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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꺽정시대 | 임꺽정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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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차리 작성일19-01-09 15:45 조회3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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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리뷰 ⑬

임꺽정의 몰락 

 

성승현

 

 

지금까지 임꺽정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힘이 장사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배우는 것에 열심이고, 의리를 지킬 줄 알고, 모두가 외면한 팔삭동이 동생을 살려내는 따뜻함까지 지녔다. 이런 따뜻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라니. 그렇다면 임꺽정은 정말 우리가 생각했던 완벽한 영웅이었을까.  

 

양주팔이와 같은 도덕도 없고 서기와 같은 공부도 없는 까닭에 남의 천대와 멸시를 웃어버리지도 못하고 안심하고 받지도 못하여 성질만 부지중 괴상하여져서 서로 뒤쪽되는 성질이 많았다. (홍명희, 『임꺽정』 7권, 30쪽)

예를 들면, 사람의 머리 베기를 무 밑동 도리듯 베면서 거미줄에 걸린 나비는 차마 그대로 두지 못하고 구해준다든지, 논밭에 선 곡식을 예사로 짓밟으면서 수채에 나가는 밥풀 한 낱을 아낀다든지, 성질이 느긋하고 끈질기게 굴다가도 조급증이 날 때는 가랑잎에 불붙은 것처럼 구는 것을 말한다. 순수한데 폭력적이다? 이런 일관성 없음! 홍명희는 이것이 도덕도 없고, 공부도 없는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임꺽정이 권력을 잡자, 뒤쪽되는 성질은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어색한 사귐 

임꺽정이 곁에 두는 사람을 보면, 그와 성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뒤가 다르지 않은 사람들, 꾀를 부리기 보다는 솔직함으로 정면돌파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의외의 인물들과 친하게 되는 모습을 보인다. 서림이와 노밤이, 한온이 등이 그렇다. 

 

임꺽정은 꾀 잘 부리는 서림이를 똑똑하다는 이유로 좋은 대우를 해 준다. 대장으로서 지략을 잘 짜는 인물을 임용하는 것은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다른 두령들의 말을 무시하기 일쑤다. “소견 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며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이유는 서림이의 플랜 때문이었다. 서림이는 “먼저 황해도를 차지하시구 그다음에 평안도를 차지하셔서 근본을 세우신 뒤에 비로소 팔도를 가지구 다투실 수가 있습니다”라며 ‘혹’하는 제안을 했다. 청석골, 황해도 뿐만이 아니다. 전국팔도를 임꺽정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욕망을 심어준 것이다. 이렇게 큰 그림을 그려주는 서림이가 있는데, 청석골 하나를 믿고 지키려는 이들의 말이 들어올 리가 있겠는가. 

 

노밤이도 그렇다. 꺽정이는 자기 흉내를 내며 다닌다는 애꾸눈 사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나선다. 그가 살인, 겁탈을 일삼는다니, 혼을 좀 내주려는 것이었다. 베이스캠프를 광복산으로 옮기고 난 이후였는데, 몸이 근질근질해서 서울 나들이를 하고 싶었던 차였다. 겸사겸사 길을 떠나, 우여곡절 끝에 애꾸눈의 노밤이를 만났다. 능구렁이 같은 사내였다. 앞에서는 굽신굽신하며 잘못을 말하고 빌고 하는데, 실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 마디로 헛웃음나게 하는 스타일이랄까. 평소 임꺽정의 성정대로라면 크게 혼을 내주었을텐데, 무엇이 마음을 건드렸는지 부하로 삼았다. 꺽정이는 평소 실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천성이 그랬다. 근 일 년 동안 꺽정이 수하에 있었던 졸개는 임꺽정이 누구하고든지 실없는 대화 하는 것을 보질 못했다. 그런데, 노밤이를 데리고 수작하는 것은 달랐다. 임꺽정 눈에 방정맞게 떠들고 까부는 노밤이의 모습이 밉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꺽정이의 무엇을 건드렸을까. 서림이는 꺽정이의 가장 근본에 있는 욕망을 건드렸다. 가장 아래에서 가장 위로 올라가는 것. 천대받는 위치에서 세상을 다스리는 위치로의 전환! 이 욕망이 드러나게 되자, 다른 두령들과의 소통은 번번이 막히게 된다. 공통감각이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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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밤이는 어떤가. 임꺽정이 대장이 되자, 모두 눈치를 본다. 그나마 오주가 눈치보지 않고 말을 하지만, 대부분은 막말이라 들을 말이 없다고 생각해 윽박지르기 일쑤다. 그런데, 노밤이는 눈치를 보는 듯하면서 할 말은 다 하고, 용서를 비는 듯하면서 자기 잇속은 다 차린다. 한 마디로 비위를 잘 맞춘다. 해박한 지식에 말도 막힘이 없으니, 수작하기에 편안한 것이다. 애꾸눈을 가진 것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한 것도 한몫했다. 그런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싶었던 거다. 

 

약한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든지, 자기 처지를 어떻게든 바꿔보고 싶은 욕망이라든지 하는 것은 임꺽정의 강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신념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고, 사람을 제대로 판단하고 사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한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결국, 서림과 노밤이가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온다. 

 

 

일상이 난봉

또 다른 사람은 한온이다. 서울에 도착한 임꺽정은 한온이에게 가서 신세를 지게 되는데… 한온이의 할아버지인 ‘한치봉’은 남곤, 심정을 도와 기묘사화에 힘을 실었던 사람이고, 한온이의 아버지인 ‘한백량’은 보우와 난정이의 세력을 빌려 쓸 정도로 힘이 있어 일평생을 태평으로 지낸 사람이었다. 한온이는 이십사오세밖에 되지 않았는데, 첩을 두셋씩 두고도 기생방 오입이 심할 정도로 여자를 밝혔다. 대대로 권력에 붙어 아첨하며 살던 경력이 있는 집안이었다. 이곳에 머물며 임꺽정의 돈 밝히고, 여자 밝히는 것이 더욱 심해지게 된다. 재물과 여자는 떼려야 뗄 수 없다고 했던가. 재물이 있으면 여자가 따르고, 여자가 따르면 재물이 있는 사람이라고. 임꺽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소문안패와 연락 있는 매파들이 꺽정이의 재물 많은 것과 계집 좋아하는 줄을 안 뒤로 꺽정이 거처하는 처소에 하나 둘 오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되어서 여럿이 드나들게 되었는데 서로들 시새워가며 이쁜 과부가 있소, 음정한 처자가 있소, 첩을 얻으시오, 첩장가를 드시오 천거도 하고 인권도 하였다. (같은 책, 158쪽)

돈 있는 임꺽정이 여자까지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자 중매쟁이들이 너나없이 그의 집에 드나들게 되었다. 임꺽정은 처음 박씨 부인을 시작으로 원씨 부인에 김씨 부인까지 세 번 장가를 든다. 

 

 

여기 가두 기집, 저기 가두 기집, 기집에 걸려서 자빠질 지경인데 홀아비란 다 무어요? 데리구 살림하는 사람만두 자그마치 셋씩이나 된다오. 그런데 그 세 사람이 다 각기 본기집이라지 첩이란 사람 하나 없소. 정작 본마누라님이 이런 걸 알면 기가 찰걸. (같은 책, 298쪽)

중매쟁이 소개로 가난한 양반집의 딸인 박씨에게 장가를 드는 게 처음이었다. 윤원형의 집에서 빚 대신에 박씨를 데려가려는 것을 임꺽정이 나서 구제한 셈이 된다. 다음은 원씨. 한온이 집의 하인이 보쌈을 당해 죽게 되었는데, 그 어미가 재상 원판서 딸 원씨 때문인 것을 알고 원수를 갚아달라 애원한다. 원수를 갚아주려다 데리고 와 장가를 들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열녀 김씨다. 시집오자마자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걸 구해냈지만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되자 정문을 받게 됐다. 오랜 세월 열녀 타이틀을 걸고 시아비와 홀로 살다보니 화병이 생겨 자기 성질을 잘 이기지 못해 주변 사람들을 달달 볶았다. 임꺽정이 성질을 고쳐주려다 정분이 나서 세 번째 장가를 들게 된 것이다. 기생 소홍이와의 찐한 관계까지 생각하면, 벌써 넷이다. 이 여인들의 집을 돌려가며 지내는 것으로 세월 가는 줄을 몰랐다. 청석골 천왕동이가 내려와 독촉을 해도 ‘곧 가마’라고 돌려보내고 또 한 세월을 보내고, 나중에는 독촉하는 것이 못마땅해 천왕동이에게 손찌검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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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자들마다 사연이 있고, 궁지에 몰린 그들을 구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씨가 빚쟁이에게 꼼짝없이 끌려가게 생긴 걸 구해낸 것이고, 김씨는 풀리지 않는 성욕 때문에 생긴 화병을 고쳐주지 않았는가. 하지만, 평소 임꺽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본기집이 튼튼해서 애새끼 낳을 만한데 첩을 두는 건 잡스러운 짓이다, 오입으루 기집질을 하드라두 첩은 둘 것이 아니다, 평일에 이런 말을 하던 이가 지금 첩두 아니구 본기집으루 기집을 셋씩이나 두었다니 오장이 바뀌지 않구야 그럴 리가 있소?” 황천왕동이는 임꺽정의 언행이 다름을 콕 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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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임꺽정의 세계는 스승인 갖바치가 죽고난 이후에 바뀐다. 사람 사귐도 그렇고, 공동체를 일구고 살아가던 일상도 무너진다. 그나마 지조를 지키겠다는 생각도 변했다. 임꺽정의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임꺽정의 자립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갖바치와 함께일 때는 이장곤, 심정, 김덕순, 서경덕과 황진이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과 만났었다. 스승 삼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임꺽정이 만나는 사람을 보니 서림이와 노밤이, 한온이다. 예전에는 도덕과 공부가 있는 인물들이었다면,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다 삐뚤어진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좋고 나쁨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인간 임꺽정이 만들어나가기 시작한 인생인 것이다. 

 

사실, 임꺽정의 이런 모습은 반갑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에 대한 상을 깨뜨리지 않는가. 무수한 고전을 쓴 사람들, 위대한 정치가들… 완벽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처음에는 실망도 많이 했다. 모순 투성이에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쓴 ‘고전’이 어떻게 우리에게 유용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지 않는가. 인간이 느끼는 무수한 감정과 충동, 번민들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라는 걸. 그래서 반갑다. 임꺽정의 몰락이. 그리고 궁금하다. 이러한 몰락 끝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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