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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의 꿈, 석두지몽 | 리뷰쓰기⑪ 미련 없이 '안녕'-(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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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나비 작성일18-10-02 09:36 조회2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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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끝

 

가모는 이렇게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서는 마치 감기가 든 것처럼 며칠을 앓더니 온 가족에 둘러싸여 세상을 뜬다. 자손들에게 한 마디씩 건네며 마지막 말도 멋지게 남겼다. 천수를 누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죽음일 것이다. 물론 이상적인 가모의 죽음은 그녀의 부귀와 영화의 삶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가모의 큰 아들 가사가 눈독을 들이던 가모의 시녀 원앙은 가모가 죽자 왠일인지 사람이 좀 변했다. 자손들이 가모가 남긴 장례비를 아끼느라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에 크게 불만을 품더니, 희봉을 찾아가서 제발 정성껏 치러달라는 둥, 상전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시녀 신분에 맞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이환은 그전에는 노마님으로부터 그렇게 귀여움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믿고 위세를 부리거나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 노마님께서 돌아가셔서 뒷심이 되어줄 곳도 없는 마당에 오히려 더 태도가 고약해졌으니 말이야.” 라며 이상하게 여긴다. 그런데 역시! 원앙에겐 내심의 꿍꿍이가 있다. 발인하는 날 가모의 운구가 나가자자마자 가모를 따라가겠다고 목을 매고 자결한 것이다. 사실, 주인이 죽으면 시녀가 의탁할 곳이 없긴 하다. 가모의 큰 아들 가사가 첩으로 삼으려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 가부의 안방마님이 될 가능성도 열려있긴 하지만, 원앙은 결코 그런 삶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함부로 다뤄질 남은 생을 피하기 위해 가모를 따라 자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직 구체적으로 마수가 뻗치지도 않았는데 팍! 목을 맬 수가 있나? 누군가를 피하기 위해 자결을 선택했다고 하는 건 원앙의 죽음에 다소간 모욕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원앙이 죽은 가장 큰 이유는 가모에 대한 충성과 사랑이기 때문이다. 원앙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가모에게 속한 사람으로 보았다. 일체형의 삶이랄까? 분명 모든 죽음은 결단코 혼자 가는 것임에도, 일이 이렇게 되고 보면 왠지 원앙의 부축을 받으며 이승을 떠나는 가모를 눈앞에 그리게 된다.

 

가모는 복이 많은 건가? 아니면, 조설근이 그 시대에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권력자의 죽음을 연출한 것인가? 가모는 어쩔 때는 리좀처럼 움직이지만, 그녀가 속한 가부는 그 자체로 수목이다. 그리고 가모는 그 집안의 뿌리였다. 그러니 가모의 죽음이 표현하고 있는 이 완벽함이야말로 바로 수목적 견고함이다. 그러니 충성스러운 시녀의 죽음은 권력자의 죽음에 있어 화룡점정이다.

 

원앙이 가모를 죽음으로 애도하는 것과 대비되는 것은 바로 보옥이 대옥을 애도하는 장면이다. 대옥이 죽은 후, 보옥은 보차와의 결혼 생활에 점점 적응해가면서도 대옥이 너무 그리워 대옥의 거처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꿈에 나타나주기를 바라며 대옥이를 생각하며 잠을 청한다. 그런데 분명 선녀가 되었을 대옥이 왜 한번도 꿈에 나타나 주질 않을까? 의아하기만 하다.

 

대옥이는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나 같은 범속한 인간과는 함께 어울릴 수 없어서 꿈에 나타나지 않았나 보다. 꿈에라도 나타나준다면 난 대옥에게 가 있는 곳을 물어봐서 때마다 제사를 지내줄 테야. 그런데 만약 대옥이가 나 같은 추잡한 인간을 꺼려해서 꿈에마저 나타나주지 않는다면, 나도 이제부터는 더 이상 대옥이 생각을 하지 않을래.”(p.190)

 

그런데 꿈은커녕, 대옥을 생각하면 평소에 안 오던 잠이 더 잘 와서 잠만 쿨쿨 잘 잔다. 다음 날 보옥은 또 다시 시도해본다. 그런데 대옥 생각을 하다 보니 청문이가 그리워졌다. 그러더니 지금 시중들고 있는 오아가 청문을 닮았기에 오아를 흘끔거렸다. 결국 오아를 불러 곁에 두고 다정하게 말을 나눠보려고 시도한다. 그 장면은 요즘 뉴스에 나오는 성추행 장면과 싱크로율 99%. 이게 뭐얏! 대옥이를 꿈에라도 보려고 그렇게 안달을 하면서도 옆에 있는 오아를 찝적이다니! 그것도 오아가 대옥을 닮은 것도 아니고, 청문을 닮았다면서!

 

이건 해석 불가! 바람둥이도 아니고, 순애보도 아니고, 무심한 것도 아닌. 하지만 해석이 불가하다고 해서 그런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실상은 원래 이러하나, 이 상태는 우리가 이름붙인 적 없는 의식의 흐름 그 자체니까.

로맨스의 정석을 영화에서 배운 내게도 아름다운 죽음과 절절한 그리움에 대한 상이 강하게 박혀있다. 원앙과 같이 절대충성을 맹세한 자가 따라 죽는 것 까지는 아니어도, 그토록 사랑했다면 그녀를 못 잊고, 순수하게 슬퍼해야 하는데, 보옥의 머릿속에 순수는 없다. 온갖 잡스런 생각이 꽉 차서 오아에게 집적거리더니, 다음 날은 결혼한 지 1년만에 보차와 운우지정을 치루게 되었다.

 

귀신은 오지 않았다. 대옥이 정말 선계로 갔다면 이승의 일은 다 까먹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니 보옥의 마음에서도 대옥은 지워졌다. 보옥은 자기 스스로도 그것을 믿을 수 없어서 그 마음을 일으켜 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보지만, 그의 마음은 매번 지금 현재 옆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보옥이의 지극함이다. 그리고 생명의 본질이다. 생명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바람처럼, 물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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