에게는 별 문제가 없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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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윤경의 곁을 떠나는 순간, 봉학이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정직한 것은 때때로 장애가 되고, 규칙을 따르는 것은 융통성이 없는 것이 되고, 성실한 것도 빛이 바랠 때가 온다. 봉학이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윤경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 좀 거두어 달라’고 요청한다. 한 마디로 이윤경과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마치 어리광 부리는 어린아이 같지 않은가.  


제주에서 현감 생활을 마감하고 서울로 올라와 사품 이상 무변들이 궐문을 지키던 때가 있었다. 봉학이가 창덕궁, 경북궁 두 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하루는 영부사 댁 시녀가 대간이 드나드는 돈화문을 이용하려고 하자 막아선다. 그런데, 그 시녀는 당시 막강한 권세를 가진 윤원형의 수하에 있던 이였다. “우리는 이때까지 이 문으로 드나들었소”라는 시녀의 말도 봉학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려다가 결국 벼슬이 떨어지고 만다. 이때 하는 일은? 이윤경에게 달려간다. 매일 간다.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러. 이윤경은 봉학이의 성정을 알기에 잘못한 일이 없을 거라는 것을 믿고, 다시 군기시 직장으로 복직시켜 줬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군기시 부정으로 있는 이가 윤원형 시녀의 외숙이었던 거다. 까닭없는 미움을 받게 되자, 봉학이가 하는 일은? 이윤경을 찾아가 다시 이윤경 밑에서 비장으로 일하고 싶다고 간청한다. 


“지각없는 소리 마라. 지금 세상에 벼슬을 다니자면 비위가 좋아야 하니 비위를 참고 지내보아라.”(500쪽)

이윤경은 봉학이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봉학이는 마음을 잡아보려 했지만, 부정에 톡톡히 망신을 당한 날 “시녀 생질녀를 두신 양반 장하시우”라는 말로 정곡을 찔러 기함을 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윤경에게 다시 편지를 보내 벼슬을 옮긴다. 네버 엔딩 이직이다. 옮기고 옮기고 또 옮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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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학이는 벼슬생활이 즐겁지 않다. 봉학이의 성정을 아는 이윤경 대감과 함께라면 그나마 즐겁게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이윤경은 봉학이가 자립하기를 원한다. 어렵게 독립을 시켰지만, 봉학이의 직장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사람들과 사사건건 부딪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봉학이가 해결책으로 꺼내드는 것은 ‘이윤경 카드’다. 홀로 해결할 엄두도 내지 않고, 벼슬 생활에서 자신의 태도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어릴 때 활쏘기를 독학하던 그 패기, 귀신도 무서워하지 않는 담대함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토록 원하던 벼슬을 얻었는데, 성정은 아빠에게 의존하는 아이같이 변하는가 말이다. 


의존성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주명리에서도 ‘인성(印星)’은 인복, 어머니 등 도움을 뜻하는데, 이것은 양날의 칼처럼 작용한다. 자신을 돕는 세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존성을 키운다. 도움을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도움을 받지 못하면 ‘자립’하려는 의지를 내기 보다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봉학이는 자신에게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자 시골에나 내려가 조용히 살까 생각한다. ‘인생 뭐 있어? 귀농해서 농사나 짓지 뭐’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 같은 미천한 놈에게 병수사도 차례에 오지 않을 것인데, 진작 벼슬을 하직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오뉴월 화롯불도 쪼이다 물러나면 섭섭하다지’라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어정쩡한 상태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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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와 봉학이를 보면 ‘욕망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성에 대한 욕망, 벼슬에 대해 욕망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욕망의 소용돌이에 빠졌을 때 비로소 문제가 된다. 그런데, 해결책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돌이는 그날도 긴긴 밤이 외로웠다. 청석골 파수꾼인 김억석에게 딸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는 그의 집에 찾아간다. 억석이는 그날 밤 파수 보는 일로 집을 비웠고, 딸과 동생만이 남아 있었다. 돌이는 그의 딸을 불러내어 집적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억석이 딸이 만만한 이가 아니었다. 칼을 들어 돌석이 가슴을 겨누면서 “당신이 나더러 수청을 들라니, 나를 화냥년으로 여기셨소?”라며 자신은 오장육부가 다 같은 사람이라며 사람 대접을 하라고 호령한다. 이에 돌석이는 “네가 도둑놈 두령의 아내 재목으로 쩍말없다”며 아내를 삼게 되었다. 이로써 돌석이의 방황이 끝난다. 색(色)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 것이다. 담대한 사람, 욕망에 쉽게 흔들려 일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자, 돌석이도 딱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다. 


사람이 강한 상대를 만나면 상대적으로 약해질 것 같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은 자는, 욕망을 잘 쓸 수 있다. 그래서 강하다. 억석이 딸에게 성욕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잘 쓰고 싶을 뿐. 자신과 완전히 다른 힘을 쓰는 상대를 만나자, 돌이의 발정난 욕망도 안정을 찾게 된다. 봉학이에게도 그런 순간이 곧 찾아온다. 커밍 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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