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라도 괜찮아 > 글쓰기의 달인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양력 2017/12/13 수요일
음력 2017/10/26

절기

글쓰기의 달인

소세키의 질문들 | 외톨이라도 괜찮아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필벽성옥 작성일17-11-28 19:59 조회104회 댓글0건

본문

[소세키의 질문들] (12) - 『태풍』

 

외톨이라도 괜찮아

 

박 성 옥

 

1. 세상에 녹아들지 않는 자

 

 소세키의 『태풍』(노재명 역, 현암사, 2016년)을 읽으면 신경이 거슬릴 정도로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눈에 들어온다. 꼼꼼히 세어보니 소세키는 이 소설 안에서 “외톨이”라는 단어를 서른 한 번이나 썼다. 풍성한 어휘력과 정밀한 묘사력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세키가 이렇게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쓴 경우는 처음이다. 소세키는 런던 유학을 갔을 때 자신이 ‘오백만 기름방울 위에 혼자 떠있는 물방울’과 같다고 표현했다.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는 고독한 외톨이의 모습이다. 이 소설에는 두 유형의 외톨이가 나온다. 소세키가 동일시하는 자신의 모습인 동시에 자신이 뛰어넘고 싶었던 한계로 보인다. 『태풍』은 외톨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정신에 대한 탐구이다.


 주인공은 대학을 갓 졸업한 두 명의 청년과 한 명의 중년 남자다. 『태풍』은 개성이 뚜렷한 세 남자의 인연이 뒤엉키는 사건을 그려냈다. 다카야나기는 취직을 못하고 번역을 하면서 연명하는 가난뱅이 청년이다. 반면 나카노는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난 남 부러울 게 없는 청년이다. 시라이 도야 선생은 중년의 가난한 문학자이다. 절친 사이인 두 청년은 각각 도야 선생과 인연을 맺게 된다. 소세키는 세 명의 입장을 골고루 돌아가면서 서사를 풀어낸다.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읽는 재미가 다르다. 사회경제적 배경에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두 청년을 비교해서 읽을 수도 있고, 비슷하게 빈곤한 처지에 놓인 다카야나기와 도야 선생을 비교해서 읽을 수도 있다. 나로서는 후자의 분석틀에 끌린다. 두 사람은 사회와 섞이지 못하는 외톨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어째서 외톨이가 되는가. 스스로 외톨이의 길을 선택한 사람과 부득이 외톨이의 길로 내몰린 사람의 삶의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 외톨이를 벗어날 전망은 있는가. 이런 질문을 따라가면 우리는 소세키라는 작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자기본위의 개인주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61429c211dd6645a5bd7bcc23a2858d9_1511866 

 

 


 먼저, 30대 중반의 도야 선생은 글품을 팔아서 호구지책을 마련하는 알바 중년이다. 처음부터 직업이 없었던 건 아니다. 7년 동안 정규직 교사도 해봤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세 곳의 중학교를 전전했다. 처음 부임한 학교는 큰 석유회사가 지역사회의 돈줄을 쥐고 있는 곳이다. 도야 선생은 ‘돈과 인품’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연설을 했다가 사단이 났다. 회사 임원들과 학교가 합세해서 건방진 놈이라고 도야 선생을 쫒아낸다. 이 때 선동에 휩쓸린 중학생 중에 다카야나기가 포함되어 있다. 도야 선생이 두 번 째로 부임한 학교는 석탄공업지대에 있었다. 여기서도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다가 비생산적인 인간 취급을 당한다. 석유, 석탄은 근대 산업혁명을 주도한 첨단 산업이다. 소세키가 도야 선생이 교직에 정착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장소를 석유, 석탄산업의 중심지로 설정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돈으로 사회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는 타지 사람을 배척하는 시골학교였다. 어느 날 옛 번주가 수업을 참관하러 왔는데 도야선생이 수업을 계속했다고 탈이 났다. 지역의 영주이자 귀족이 왔는 굽실거리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메이지 시대에 남아있는 봉건적인 계급질서의 구태를 보여준다.


 도야선생은 교사 노릇에 질려버렸다. 그는 교직을 버리고 잡지나 신문에 글을 쓰면서 근근이 살아간다. 비정규직으로는 목구멍에 풀칠하기 어렵다. 아내는 바가지를 긁는다. “당신처럼 고집이 세면 밥 먹고 살기 힘들어요.” 그는 자신이 사회와 섞이지 못하는 완고한 사람임을 안다. 외려 세상에 녹아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만일 자신이 세상에 용해되려고 한다면 그 순간, 도야 자신은 완전히 소멸되어버릴 것”(『태풍』, 20쪽)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외톨이가 된 사나이, 도야선생은 세속에 저항하며 독야청청 살아갈 수 있을까? 


 또 한명의 외톨이, 다카야나기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염세적인 청년이다. 그는 취직을 못하고 번역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고향에 있는 홀어머니에게 생활비도 보내드려야 하는데 일을 할 수가 없다. 부자 친구를 따라 난생 처음 음악회에 가보고 양식당에 가서 스테이크도 얻어먹지만 어딜 가나 주눅이 든다. 설상가상 폐결핵까지 걸려서 기침을 한다. 인생이 지지리 궁상이요, 사면초가다. 그는 세상사람 모두가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다른 사람처럼 연애할 시간이 있으면 글을 쓸 텐데... 그는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고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를 냉혹한 경쟁터라고 원망한다. 다카야나기는 세속에 합류해서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2. 약자의 원한감정과 강자의 자존감

 

 도야선생과 다카야나기, 둘 다 가난한 외톨이지만 삶의 품격이 다르다. 이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다카야나기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배척하고 있다고 원망한다. 자신을 외톨이 병에 걸리게 한 것은 세상이다.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힌다. 분하고 억울하다”고 세상을 저주한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데 세상이 잔혹할 따름이다. 그는 외톨이가 된 게 억울하고 괴롭다.

 

61429c211dd6645a5bd7bcc23a2858d9_1511866

 여기에 비해 도야 선생은 자발적 외톨이다. 그는 자신이 돈과 명성을 따라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타인들의 인정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자부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번민하는 것은 모순이다.”(『태풍』, 140쪽) 그는 누가 뭐래도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길이며 외톨이는 숭고한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두 외톨이의 차이점을 니체가 말하는 힘 의지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니체는 내 안의 수많은 욕망이 힘겨루기를 한 결과 어떤 힘이 승리하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했다. 능동적인 힘을 구사하는가, 반동적인 힘을 구사하는가, 긍정적인 힘인가, 부정적인 힘인가. 능동적인 힘은 자신에게서 출발한다. 자기로부터 구성되는 힘이다. 이에 반해 반동적인 힘은 타자로부터 구성되는 힘이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거나 못하게 하려는 힘이다. 능동적인 힘은 긍정으로 표출되고 반동적인 힘은 부정과 짝을 짓는다.


 다카야나기가 돈이 없고 여유가 없어서 글을 못 쓴다고 말하는 것은 니체 식으로 보면 비겁한 행동이다. 약자는 누구 때문에 내가 뭘 못한다고 반동적이며 부정적인 힘을 쓴다. 다카야나기는 자신이 현재 괴로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의 개인사까지 동원한다. 그가 일곱 살 때 우체국 직원이었던 아버지가 공금 횡령으로 구속되었고, 감옥에서 폐병으로 죽었다. 그래서 다카야나기는 폐병도 유전이고, 죄악도 유전이고, 자신은 죄인의 자식이라 숨이 막힐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자신에게만 불행의 종합세트가 태생적으로 주어졌단 말인가. 이렇게 모든 인과관계를 자기중심으로 재조립해서 타인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이 약자의 특징이다. 타인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원한감정이 나온다. 약자는 나만 못하는 건 억울하다. 다른 사람도 못 했으면 좋겠다. 남을 부러워하면서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는 반동적인 힘은 부정의 벡터를 향하게 된다.


 도야선생은 다카야나기에게 이유 불문하고 정정당당하게 창작에 매진하라고 권한다.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말라고, 삶은 과거에 있지 않으니 지금부터 꽃을 피우라고 한다. 도야선생은 문학자의 길을 가라고 격려한다.

 

  여러 학문 중에서 문학자가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웃긴 것    은 당사자들조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문학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고통이 있고, 궁핍이 있고, 고독이 있고, 무릇 인생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곧 문학이고,    이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문학자입니다. (나쓰메 소세키, 『태풍』, 노재명 역, 현암사, 2016년, 100쪽)

 다른 학문 같으면 비참한 형편에서 연구가 불가능하지만 문학은 다르다. 문학자는 인간 세상의 풍파와 장애 속으로 자진해서 뛰어든다. 문학은 인생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통을 기꺼이 감내한다. 도야선생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스스로 만족을 얻으려고 세상을 위해 일하는 것뿐입니다. 그 결과가 악명이 되든, 오명이 되든, 아니면 광기가 되든 할 수 없습니다.”(『태풍』, 103쪽)  도야선생은 남들로부터 괴짜라고, 미쳤다고 힐난 받는 게 두렵지 않다. 명성이나 물질적 보상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옛날부터 무엇인가를 하려는 사람은 외톨이가 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때론 아내에게 바보취급을 당하고 하녀까지 비웃지만 불쾌하지 않다.  

 

 외톨이어도 상관없다는 도야 선생의 고고한 태도는 강자의 존엄성을 보여준다. 그는 능동적인 힘을 구사하고 있다. 능동적인 힘은 기존의 통념과 상식을 깨고 가치를 변화시킨다. 능동적인 힘을 구성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구성해간다. 약자의 원한감정으로는 자기 존엄성을 구현할 수가 없다. 다카야나기는 도야선생과 대화한 후  “갑자기 자신이 넓은 세계에 끌려 나온 듯한 기분”(『태풍』, 101쪽)을 느낀다. 도야선생은 도카야나기와 “세상에서 유일한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하하하 웃는다. 외톨이끼리의 훈훈한 교감은 무엇을 변화시킬까. 약자의식이 깜짝 놀랄만한 능동적인 힘으로 급변하는 사건이 소설의 클라이막스에 기다리고 있다.

 

3. 자유로운 개인주의

61429c211dd6645a5bd7bcc23a2858d9_1511866 

 소세키가 말하는 외톨이는 자기본위의 개인주의를 표현하는 별칭이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이나 금력을 위해 당파를 만들고 붕당을 결성해서 맹목적으로 움직인다. 집단적으로 타인을 따라가는 삶의 태도는 노예도덕이다. 개인주의는 무엇보다 자유를 전제로 한다. 노예가 아닌 단독자 개인이다. 개인주의는 자기 마음대로 자기 길을 가기 때문에 서로 흩어진다. 그래서 쓸쓸함이라는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 “개인주의는 타인을 목표로 향배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시비를 규명하고 거취를 확정하는 주의니까 어떤 경우에는 홀로 외톨이가 되어 쓸쓸한 기분이 듭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쓰메 소세키, 『나의 개인주의』, 김정훈역, 책세상, 2013년, 70쪽) 1914년 11월 25일, 소세키는 <나의 개인주의>라는 연설에서 개인의 자유가 있어야 개성이 발전하고 각자가 행복할 수 있다는 지론을 펼친다. 개인주의는 외톨이처럼 힘이 없어 보여도 장작개비가 다발로 모이면 강한 힘을 발휘하듯이 세계를 결속시킨다. 


 자칫 개인주의는 세상을 도외시하는 현실도피자로 보일 수 있다. 도야 선생은 차가운 바람이 맹렬하게 불어오는 날 연설을 하러 간다. 소설 제목이 상징하는 대로 거대한 태풍에 맞서는 행보다. 1906년 도쿄시의 전차요금 인상을 반대하는 시위 때문에 사람들이 구속되었다. 도야 선생은 연설회 수입으로 구속자 가족을 돕기 위해서 연설을 하려 한다. 아내는 나중에 “사회주의자라는 오해라도 받게 되면 곤란하다”고 극구 말린다. “오해받아도 상관없어. 국가주의고 사회주의고 알 게 뭐야? 그저 올바른 길을 걸으면 됐지.”(『태풍』, 174쪽) 이런 위험천만한 발언을 할 수 있는 도야 선생을 안온한 개인주의자라고, 이기적인 현실 도피자라고 비웃을 수 있을까.

 

 도야 선생은 국가주의라는 거대한 표상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 당시 메이지 시대는 국가와 천황에 대해 절대 복종을 강요받는 사회적 풍토였다. 전체주의적인 국가를 위해서 개인의 사상의 자유는 억압받았다. 여기에 대항하는 개인주의는 지극히 용기 있는 도덕과 책임 있는 지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우리들은 국가주의자이기도 하고 세계주의자이기도 하고 동시에 개인주의자이기도 합니다.”(『나의 개인주의』, 70쪽)라고 연설했던 소세키의 사회의식은 도야 선생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도야 선생이 연설하는 <현대 청년에게 고함>이 소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계몽적으로 비칠 수도 있고 덜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세키는 선악과 시비, 명암이 뒤섞여있는 인정세태를 잘 포착하는 세련된 작가이다. 인간 내면에 잠재된 모순을 표출하는 것이야말로 소세키의 전문분야다. 도야선생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역할을 뜻밖에 친형이 맡게 되는 아이러니를 보면 알 수 있다.
 

도야 선생은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의 책이 출판되는 걸 막는 은밀한 세력이 있다. 435 페이지나 되는 장문의 <인격론>을 썼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될 판이다. 금력과 권력을 휘두르는 부자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도야 선생을 정탐하는 자들은 나카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다. 하필 도야 선생의 친형은 그 회사에 다닌다. 친형은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된다. 도야 선생의 책 출판을 포기하게 하려고 뒤에서 빚 독촉을 사주하고 연설을 못하게 방해한다. 빚보증을 서준 형이 본의 아니게 악역을 맡는다. 선악의 이면에는 자신이 처한 계급 배경과 인연의 실타래가 얽혀있다. 선악의 이분법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소세키의 매력이다.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가 되는 결말은 매우 인상적이다. 나카노는 친구에게 요양을 가라고 100엔을 서슴없이 내주며 선량한 배려를 베푼다. 다카야나기는 각혈을 하면서도 친구에게 받은 돈으로 도야 선생의 빚을 갚아버린다. 소설은 열린 결말로 끝난다. 다카야나기가 도야 선생의 원고를 나카노에게 가져다준들 책이 출판될 수 있을까? 다카야나기는 살아서 자기만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다카야나기가 변할 거라는 것은 예감할 수 있다. 그는 짜증날 정도로 비관적이고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외톨이였지만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다. 아니 외톨이라도 괜찮다. 약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저주하지 않는다면. 능동적으로 자기 존엄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도야 선생의 말처럼 사람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해야 하며, 자유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은 권리이자 큰 책임이다.(2017. 11. 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mail : mvqblo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