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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꺽정시대 |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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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차리 작성일19-01-23 00:37 조회1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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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리뷰 ⑭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

 

성승현

 

 

매사에 뒤스럭스럽고 흔감스러운 오가의 버릇이 슬픔에도 나타나서 하관하고 횡대를 덮으려고 할 때 광중에 뛰어들어가서 관 위에 드러누우며 자기를 함께 묻어달라고 부르짖었다. (홍명희, 『임꺽정』 8권, 사계절, 203쪽)

청석골 오가의 아내가 죽었다. 금슬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부부였는데, 아내가 죽자 오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나도 함께 묻어달라'며 소란을 피우는 장면이다. 평소 변덕을 부리며 부산하게 구는 것이 그의 습관인데, 그 습관이 슬픔에 드러난다는 대목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슬픔도 산만하게 느끼다니!

 

오가는 구덩이의 관 위에 올라가 디굴디굴 굴렀다. 그러자 임꺽정이 참지 못하고 "오두령 소원대루 고려장을 지내드려라" 말하자 졸개들이 영을 거역하지 못하고 가래질을 시작했다. 반죽한 흙이 오가의 몸에 떨어지기 시작하자 몸이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유복이가 내려가 "망령부리지 말구 나가십시다"라고 하여 잡아 일으키니 못이기는 체하고 끌려나왔다. 오가는 슬픔을 숨기지 않고 부산스럽게 표현하는데, 그것이 남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된다. 주위에서는 오가의 이런 순정을 열남으루 치구 정문을 세워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하며 히히덕거렸다. 

 

하지만, 오가의 이런 습관이 오히려 슬픔을 이기는 힘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슬픔을 겪는 방식이 모두 다르지 않은가. 누군가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며 툭툭 털어버리지만, 또 누군가는 아픔을 쥐고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버릇 혹은 습관이라는 게, 위기에 닥쳤을 때 더욱 도드라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곧 성격이기도 하다. 오늘은, 『임꺽정』에 나오는 몇몇 인물을 뽑아 살펴보기로 한다. 

 

 

말발, 노밤이의 생존 수단​ 

 

노밤이는 말발로 일생을 살아왔다. 밉살스러기는 해도 능글능글한 것이 사람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는지, 꺽정이도 농담이나 따먹으며 그를 대했다. 꺽정이가 무안을 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도 그러려니 하던 노밤이었는데, 이번에는 단단히 화가 났다.

 

 

노밤이가 지난번 남성및골서 등밀려 쫓겨난 것과 절에 갔다 들어오는 길에 길에서 망신한 것이 다 잊혀지지 않는데다가 이번 기생의 집에서 꼭뒤잡이당할 뻔한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꺽정이가 밉기 짝이 없었다. 미움이 쇠어서 악으로 변하여 노밤이는 번히 포교가 안에 있는 줄 알면서 “너희 대장이 환장했드라” 하고 말했다. (277쪽)

이어서 “대장 소리를 듣는 사람이 다랍게 상목 한두 필을 아낀다 말이냐”라고 말하고, “청석골두 더 볼 것 없다. 너희두 진작 알아채려라”라는 말을 막 드러내놓고 떠들었다. 꺽정이 부하들과 술집에 갔다가, 포교들이 듣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임꺽정’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결국, 이 말이 화근이 되어 꺽정이가 포교에 쫓기게 된다. 

 

노밤이는 좀 특이한 캐릭터다. 처음에는 애꾸눈에 볼품이 없어 모두가 입을 모아 꺽정이에게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꺽정이는 그를 시시껄렁하게 대하며 곁에 두었다. 노밤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면 내쫓기는 것은 고사하고 곧 죽일 작정도 하였을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런데 노밤이에 대해서는 꺽정이 자신도 자기 마음을 괴상히 여기도록 화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노밤이가 웃음을 주는 포인트는 ‘자신감’이다. 시쳇말로는 ‘근자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자신이 꺽정이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꺽정이를 업어 모셨다는 표현을 보라. (^^;) 꺽정이와 달리 자신은 예절도 알고, 학문도 좀 알고, 게다가 여자들도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그에게 꺽정이가 망신을 준 것이다. 기생 소홍이네 집에 찾아가 저녁거리를 좀 처분해 달라(한 마디로, 돈 좀 보태달라)고 했는데, 꺽정이가 “이애들, 그 미친놈 꼭뒤잡이해 내쫓아라”고 분부했다. 이에 노밤이가 “달려들지 마라. 내가 나갈 테니”하고 말한 뒤 거드름을 피우며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꺽정이에게 살림살이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지 않는 일이고,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노밤이의 사고방식이 그렇다. 이 모순된 발상에 헛웃음을 웃게 되는 것이다. 

 

“그놈이 원래 미친놈이야. 입은 사구일생이구.” 

서울에 있는 김씨가 노밤이를 내쫓아달라고 하소연하자, 꺽정이가 위와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입이 사구일생이란 노밤이의 말이 이랬다저랬다 하여 걷잡을 수 없다는 뜻인데, 감당하지 못할 말을 하고 다닌다는 뜻일 게다. 꺽정이는 노밤이의 성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꺽정이가 분노하는 포인트는 '비굴함'이다. 그런데, 노밤이는 비굴한 듯하면서도 늘, 너무 당당하다. 자신을 부하로 쓰라고 한 것부터 시작해서 여자를 달라, 집을 달라 등 허무맹랑한 요구를 너무 당연하게 하니, 꺽정이는 그것을 매번 들어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이긴 했으나, 노밤이의 사구일생으로 입을 놀리는 습관​은 어디 가지 않았다. 노밤이는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자, 꺽정이 모함할 생각이 났다. 이럴 때 본능처럼 나오는 게 사구일생 ‘말발’이다. 노밤이가 누군가. 되도 않게 임꺽정 행세를 하던 이가 아닌가. 노밤이를 비하해서가 아니라 생김이나 힘이 임꺽정과 비교가 되지도 않는데, 마치 사실처럼 구는 것이다. 진실과 거짓 사이를 오가며 ‘생존’하던 노밤이의 말로가 좋겠는가. 사구일생으로 입을 놀리는 습관은 꺽정이에게만 화를 입힌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인생도 수렁에 빠지게 된다. 

 

 

주름살, 꺽정이의 질문

 

오주의 나이가 쉰셋인데, 십여년 아래 되는 꺽정이보다 젊어 보인다. 꺽정이 이마의 주름살이 나이를 한층 더 먹어보이게 했던 것이다. "형님은 아잇적부터 상을 찌푸리기 잘하셔서 주름살이 일찍 굳었세요" 봉학이가 말하자, "그게 백정의 아들인 표적"이라고 답한다. 꺽정이는 ‘백정’이란 단어만 나와도 상을 찌푸리고, 그러한 불쾌함이 내면에 자리잡아 불쾌한 것도 없는데 불쾌스럽게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꺽정이에게 ‘백정’이란 신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에게 하나의 질문이었다. 

 

하루는 꺽정이가 기생 소홍이에게 놀러를 갔다. 소홍이가 그날 만나고 온 양반네들 이야기를 하던 끝에 “그 양반은 꺽정이 말을 꼭 백정놈의 자식이라고 말합디다”라고 했다.(소홍이는 꺽정이가 임꺽정인 줄을 모른다) 꺽정이는 도둑놈이란 말은 들어도, 백정놈의 자식이란 말을 듣기만 하면 피가 일시에 끓어오르곤 했다. 눈을 딱 부릅뜨고 입을 꽉 다물고 씨근씨근 가쁜 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소홍이에게 자신이 임꺽정임을 고백한다. 

 

 

“나는 함흥 고리백정의 손자구 양주 쇠백정의 아들일세. 사십 평생에 멸시두 많이 받구 천대두 많이 받았네. 만일 나를 불학무식하다구 멸시한다든지 상인해물 한다구 천대한다면 글공부 안 한 것이 내 잘못이구 악한 일 한 것이 내 잘못이니까 이왕 받은 것보다 십배, 백배 더 받드래두 누굴 한가하겠나. 그 대신 백정의 자식이라구 멸시 천대하는 건 죽어 모르기 전 안 받을 수 없을 것인데, 이것은 삼신할머니를 탓하구 세상 사람을 미워할밖에. 내가 사십 평생에 임금으루 쳐다보이는 사람은 몇을 못 봤네. 세상 사람이 모두 내 눈에 깔보이는데 깔보이는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으니 어째 분하지 않겠나. (중략) 사모 쓴 도둑놈이 시골 가면 골골이 다 있구 서울 오면 조정에 득실득실 많이 있네. 윤원형이니 이량이니 모두 흉악한 날도둑놈이지 무언가.” (179쪽) 

자신은 도둑놈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런 세상에 만분의 일이라두 분풀이를 할 수 있고, 또 세상 사람이 범접 못할 자신의 세상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꺽정이의 오랜 고민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을 담고 담은 그런 답. 그렇다면, 꺽정이의 주름살은 ‘백정이라는 질문'에 대한 표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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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되는 습관

 

하지만,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음양이 있다. 노밤이의 말발이 생존에 유리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를 궁지로 몰고갔다. 오가의 성격도 그렇다. 청승을 떠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슬픔을 꽤 유쾌하게 이겨내도록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청승이 다르게 작용하기도 한다. 나중에 청석골이 관군에게 함락될 지경이 될 때, 오가는 청석골에 홀로 남아 죽임을 당하겠다고 선언한다. 아내가 묻힌 땅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을 순정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한편으로는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임꺽정은 어떤가. 소홍이네 집에 봉학이, 천왕동이와 함께 놀러간 적이 있었다. 고양이가 집의 생선이며 닭을 자꾸 물어간다고 하소연하자, 봉학이가 활만 있으면 고양이 잡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며 활을 빌려오라고 한다. 옆집 박선달에게 활을 빌려왔는데, 삭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봉학이가 이리저리 살피더니 “활이구 살이구 죄다 못쓸 겔세”라고 하자, 꺽정이가 대번 “박선달이란게 어떤 놈인지 죽일 놈일세. 빌려주기가 싫으면 안 빌려주는 게지 빌려준다고 못쓸 것을 빌려준단 말인가. 활이구 살이구 전동이구 다 아궁지에 처넣어버리게”라고 말하는데, 박선달을 어찌 괘씸하게 여기던지 흰자 많은 눈방울까지 굴리었다. 또 인상을 썼을 것이다. 박선달은 자신이 쓰던 활을 빌려줬을 뿐일텐데, 임꺽정은 자기를 무시해서 못쓸 것을 일부러 빌려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자격지심이 늘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이 자격지심이 질문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본노(혹은 폭력성)를 낳기도 한 것이다.

 

아마도, 자신을 배려하기 위해서 혹은 보호하고 위해서 생긴 버릇이, 어느 순간 성격이 되어 굳어버린 걸 거다. 어떤 특정한 시공간에서는 유효한, 어쩌면 고마운 카드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른다. 상황은 변하고, 사람도 나이를 먹고, 관계의 장도 끊임없이 유동한다. 그런데, 그 카드를 고수한다? 그렇게 되면, 오가와 같은 무기력함에, 노밤이와 같은 배신에, 꺽정이와 같은 폭력성에 갇힐 수도 있다. (물론, 이 또한 변한다^^)

습관은 오래 지속된 실천이며, 그것은 그 자신이 된다는 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어떤 한 순간의 노력으로 특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므로 위대한 것은 습관이다"라고. 정말 그렇지 않은가. 평소에 하는 버릇이며 습관이 자신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습관이 운명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습관은 새로운 운명을 열어준다는 말도 된다. 어떤 습관을 만들 것인가, 어떤 습관을  친구로 만들어 곁에 둘 것인가! 그것은 새로운 운명을 열고 싶은 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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