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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 만국의 공무원들이여 초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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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7-11-22 07:00 조회4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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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공무원들이여 초원으로!

 

오 선 민​

1. 얼굴 없는 신

   

카프카는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요? 한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의 세계, 그 제도의 작동 원리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작품은 『성』입니다. ‘주인공 K, 백작님이 계시는 성 아래 마을을 돌아다니다!’ 이 작품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지요. 작품을 통해 정리해볼 수 있는 세상의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세계에는 통치자(백작)가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K가 백작님을 절대로 만날 수 없다는 점이죠. 어디 K뿐인가요? ‘베스트 베스트’라고 하는 백작님의 얼굴을 본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원리는 이렇게 보완됩니다. 통치자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지배의 중심은 텅 비어 있다! 그래서 백작님의 수족들도 얼굴이 없습니다. K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성의 관리 ‘클람’의 얼굴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지요. 

그러나 물론 마을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알고 있고, 몇몇은 그의 모습을 보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는 다들 들었지요. 눈으로 보고 소문으로 듣고 여러 가지 잘못된 저의가 더해져 클람의 상이 만들어졌는데, 대략 맞는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대략 맞는다고 할 수 있을 뿐이지 그 밖에는 가변적인데, 그래도 클람의 실제 외모만큼은 아닐 거예요. 그는 마을을 올 때와 떠날 때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고 그래요. 맥주를 마시기 전과 후가 다르고, 깨어 있을 때와 잠을 잘 때가 다르며, 혼자 있을 때와 대화를 나눌 때가 다르다고 해요. 이런 점에서 볼 때 그가 저 위 성에 있을 때는 거의 완전히 딴판이라는 게 이해가 될 듯도 해요. 그리고 마을 안에서 떠도는 이야기들 사이에도 커다란 차이점이 있어요. 키, 태도, 몸짓, 수염이 서로 다르게 이야기되지만, 옷에 대해서만은 다행히도 보고가 일치해요. 그는 언제나 똑같은 옷, 즉 옷자락이 긴 검은 재킷을 입고 다녀요. 물론 이 모든 차이점이 무슨 요술 같은 것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잠시 동안만 클람을 볼 수 있게 된 구경꾼이 처한 순간적인 기분, 흥분의 정도, 희망과 절망의 무수한 등급에 따라 생긴다는 것을 쉬게 이해할 수 있어요.

─『성』
    

백작님이 없으니 마을은 무법천지인가요? 아닙니다. ‘베스트 베스트’ 백작님 없이도 잘 돌아가야 ‘마을’이죠. 왜냐하면 통치의 핵심은 ‘베스트 베스트’라는 이름의 존재가 아니라 백작이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K는 백작이라는 위치와 가깝거나 먼 존재들 사이를 돌아다닙니다. 성의 하급 관리, 하급 관리의 전령사, 관리들과 전령사들이 묵어가는 마을의 이장. K는 오라하고 가라하는 사방의 점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백작으로부터는 멀어지지만, 마을에는 점점 더 깊이 엮여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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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의 중심은 텅 비어 있다!  

이 점은 「법 앞에서」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시골 사람은 어떻게든 법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요. 하지만 그는 결국 세 번째 문지기 앞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제도는 몇 겹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은 문에서 문으로, 또다시 문으로 이어지는 짧은 생을 살아갈 뿐! 그 문이 허락을 해주면 살고, 안 해주면 죽지요. 문이 ‘있다’는 사실이 핵심이지, 그 문이 왜, 어떤 과정으로 생기게 됐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은 원래 그런 것이거든요. 

“그 애는 사무국으로 들어가지만, 그것은 전체 사무국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그다음에는 장애물들이 있고, 그 뒤에는 또 다른 사무국들이 있어요. 그 애가 계속 나아가지 못하게 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애가 자기 상관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그 애에게 심부름을 시켜 내보내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지요. 더구나 그곳에선 다들 늘 누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리고 그 애가 계속 나아간다 해도 공적인 일이 없이 침입자에 불과하다면 그 애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이 장애물을 특정한 경계선이라 생각해서도 안 돼요. 이에 대해 바르나바스도 나에게 자꾸 주의를 환기시켰어요. 장애물을 그 애가 들어가는 사무국에도 있으므로, 그 애가 통과하는 사무국에도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그 애가 아직 통과하지 않은 장애물과 다르지 않아요. 그러므로 애당초부터 이다음 장애물을 통과하면 그 애가 이미 지나온 곳과 다른 사무국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요.”

─『성』

   

그런데 『성』의 마을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에게 ‘문’이었습니다. 백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수많은 길을 차례로 막아서던 여관 주인과 전령사들! ‘일단 백작님의 전언을 기다려야해’, ‘이렇게 직접 전화를 하고, 자꾸 찾아와서 옛날 일을 들추어내면 안돼’, ‘우리 마을에서는 이렇게 한다구’ 그들은 웃지도 화내지도 않습니다. 뭔가를 두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딱 귀찮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원에 대한 집착이 있었죠. ‘우리는 처음부터이랬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떠올리는 대신에 ‘원래’를 붙들고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말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를 제도의 한 점으로 만들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원래야말로 신이로군요!    

2. 포세이돈의 우울

   

제도의 한 점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포세이돈」입니다. 카프카는 저 위대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조차 올림포스산 위의 제우스와 그 자신의 조수들, 작은 하천의 하급 관리들 사이에 끼인 공무원이라며 웃습니다.

포세이돈이 작업 탁자에 앉아서 셈을 하고 있었다. 모든 하천을 관할하는 당국이 그에게 계속해서 수많은 일거리를 주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기 대양의 심연에 앉아 쉬지 않고 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주피터에게 가는 여행만이 단조로움을 깨뜨리는 유일한 중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그가 진노해서 돌아오게 되는 여행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바다를 전혀 보지 못했다. 다만 올림포스 산으로 바삐 올라갈 때 슬쩍 지나칠 뿐, 정말 한 번도 바다를 두루 항해해보지 못했다.

「포세이돈」

   

바다의 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바로 책상 위에 있습니다. 무얼 하나요? 바로 서류 작업이죠. 그는 대양의 심연에 앉아 쉬지 않고 종이를 넘기고 있습니다. 온 세상의 하천은 지금도 끝없이 물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며, 지구는 돌고 있으니 흐름은 멈추지 않겠지요. 포세이돈! 그는 얼마나 신중한지! 만사를 제 눈으로 확인하고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조수를 둘 수가 없답니다. 포세이돈! 그는 또 얼마나 성실한지! 제우스를 알현하고 돌아오는 그 순간조차, 결제서류에 집중하느라 바다를 바다로 못 본답니다. 이 대양을 돌리는 것은 바로 꼼꼼하고도 매사 열심인 우리들의 공무원, 포세이돈 님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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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 산다는 것은 제도의 한 점으로 산다는 것 

카프카가 보기에 세상은 포세이돈들로 꽉 차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포세이돈은 위기입니다! “고통으로 까무러칠 지경이 되어 비명조차 못 지르고 어둠 속에서” 홀로 끙끙대며 앉아 있거든요. 단편 「일상의 혼란」에는 포세이돈들의 곤경이 그려져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사고가 A와 B라고 하는 두 사람이 끊임없이 서로의 자리를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발생합니다. 사업상 업무 때문에 만나서 계약을 채결해야 하는 A는 임무를 향한 성실함 때문에 ‘최대한 빨리’ 목적을 해결하기 위해, ‘빈틈없이’ 사건을 처리하려다가 결국 B를 보고도 B인 줄 모르고 일을 그르칩니다. 여기에서 A의 급한 성질은 정말 포세이돈을 닮았지요. 포세이돈도 일생의 꿈이라고는 종말이 와서 비로소 죽게 될 때, 딱 그 직전에 “재빨리” 바다 일주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하니까요.

일상적인 사건 하나: 그것을 견디어내는 일이 일상적인 혼란을 초래하다. A는 H 출신 B와 중요한 사업 하나를 매듭지어야 한다. 그는 사전 협의를 위해 H로 간다. 왕복하는 데 각각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고 집에 와서는 이렇게 대단히 빠른 것을 으스댄다. 다음날 그는 다시 H로 간다. 이번에는 최종적인 사업 체결을 위해서이다. 이 일이 몇 시간은 걸리리라고 예상하여 A는 새벽같이 떠난다. 그러나 모든 부수적인 정황들이, 적어도 A의 생각으로는, 전날과 조금도 다름없는 데도 이번에는 H로 가는 데 열 시간이 걸린다. 그가 파김치가 되어 저녁에 그곳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B는 A가 오지 않는 데 화가 나서 반시간 전에 A를 만나러 그 마을로 갔으니 실은 그들이 도중에서 만났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A에게 기다리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A는 사업 걱정으로 즉시 떠나 서둘러 집으로 간다. 이번에는 그는 시간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서도 곧바로 한순간에 그 길을 돌아온다. 집에 와서 그가 들은 이야기는 B는 A가 떠나자 곧바로 왔는데, B가 대문에서 A를 만나 사업을 상기시켰으나 A는 시간이 없노라고, 지금 서둘러 가야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일상의 혼란」

   

 A는 매사에 위치만 보려고 했기 때문에, 제 자리에 있지 않은 B의 맨얼굴을 식별할 수 없었어요. 「일상의 혼란」에서 그는 벌을 받습니다. 발바닥에 불나게 뛰어다니던 그의 뒤꿈치가 아예 타버리거든요. 얼굴 없이 제도의 한 점으로 열심히 산다는 것은 결국 자기 발목에 불을 지르는 일인 것입니다. 이마에 팔자를 그리면서 책상 앞에 앉아 원래의 자신을 고집할 때, 우리는 바다처럼 출렁거리는 파란 세상을 외면하는 제도의 한 점이 되어 버립니다. 자기 발목이 으깨어지는 줄도 모르는 채로 말이지요.        

3. 인디언이 된 공무원

   

도대체 왜 포세이돈은 저 먼 미래에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나요? 왜 인간은 제도의 한 위치로 사는 것에 만족하나요? 여기에 대한 카프카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  

가령 그에게 특정한 어느 바다 하나를 지정해줄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는 셈을 하는 일이 단지 아주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위대한 포세이돈은 물론 언제나 군림하는 자리만을 얻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에게 물 바깥에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면, 그는 벌써 그 생각만으로도 속이 메스꺼웠다. 그의 신적인 호흡은 불규칙해졌고, 그의 단단한 흉곽은 흔들거렸다.

「포세이돈」

   

‘태초부터 그는 바다의 신으로 정해져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유지되어야 하거늘!’ 아무도, 심지어 포세이돈 자신조차도 공직을 떠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계가 몰락할 때쯤에는 자신도 바다를 한 번 볼 거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실은 이 책상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이 밀려오지요. 포세이돈이라는 명함 없이 살아가려면, 그 불같은 성질을 죽여가며 먹을 것을 찾아다녀야 할 겁니다. 알아서 받아먹던 월급을 그리워하며 골목길 담벼락에서 쓰레기를 뒤져야겠지요. 달밤의 노숙이야 이미 예고되어 있습니다. 원래 없이 살기란 과거로부터도 이어져 있지 않고 미래로도 나아가지 않는 길을 걷는 일입니다. 낮이 그린 길을 밤이 지우지요. 마치 사막의 유목민처럼 그 어떤 제도에도 기대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저 고요하고 충만한 심연에 의탁하지 않고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으로 나가야 하니, 어찌 포세이돈이 책상을 떠나기가 두렵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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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길도 미래의 길도 없는 초원으로 가자!

   

그러나 카프카는 원래를 떠나는 것을 다음처럼 경쾌하게 그립니다. 인디언처럼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기! 그때 말 위에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짧은 전율뿐입니다. 배고픔이나 자존심이 아니지요. 말 모가지나 말대가리조차 섞여 들어가는 ‘원래 없는’ 들판에서는 지키고 가꾸어야 할 ‘나’도 더 이상 없을 테니까요. 만국의 공무원들이여, 인디언이 되어라! 원래를 신봉하는 이들이여, 초원으로 가자! 우리가 두려워한 것은 겨우 ‘자기’였구나! 이마 주름을 펴고 가뿐하게 책상에서 일어서는 포세이돈을 떠올리니, 어딘가에서 카프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인디언이 되었으면! 질주하는 말잔등에 잽싸게 올라타, 비스듬히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대지 위에서 거듭거듭 짧게 전율해 봤으면, 마침내는 박차를 내던질 때까지, 실은 박차가 없었으니까, 마침내는 고삐를 집어던질 때까지, 실은 고삐가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눈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풀이 깎인 광야뿐일 때까지, 이미 말 모가지도 말대가리도 없이.

「인디언이 되려는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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