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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 전작 스케치 | 오직 모를 뿐! 오직 실천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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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이트 작성일19-01-03 17:08 조회1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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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11) -『신을 위한 변론』

 


오직 모를 뿐! 오직 실천할 뿐!

 

​김지숙

  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지고하고 선한 존재? 전지전능한 존재? 만물의 창조자? 신앙인이라면 아니, 대부분은 이런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상황이 낯설지가 않다.

우리는 내 나라에 축복을 내려달라고, 우리의 여왕을 지켜달라고,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소풍가는 날 좋은 날씨를 달라고 신에게 수시로 부탁한다. 우리는 신이 혹시 깜박하기라도 할까봐,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으며 우리는 비천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신에게 거듭 주지시킨다. 정치인들은 자기네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신을 인용하고 교사들을 교실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신을 이용하며 테러리스트들은 신의 이름으로 잔혹한 일들을 저지른다. 선거나 전쟁에서는 상대편 역시 신이 아끼고 돌보는 신의 자녀들일 텐데도 신에게 ‘우리’편을 들어달라고 간청한다.(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웅진 지식하우스, 2009, 10~11쪽)

  그런데 신이 이런 요구를 다 들어준다면 과연 그 신을 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하기는커녕 편협해도 너무 편협하다. 게다가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저런 말도 되지 않는 얘기가 먹혀든다면 납득이 되겠는가. 대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카렌은 사람들이 자기 방식대로 신을 길들인 결과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과연 신이란 무엇이냐고.

호모 렐리기우스, 그리고 침묵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단 카렌은 신을 인정하고 들어간다. 그 이유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인간은 ‘언제나 신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호모 렐리기우스(종교적 인간)라는 것인데 특히 신화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고 카렌은 설명한다. 수렵과 사냥을 하던 시대에는 동물을 숭배하고 농업이 시작된 후에는 대지를 숭배했다. 호모사피엔스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간의 삶이 유지된다는 것,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동물과 땅을 기리기 위해 의례와 제의를 발전시켰다. 여성을 숭배하고 달을 숭배한 것도 이런 차원이었다. 달의 이지러지고 채워지는 모습과 끊임없이 생명을 만들어내는 여성의 모습은 너무나 유사했다. 그것들은 고갈되지 않는 힘,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 에너지"(47쪽)였다. 다시 말해, 만물을 움직이게 하고, 번성하게 하고, 존재하게 하는 원리로서 여기에는 ‘고귀함과 거룩함’만이 있었다. 신성이란 이런 것이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것도 아니었고, 전지전능한 것도 아니었고, 지고한 것도 아니었다.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초월성’ 그 자체였다.


 야훼도 원래 그런 존재였다. 모세와 야훼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했을 때 야훼는 자기의 이름을 ‘나는 나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내가 누군지 몰라도 된다, 나를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말한다거나 길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야훼’라는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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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컨대, 신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궁극적 실재’이자 따라야 할 모범이었다.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행위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신이었다. 토라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라. ‘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는 자비와 공감이 토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랍비들은 자비와 공감을 실천할 때 신의 현존을 느꼈다. 예수를 왜 신으로 추앙했는가. 기적을 행해서? 병든 자를 치료해서? 아니다. 당시 기적은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자기를 기꺼이 버리는 케노시스적인 삶에서 신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예수는 자신의 사명을 함께 하려는 제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가진 것을 모두 주고, 배고픈 자들을 먹여주고, 혈연에 구속되기를 거부하고, 자만심과 특권의식을 버리고, 하늘을 나는 새나 들판에 핀 백합처럼 살면서 아버지 하느님을 믿기를 바랬다.”(156쪽) 신앙에는 믿음이 먼저가 아니었다. 행위와 실천이 우선되어야 했다. 

 

무슬림들도 처음부터 신을 언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믿음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삶의 방식이었다. 과부, 고아, 노인,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며 움마라는 이상적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하느님을 따르는 삶이었다. 이기심을 버리고 사회와 자신을 개선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 즉 ‘지하드’를 강조했다. 지하드란 성전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꾸는 처절한 분투였다. 


  이성의 시대가 시작될 때도 다르지 않았다. 합리주의의 대표 주자였던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실천이었다. 즉, “관념적인 사색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초월성에 대한 탐구와 헌신적인 실제 생활 방식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108쪽) 그리스인들은 삶의 이면에 숨겨진 어둠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엘레우시스라는 신비 종교 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입문자들은 경이로움을 체험하면서 신의 지복을 느꼈고, 결국 변화된 자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케노시스’라고 불렀다. 그리스 비극은 또 하나의 의례였다. 비극을 관람하면서 사람들은 자기를 비우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공감의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이것의 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앎이 열리는 희열 그 자체였다. 자기를 낮출 수 있었고 존재의 충만함은 덤으로 얻어졌다. 형언할 수 없지만 실천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신성과 영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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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전통은 계속되었다. 플라톤은 우주를 관찰하며 신을 관조했다. 즉, 우주는 합리적 정신과 영혼이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신의 활동이었다. 따라서 우주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며 이데아를 찾는 노력은 일종의 영적 수련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을 단련하면서 신성을 느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자들도 영적 수련으로서 과학을 탐구했다. 이론이 아닌 실천에 방점을 찍었다는 얘기다. 해서 내적 평정심에 도달하려고 한다거나 분별 있는 시각을 가지려 했다. 그럴 때 존재가 고양된다는 것을 느꼈다. 이처럼 “그리스 철학자도 인간의 내면에 신성의 불꽃을 품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181쪽)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은 우주와 신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신에서 우주가 유출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무(無)에서 우주가 창조 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우주가 신에게서 갈라져 나가버렸다. 신과 인간의 연결고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신성이 없다는 것인가. 중재자가 필요했다. 바로 예수다. 신의 말씀이 육화된 로고스적 존재인 예수가 인간과 신을 연결한다고 말이다. 예수를 통해 신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인간의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이해 불가능하지만 육화된 말씀을 실천할 때 신적 삶에 동참할 수 있었기에. 하지만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고 해야 할지 그냥 신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렸다. 예수를 높고 치열한 공방이 시작되었다. 결국, 삼위일체로서 결론을 내렸다. 사실 삼위일체가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이것은 신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신을 단순한 인격으로 생각해서는 안"(197쪽)된다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신을 증명하려는 욕구는 더욱 커졌다. 특히 이슬람의 철학자인 팔사파에게 있어서는 당면 과제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성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일 때 신과 만날 수 있었다. 지독한 회의 속에서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아무것도 모름,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지성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성은 ‘나’가 멈추고 ‘신’이 시작되는 것이었다."(253쪽) 지독한 문자주의자였던 프란체스코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삶을 재현할 수 있었던 것도 이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결과 자기를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대적 확실성에 대한 열망, 그러나 


  이렇듯, 중세까지만 해도 ‘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게 일반적 관념이었다. 그렇다면 신이 완벽하다거나 전지전능하다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근대’가 남긴 산물이었다. 예전에는 공동체적 영성이 대부분이었다. 렉티오 디비나를 떠올려보라. 함께 예배를 보면서 함께 낭독하는 것은 중세에는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자 ‘개인’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그 결과 자아가 커지는 일이 발생했다. 자아에 집착하다 자아의 수렁에 빠지는 아이러니함! 그리고 ‘확실성과 명료함’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었다.  또한  인쇄술의 발전은 이미지 대신 말로써 사고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난해한 교리들을 명확한 언어로 정리하면서 모호함이 사라졌다. 성서를 해석할 때도 유연함 대신 확고함이 앞섰다.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 무력한 개인들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완벽하고도 전지전능한 신 말고는 없었다. “완전무결한 신의 주권"(276쪽)이라는 신 관념이 탄생한 것이었다. 


  세익스피어나 몽테뉴는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았다. 인간이 자기도 모르는 판에 누군가를 확실하게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성은 서툴러서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름’은 자기비하로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겸손으로 이끌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몽테뉴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침묵의 영성은 장황한 논쟁으로 바뀌었다.”(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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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근대에 이르자 신을 증명하는 일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망원경을 통해서 본 우주의 질서정연함, 현미경으로 관찰된 세포들의 유기적 생명 활동, 특히 절대적 시공간을 확인해 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전능하신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우주의 질서는 정말 정연할까. 갑자기 휘몰아쳐 오는 폭우나 태풍, 도무지 인과를 알 수 없는 신의 변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선하시고 전능하신 신과 인간의 고통이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실성의 원리들은 뉴턴의 이론을 뒤집어 버렸다. ‘신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말 신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의 세상을 창조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과학만이 해방이라는 신념과 신을 증명할 수 없다는 좌절감과 혼란은 무신론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자연을 증명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낭만주의 시인들이 지적한 대로 “자연은 실험하고 처리하고 지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계시의 원천으로서 경외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대상이었다."(357쪽) 이런 점에서 헉슬리도 신의 비존재를 단순한 물리적 증거로서만 판단하는 것은 너무 독단적이라고 말하며 불가지론을 주장했다. 절대적 확실성과 객관성에 더 이상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입증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다. 대체 이성을 통해 ‘모름’으로 이끌었던 소크라테스의 합리성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보다시피, “현대 우주론의 경이로움은 물리학자들이 그 모든 의문에 답할 수 없다는 사실에”(470쪽) 있다. 다시 말해, 신은 우주의 구성원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해서  이제 우리는 '모름의 신학'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


그렇다면 카푸토는 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도 데리다처럼 신을 욕망 너머의 욕맘으로 묘사한다. 욕망은 그 본질상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가시에 위치하며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과 없는 모든 것,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모든 것을 다룬다. ‘욕망이 존재하는가?’라고 물을 수 없듯이 ‘신이 존재하는가?’라고도 물을 수 없다. 차라리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내가 신을 사랑한다고 할 때 무엇을 사랑하는 것인가?’라고 자문하며 답을 찾지 못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점을 이해했다.(478쪽) 

앞서도 보았지만, 신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답할 수 없는, 욕망의 투영결과다. 말하자면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신을 발명하고 욕망했다. 그렇다면 신이 존재하는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 때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종교의 가르침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반드시 행동과 실천을 요구했다. 자기를 비우고 공감과 자비를 실천했던 공자, 예수, 부처, 마호메트는 인간성의 최고의 경지를 구현하며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렇다. 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직 모를 뿐! 오직 실천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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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위한 변론』을 마지막으로 ‘카스 전작 스케치’ 연재를 마친다. 신과 종교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며 고군분투하는 시간이었다. 이제나마  영성과 지성이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 내게 공부의 비전을 제시해 준 카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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