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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칼럼쓰기 | 열정인가 중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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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6-24 07:00 조회2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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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인가 중독인가

 

  

 

이 선 화

 

  나는 ‘일 중독자’였다. 20대 중반, 다큐멘터리 감독의 꿈을 키우며 독립영화 현장에서 무임금으로 일하며 배웠다. 하지만 경제력이 없던 나는 곧 꿈을 포기해야 했다. 돈 때문에 꿈을 잃었다고 생각했기에, 우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입시 학원에 들어갔다.  


  정규 수업 외 세 배 이상의 보충수업을 하고, 그 다음은 학부모 상담, 업무 후에는 밤을 새워 자료를 만들었다. 원장과 학부모들에게 ‘열정의 강사’로 폭발적 지지를 얻었고, 돈과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돈을 모아서 영화감독의 꿈에 재도전하기는커녕, 그렇게 번 돈으로 학원을 차리고, 다시 학원을 확장하고 유명강사를 고용했다. 거기에도 성이 안 차서 학원연합회에서 일거리를 찾았다. 일을 하는 동안은 식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커피믹스, 홍삼, 나중에는 한약을 서랍 가득 채우고 하나씩 빨아먹으며 일했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또 밤을 새워 일하고, 새벽이 되어 지치고 나서야 말 그대로 뻗었다. 그렇게 일에 빠져 다른 생각을 멈출 때가 가장 편안하게 느껴졌다.


  약물, 알코올, 도박, 섹스, 쇼핑, 성형, 익스트림 스포츠……. 헤아릴 수 없는 가지각색의 중독증이 늘어가고 있지만 이러한 중독에는 공통점이 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방 생활에서 “나는 내 오른손이 가해자고, 내 왼손이 피해자야”라고 말하는 약물중독자 한양이처럼, 당장의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짜릿한 쾌감을 얻고자 자신의 몸을 더 큰 고통 속에 밀어 넣는, 악순환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일 중독증’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다른 중독증은 병이라는 것을 자타가 확연히 알 수 있는 반면에, ‘일중독’은 오히려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쉽게 오인되기 때문이다. 나는, 일 속에 빠져들면, 쓰라린 반성과 자아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능력자로 인정받아 돈을 벌 수 있었고, 성실과 열정의 아이콘이 되어 주변사람들에게 내 지배력을 확대할 수도 있었다. 이런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하찮은 내 몸쯤이야, 그 대가로 바친다 해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몸을 떠나는 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무력감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중략)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현재의 삶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몽을 기억하는 몸으로부터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몸으로 떠나는 여행』, 한울, P43

 

  ‘일 중독’과 ‘열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판단의 기준은 자신의 ‘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 중독은 ‘무엇’을 얻기 위해 내 몸과 삶을 폭력적으로 손상시키지만, 열정은 성찰과 깨달음을 거쳐, 내 몸과 삶을 일으키고, 그 결과로서 ‘무엇’을 얻게 한다. 


  문제는, 성과 위주의 세상이 ‘열정’을 빙자하여 ‘일중독’을 조장하고 있기에, 그 자각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미친 질주는 내 몸이 병들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고, 그제서야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도 있었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까지 이십사 년이라는 너무도 긴 시간이 걸린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일 중독자’이다. 하루 두 끼 이상 만들어 먹기, 매일 천천히 산책하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나의 세 가지 원칙이 어느새 다 무너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공부로 도배가 된 나의 스케줄표를 보면서, 일중독의 ‘일’ 대신에 단지 ‘공부’로 바꾸어만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획이 꼬여 화성수업마저 펑크 냈고, 피곤에 허덕이는 나에게, 박장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공부를 왜 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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