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말을 하는 자, 마호메트 > 글쓰기의 달인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양력 2018/12/10 월요일
음력 2018/11/4

절기

글쓰기의 달인

카렌 암스트롱 전작 스케치 | 하늘의 말을 하는 자, 마호메트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화이트 작성일18-11-22 01:48 조회86회 댓글0건

본문


​카스(9)-『마호메트 평전』 


하늘의 말을 하는 자, 마호메트


​김지숙 

 

 

코르도바의 순교


  850년, 스페인 코르도바의 시장에서 페르펙투스라는 한 기독교의 수도사가 “마호메트는 사기꾼에다 성도착자, 적그리스도”라고 독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것은 예수와 마호메트 중 누가 더 위대한 예언자냐고 묻는 아랍인들을 향한 그의 답이었다. 이슬람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스페인에서 마호메트를 비난하는 일은 사형에 해당될 만큼 중죄였다. 하지만 이슬람교의 재판관인 카디는 이슬람교도들이 먼저 페르펙투스를 부당하게 자극했으므로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며칠 후, 발작과 함께 그는 다시 마호메트를 경멸하는 발언을 했고,  어쩔 수 없이 사형이 결정되었다. “기독교도들은 즉시 그의 사지를 절단하고 그를 ‘순교자로 숭배하기 시작했다.”(카렌 암스트롱, 『마호메트 평전』, 미다스북스, 1992, 46쪽)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삭이라는 수도사도 페르펙투스를 그대로 따라하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그도 사형에 처해졌다. 그 해에만 50명의 수도사가 그런 식으로 죽어갔다.

 

4fb6f65e2c2b069d85832ef4ff85beaa_1542818 

 코르도바의 순교

 

일명 ‘코르도바의 순교’라고 불리는 이 사건을 카렌은 서구 기독교가 이슬람을 적대적이고 혐오적인 관계로 설정하기 위한 꼬투리로 삼았음을 지적한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이슬람교도나 기독교도들, 유대교들의 관계가 원만했고, 종교의 자유는 완전히 보장되었다는 것이 카레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순교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 오히려 스페인에 살고 있는 기독교도들은 이슬람 제국의 앞선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며 그것들을 배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아랍의 시와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는다. 또 아랍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을 연구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들을 반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확하고 품위 있는 아랍어를 익히기 위해서였다. 성서에 붙은 라틴어 주석을 읽거나, 아니면 복음서, 선지자 혹은 사도들을 연구하는 평신도는 어디 있는가? 아아, 슬프도다! 재능 있는 젊은 기독교도들은 하나같이 열정적으로 아랍어 책들을 읽고 연구하고 있으니.(46쪽 재인용)

 

  그렇지 않아도 유럽은 이슬람 제국에 비해 형편없이 문화적 수준이 낮아 그것을 끌어올려도 모자랄 판. 기독교 르네상스의 부활을 꿈꾸며 로마시대로 돌아가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치가 않았다. 재능 있고 젊은 기독교도들은 아랍어를 익히는데 몰두하고 있으니 마치 뿌리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부상하는 이슬람교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그것은 “마호메트의 독자성을 부정하는 것뿐이었다. 즉 이슬람교는 기독교에서 분리된 것이며, 이단 중에서 이단이라는 식으로 말이다.”(58쪽) 따라서 마호메트를 유럽인들로서는 절대 닮아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각인시켜야 했다. 사기꾼이라든지, 성생활의 문란했다든지,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든지 등등 끊임없이 마호메트의 이미지를 왜곡하는데 안간힘을 썼다. 요컨대 마호메트는 적그리스도였다. 이슬람에 대한 서구 기독교의 열등감은 이런 식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결국 십자군 전쟁에서 그것이 절정을 이루었고, 그 결과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엄청난 학살이 자행되었다고 카렌은 설명한다. 

 

 

오직 알라만을!


  마호메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라비아 반도’라는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고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부족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개인의 이익 같은 것은 없었다. 집단의 이익이 우선시 되었다. 부족의 일원이나 동맹 부족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다. 만약 다른 부족이 자신의 부족을 해치면 바로 복수를 해야 했다.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급습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었다. “피의 싸움과 피의 복수뿐이었”(135쪽)지만 이 모든 것들은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나 권력이 한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랍 유목민들을 ‘무루와’라는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용기, 절제, 인내, 관대함, 호의, 그리고 약자를 보호하는 정신을 뜻하는 것으로 종교적 임무를 대신했다.  

 

  그런데 교역이 발달하면서 도시가 출현하게 되자 옛 가치들이 서서히 힘을 잃게 되었다.  과부나 고아, 노인, 가난한 자 등 약자를 돌보던 미덕은 보이지 않았다. 돈이 종교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이 탐욕과 개인주의를 부추겼다. 특히 메카에 정착하며 활발한 상업 활동을 했던 쿠라이시족이 그랬다. 아랍인들은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누구보다도 마호메트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자신의 부족을 하나로 묶어줄 새로운 종교적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산속 동굴에서 영적 생활을 하던 마호메트에게 신의 계시가 내려졌다. “복창하라!”는 천사의 명령을 듣고 따라할 수 없었지만 천사가 꼭 껴안자 마호메트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성서의 구절들이 흘러나왔다.”(103쪽) 이것이 바로 아랍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하느님의 말씀, 코란이었다. 

 

4fb6f65e2c2b069d85832ef4ff85beaa_1542818
“복창하라!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읽으라

그분은 한 방울의 정액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노라

읽으라 주님은 가장 은혜로운 분으로 연필을 쓰는 것을 가르쳐주셨으며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도 가르쳐주셨노라(191쪽)

  마호메트는 쿠라이시족에게 알라, 즉 만물의 창조자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생각할 것을 주문했다. 하나님은 만물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균형’을 만든 만물의 존재자라는 것이다. 이 균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쿠라이시족은 책임과 판단 기준을 세워야 하며, 우주의 법칙인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마호메트가 계시에서 얻은 결론이었다. 따라서 축적된 부를 우주 전체로 되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결국 믿는 자란 하나님의 실체를 이해하고 기도와 실천을 통해 하느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의 다름이 아니었다. 동정심과 관대함으로 무장하고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 “사물의 참된 본질을 외면하는 격이 될 것이다.”(223쪽) 사실 코란은 상징이었다. 이것을 해석해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연’의 징표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는 자연과학과 수학을 발전하게 했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상상력과 이성은 자연의 질서를 읽어내고 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 인식되었기에 이성과 종교사이의 갈등은 없었다.

 

  쿠라이시족에게 마호메트의 계시가 전해졌을 때 다수의 아랍인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부를 독점하고 있던 지배층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마호메트의 계시에 적개심이 들었다. 게다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며 조아리는 행위는 과거의 전통에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마호메트의 메시지를 단호히 거부하며 이교도의 신앙을 고수했다. 전통 신앙들은 부를 축적하거나 말거나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다. 이슬람교와 이교도의 대립이 시작되고 있었다. 메카에서 마호메트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고 불온한 자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마호메트는 메카에서 메디나로 헤지라를 단행한다. 이것은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다. ‘혈연을 떠나 다른 부족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이교 신들을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신들이고 당신들은 나요. 나는 당신들에게 싸움을 거는 자들과 전쟁을 할 것이며 당신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자들과는 평화롭게 지낼 것이오.”(353쪽)

  마호메트가 조력자들과 이주자들에게 한 말이다. ‘당신이 곧 나라’는 발언은 혈연과 지연에 얽매이며 나를 내세우던 관념에서 나와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는 우주론적 관점으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 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형제이자 평등한 관계’이니 마호메트의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메디나는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이교도들이 공존하는 새로운 공동체, 혈연을 넘어 “공평하고 너그러운 사회”(394쪽)인 움마 공동체로 나아갈 참이었다. 

 

 

전쟁과 평화


  메디나로 헤지라를 단행한 이후, 마호메트의 삶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자기를 보호해 주겠다던 유대 민족들의 배반 때문이었다. 전쟁을 치러야 했다. 코란에서는 불가피하게 전쟁을 치르는 것에 대해서는 허용한다. 고귀한 가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 지하드라는 성전(聖戰)은 그래서 움마를 지키기 위한 “도덕적, 정신적, 그리고 지적인 노력”(394쪽)을 의미했다. 

 

  이제 마호메트는 아랍 전체의 평화를 생각해야 했다. 메카를 움마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부를 순환시키기 위해 메카의 대상들을 공격하는 가주를 단행했다. 바드르 전투에서 대대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기쁨에 들떠있는 이슬람교도들이 아랍전통에 따라 포로를 죽이려 하자 마호메트가 만류하며 말했다. “너희가 먹듯이 그들을 먹여야 하며, 너희가 입듯이 그들에게 입을 것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힘든 일을 시켜야 한다면, 함께 도와 그 일을 해야 한다”(420쪽)고. 이를 지켜보던 포로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코란은 전쟁 포로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가르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고아나 과부가 된 사람들을 보호할 것을 명령하였다. 

 

4fb6f65e2c2b069d85832ef4ff85beaa_1542818
 정략 결혼

  

  사실 마호메트가 많은 부인을 둔 것은 이런 상황과 맞물려 있을 뿐만 아니라 정략결혼을 통해 정치적 힘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던 것뿐이었다. 이것을 모르고 마호메트를 호색한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코란은 남자들이 부인 취할 때 네 명으로 제한을 두었고 부인들을 공평무사하게 대하라고, 그럴 수 없다면 부인을 하나만 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마호메트는 이혼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해방을 적극 도왔다. 집에서 허드렛일을 돕고, 부인의 말대답을 들어주었다. 히잡과 베일도 여성 차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호메트 부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두른 것이었다. 물론 이들만 특별하게 대한다는 것은 평등주의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처음에 베일을 썼던 많은 이슬람 여자들은, 베일을 남성의 압제를 나타내는 징표가 아닌, 권위와 영향력의 상징으로 여겼다.”(460쪽)

 

  바드르 전투이후에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우후드 전투의 패배를 경험하기도 했다. 하나님이 마호메트를 버렸다는 징표라고 생각한 이슬람교도들은 침울해졌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사분란하게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버린 비겁자들이 있었다는 것 말이다. 오히려 우후드 전투는 진정한 이슬람교도들을 확실하게 구분해 주었다. 

 

  사실 마호메트는 성전을 치르는 동안 만약 그들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면 영토 밖으로 내쫒기만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시탐탐 마호메트를 노리고 있는 쿠라이시족에게 협조를 아끼지 않는 그들을 살려두는 것은 분쟁의 씨앗을 남겨두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대대적인 학살이 단행되었다. 드디어 막강한 세 유대부족을 완전히 평정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서구 사회에서는 마호메트가 유대인을 증오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이슬람내 유대인들은 결코 고통을 당한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호메트는 기도의 중심과 방향을 예루살렘이 아닌 메카의 카바로 향하게 하면서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벗어나 본래의 조상의 믿음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이슬람교의 독립과 함께 마호메트는 아라비아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마호메트는 메카를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구하고 싶었다. 폭력은 폭력을 불러올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그들에게 명령하여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코는 코로 귀는 귀로 이는 이로 상처는 상처로 대하라 했으니 그러나 자선으로 그 보복을 하지 아니함은 속죄됨이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결하지 아니한 자 바로 죄인들이라(528쪽)

  복수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자비와 사랑’말고는 없다. 목숨을 빼앗지 않고 최소한의 피로 해결하고 싶었다. 해서 마호메트는 이슬람교도들의 죽음으로 몰아갔던 지휘관들을 용서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메카에 대한 경제 봉쇄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마호메트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승리를 얻고 싶었다. “지하드는 그의 모든 인내와 지혜를 요하는 평화의 노력이 되”(520쪽)어야 했다. 하여 어떤 무장도 하지 않고 메카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쿠라이시족을 전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전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순례였다. 쿠라이시족도 알고 있었다. 전쟁이 어떤 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을, 무력으로 입성한 마호메트가 그들의 보호자를 자청하는 순간 그것이 쿠라이시족의 종말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쿠라이시족의 예상대로 마호메트는 무력으로 메카를 접수 할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이교신의 우상을 파괴하며 “이교도적 자만심과 자기 만족을 버릴 것을 사람들에게 호소했다.”(561쪽) 이교 신앙의 몰락이자 마호메트의 승리였다. 

 

4fb6f65e2c2b069d85832ef4ff85beaa_1542818
 
무혈입성 

 

  23년간 마호메트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즉 그는 하늘의 말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쿠라이시족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무혈입성을 통해 비로소 마호메트가 선지자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사실 마호메트는 신의 계시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 따라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인간의 지성과 신성한 영감”(578쪽)의 본보기였고 결국 아라비아 반도의 종교적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mail : mvqblo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