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 시대- ⑤ 고난의 시대 > 글쓰기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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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 전작 스케치 | 축의 시대- ⑤ 고난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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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이트 작성일18-05-17 02:08 조회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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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2) 『축의 시대』-⑤

 

 

 고난의 시대

-기원전 600년~530년경-

 

김지숙

 

  4개의 지역 모두 고난의 시기를 맞이했다. 바빌로니아에 나라를 뺏긴 이스라엘은 70년간 추방의 삶을 살게 되었고, 그리스에서는 폴리스가 무너지며 혼란에 빠졌다. 인도에서는 삶이 고통과 좌절의 연속임을 인식하며 영적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들의 동맹이 깨지면서 중원의 평화가 사라지고 있었다. 과연 이 고난을 어떻게 통과할까. 

 

 

이방인의 삶, 새로운 축의 시대 전망을 창조하다


  이스라엘의 고난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아시리아의 지배가 끝나 좀 안정을 찾느가 싶더니 곧 바빌로니아가 이스라엘을 점령해 버렸다. 자기 땅에서 추방당하고 바빌로니아에 정착하게 된 이 시기를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상 가장 비참한 시기”(288쪽)로 꼽는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야훼가 또 그들을 구하러 오지 않겠는가. 천만의 말씀! 이번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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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언자 예레미야는 그런 헛된 희망을 품지 말라고 경고한다. 야훼는 오히려 이스라엘을 쳐부술 것이라고. 게다가 이방인으로 앞으로 족히 70년은 살아야 하니 원한을 품지 말고 바빌로니아에 정착해서 잘 살아가라고, 바빌로니아가 잘 되게 빌라 말이다. 예언자 에스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로 곧 돌아갈 수 있다는 환상은 소용없으며 지금 당장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현실을 직시하라고 경고했다. 무너진 율법을 다시 일으켜야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성적 방종, 유혈 참극, 부정부패, 우상 숭배를 낱낱이 까발렸다. 

 

  그런데 예레미야나 에스겔의 경고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나라간의 다툼으로 폭력에 몰두할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을 뒤집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빌로니아의 잔혹성을 비난하거나 고통을 적에게 투사하는 대신 함께 추방당한 사람들에게 더 가까운 곳을 보도록 강요했다.”(298쪽) 말하자면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먼저 성찰하라는 뜻이다. 새로운 축의 시대 전망이 창조되는 순간이다.

 

  추방당한 사제 그룹 ‘P’ 역시 “낡은 것의 파편 위해 새로운 영성을 구축하기 시작했다.”(301쪽) 이들의 작품이 바로 세상의 창조 과정을 그린 《창세기》의 첫 장이다. 《창세기》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거기에는 어떤 싸움이나 죽음도 없다. 아니, 너무나 평화롭다. 폭력성을 아예 뽑아버렸던 것이다. 7일째 되던 날 P는 이렇게 서술한다.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고. ‘모든 것’에는 바빌로니아인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그들을 축복하는 것이 마땅하다. P는 배타적 자세를 버리고 ‘타인에 대한 관용과 자비’를 베풀 것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모든 생명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해서 ‘노예를 만들거나 소유해서도 안 되며, 나그네를 절대로 멸시해서는 안 된다. 외국인을 자기 나라 사람처럼 대해야 한다’는 등의 윤리를 도출해낸다. 

 

  그렇다면 추방당한 자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어디에 살든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게 중요하기에. 이것은  훼손된 이스라엘의 민족적 통일성을 복원시킬 수 있는 충분하고도 남는 이유였다.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방당한 상황에서도 하느님이 다시 돌아와 머물 수 있는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었다.”(307쪽) 위대한 성취다. 

 

 

새로운 합리주의가 꿈틀거리다


  기원전 6세기 초에 이르자 그리스의 많은 폴리스가 무너졌다. 귀족과 중무장 보병으로서 무장한 농민들과의 갈등은 깊어져만 갔다. 이 때 ‘솔론’이라는 집정관이 등장하여 그들의 대립을 중재했다. 솔론은 사람들이 사회의 질서(에우노미아)를 유지하려면 어떤 원칙이 필요한지를 인식하기를 원했다. 무질서는 천벌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의 결과라는 것을 말이다. 이것을 알게 되면 해법이 나오지 않겠냐는 것이 솔론의 주장이다. 원인과 결과를 따져가는 그들의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은 그리스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솔론의 에우노미아 원리는 그리스의 정치 사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초기 그리스 과학과 철학을 형성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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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무리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하더라도 사람들은 때때로 비합리적인 것에 자신을 맡기고 싶어 했다. 솔론의 정치가 물러가고 페이시트라토스라는 참주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는 데메테르 비밀 의식이나 디오니소스 비밀 의식이 성행했다.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평소의 자신과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하곤 했다. 이처럼 종교적인 면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신을 숭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기운은 내면을 파고드는 쪽으로 흐르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합리주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322쪽)

 

  이 시기에 우리가 한번 쯤 들어본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바로 밀레토스학파로 불리는 탈레스, 아낙시메네스, 아낙시만드로스가 그들이다. 이들의 주장은 환상처럼 보이지만 로고스를 끝가지 밀고 나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사실 ‘우주의 기본 질료는 규정할 수 없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은 “신학자들이 ‘신들 너머의 신’이라고 부른 것이 될 잠재력이 있었다.”(324쪽)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창조 신화처럼 치유에 이용되거나 또는 근본적인 영적 통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밀레토스 학파는 추론 자체를 위해 추론을 했다. 미래의 서구 합리주의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324쪽)


 

 상키아, 인간 본성에 대해 파고들다


  이 시기에 인도에서는 ‘상키아’라는 새로운 철학이 나타났다. 상키아 철학의 핵심은 푸루샤였다. 하지만 그것은 《리그베다》의 푸루샤라든지 《우파니샤드》의 아트만과는 달랐다. 초월적인 것이 아니었다. 자기의 진정한 본성이 바로 푸루샤인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영원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상키아의 주장이다. 그럼 왜 그것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푸루샤가 자연이라는 프라크르티와 엉켜있기 때문이다. 상키아는 이것을 하나하나 분석한다. 즉 인간의 본성은 사트바(지혜), 라자스 (열정), 타마스(타성)들이 혼재되어있으며 여기서 푸루샤에 가장 가까운 사트바를 분리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라자스, 타마스를 자신의 진짜 자아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임을 상키아는 지적한다. 그것들은 거짓 자아, 즉 에고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를 거기에 가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지가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상키아는 인도 영성에 두 가지 중요한 기여를 했다.”(332쪽) 첫 번째는 존재 자체가 이미 불완전하다는 것, 다시 말해 삶이 두카(괴로움 ‘고苦’)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시켜 주었다. 두 번째는 요가를 고안한 것이다. 요가는 자연과 얽혀 있는 푸루샤를 분리해내는 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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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요가에는 단계가 있다. 바로 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덕적 훈련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요가 수행자는 살생,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섹스와 도취되게 하는 물질을 삼가야 했고 청결을 유지해야 했다. 감정에 휘둘려서도 안 되며 침착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했다. 이런 것이 완전히 체득되면 정신과 감각을 끊는 신체적 훈련으로 들어간다. 앉기와 호흡이 바로 그것이다. 신체적 훈련을 끝내면 잡념을 하나씩 밀쳐내면서 지성으로서만 대상을 바라보는 정신적 훈련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와 나의 것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게 되어 푸루샤를 해방시킬 수 있었다. 결국 “요가는 인간이 되는 다른 방식에 입문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근본적인 정신적 변화를 의미했다.”(336쪽)

 

  이처럼 상키아는 인간 본성을 파고들면서 그것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에 나섰다. 삶이 두카임을 정확히 인식하면서 나름의 출구를 찾아나가고 있었다. 

 

 

제의에 대한 경멸이 확산되다


  중국은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앞서도 보았지만 시작은 초나라가 동맹을 깨면서였다. 이제 어느 누구도 제의화된 전쟁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영토를 넓힐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적을 죽여도 상관하지 않았다. 게다가 맹손, 숙손, 계손의 세 집안이 노나라를 주물렀다. 제후는 꼭두각시로 전락해 버렸다. 사람들은 제의를 경멸했다. 태풍과 산불로 황폐화 되었을 때도 하늘에 특별희생제를 드리자는 제의 전문가들의 제안은 거절되었다. 예가 흔들리고 도가 무너지고 있었다. 

 

  이 때 노나라 제의에 관심이 있는 한 청년이 등장했다. 제의의 깊은 의미를 이해했던 그는 특히 주공에게 관심을 보였다. 제의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은 사람들을 천도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음을 확신했던 청년, 그가 바로 공자였다. “중국의 축의 시대가 바야흐로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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