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 시대-② 불안과 공포의 시대 > 글쓰기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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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 전작 스케치 | 축의 시대-② 불안과 공포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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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이트 작성일18-04-26 01:32 조회2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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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2) 『축의 시대』-

 

 

   불안과 공포의 시대

    -기원전900년~800년경-



김지숙



  여전히 불안과 공포는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인은 비극을 내면화했고 이스라엘에서는 야훼 유일 운동이 일어났다. 중국은 흩어진 주나라를 모으기 위해 제의를 강화하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하지만 인도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축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비극을 품고 사는 사람들


  그리스는 기원전 1200년 이후 약 400년간 암흑시대였다. 막강한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이 어느 날 사라져버렸다. “그리스인은 자신들의 세계가 붕괴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그 트라우마가 그들을 바꾸어놓았다.”(101쪽) 그들은 삶에 비극이 내재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너무나 염세적이고 끔찍한 신화와 제의가 그것을 증명한다. 창조 신화는 가족이 폭력이라는 것과 비극을 품고 살아야 하는 그리스인의 운명을 암시할 뿐이다. 


  그 중에서도 우라노스의 생식기가 잘릴 때 흘린 피에서 나온 에리니에스(분노의 신)가 문제였다. 에리니에스는 그리스인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압박했다. 사회의 질서를 해치거나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에리니에스의 추격은 계속되었다. 마이스마(독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희생으로 죽어 그 행위를 정화하기 전에는 사회가 전염병과 재앙에 만성적으로 시달렸다.”(106쪽) 호메로스 서사시에 나오는 인물들의 비틀린 얘기도 마이스마를 제거해야만 끝이 났다. 물론 그것은 죽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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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제의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새 술을 시음하며 즐거워해야 할 봄 축제는 사실 죽음의 축제였다. 디오니소스에게 첫 포도나무를 선물 받고 거기서 수확한 술을 마신 이키리오스의 친구들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술에 취한 것을 처음 본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죽음이라 생각하고 이카리오스를 죽였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본 이카이리오스의 딸이 목을 매고 나서야 죽음의 행렬은 끝난다. 이제 비로소 “신은 달래고, 독기는 흩어지고, 새로운 생명, 새로운 희망이 나타났다.”(112쪽) 

 

  그렇다. 그리스인은 삶에 내재된 비극을 잊지 않고 제의를 통해 그것을 재연하면서 공포를 확인한다. 마이스마는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온전히 겪어낼 때만이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의는 보여준다. 다시 말해 “제의는 입문식, 즉 슬픔을 거치고, 죽음과 독기의 공포를 거쳐 갱신된 삶에 이르는 통과 의례였다.”(113쪽) 


  그래서일까. “그리스인은 아무리 강해져도 절대 자신이 자기 운명을 책임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107쪽) 그들은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해부하거나 분석하지도 않았고 자기 성찰 같은 것도 없었다. 어쩌면 그리스인은 인간이 무력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불안과 공포 앞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마이스마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의 비극은 끝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쩌겠는가. 그냥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사는 수밖에. 



엘리야의 야훼 숭배 대작전


  기원전 9세기에 이르자 이스라엘은 강력한 왕국으로 부상했다. 아무 문제가 없어보이던 그 때 소란이 일어났다. 아합왕이 페니키아 공주를 신부로 맞이했는데 그녀의 나라에서 받들던 바알 신앙을 들여온 것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라면 야훼만을 섬겨야 한다는 소수의 반발을 불러 왔다. 특히 예언자 엘리야(“야훼는 나의신!”이라는 뜻)는 “바알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가 이스라엘의 신이 아니기 때문에 페니키아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다.”(118쪽) 하지만 땅을 비옥하고 다산에 명성이 있는 바알을 어떻게 내치겠는가. “이때부터 경쟁하는 신들과 벌이는 살벌한 경합이 예언자들이 지닌 영성의 특징이 되었다.”(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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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야는 사제 이세벨에게 바알과 야훼의 진검 승부를 제안했다. 누가 비를 불러올 수 있는지 말이다. 당시 아합 왕국은 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과는 억수같은 비를 몰아다 준 야훼의 승리! 이쯤 되면 야훼는 전쟁에서 뿐만 아니라 땅을 비옥하게 하는 데도 능력이 있음을 증명한 셈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만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했다. 다른 신들과 차별성을 둬야 했다. 본격적인 ‘야훼 유일 숭배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우선 이미지를 변신해야 했다. 신성한 전사의 이미지는 바알을 연상시켜서다. 이제 야훼는 자신을 자연의 격동적인 흔들림이 아닌 조용한 침묵 속에서 드러냈다. 그리고 예언자들은 신들의 모임에서나 야훼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전사의 의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른 쪽으로 파고들어야 했다. “야훼는 다른 신들이 사회적 정의라는 근본적인 의무를 게을리 했다고 비난했다. 엘리야도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과 배려를 강조했다.”(122쪽) ‘약한 자와 고아를 보살펴주고 없는 이와 구차한 이들에게 권리를 찾아주며 가난한 자와 약자를 악인의 손에서 구해주라’는 것이 야훼의 주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비를 베푼 자들에게 야훼는 보상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것은 야훼가 새롭게 제시한 비전은 아니었다. 중동에서는 일찍이 약자를 보호하는 정의가 강조되어 왔었다. 그렇다면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이런 얘기들을 이사야는 왜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극심한 가뭄으로 사회의 불안과 공포가 가중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때에 곤궁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신이 있다면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엘리야는 그런 점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야훼만을 숭배하라는 교조적 태도는 아무래도 모험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초월해서 나아가야 할 목표인 신을 규정하는 데 집중하면 공격성과 호전적인 배외주의를 드러낼 위험이”(120쪽) 생기기 때문이다. 



제의, 천궁의 복제품을 창조하는 행위


  기원전 9세기, 중국도 다른 나라들처럼 불안과 공포의 시기였다. “각지의 제후들이 이탈하고 주나라의 영토는 이민족들에게 계속 공격을 당했다.”(125쪽) 주나라는 봉건적 제후국들로 쪼개졌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것인가. 


  종교적 믿음으로서의 통합, 그것이 해법이었다. 그러나 오해해선 안 된다. 종교라고 하면 초월적 신을 떠올리겠지만, 중국인들은 ‘신’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종교는 천리(天理)를 보전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은 바로 천명을 받은 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슨 초월성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것을 왕에만 국한 하는 것이 아니라 제후들에게까지 확장했다. 말하자면 제후들은 자기의 영토에서 천자로서 묵인 받았다. 왕과 제후들은 천리를 구현하고 보존하는데 있어 한 배를 타게 된 것이었다. 


  사실 천리를 보존하다는 것은 일상에서 자연의 질서를 따르고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봄에는 초록 옷을 입고 동쪽에, 여름에는 붉은 옷을 입고 남쪽에, 가을에는 하얀 옷을 입고 서쪽에, 겨울에는 검정 옷을 입고 북쪽에 섰다. 농사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절기에 맞춰 씨를 뿌리고 수확했다. 이것은 자연의 리듬에 맞추면서 천상의 모범을 그대로 따르는 제의 그 자체였다. 왕이 ‘제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수행’하면 큰 평화가 왔다. 그래서 재앙이 닥치면 왕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 고백하고 제사를 지내며 화평을 기원했다. 다행히 마법의 힘으로 우주의 질서가 회복되었다.


  이제 제의는 주나라의 공식적인 행사가 되었다. 왕은 제의를 통해 선대의 왕들을 숭배했고 제후국에서는 조상을 섬겼다. 자연신과 조상을 초대하는 ‘접대’ 희생제도 주기적으로 열렸다. 그것은 정교하고도 신성한 한편의 드라마이자 축제였다.


상나라는 조상과 신들의 호의를 얻으려고 제의를 이용했으나, 기원전 9세기에 이르면 제의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거행하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제의를 완벽하게 거행하면 참석자들 내부에서 뭔가 마법적인 일이 일어나 성스러운 조화를 느끼게 되었다.(134쪽)

  주나라의 제의는 복을 빌거나 신들의 호의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천궁의 복제품을 창조”(134쪽)하는 행위 그 자체였다. 다시 말해 천리를 구현한 이상 세계를 아주 정확하고 세밀하게 재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성한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왕이 만든 평화의 춤을 춤이 대미를 장식하는데 그것은 주 왕조에 화평을 가져온다고 믿게 만들었다. 결국 드라마 공연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이나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잃고 다른 존재가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스스로가 완전한 인간을 향해 나아간다고 느꼈다.”(135쪽) 


  사실 중국인들이 제의의 영적 의미를 이해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제의의 시간을 통해 자신들이 고양되는 성스러운 경험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전례의 미세한 내용을 그대로 따름으로써 그들은 더 큰 패턴에 자신을 내주고, 적어도 한동안은 신성한 공동체를 창조”(136쪽)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내면의 발견


  기원전 9세기, 인도의 제의 전문가 브라민은 “희생 전례를 체계적으로 평가하여 폭력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는 관행은 제외하기로 결정했다.”(139쪽)  더 이상 희생제물이 필요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헌장신화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어느 날 프라자파티와 ‘죽음’이 함께 희생제를 드리고, 평소처럼 전차 경주, 주사위 던지기 시합, 음악 경연을 벌였다. 그러나 죽음은 프라자파티에게 완전히 졌다. 프라자파티는 전통적인 ‘무기’로 싸우려 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제의 기술을 이용했다. 프라자파티는 죽음을 이겼을 뿐 아니라 삼키기까지 했다.(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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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자파티가 죽음을 이기고 삼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프라자파티가 죽음을 내면화하면서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창조의 발판을 마련했음을 뜻한다. 제의를 위해 더 이상 동물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의 전문가들은 프라자파티를 희생제를 바치는 사람들의 원형으로 보았다. 이제 사제 없이도 홀로 제의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제의를 드리는 사람은 프라자파티와 하나가 되어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 설 수가 있었다. 그는 이렇게 외친다. “나는 하늘을, 신들을 얻었다. 나는 불멸이 되었다”(144쪽)고. 제의를 통해 새로워진 자신을 인식하게 되면서 영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불살생을 통해서도 이런 상태에 다가갈 수 있으니  전사들로 하여금 개혁된 제의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혁된 전례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면의 발견’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내면화하면서 그것이  곧 그의 자아(아트만)이기에. 그렇다면 제의의 방향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이 되지 않는가. 예전의 제의에서는 외적인 신과 물질적 이익을 얻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 제의는 아트만이라는 자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자신의 내부로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사제들은 자아의 본성을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여, ‘아트만’이라는 말은 점차 한 인간을 독특하게 만드는 그 사람의 본질적이고 영원한 핵심을 가리키게 되었다.”(148쪽) ‘영원한 자아’를 찾기 위한 본격적인 탐험이 시작되었다. 인도의 축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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