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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 지금, 무한히 갈라지는 시간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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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2-14 07:00 조회5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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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한히 갈라지는 시간의 정원 






오 선 민

 

 

 

1. 허무를 향하는 화살 

    

고대 그리스인들은 서양의 전통적 시간표상을 규정했습니다. 그들은 시간을 점들이 무한히 이어진 양적인 연속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원환(圓環)으로 표현했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시간을 ‘이전’과 ‘이후’에 따라 측정되는 운동 지수로 규정했습니다. 시간이 기하학적 점과 유사한 비연장적인 시점(지금)으로 나뉨으로써 연속성을 보장받는다고 본 것이지요. 여기에서 시점은 그 자체로 시간 연속성의 지표가 됩니다. 과거와 미래를 결합하는 동시에 분리시키는 순수한 경계로서 말이에요. 이후 서양에서는 그리스적 원환을 대신하여, 직선으로 구현된 기독교적 시간 이미지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시간은 창조로부터 종말로 향해가는 비가역적 연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이후, 서유럽을 시작으로 기독교적 시간의 세속화가 일어났지요. 창조는 시원의 시간이 되고, 종말은 진보의 저 먼 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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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란 어떤 시간일까요?

 

 

 

‘지금’이란 어떤 시간일까요? 그리스적 시간과 기독교적 시간은 모두 시간이 연속한다는 사실을 공유했습니다. ‘지금’은 늘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었지요. 그런데 근대에 와서 ‘지금’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긴 하지만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금을 천계가 구현하고 있는 영원이나 종말 이후의 구원으로 가는 사다리로서 긍정하기가 불가능해졌거든요. 왜냐하면 진보를 향한 기투 속에서 ‘미래’가 끝도 없이 미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더, 더! 매 순간 창출해야 할 발전이 새롭게 제시됨으로써, 미래의 도래는 곧 진보의 종말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지금’은 극복되어야 할 과거와 유예된 미래로서의 의미 이상을 갖지 못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늘 부정되어야 했습니다. 과연 존재에게 이런 ‘지금’을 어떻게 경험될까요? 그는 떨쳐버려야 할 과거와 이루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부채감 때문에 매 순간 불안과 허무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2. Never ending Before

 

카프카의 「법 앞에서」에는 매 순간 미래로 건너가지 못하는 ‘지금’의 처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소설에서 시골 사람의 운명은 제논의 역설을 상기시키지요.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이 궤도상의 여러 지점들을 통과하는 것이라면, 화살이 각각의 지점 위에 있을 때에는 틀림없이 멈춰 있는 셈이며, 따라서 화살은 전혀 움직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을 수없이 분할된 시간의 한 지점으로 본다면, 그 지점에서 서 있는 인간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셈이지요. 시골 사람도 문지기로부터 계속 같은 말만 들었습니다. “지금은 안 돼!” 문지기는 시간을 끊임없이 분할했던 것이지요. 결국 시골 사람은 이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법 앞에 한 문지기가 서 있다. 이 문지기에게 한 시골 사람이 와서 법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그에게 입장을 허락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그 시골 사람은 곰곰이 생각한 후,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가능한 일이지” 하고 문지기가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돼.” 법으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나처럼 열려 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비켜났기 때문에, 그 시골 사람은 몸을 굽혀 문을 통해 그 안을 들여다보려 한다. 문지기가 그것을 알자 큰소리로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그렇게도 끌린다면 내 금지를 어겨서라도 들어가 보게나. 그러나 알아두게. 나는 힘이 장사지. 그래도 나는 단지 최하위의 문지기에 불과하다네. 그러나 홀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하나씩 서 있는데, 갈수록 더 힘이 센 문지기가 서 있다네. 세 번째 문지기의 모습만 봐도 벌써 나조차도 견딜 수가 없다네.” 시골 사람은 그러한 어려움을 예기치 못했다.

「법 앞에서」 

    

그런데 카프카가 근대적 시간이 주는 허무함만을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시골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그의 삶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그가 미래로 건너가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자기의 삶을 걸고 시간의 연속을 끊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거든요. 시골 사람은 “지금은 안 돼”라고 하는 매번의 문턱에서 시간 문지기와 함께 뒹굴었습니다. 그의 콧수염을 관찰했고, 옷감을 만져보았지요. 나중에는 자신의 노쇠함과 뒤틀림을 앞세워 문지기의 몸뚱아리를 비틀기도 했습니다. 시골 사람은 자기 존재를 던져 매 순간 시간의 불연속을 창조했습니다. 무엇보다 시골 사람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었지요.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가?’ 

 

 

“지난 수년 동안 나 이외에는 아무도 입장을 허락해줄 것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런가요?” 문지기는 그 시골 사람이 이미 임종에 다가와 있다는 것을 알고, 희미해져 가는 그의 청각에 들리도록 하기 위해 소리친다. “이곳에서는 너 이외에는 아무도 입장을 허락받을 수 없어. 왜냐하면 이 입구는 단지 너만을 위해서 정해진 곳이기 때문이야. 나는 이제 가서 그 문을 닫아야겠네.”

「법 앞에서」
       

문지기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너의 시간은 오직 너만의 것! 네 눈이 가닿는 모든 지점이 전부 너의 미래라는 것! 모두에게 주어진 균질적 시간이란 없었습니다. 누구나 자기의 시간을 살 수 있을 뿐! 삶은 절대로 과거나 미래의 한 점으로 수렴하지 않지요. 카프카의 시계는 원운동도 직선운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과거는 미래의 원인이 아니며, 미래는 과거의 목적이 아닙니다. 『성』에서 K는 백작님이 계신 성안으로 들어가려고 기를 쓰지만, 그가 왜 고향 마을을 떠나 이런 여정을 시작하는지는 카프카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K의 지금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방향이 펼쳐지고, 죽은 자와 태어나지 않은 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사건을 일으키는 무대이지요. K는 매 순간 새로운 방향 앞에서 놀라움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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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시간은 매순간, 새로운, 시간입니다

 

 

 

 

3. K, ‘지금’의 정원사     

 

K와 시골 사람의 정체를 더 깊이 질문할 수 있는 작품은 「만리장성의 축조」입니다. 

   

우선 이 작품은 카프카의 시간관을 잘 보여줍니다. 북방 오랑캐를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아야 했을 때, 언제 어디서인지 모르겠으나 부분축조 방식이 선택되었지요. “부지런한, 그러나 긴 인생에서도 목적에 이르지 못하는 그런 작업의 희망 없음이 그들을 절망시키고 무엇보다 작업에 대하여 쓸모없게 만들 테니까.” “인간 존재란 근본이 경박스럽고 날아다니는 먼지의 천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떠한 속박도 견디어내지 못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부분부분 쌓아 올려지고 있는 장성을 보며, 자신들의 지금이 위대한 업적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 리를 쌓아야 하는 계획 속에서 황제는 이미 돌아가시고 없지요. 부분과 부분을 이어주던 칙량사도 어딘가의 벽을 앞두고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요.    

    

 

어느 누구도 이곳을 뚫고 나가지는 못한다. 비록 죽은 자의 칙명을 지닌 자라 할지라도 – 그러나 밤이 오면, ‘당신’은 창가에 앉아 꼭 그렇게, 그렇게 희망 없고 또 그렇게 희망에 차서, 우리 백성은 황제를 바라본다. 어느 황제가 통치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또한 왕조의 이름마저 확실치 않다. 학교에서 그 비슷한 많은 것을 순서대로 배웠지만 이 점에서는 너나없이 워낙 불확실하다 보니 최우수 학생마저 불확신에 휩쓸리게 된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황제들이 우리 마을에서는 왕좌에 앉혀지고, 노래 속에나 살아 있는 이가 방금 포고를 발하여, 그것을 사제가 제단 앞에서 읽어준다. 고대 역사의 싸움이 여기서는 이제야 비로소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웃 사람이 이글거리는 얼굴로 그 소식을 가지고 당신 집으로 뛰어든다. 비단 금침에 묻혀 호식이 지나친, 황제의 여인들은 교활한 내시들로 인해서 고귀한 법도로부터 멀어졌고, 야심에 가득 차고, 탐욕에 들뜨고, 음탕함으로 널리 알려진 그네들은 아직도 새로이 거듭거듭 비행을 자행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든 빛깔들은 끔찍스럽게 빛을 발한다. 수천 년 전의 어느 황후가 남편의 피를 천천히 들이켰다는 이야기를 언젠가는 큰 비명을 지르며 우리 마을은 듣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백성들은 과거의 지배자들을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고, 현재의 지배자들을 죽은 사람으로 섞기도 한다.

「만리장성의 축조」  

    

“수천 년 전의 어느 황후가 남편의 피를 천천히 들이켰다는 이야기를 언젠가는 큰 비명을 지르며 우리 마을은 듣게 될 것이다.” 천년 전의 황후는 ‘천천히’ 피를 들이키지만, 큰 비명을 지르는 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황급한가요! 시간은 엉망진창!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자신들의 지금은 언젠가 위대해지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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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속성을 믿지만, 시간은 엉망진창!

 

 

 

「만리장성의 축조」에 나오는 부분 축조술은 시간의 연속성이 깨어져 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부분 축조 앞에서 “믿음에 찬 겸손”, “언젠가는 이루어질 장성의 완성에 거는 신뢰”에 사로잡혀 고향에 작별을 고할 때, 수천 년의 뒤죽박죽을 직시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장성의 하급 기술자였던 이 화자 말이에요. 그는 만리장성의 여기저기가 하나도 당연하지가 않습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지금’을 살고 있는 걸까요? 

    

화자는 황제와 장성의 허구성을, 마을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지 않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묻고, 사태의 본질을 깊이 파헤치기에 여념이 없으며, 진지한 연구 속에서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미지로 느끼는 중입니다. “나의 사고 능력이 나에게 지어놓은 한계는 물론 매우 좁고, 그러나 여기서 헤매어야 할 영역은 무한하다.” 만 리로 둘러쳐질 것이라고 약속된 장성 앞에서 이렇게 말할 때, 그는 시간의 깊이와 넓이를 스스로 만드는 자로서 자유롭습니다. 그에게 시간이란 그 자체로 방대하지요. ‘지금’은 한없이 깊고 끝없이 넓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런 시간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주어진 삶에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인용문은 카프카 일기의 한 구절입니다. 카프카는 우리 모두가 시간의 원환 밖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거듭 강조했지요. ‘기원 없이, 목적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까?’ 카프카는 질문으로 넘쳐나는 ‘지금’만을, 만 갈래의 방향을 긍정하는 자유의 순간을 원했습니다.    

  

 

우리를, 다른 사람들인 우리를 그래도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유지해준다. 즉 우리의 무위도식 거의 전부를, 우리는 그들을 균형 속에 위아래로 흘러가게 하면서 우리 직업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 미래가 양에 있어서 우월한 것을 과거는 무게로 대체한다. 그리고 그들의 끝에서는 양쪽을 정말 더 이상 구분할 수가 없다. 가장 이른 청소년 시절은 나중에는 미래처럼 밝아질 것이고, 미래의 끝은 원래는 우리의 모든 탄식과 더불어 이미 경험한 것이고 과거인 것이다. 이 원은 이렇게 거의 완결된다. 우리는 이 원의 주위를 따라가고 있다. 이 원은 이제 우리들 것이다. 하지만 이 원은 우리가 붙들고 있는 동안에 한해서만 우리 것이다. 우리가 한 번만이라도 옆으로 비켜서면 이미 그를 공간 안으로 잃어버린 것이다. 어떤 자기 망각 속에 그리고 경악으로, 놀라움으로, 피곤해서, 산만함 속에 비켜서게 되면 말이다. 이제껏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코를 파묻고 있었다. 지금 과거에 헤엄쳤던 사람이고, 현재 산책하는 사람인 우리는 물러섰고 실패했다. 우리는 법 밖에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런데도 누구나가 우리를 법에 따라 취급한다.

[일기, 1910; 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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