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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 전작 스케치 | 축의 시대 -① 인류의 고민이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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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이트 작성일18-04-19 02:41 조회1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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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2) 『축의 시대』​-①

 

 

 intro 『축의 시대』를 스케치하며


김지숙

 

   『축의 시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저자 카렌 암스트롱의 방대한 지식에 놀라는 것도 잠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많은 정보를 다 알아야만 한다는 건가? 게다가 하나의 지역이 아닌 서로 다른 4개의 지역(그리스, 인도, 이스라엘, 중국)을 동시다발적으로 따라가야 하다니! 그런데 걱정은 기우였다. 생각보다 잘 읽히고 무엇보다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것은 ‘마음이라는 키워드로 4개의 지역을 꿰어서 ‘이야기’로 찬찬히 풀어가는 카렌의 독보적인 글쓰기 덕분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글쓰기가 가능했을까. 

 

 대략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에 세계의 네 지역에서 이후 계속해서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전통이 탄생했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그것이다. 축의 시대는 붓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레미야, 《우파니샤드》의 신비주의자들, 맹자, 에우리피데스의 시대였다. 이 뜨거운 창조의 시기에 영적‧철학적 천재들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인간 경험을 개척해 나아갔다.(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교양인, 2006, 4쪽)  

  카렌은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르퍼스가 명명한 ‘축의 시대’에서 영적으로 완전히 다른 인간들이 탄생했음에 주목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황금률-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8쪽)을 강조하고 있었다. 카렌의 글쓰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황금률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해서 카렌은 종교가 탄생한 4개의 지역에서 인류가 어떻게 마음의 진보를 이루었는가를 탐사해 들어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축의 시대』는 ‘인류의 마음 탐구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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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의 시대』를 읽다보면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려는 카렌의 고투가 느껴진다. 그래서 카렌은 왜 이런 마음밖에 안 생기느냐, 왜 자기 성찰이 없느냐, 왜 유일신으로 가버렸느냐를 따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맞춰 마음이 움직였을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시비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뿐!  나의 『축의 시대』 스케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축의 시대』를 꼼꼼히 읽으면서 인류의 마음이 어떻게 유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 그것이 나의 스케치의 목표라면 목표다. 디테일하게 살펴야 하니 어쩌면 세밀화가 될 수도 있겠다. 

 

 

 

 인류의 고민이 시작되다

     - 기원전 1600년~900년-   

 

  인류의 역사는 ‘폭력’과 궤를 같이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 간의 갈등에서부터 권력 다툼, 영토 분쟁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폭력은 나를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피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폭력을 중단하기 위한 인류의 고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기원전 16세기, 드디어 인류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사의 에토스를 바꾸다

 

  축의 시대 영성을 처음 시도한 사람들은 러시아 남부 초원 지대에 살았던 아리아인이었다. 그들은 흩어져서 나중에 아베스타계 아리아인과 산스크리트계 아리아인으로 나뉘어졌다. 

  초원에 정주하며 땅을 경작하고 양, 염소, 돼지를 기르며 평화롭게 살았던 아베스타계 아리아인. 그들은 정복에는 관심이 없었다. 때 맞춰 비가 와 주고, 때 맞춰 경작물을 수확할 수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해서 이런 신성한 질서를 유지하느라 수고한 신들에게 그들은 우유, 소마, 가축을 바치는 희생제의를 열었다. 어떤 때는 자신들과 가까웠던 소를 희생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그런데 “아리아인은 이 제의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삶이 다른 생물의 죽음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28쪽) 누군가를 죽여야만이 다른 누군가가 살 수 있다는 “존재의 가혹한 법칙”(27쪽)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존재에 대해 함부로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자기의 능력이 뛰어나서 부와 명예, 지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누군가가 탈락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돈을 많이 벌 때 누군가는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백수들이여! 당당해지시라^^)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타인의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만을 버리고 겸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아리아인은 희생제의를 통해 “호혜주의, 자기희생, 동물을 사랑하는 태도를”(30쪽) 배웠다. 의례는 그들을 존재의 다른 수준으로 들어 올리는 신성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리아인의 평온한 삶도 끝나가고 있었다. 청동 무기와 전차’를 얻게 된 그들이 ‘전사’가 된 것이다! “아리아인 카우보이들은 싸우고, 죽이고, 강탈하면서 자신들이 무력으로 세계 질서를 확립한 인드라를 비롯한 호전적인 데바들과 하나라고 느꼈다.”(30쪽)  약탈과 습격이 자행되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땅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늘에서도 일어나는 것인데 혹시 정의의 신들이 인드라와 같은 신들로부터 공격당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은 조로아스터라는 통찰력 있는 사제에 의해 제기되었다. 필사적으로 폭력을 끝내고 싶었던 그는 모든 것을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나누었다. 그래야만이 이런 혼란스러움이 설명될 수 있으니까. 그는 선이 최후에 이기며 악은 절멸하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전파했다. 악한 사람들이 저지른 만행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인드라에게 희생제의를 올려서는 안 되며 오직 정의의 신, 야후라 마즈다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까. 

 

  선악의 구도는 원한과 복수를 낳고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불러올 뿐이다. 조로아스터는 “전사의 에토스에 도덕성을 집어넣으려 했다.”(38쪽) 진정한 전사는 아무에게나 창을 들이대지 않으며 폭력에 맞선다는 것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신성한 의무라는 것을 말이다. 새로운 전사의 윤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조로아스터는 전사의 에토스를 바꾸는 것만이 폭력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당시 자신의 부족 사람들로부터는 그렇게 각광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비폭력의 원리에 기초하여 축의 시대의 첫 번째 지속적인 종교를 만든 사람들”(39쪽)은 조로아스터가 그토록 비난했던 가축도둑 아리아인이었다. 

 

 

영적 천재성을 보여준 사람들

 

  한편 산스크리트계 아리아인은 남쪽으로 이동해 인도의 펀자브 지역에 정착했다. 하지만 그들은 늘 이동하면서 다녔던 터라 정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인드라를 최고의 신으로 모시며 토착민의 공동체를 약탈하는 것을 일상으로 여겼다. 폭력이 난무했다. 그러나 “이런 이른 단계에도 펀자브에 도착한 직후 학식 있는 엘리트는 베다 경전 가운데 《리그베다》의 가장 초기에 속하는 찬가들을 편찬하기 시작했다.”(42쪽) 아리아인들은 리그베다의 찬가를 들으면서 성스러움을 경험했다. 시의 아름다움에 빠져 신성과 접속하는 아리아인들을 카렌은 영적 천재라고 말한다. 

 

  그에 비해 전사와 습격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영성을 체험했다. 이들은 마을에서 약탈을 자행하다가도 우기가 되면 숲으로 들어가 생활했다. 거기서 그들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경험을 했다. 사실 숲에서는 전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살생하지 않음’에서 오는 존재의 평온함과 충만함으로 고양될 수 있었다. 이것은 희생제에서 경험했던 황홀경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실 희생제는 약탈의 성공을 기뻐하는 축제 그 자체였다. 많은 짐승들을 제물로 바치며 떠들썩하게 먹고 마셨다. 뿐만 아니라 전리품을 다른 족장들에게 선물로 나눠주었다. 이럴 때 그들은 존재의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사람들의 피로는 가중되고 있었다. 더 멋진 희생제를 치르기 위해 더 많은 약탈을 감행해야 하니 말이다. 희생제의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어떤 전사들은 영웅적인 에토스가 쓸데없다고 생각했다.”(49쪽) 계속해서 긴장을 유지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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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베다시대로 오면 인도의 축의 시대를 열어 줄 개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 테면 최고의 실재를 뜻하는 브라만, 브라만이 인격화된 존재인 프라자파티, 최초의 인간이라는 푸루샤가 그것이다. 그래서 제의의 끝은 브라만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시합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브라만은 말로 설명할 수 없기에 언제나 침묵 속에서 경험했다. “브라만의 초월성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의 신비로운 충돌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56쪽) 푸루샤는 어떤 리시(예언자 또는 현자)가 창조 이야기를 명상하다 떠올린 것이다. 즉 인류는 첫 인간인 푸루샤의 희생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자기를 조건 없이 내어줌’으로써 우주가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존재의 충만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타인을 희생시킴으로써 존재가 고양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또 하나의 영적 진보다. 

 

천명(天命)이라는 이상을 도입하다

  

  기원전 16세기 이후 중국을 다스린 왕조는 상 왕조(은나라)였다. 왕은 모든 일에 대해 강력한 최고신 제(帝)와 의논했다. 왜냐하면 아리스타계 아리아인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인에게도 자연의 질서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는 너무나 불안정했다. 갑자기 가뭄, 홍수, 재앙을 내려 농사를 망치게 했고 적을 부추기기도 했다. 하여 중국인은 변덕스러운 제나 자연신보다 조상신에게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특히나 그들에게는 신농을 비롯한 의로운 통치자 요‧순‧우가 있지 않았던가. “왕가의 조상이 훨씬 더 중요했으며, 그들에게 드리는 제사가 상나라 종교의 핵심이었다.”(66쪽) 기원전 12세기가 되자 그 때는 아예 제를 부르지도 않고 조상신에게만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왕과 귀족들은 “문명이 힘겹게 얻어낸 위태로운 성취”(60쪽)라는 것을 잊어가고 있었다. 희생제를 위해 엄청난 짐승들을 도살했다. 제후가 죽으면 그의 주검위에 창고가 텅텅 빌 정도의 호사스런 물건들로 장식했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매장했다. “상나라 종교에는 잔혹 행위와 폭력이 있었다.”(69쪽) 백성들의 마음이 떠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상나라의 시대가 저물어갔다. 

 

  주나라의 시대가 왔다. 주나라는 상나라를 그대로 따랐다. 문제는 그들의 연속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상나라의 조상을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주공이 나서서 한방에 해결했다. 상나라의 압제와 부패로 고통에 처한 백성들을 가엾게 여겨 하늘이 상에게 위임한 천명(天命)을 도로 거두어 주나라에게 위임했다는 것이 주공의 논리였다. 그래서 천명을 부여받은 왕은 자신의 덕을 겸손히 돌봐야 하고, 백성들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들에게 너그러워야 한다. 짐승들을 함부로 죽여서도 안 된다. 요순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은 통치자에게 주었던 천명을 빼앗을 테니. “중요한 순간이었다. 주나라는 그 때까지 도덕성에 관심이 없던 종교에 윤리적 이상을 도입했다. 하늘은 돼지나 소를 도살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비와 정의에도 영향을 받는다. 천명은 중국의 축의 시대에 중요한 이상이 된다.”(71쪽)

 

  

전쟁의 신, 야훼를 선택하다

 

  기원전 12세기, 지중해 동부는 암흑시대가 계속 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미케네 폐허에는 새로운 그리스 문명이 탄생했으며, 가나안의 고지대에서는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부족 동맹체가 나타났다.”(73쪽)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의 외부인이었다. 유랑하던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아마도 안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정착을 위해 싸워야 했고 또 한편으로는 공존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언제라도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기에 이웃한 정착지의 도움을 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에게는 다양한 부족들을 연결하는 ‘친족 정서’가 남달랐다. 그리고  “포위를 당한 상태에서 늘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전쟁을 준비하며 살게 된 사람들은 전투적 믿음을 발전시켰다.”(81쪽) 그들은 전쟁의 신, 야훼를 선택했고 ‘헤렘(성전聖戰)’이라는 제도를 안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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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전통적으로 가나안 사람들이 숭배했던 신은 ‘바알’이었다. 하지만 “야훼는 족장들에게 이스라엘을 강한 나라로 만들어주고,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77) 뿐만 아니라 “야훼는 그들을 신성한 사람으로 만들 율법을”(78쪽) 주었다.” 비록 40년간 광야에서 떠돌긴 했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야훼가 특별한 존재였다. 아니, 그들은 야훼와 특별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자기들만의 정체성을 구현하면서 부족을 하나로 묶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야훼와 돈독한 관계를 누리면서 다른 민족들과 차별화 할 수 있는데 야훼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다른 신을 원했다. 야훼와 달리 다른 신들은 훨씬 부드러웠을 뿐만 아니라 다산과 풍요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과 폭압 속에서 신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사신(warrior god) 야훼에게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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