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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의 비결 | [튜터 후기]얼치기 ‘오달수’의 지중해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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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7-09-12 00:07 조회8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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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치기 ‘오달수’의 지중해 기행
 

김해숙

 

 


여행, 선입관 불안감 총출동


몇 년 전부터 감이당에 해외여행 공부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여행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내겐 나름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향후 5-10년에 걸쳐 ‘시골 공부공동체’를 만들려고 한다. 그 재원 마련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으니 여행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둘째는 직업병. 나는 꽤 오랜 동안 역사유적 안내자 활동을 했다. 여행 안내가 일이 되면 여행의 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법인지, 다닐 만큼 다녔다고 생각해선지, 별로 당기지 않았다.


그런데 올 봄 그리스를 간다는 말이 나왔다. 귀가 쫑긋해졌다. 올해 내 고전평론 텍스트가 『그리스인 조르바』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일요 왕초보 글쓰기 튜터들-혜숙샘, 창희언니, 장금사형-이 모두 간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나도 갈까?’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여행을 시큰둥하게 여겼던 건 뭐지? 마음에 따라 가치가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건 뭐지? 어쩌면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했던 건지도 모른다.


처음 가보는 인천공항은 무지 넓었다. 이색적인 분위기가 절로 느껴진다. 그나저나 나는 감기약부터 챙겨야 했다. 평소 별로 아프지 않는 체질인데, 며칠 전부터 기침과 두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항 약국에서 00산과 마이신 같은 걸 샀는데 약사가 뭔 피로회복제를 권한다. 감기약과 함께 먹으면 훨씬 효과가 빠르단다. 먼 여행길이라는 부담감이 있던 차에 서슴없이 권하는 대로 응한다. 약사는 남편 분 것도 챙기라며 꽤 여러 개 권한다. 됐다며 4개만 샀다. 그런데 꽤 비싸다. 길을 떠나면 왠지 이렇게 화폐에 대한 감각부터 달라진다. 집에서라면 가격도 물어봤을 것이고, 평소 내겐 영양제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서인지, 거의 난생 처음인 해외여행이라 불안해서인지, 약사의 말 한 마디에 쉽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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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난생 처음인 해외여행이라 불안해서인지, 약사의 말 한 마디에 쉽게 넘어간다.


인천을 떠난 우리는 러시아 공항을 거쳐 한밤중에 그리스 아테네 숙소에 도착했다. 전형적인 유럽의 도시 가정집이 이렇겠지! 맘에 든다. 현관부터 오리지날 서구식(!) 분위기가 난다. 근데 엘리베이터가 부실해보인다. 문도 덜컹거리고. 그리스가 모라토리엄 상태라더니, 좀 후져 보인다. 거실에서 샤시문을 열다가 또 확신했다. 뭐야, 문이 뭐 이렇게 위아래로 덜렁거려? 나라 경제 사정이 좋지 않으니 문이 고장 나도 그냥 견디고 사나 싶었다. 헌데 이 또한 선입감이었으니! 그런 거실 창호는 우리나라에서도 주상복합 아파트에서는 많이 쓰이는 것이란다. 나는 이제껏 샷시 유리문은 수평으로 움직이는 미닫이 혹은 여닫이만 사용해 봤는데, 아테네 숙소의 샷시는 문을 열지 않은 채로 위로 움직여 바람이 통하도록 해놓은 것이었다. 요컨대 더 하이테크한 기능이었던 것. 왠지 그리스와 창호문에게 미안했다. 문과 모라토리엄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본다’더니 맞는 말이다. 어찌 보면 인생은 이런 선입감의 생성과 깨짐의 연속 아닐까 싶다. 여행과 인생길이 닮은 점도 바로 이것이고.

 

아테네-말문 막힌 ‘오달수’ 


이번 여행에서 별명 하나 얻어 왔다. 오달수! 빛나는 조연. 어떤 사진이든 내가 들어가면 푸르고 맑은 지중해가 텁텁해진단다. 그런데 처음부터 내가 코믹하고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한 건 아니었다. 여행 둘째 날까지도 좀 경직된 편이었다. 우리 일행은 곰샘을 두목으로 해서 채운샘, 혜숙샘, 창희언니, 장금 등 나이 지긋한(?) 감이당 붙박이 그룹, 또 중국에서 온 선영씨와 이집트에서 온 혜진씨 같은 중년 해외파, 그리고 정미와 은민 같은 감이당 청년파, 여기에다 외부 식구인 소년파 재홍과 장홍, 그리고 가끔씩 합체했다 떨어졌다 하는 지중해 세미나 팀원들. 이렇게 구성되었다.


이 중에서 나는 뚜렷한 역할이 없기에 책임감은 무겁지 않았다. 그냥 내 몸 하나 잘 챙기면 되었다. 실제로 인천 공항에서 아테네까지 왕초보 해외여행객답게 나는 일행에서 이탈될까, 덜렁대다 여권 분실은 하지 않을까, 나름 긴장을 하며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바빴다.


그리스에서 맞는 첫 아침. 일행과 함께 산책을 했을 때도 왠지 아직 어색했다. 감기로 몸이 무거워서일까. 아테네 대학 앞에서 일행들이 한국 결혼식장 같다면서 우스갯소리를 할 때도, 근처 까페에서 아침을 먹을 때도, 뭔가 모르게 나는 조금 어색해 하고 있었다.


아침 먹고 아테네 시내를 거쳐 아크로폴리스에 갔을 때였다. 어디선가 한번쯤 본 것 같은데, 저 신전이 뭔지 알고 싶은데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청맹과니가 따로 없었다. 글자도 모르고 말도 안 들리는 채로 유적들 사이로 걸어 다닐 뿐이었다. 옆에서 같이 다니던 혜숙샘도 별 말이 없으시다. 먼저 올라온 일행들은 저 만치서 채운샘의 설명도 듣고 사진도 찍는다.


귀가 닫히니 의지하는 건 시각뿐이었다. 파랗고 맑은 아테네의 하늘, 하얀 바위산과 화강암 기둥이 우뚝우뚝한 신전들, 그리고 아크로폴리스 아래로 펼쳐진 아테네 시내 풍경들. 햇볕은 눈부시게 밝았고 모자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람은 아크라폴리스 언덕에만 부는 게 아니었다. 내 마음도 복잡했다. 뭔가 자꾸 마음속으로 계산이 되었다. ‘세계 최고의 여행지로 꼽히는 아테네에 왔으니 뭔가 많이 보고가야 하지 않나? 내가 언제 다시 그리스에 또 온다구!’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욕심은 그 뿐 아니었다. 내 눈은 자꾸 저 앞의 채운 샘의 설명을 따라다니고 있는데, 내 몸은 창희 언니와 보폭을 맞추고 있었다.


아, 창희 언니에 대해 설명 좀 해야겠다. 언니는 몸이 좀 불편하다. 젊어서부터 류마티즘을 앓아 관절들이 좋지 않다. 다리에 인공 관절 시술을 했기 때문에 걸음 속도도 느리고, 오랫동안 걸으면 몸에 무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워낙 자신의 몸 사정을 잘 살피는 지라 동행들에게 티를 내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나는 ‘아무래도 동생 같은 내가 언니 옆에서 다녀야겠다’라고 내심 내 포지션을 정한 터였다.


아, 그러나 사람 마음만큼 믿지 못할 게 어디 있을까? 아크로폴리스 그 빛나는 유적들 앞에서 내 초심은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아, 채운 샘이나 곰샘 옆에 따라다녀야 주워들을 게 많을 텐데.....’ 욕심과 의리 사이에서 마음이 자꾸 갈팡질팡했다. 아니 이건 의리가 아니었다. 둘 다 욕심이었고, 끝없이 재고 또 재는 얄팍한 계산법이었다. 조르바도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인간의 머리란 끊임없이 계산하는 저울’과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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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도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인간의 머리란 끊임없이 계산하는 저울’과 같다고.


후회도 밀려왔다. 아무리 바쁜 일정 끝에 온 여행이라 해도 너무 여행지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았다. 명색이 『그리스인 조르바』로 고전 평론을 하겠다는 사람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얼어붙어있다니! 뭔가 떠들고는 싶은데, 아는 건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 게다가 내겐 ‘전작’이 있었다. 감이당 금요 대중지성 수업 시간에 되게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카잔차키스에 대해 발표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불과 며칠 전 일이었으니 의식을 안 하려 해도 자꾸만 위축되었다.


아고라 광장에서 초등학생들을 이끌고 열심히 설명하는 안내자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문화해설은 아고라 광장을 날아다니는 새소리처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내겐 그들의 모습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이 곳 아크로폴리스는 한국으로 치면 경주쯤 되는 곳이리라. 20여 년 전 처음 경주에 갔을 때도 오늘처럼 나는 막막해 했었다. 하지만 자주 가다보니 경주 유적을 가지고 나름 자유롭게 이야기로 만들 수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공부 앞에서 경직되는 것도 아직 공부하는 신체로서 길이 들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데는 자연환경도 크게 한 몫 한다. 다음날, 수니온곶 포세이돈 신전앞에서 나는 알았다. 근심 걱정은 문제의 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정오의 태양이 뼈마디까지 즐겁게 했다. 바다 역시 태양 아래서 느긋하게 몸을 덥히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옅은 안개에 싸인 무인도는 바다 위로 불쑥 튀어나와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열린책들/ 182쪽

아고라 골짜기에서 가파르게 올라간 화강암 돌산에서는 그토록 뭔가에 짓눌린 것 같더니, 에개해의 푸른 바다 앞에서는 저절로 심호흡이 커지고 가슴도 벌어졌다. 마침 우리가 수니온곶을 찾았을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카잔차키스는 정오가 태양의 양기로 슬픔을 녹여내고 온 몸을 기쁨으로 감싸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 정오의 시각에 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근심 걱정을 내려놓아 마음을 가볍게 할 수는 있었다.

 

 

크레타-말문 터진 ‘오달수’


아테네를 떠나 크레타로 온 첫날부터 나는 격하게 크레타를 만났다. 아테네에서 크레타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쌩에로비디오’를 감상했는가 하면, 식당에서 화장실로 가다가 마냥 벽으로 돌진해서 머리를 들이박았다. 선글라스가 깨지질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진짜 아팠다. 이마에 혹도 부풀었다.


그런데 그 혹이 액땜이라도 된 것일까. 아니면 마음장 하나 바꾸니까 세상이 달라진 걸까.  아테네에서는 머리도 막막하고 이명도 크게 들리더니 크레타로 들어서자마자 감기가 싹 나았다. 크레타는 딱 내 스타일이었다. 생선을 좋아하는 내 식성에 딱 맞는 각종 해산물 요리도 좋았고, 베네치아 성벽도 멋졌다. 무엇보다 말문이 터졌다. 몸이 가벼워서 말이 터진 건지, 말이 터져서 몸이 가벼우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번 지중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건 아름다운 이라클리온 항구에서 길동무들과 함께 실컷 웃고 떠든 것이란 건 알겠다.


크레타에서 사실 나는 조르바를 진하게 만나고 싶었다. 일행들도 크레타에서 여유를 가지고 조르바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 헌데 그 유명하다(?)는 산토리니가 일정을 바꿔놓았다. 크레타섬에서의 하루를 산토리니 섬 유람으로 쓰기로 했다. 산토리니로 가는 배안에서 나는 에개해의 감상을 만끽하기로 했다. 소설 조르바의 시작 부분도 배타고 가는 장면 아니던가. 두목과 조르바처럼 배멀미를 심하게 하진 않았지만 에게해를 건너는 느낌은 충분히 가졌다. 카잔차키스도 말하지 않았는가.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산토리니 해변 해수욕장에서 에게해 바닷물을 만지며 생각했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쓸 때, 글이 잘 안 풀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그는 모든 걸 다 놓아두고 이 에게해에 점점이 뿌려져 있는 작은 섬들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유람했다고 한다. 그 섬들 중에 내 귀에 잡히는 지명이 바로 넥소스와 산토리니였다.


에게해 바닷가를 걸으면서, 다음날 카잔차키스 무덤에서 참배하면서, 그리고 크노소스 궁전 골짜기를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해외여행에 선입감을 가져서 경직된 것처럼, 혹시 나는 공부에도 선입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공부는 어려운 것이니까 나 같은 사람은 좀 대충하고 쉬엄쉬엄해도 되는 거 아닐까’ 라고.


 하지만 조르바가 옆에 있다면 단연코 노! 라고 말할 것이다. 조연 오달수와 주연배우는 각기 다른 역할일 뿐이다. 주연이 80퍼센트의 비중이 있고, 조연이 20퍼센트의 비중이 있는 게 아니다. 주연은 주연대로 순도100퍼센트여야 가장 아름답고, 조연은 조연대로 순도 100퍼센트여야 아름다운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내 공부의 순도 100퍼센트는 내가 만드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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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은 주연대로 순도100퍼센트여야 가장 아름답고, 조연은 조연대로 순도 100퍼센트여야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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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소님의 댓글

파랑소 작성일

순도 순도! 선생님 ㅎㅎ 왕양명의 '순금 순금'이 떠오르네요~
선생님 얘기 더 듣고 싶은데, 듣다가 만 느낌이에요!
나중에 또 이야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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