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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되기 | 엄마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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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3-24 07:00 조회3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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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존재

 

 

 

 

  천은정 (4조)



선생님이 ○○이 엄마 역할 해주이소.

  

4월 학부모 상담 때 ○○이 할아버지가 담임인 나에게 요청한 것이다. 나는 올해 4학년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우리 반 ○○이는 약간 어리숙한 남자아이다. 수업시간 대부분을 멍하게 있을 때가 많다. 숙제든 준비물이든 놓칠 때가 많고, 나중에서야 “아~” 하면서 자기 머리를 치며 후회한다. 아직 11살 인데, 눈동자에 빛이 꺼지고 무언가 쓰인 듯 탁한 기운을 줄 때가 종종 있다. 수업시간 대부분을 저 먼 세상에 혼자 가 있는 느낌으로 앉아 있다. 그래서인지 배우려는 의욕이 없는 편이다. 4학년에 배워야 할 곱셈, 나눗셈 등 기초적인 수학도 힘들어하고, 글을 읽는 것도 힘들다. 또렷또렷하게 책 읽기를 힘들어 한다. 얼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집에 가기 전 내일 챙겨야 할 숙제나 준비물을 물어보아도 자주 기억하지 못한다. “○○아 내일 준비물이 뭐 있었어?” “예? … 수익 숙제했어요.” 어떤 경우 질문과 전혀 상관없는 답을 할 정도로 귀가 막혀있다.

  

그래도 몸이 아픈 것 같지 않고 옷이나 외양이 말쑥하게 다니며 시골에서 학원을 다니는 얼마 안 되는 아이이다. 그러기에 가정환경에 대해 걱정이 되거나 관심이 가지 않았다. 4월 학부모 상담 때 할아버지가 오신다기에 그제야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할아버지가 요청한 엄마의 역할이라.....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따른 엄마의 역할은 ‘다정하게’ 대하고 ‘안아’ 주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가 하는 것을 ‘돌봐주고’ 학원 시간에 맞춰서 아이가 갈 수 있게 ‘챙겨’주라는 것이다. 

  

○○이는 엄마가 없다. 그런데 있기도 하다. 이미 할아버지가 엄마이다. 학교에 데려다주시고, 학원 체크해서 보내신다. 웬걸, 집에서 전업주부로 있었던 내 엄마도 하지 못한 수업참관, 소풍, 현장체험 등 학교 행사도 다 참여하신다. 이미 할아버지가 ○○이의 일상에서 보호하고 챙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할아버지를 보면 요즘 말하는 헬리콥터 맘이 떠오른다. 자녀의 주위를 헬리콥터처럼 빙빙 돌면서 지나치게 간섭하고 돌보는 엄마를 지칭하는 말이다. 성인이 된 자녀가 다니는 대학에 학점 의의신청을 엄마가 하거나 대기업에서 떨어진 이유를 부모가 항의하는 등 자녀를 독립시키지 못한 부모들을 일컫는다. 이런 헬리콥터 맘과 한 쌍으로 캥거루족도 등장했다. 자녀는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가 모든 것을 돌봐주고 해결해주니 스스로 밖으로 나가서 살아갈 힘도 의욕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가 멍하고 매사 의욕이 없는 것이. 자기가 스스로 해야 할 일마저 심지어 학교가 끝나고 몇 시에 학원차를 타는 것까지도 할아버지가 챙겨준다면 아이는 자동적으로 생기가,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사라지게 된다.

  

과하게 보호하고 돌보는 엄마는 아이를 망가지게 한다. 그럼 엄마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나의 엄마부터 우리 반 아이들의 엄마를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일하는 엄마도 있고, ○○이 할아버지보다 덜 하지만 관리하고 보호하는 엄마도 있다. 엄마는 있지만 아이에게 신경 쓰기보다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시는 분도 있다. 그 중 한 분이 떠오른다. 엄마가 교사인 아이였다. 보통 여교사의 아이라고 하면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깔끔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 그런데 그 아이는 혼자 늦게 일어나 맨날 지각에, 숙제나 준비물도 자주 놓쳤다. 공부도 못해서 남겨서 공부를 시켜야 할 정도였다. 나중에 엄마가 교사라는 것을 알고 놀랬다. 아이 엄마는 승진을 하고 싶으셨다. 학교 일에 교육청 일까지 떠맡느라 바빴다. 엄마는 아이에게 전혀 신경 쓸 틈이 없었고, 아이가 스스로 하라고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그 엄마를 보며 나는 속으로 ‘아이를 좀 챙기시고 돌보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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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양육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사의 아이나 엄마가 없는 아이나 상태는 비슷하다. 나는 ○○이에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아이를 부족한 존재로 보지 않았을까? 엄마가 없다는 것 자체를 돌봄과 챙김이 필요한 아이인 것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4월 상담 때 할아버님의 요청에 한 치의 의문도 가지지 않고,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에게 엄마가 없다는 것이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는 많은 돌봄과 챙김에 질식하고 있다. 엄마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엄마라는 존재에 있는 고정된, 기대되는 의미들이 문제인 것이다. 보호하고 돌보는 엄마가 없어도 독립심과 자립심을 바탕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 할아버지가 그 예였다. 그분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초등학교도 못 나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돈을 모으시고 자수성가하셔서 70이 넘으신 지금까지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크게 내며 활동하고 다니신다. 역으로 보호하고 돌보는 엄마 밑에 자라는 지금의 20~30대들을 대부분이 독립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의존하면서 산다. 아이를 돌보고 관리하는 엄마도 있고, 내버려두고 자기 일을 찾아가는 엄마도 있다. 엄마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어느 것도 고정된 엄마의 역할은 없다. 돌보는 엄마도, 일을 열심히 하는 엄마도, 희생하는 엄마도 심지어 아이를 버려두는 엄마도 그저 아이와의 관계가 엄마일 뿐이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아이와 만나는 것이다. 

  

○○이는 엄마가 없다는 것보다 할아버지가 ‘보호’와 ‘돌봄’으로 ○○이가 맺을 수 있는 다른 관계까지 다 차지해 버린다는 문제였다. 4월까지 나는 ○○이 아버지, 할머니가 같이 사는지도 몰랐다. 할아버지가 ○○이의 일상의 모든 것을 다 관리하고, 챙기시기에 다른 가족들이 ○○이와 관계 맺지 못하고 있었다. 학교 끝나면 할아버지의 관리 하에 학원 갔다가 집에만 있으니 친구도 잘 사귀지 못했다. ○○이의 세계와 관계가 너무도 좁다는 것. 할아버지 눈 밖의 세계를 구성할 틈이 없었다. 

  

나는 ○○이의 눈이 반짝였을 때를 기억해보았다. 친구와 떠들거나 몸으로 치대며 놀 때,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고 왔을 때. 할아버지가 학원에 데려다줄 시간에 늦게 와서 시간이 남아 교실에서 친구들과 보드게임 할 때. 학원차를 운전하는 아빠를 지나가다 만났을 때. 수업시간에 수학 문제를 자기 힘으로 문제를 풀거나 체육 시간에 뜀틀을 넘었을 때 등. 나는 ○○이 할아버지가 요구하신 엄마 같은 선생님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는 친구가, 아빠가, 할머니가, 선생님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이에게 틈이 생기기를,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의 모습으로 ○○이와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로 만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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