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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과 의역학 | 대칭성 세계로의 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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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경아 작성일18-01-26 06:50 조회883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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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내 안의 타자를 만나는 계기

 

  엄마가 즐겨보셔서 몇 번 같이 보게 된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처음에 이른바 흙수저 여자가 재벌 3세 남자를 만나는 상투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재벌 3세가 사랑 때문에 집을 나온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래서인지 여주인공(서지안)도 남자에게 어차피 못버티고 집에 들어갈텐데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거 신경쓰인다고, 헛고생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라고 다그친다. 그런데 남주인공(최도경) 대답이 재미있다. 최도경은 생전 처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한 달치 방세를 내지 못해 매일 3만원씩 열흘간 부담하기로 하고 셰어하우스에서 살면서도 자기가 집을 나온 건 단지 서지안 너 때문만은 아니다. 재벌 3세의 삶이란 할아버지가 세팅해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인데, 본인은 독립을 하고 싶어서 나온 것이니 간섭 말라고 한다.
  드라마 내용이 생각보다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지점이다. 사랑을 통해 자기 삶의 양식을 바꾸는 주인공을 중년층이 즐겨보는 주말드라마에서 보게 될 줄이야. 여기서 최도경은 서지안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 당신은 뭘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물음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면서 일종의 각성을 하게 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러 길을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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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육체노동은 처음이라​
 

  이렇게 보면 사랑을 통해 진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이 지점에서 최도경은 니체식으로 말하면 “네 안에 너를 멸망시킬 태풍”을 정직하게 실현한 인물이다. 최도경은 재벌그룹 후계자로 태어났고, 재벌 1세 할아버지가 정해놓은 규격에 딱 맞게 교육을 받고 자랐다. 자신도 후계자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 실천하며 격에 맞게 살고자 했다. 재벌 3세라는 타이틀은 최도경에서 잘 맞는 옷이었다. 그런데 서지안이란 인물을 통해서 기존의 익숙한 자기 자리 또는 자기의 세계를 버리고 낯설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갔다.
  재벌 3세 최도경 안에 자기 두 손으로 땀 흘려 돈 벌어 먹고 사는 생활인, 프로젝트 하나 하는데도 기획안 준비부터 모든 단계를 직접 실행해야 하는 실무자의 모습이 함께 있었으나, 이미 세팅된 환경 안에서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기에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사랑을 실마리로 하여 이미 익숙해서 벗어나기 싫은 ‘지금의 나’라는 견고한 정체성 안에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나’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아마도 그는 서지안 덕분에 독립하였고, 두발로 세상에 서는 즐거움을 맛보았기에 그녀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
  이렇게 내 안의 또 다른 나, 즉 타자를 경험해본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나와 타인의 경계가 흐릿하고 모호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에서는 그렇게 나와 세계가 혼융되는 경험을 이니시에이션이나 내면으로의 여행을 통해 설명한다.
 
기존의 나를 떠나는 인류학적 장치들

 

 멕시코의 고원지대에 사는 위촐족은 ‘페요테 사냥’이라는 특이한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예전부터 유명했습니다. 선인장의 일종인 페요테는 강력한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인장은 아무 곳에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까지 가지 않으면 페요테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위촐 사람들은 원정대를 구성해 페요테 사냥을 위해 길을 떠납니다.
 페요테 사냥을 위한 원정대에는 처음으로 참가하는 젊은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페요테의 환각작용을 체험하는 셈이므로, 신성한 식물을 만나는 자격을 얻기 위해 아주 혹독한 이니시에이션의 시련이 부과됩니다. 마시는 것도 먹는 것도 극도로 억제하고 몸을 깨끗이 한 채, 선배들의 엄격한 지도에 따라 길고 고통스런 여행을 해야만 합니다. <『대칭성 인류학』, 동아시아, 나카자와 신이치, 150쪽>
 페요테와 같은 환각성 식물은 섭취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의 내면으로의 여행을 체험하게 하는데, 그때 ‘내면’으로 불리는 공간은 바로 유동적 지성=무의식이 활발한 활동을 하는 곳의 한가운데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페요테 사냥’이라는 의식은 유동적 지성의 운동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대칭성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또 다른 이상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위촐의 순례자들에게 깊이 인식시키려고 하는 셈입니다.<『대칭성 인류학』, 동아시아, 나카자와 신이치,153쪽>

 

  앞서 언급한 드라마에 나오는 최도경 엄마는 영민하고 기품 있어 한 때 예뻐했던 서지안이지만 그녀는 흙수저이기에 절대 재벌가에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교집합이 전혀 없이 동떨어진 다른 세계. 극명하게 분리되어 구별된 비대칭의 공간. 그것이 현실세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뭐든지 그렇게 명백하게 가르는 것을 더 편하게 받아들인다. 회사에서도 업무분장에 따라 각자 할 일의 구획이 정해지고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를 물을 수 있기에 그 지점이 명확해야 한다.
  이와 같은 비대칭의 논리로 사회를 구성하는 아프리카의 렐레족은 인간/동물, 남/여, 노인/젊은이와 같이 뭐든지 두 개의 항으로 분류하고 엄격하게 이 질서를 유지한다. 그런데 일상에서 이렇게까지 선을 분명하게 긋는 렐레족이 이 원칙을 무너뜨리는 특별한 의식을 거행할 때가 있는데, 페요테 사냥과 같이 이니시에이션도 겸해 ‘천산갑’이라는 동물을 먹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천산갑은 물고기, 도마뱀, 포유류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 렐레족의 분류표 어디에서 속하기 어려운 일종의 ‘괴물’이다. 일정한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지 않기에 통념적이지 않은 천산갑은 존재 자체로 성년식, 이니시에이션을 거치는 소년들에게 혼돈을 안겨준다. 그 동안 교육과 문화를 통해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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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갑_렐레족의 엄격한 분류표를 무너뜨리는 존재


  페요테 사냥은 환각성 식물을 섭취함으로써 나와 세계가 혼융되는 감각적 경험을 하게 만든다면, 렐레족의 경우 자기들 세계를 구성한 분류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예외의 존재를 잡아 먹음으로써 인습적이었던 기존의 자신을 해체한다. 이를 통해 대칭성이라는 유동적 지성을 경험하여 나와 타인이, 인간과 동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왜 이런 의식을 이니시에이션과 연결하였을까? 많은 부족들에게 이니시에이션은 단식, 고행을 통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경험으로, 실제로 그 과정에서 죽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혹독한 통과의례를 거치는 까닭은 실제로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통해 기존의 자아와 결별하게 만드는 것인데, 성인이 된 후에도 주기적으로 비대칭적 현실세계를 떠나 대칭성을 경험하기 위해 그들만의 의식을 치러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이처럼 기존의 자아를 벗어나는 경험은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일까? 사실 자기 안의 자기를 멸망시키는 태풍을 작동시키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도 깊이 하려하지 않는다. 설렘과 기분 좋은 긴장감 딱 그 선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드라마에서 최도경은 빈털터리로 쫒겨났다.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넘어지고 다치는 과정들은 좀 과장하자면 이니시에이션을 할 때 젊은이들이 겪는 위험과 오버랩 되었다. 재벌가라는 울타리를 박차고 나온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이런 냉혹한 의식(?)을 통과해야 비로소 용수철처럼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일까? 그렇게까지 처절하게 태풍을 가동하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일까?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호모 사피엔스는 대칭성 세계, 유동하는 지성을 접할 때 지복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사랑을 하면 타인과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느낌과 더불어 그를 통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타자를 만나게 된다. 이렇게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은 고양감을 불러일으키고 이것이 지복감이다.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외부의 자극에서 비롯된 즐거움이나 쾌락이 아닌 내 안에서 지복(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댓글목록

김삼봉님의 댓글

김삼봉 작성일

몇년 전, 대중지성을 할 때 같은 조의 도반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매 학기마다 쓰는 대중지성의 에세이가 이니시에이션일 수 있을까?"
이런 저런 토론이 이어지다가, 자신이 힘을 쏟은 만큼만 깨질 수 있는게 에세이와 피드백이고
목숨걸고(?) 온 힘을 다해서 써야지만 이니시에이션이다!라는
어찌보면 진부한 결론이었지만 저희끼리는 몹시 감동했던게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임경아님의 댓글

임경아 댓글의 댓글 작성일

ㅎㅎㅎ 정말 에세이는 항상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니, 이니시에이션이 될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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