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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꺽정시대 | 임꺽정, 홍명희의 ‘중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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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차리 작성일19-02-20 21:59 조회5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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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리뷰 ⑯

 

임꺽정, 홍명희의 ‘중간길’

 

성승현

 

 

대체 신간회의 나갈 길은 민족운동만으로 보면 가장 왼편 길이나 사회주의 운동까지 겸치어 생각하면 중간길이 될 것이다. 중간길이라고 반드시 평탄한 길이란 법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중간길은 도리어 험할 것이 사실이요, 또 이 길의 첫머리는 갈래가 많을 것도 같다. (홍명희, 『임꺽정』, 「신간회의 사명」, 173쪽)

홍명희의 행로는 범상치 않았던 모양이다. 1927년, 신간회를 발족하며 그 사명이나 진로를 천명하는데, ‘중간길’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신간회는 좌우익이 합작하여 결성한 항일단체이니 당연한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중간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그것은 그에게 답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민족주의자인지 사회주의자인지 노선을 정하라는… 그는 답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그가 생각하는 중간길이란 무엇이었을까? 신간회 발족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연재를 시작한 『임꺽정』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홍명희의 창작론 

홍명희의 문학 창작론은 독특하다. ‘위대한 혼(魂)’이 있어야 천재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혼, 위대한 천재일 때 그는 학적 교양보다 자기 속에 전개되는 세계와 현실생활에서 예민한 피부로 흡수하고 생활로 세워나가는 것을 봅니다”(174쪽)라는 작가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는 ‘문학’이라는 것이 사건이나 역사, 상식 등 앎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감응할 수 있는 작가의 독특한 혼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임꺽정』은 이런 그의 창작론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실존 인물인 임꺽정에 대한 사료는 많지 않다. 홍명희는 ‘임꺽정’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자료를 기반으로 작가적 상상력(위대한 혼)을 동원하여 『임꺽정』을 쓴 것이다. 그렇기에 미완인 임꺽정이지만, 줄거리는 정해져 있었다. 

 

 

『임꺽정』을 쓰기 시작한 뒤 5, 6년에 이제야 비로소 화적火賊 임꺽정을 쓰게 되었습니다. 화적 임꺽정이 사람 임꺽정의 본전本傳이요 소설 『임꺽정』의 주제목主題目입니다. 임꺽정이가 청석동서 자모산성으로 옮기고 또 구월산성으로 옮기었다가 구월산성에서 망한 것이 사실이므로 화적 임꺽정을 청석편, 자모편, 구월편 세 편에 나누어서 쓰겠습니다. 사상史上에 숨었던 인물 임꺽정을 얼마만큼이나 살려내게 될는지 작자부터 작자의 붓을 믿지 못하나 진력하여 쓰면 다소 보람은 없지 아니할 듯합니다. 화적 임꺽정이 끝난 뒤에도 임꺽정의 아들 백손의 유락流落된 것을 짤름하여 써서 붙이려고 생각하므로 한참 장차게 쓰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2, 3년 더 나갈는지 모릅니다. (같은 책, 181쪽)

임꺽정(과 친구들)은 명종 17년 구월산성 전투를 끝으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아들 백손이는 타향살이를 했을 거라 짐작된다. 홍명희는 임꺽정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단편단편 떨어져 있는 것밖에 없어서 대개는 자신의 복안으로 사건을 꾸미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의 복안에서 태어난 임꺽정을 우리는 만나게 된 것이다. 임꺽정의 일생은 이미 팩트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홍명희가 한 일은 무엇인가? 사상(史上), 즉 역사적 인물로의 임꺽정에 갇혀 드러나지 못했던 임꺽정을 재현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창작이 아니다. 임꺽정의 ‘현실생활’를 구성하는 일인데, 그것은 ‘위대한 혼’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거다. 

 

 

임꺽정이라는 ‘중간길’

홍명희는 『임꺽정』을 어떻게 쓰려고 했는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말은 이렇다. 순조선 것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이전 조선의 문학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최근의 문학은 서양의 영향을 받아 우리와 유리된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꺽정』만은 ‘조선정조朝鮮情調에 일관된 작품’으로 쓰겠다고 미리 공언했다. 

 

해제를 쓴 임형택은 『임꺽정』을 ‘생활을 떠난 문예에 대항한 생활의 문학’으로 표현했다. 저항 소설, 민족 소설이라는 표피에 ‘생활’을 집어넣은 것이다. 민족이나 인권,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정신을 고취시키려하는 현실에 대한, 혹은 고취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저항이랄까. 그는 궁금했을 거다. 임꺽정이 조선 백성이라는 정체성, 백정이라는 정체성에 갇힌 인물이었을까. 임꺽정이 '조선의 백성이라는 민족주의'에, '백성은 사람도 아니냐는 사회주의'에 심취한 인물인가, 홍명희는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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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마지막 권을 보면, 궁지에 몰린 듯한 청석골의 상황을 만나게 된다. 지모를 뽐내던 서림이의 배신으로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다. 하지만 나름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평산리 전투에 서림이가 개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임꺽정은 비로소 서림이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그리고, 서울에 인연이 많은 한온이를 통해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지리에 밝은 이춘동이를 앞세워 식구들을 피신시키고, 발이 빠른 천왕동이를 연락책으로 쓴다. 서림이의 역할은 봉학이가 대신하게 된다. 사실, 서림이에 가려져 있어 그렇지, 봉학이는 관직생활을 했던 만큼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고, 추진력도 좋은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임꺽정이다. 

 

청석골에 남겠다는 오가를 두고, 나머지는 청석골을 떠난다. 그리고 자모산성에 입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 평산리, 청석골, 자모산성, 구월산성으로 이동하며 이들의 전투는 계속될 것이다. 아마도 ‘죽음’을 맞을 때까지…  중요한 것은 이 싸움이 ‘더 좋은 삶’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싸움 자체가 그들에게 가장 좋은 삶이었다. 

 

사실, 독자로써 읽을 때에는 분별이 앞섰다. 갖바치 그늘 아래 있었던 평화로운 시간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그것이 진짜 삶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꺽정이가 겪게 되는 도적 생활은 혁명이어야 하며, 청석골과 자모산성에서의 전투는 정상적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수단 혹은 과정이라고 해석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이게 몽땅 흘러가는 그들의 삶일 뿐이다. 싸워야 할 것들과 매일 싸우며 사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서 임꺽정을 사회제도에 반하는 저항 문학으로 읽는 것은 오류일 수밖에 없다. 그는 신분제도에 대항한 것도, 시대정신에 맞선 것도 아니다. 그는 백정이 아닌, 하지만 백정이 아닌 것도 아닌 삶을 살았을 뿐이다. 도적이 아닌, 도적이 아닌 것도 아닌 그런 중간 길을 걸었다. 그 길이 결과적으로 혁명이고, 저항이라면 그것은 맞는 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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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이미 많은 조건들이 있다. 부모, 자식, 흙수저, 금수저, 직업, 나이, 성별, 재산 등등.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그 조건들로부터 자유를 찾는 방법이 무엇일까? 직장을 그만두면 될까? 페미니스트가 되면 될까? 인권운동을 하면 될까? 물론, 이것들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혁명일 수는 없다. '삶‘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느끼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창안해내는 방법으로 매일매일 싸우며 사는 것, 그것만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답이 정해져있지 않은 '중간길'이고, 도리어 험할 것이다. (^^;) 그래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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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꺽정시대>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일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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