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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 전작 스케치 | 축의 시대-⑩ 축의 시대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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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이트 작성일18-06-21 01:41 조회1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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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 『축의 시대』-


 

 

 축의 시대의 귀환 

-기원전 2세기~-

 

 

김지숙


 

낮에는 유가, 밤에는 도가


  드디어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중국의 통일을 진나라가 이루어냈다. 그렇다면 중국의 축의 시대는 끝났을까. 중원의 다툼이 사라졌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안정을 이룬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물리적 통일을 이룸과 함께 정신적 통일을 위한 사상이 필요했다. 진나라 이후의 모든 나라에서 그랬다. 

 

  진시황은 음양사상가에게 의존했다. 음양의 논리가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해주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는 어떤 사상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건의했다. 모든 책을 불사르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이것이 그 유명한 ‘분서갱유’였다. “세상에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정부, 하나의 역사, 하나의 이데올로기밖에 없었다.”(627쪽) 진시황은 불로불사에 혈안이 되었고 백성에게는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가혹했다. 야만적이고 가혹한 정책으로는 절대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가 없다. 결국 반란으로 진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고조는 도가와 법가를 결합한 황로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도 구멍이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무정부 상태를 불러올 수가 있으니 말이다. 한무제는 동중서의 건의에 따라 유가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른 학파도 허용했다. 이런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중국인들은 각각의 사상에는 장단점이 있기에 어떤 학파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모든 것을 포괄해서 바라보는 것이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하여 “중국에서는 한 사람이 낮에는 유가에 속하고 밤에는 도가에 속할 수 있다고 말하고 한다.”(632쪽) 이런 태도는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보디사트바, 자비의 새로운 모델


  마우리아 제국이 무너진 후 브라만 신앙에도 변화가 있었다. 혼자서도 제의를 드릴 수가 있게 된 것이었다. 단, 제의의 의미를 제대로 숙지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우유를 불에 붓는 단순한 행동은 ‘자기 희생’의 상징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일생 생활에서 저지르는 불가피한 폭력을 배상했다. 축의 시대의 아힘사라는 이상은 이제 인도의 종교 의식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634쪽)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바크티(신에 대한 헌신)의 인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신을 모방함으로써 자기 안의 이기심을 버릴 수가 있기에 그렇다. 신을 섬김으로써 신처럼 자비롭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었다. 신은 인간의 형상, 즉 ‘아바타라’로 내려와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원해주는 구세주였다. 해서 사람들은 신상을 만들어 숭배했다. 사실 바크라에서도 신상을 중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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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영향 때문인지 불교도들도 부처의 상을 만들며 숭배했다. 하지만 이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도그마를 만들지 말라는 부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행위였다. 사실 부처는 저 멀리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부처가 깨닫고 나서 장터로 갔다는 점에 주목했다. 부처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가 깨달은 것을 널리 알리려 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이 바로 보디사트바라, 즉 보살의 행위다. 보살은 깨달음을 얻기 직전에 있는, 다시 말해 부처가 되기 직전의 단계에까지 이른 사람이다. 그는 피안의 세계로 걸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사람들의 고통을 구원하기 위해 윤회의 세계로 돌아왔던 것이다. 중생을 구제하는 “보디사트바는 자비의 새로운 모델이었으며, 축의 시대의 오래된 이상을 새로운 형식으로 번역한 존재였다.”(640쪽)

 

 

종교는 실천이자 행동이다


  앞서도 보았지만 이스라엘은 200년 정도 축의 시대와 단절되어 있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가장 진보적인 유대인들이었던 바리사이파들에 의해 축의 시대가 다시 개화했다. 당시 로마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것을 보며 상심에 잠긴 유대인들에게 바리사이파들은 성전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신은 일상생활의 소소함에서도 만날 수 있기에 그렇다. 또한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죄를 씻을 수 있는데 굳이 동물 희생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랍비 유대교에서 꽃을 피웠다. “랍비 아키바 벤 요셉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이 ‘토라의 가장 위대한 원리’라고 가르쳤다.”(644쪽)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 종교의 출발이자 곧 신을 섬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공부란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새로운 통찰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사실 텍스트에 드러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자기를 버리는 행위다. “따라서 ‘정통적’신앙이란 없었다.”(645쪽) 성경은 언제나 새롭게 읽을 수가 있으며,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적용해 볼 수 있는 열린 텍스트가 되었다. 그렇기에 공부는 실천이었다. 황금률을 일상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텍스트에서 아무리 통찰을 얻었다하더라도 그것은 말짱 도루묵이었다. 한마디로 종교는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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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또 다른 축의 시대 개화는 기독교의 탄생이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삶과 죽음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었지만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특히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를테면 매춘부, 문둥병자. 간질병자, 죄인들과 사귀었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사람들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외칠 때 똑같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밀고, 속옷을 가져가겠다면 겉옷까지 내주라는 식으로 말이다. 예수는 철저하게 증오와 복수를 금지했다. 그는 자비로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보디사트바와 다르지 않았다. “기독교도는 예수를 사랑 때문에 인류 구원을 위하여 고통스러운 ‘낮춤’을 시도한 하느님의 아바타라로 보게 되었다.”(649쪽) 사도 바울은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예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는 믿음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아라비아에서도 축의 시대가 개화했는데 바로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에 의해서였다. 아라비아 반도는 상인들의 교역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부를 향한 대질주 속에서 공동체가 씨족의 약한 구성원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던 오랜 부족적 전통은 잊어버렸다.”(653쪽) 무함마드는 자신이 거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부를 공정하게 나누어줄 것을 설파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종교로 개종하지 않은 사람들을 존중해주었고, 기도를 하면서 엎드릴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자기를 내어주는, 말하자면 잘난 척하는 자기의 에고를 내려놓은 행위였다. 이슬람교의 경전 《쿠란》은 방어적인 전쟁 외에는 어떤 전쟁도 허용하지 않았다. 민간인을 죽이는 것도, 나무를 베고 건물을 태우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관대하게 행동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주류 메카인들과 전쟁을 치르며 유리한 고지에 올랐는데도 무함메드는 《쿠란》의 가르침대로 상대의 조건을 다 들어주었다. 하느님은 폭력을 원하지 않았다. 무함메드를 비롯한 이슬람교도들은 “하느님에게 완전히 내어주는 행동으로 이교도 메카인과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우리가 축의 시대의 종교라고 부르게 되는 것과 연결되었다.”(659쪽)


 

축의 시대의 통찰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을 종합해보면, 축의 시대는 결코 평화의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축의 시대는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는 고난의 시기였다. 제도나 시스템은 이런 상황을 끝내지 못했다.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말이다. 일찍이 현자들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 몰두했다. 왜냐하면 마음을 바꿀 수 있을 때는 바로 인간성을 고양시킬 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니르바나, 브라만, 아트만, 도, 하느님 등을 느낄 때가 바로 그 때였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정의내리고 설명할 수 없지만,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존재의 고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이는 황금률을 실천할 때 가능했다. 

 

  황금률의 실천은 ‘자기 버리기’, 즉 ‘케노시스’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들의 슬픔을 공감할 때 비로소 폭력을 멈출 수가 있었다. 하여 아모스, 호세아,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에고를 부수려고 했고, 그리스에서는 비극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무지를 깨뜨리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중국에서는 전례 개혁을 통해 양보의 제의를 만들어 전국시대를 극복해나갈 수 있었다. 부처는 무아를 강조하며 자비를 실천할 것을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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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지금의 시대 역시 축의 시대가 진행 중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아에서는 인종 학살이 일어나고 있고, 핵을 놓고 이란과 미국이 으르렁 거리고 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입시 경쟁, 취직 경쟁, 무역 전쟁, 이념 전쟁 등등 포탄만 날아오지 않을 뿐 우리는 매일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렇담 그 어느 때보다도 축의 시대의 통찰이 필요한 때기 아닐까. “우리는 축의 시대 현자들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상황에서 자비의 윤리를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늘 일깨워야 한다.”(6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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