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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 카프카의 마지막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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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2-28 07:00 조회6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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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마지막 질문


 

 

 

 

 


오 선 민


 

1. 최후의 예술을 꿈꾸며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의 연재를 마칩니다. 카프카는 자신의 삶을 ‘탄생을 앞둔 긴 망설임’이라고도 했지요. 저의 연재는 어떤 출발을 위한 도약대가 될까요? 궁금합니다. 연재의 마지막을 위해 저는 카프카의 최후를 공부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삶의 마지막과 작품의 마지막에 대하여. 

    

카프카의 건강은 1920년 무렵부터 점차로 나빠졌습니다. 카프카는 1924년 6월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요, 마지막에는 후두에까지 번진 결핵 때문에 마시지도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고통과 함께 그는 글을 써나갔습니다. 사실, 카프카는 청년 시절부터 그랬지요. 좋은 음식과 충분한 휴식보다는 불면의 밤이 자신의 양생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밤을 낮 삼아, 글쓰기의 고통을 양식 삼아 쓰고 또 썼던 카프카. 펠리체 바우어와의 이별을 결심하고 쓴 편지 한 자락을 보면,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글쓰기에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삶이란 글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내면에는 두 자아가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한 자아는 그대가 원했던 것과 거의 같습니다. 그 자아는 그대의 소원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한 것을 계속적인 발전을 통해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 한편 또 다른 자아는 작업만을 생각합니다. 작업은 이 자아의 유일한 걱정거리지요. 작업은 가장 비열한 상상조차도 이 자아에게는 낯설지 않게 만듭니다. […] 

이 두 자아가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서로 두 손으로 마구 때리며 덤비는 실제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첫 번째 자아는 두 번째 자아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자아는 결코 내적인 이유에서 두 번째 자아를 내동댕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두 번째 자아가 행복해하면 그 자신도 행복해하지요. 두 번째 자아가 짐작컨대 상실감에 빠져 있으면 첫 번째 자아는 옆에 무릎을 꿇고서 그를 쳐다보기를 원할 뿐입니다.

 

*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내는 편지 - 1914년 10월 말 11월 초

 

그런데 카프카는 자신의 글쓰기를 죽음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창작을 위해 나는 ‘은둔자’가 아니라 –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 죽은 사람의 경우와 같은 정적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창작은 깊은 잠, 곧 죽음입니다.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끌어낼 수 없듯이 그 누구도 나를 밤에 책상에서 끌어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이처럼 체계적이고 일사불란하며 엄격한 방식으로만 글을 쓸 수 있고 그 때문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내는 편지 - 1913년 6월 26일

 

그에게 책상이란 하나의 관이었고, 글쓰기란 삶 너머를 경험하는 행위였습니다. 펜을 쥐고 있을 때의 그는 현실을 초월했기에, 정치의 어떤 풍랑에도 내면의 어떤 번민에도 흔들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가 탄생시킨 형상이 바로 갑충으로 변신하는 외판원과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아들, 그리고 아직도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는 K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글쓰기라고 하는 죽음’으로부터 도착한 존재들인가 봅니다.   

    

발자크(1799~1850)와 같은 작가는 평생 소설의 주제나 스타일을 바꾸어가며 글을 썼습니다. 반면, 프루스트(1871~1922)는 오직 한 작품에 생을 다 걸었지요. 14년 이상 집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단 하나의 문제의식, 단 하나의 스타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 평생을 글쓰기를 위해서 다 바치려 했던 카프카의 밤은 어땠을까요? 그는 변화무쌍한 실험적 글쓰기를 했을까요? 아니면 단 하나의 주제를 벼리기 위한 절차탁마를 했을까요? 연재를 하는 동안에 저는 카프카가 제도의 굴레에 갇힌 삶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어, 부모, 친구, 연인, 민족, 전통, 그리고 신. 세계를 빼곡히 채우는 약속의 그물들이야말로 제도라는 것! 그래서 삶의 그물에 여러 겹으로 걸려 있는 존재의 소외와 그 극복에 대한 염원을 담아 저토록 특별한 형상을 탄생시켰을 거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이번에 카프카의 최후와 그 최후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면서 희한한 비약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카프카가 1921년 무렵부터 줄곧 고민한 형상은 갑충이나 K가 아니라, 예술가였습니다. 외줄 타기 곡예사(「첫 번째 시련」, 1921), 단식 광대(「어느 단식 광대」, 1922), 휘파람 가수(「작은 여인」(1923),「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1924)). 그뿐 아니지요. 그가 출판을 원하지 않았던 작품 중에는 벌거숭이 개 댄서가 나오는 「어느 개의 연구」(유고)도 있었습니다. 이들 중 앞의 네 작품이 『어느 단식 광대』(1927)로 사후 출간되는데요, 카프카는 죽기 몇 시간 이 단편집을 교정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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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말년 작품에서 예술가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물론, 1920년까지 카프카가 예술의 문제를 아예 다루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종자』의 마지막에 ‘오클라호마 극장’이 나오기는 해도, 주요 사건의 배경은 아니었지요. 『소송』의 화가도 요제프 K와 무척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그는 법원에 소속된 화가로서 인간의 감각적 인식도 역시 제도화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카프카 최후의 예술가들은 법으로부터의 도주를 꿈꾸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단식광대는 자지도 먹지도 않았는데요, 이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카프카는 생의 마지막에 ‘제도적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갑자기 날려버렸던 것일까요?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카프카의 예술가들의 전신(前身)을 한번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2. 카메라를 든 사나이들  

 

최후의 예술가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관찰가라는 점입니다. 그중에 최고의 관찰꾼은 단식광대일 것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카프카는 일찍부터 ‘관찰’을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었군요! 첫 단편집의 제목도 『관찰』이니까요. 단편 대부분에 나오는 화자도 뭔가를 들여다보며 질문하기를 좋아했지요. 또 장편의 스타들인 카를 로스만과 요제프 K, 그리고 『성』의 K도 모두 법을 향해 과감히 의혹의 눈길을 던지는 탐험가요, 측량사였습니다. 그럼 카프카 최후의 예술가들은 관찰자의 다른 버전일까요? 그렇다면 카프카는 왜 그들을 관찰자의 최종 버전인 ‘K’라고 하지 않고, 예술가라고 불렀을까요? 

    

이런 질문을 품고서 카프카의 관찰자들을 순서대로 다시 살펴보니, 그들 모두가 자신만의 카메라를 들고 조금씩 다른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단편집 『관찰』의 화자들은 창문 밖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세상이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인 규칙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지요. ‘일상을 알알이 채우는 규범들도, 어디 신성한 기원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심 없는 나날의 고개 숙임 속에서 법으로 확정된 것에 불과했구나!’ 그래서 화자들은 버스에서 하차하는 소녀의 옷자락 하나까지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생활의 모든 에티튜드, 계단을 내려오는 아가씨의 발걸음에까지 스며든 질서의 자연스러움이라니! 이들은 ‘관찰’을 통해 이미 주어진 세계를 당연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상한 나라로 바꾸었습니다. 『관찰』의 화자를 계승한 존재는 카를 로스만일 것 같은데요. 그도 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가문의 약속과 회사의 규율과 침실의 모든 규범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지요. 결국 그는 카를 로스만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서는 어디에서나 이상한 자, 아메리카의 영원한 이방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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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예술가-관찰자들

 

 

 

학술원의 원숭이 피터의 관찰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철창 밖에 앉아 있는 인간을 관찰했습니다. 원숭이라는 자기 한계를 슬며시 빠져나가기 위해 타자로서의 인간을 모방하려고 했던 것이죠. 피터에게 관찰은 하나의 학습, 일단의 굴레를 빠져나가도록 돕는 중요한 실천 방법이었습니다. 관찰을 탐구이자, 굴레 밖으로의 탈출법으로 삼았던 또 다른 존재는 『소송』의 요제프 K와 「유형지에서」의 ‘탐험가’라는 인물입니다. 이들은 모두 사법질서를 관찰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요제프 K가 악한 사법 질서를 검토하면서 그와 반대되는 선한 사법 질서를 구축하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탐험가는 끊임없이 ‘법질서’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는 것이지요. 무심하게, 더욱더 무심하게’ 이것이 탐험가식 관찰법이었습니다. 

    

카프카는 『소송』(1914~1915)을 집필하다 말고, 「유형지에서」(1914, 1918 재집필, 1919 출간)라는 작품을 썼는데요. 카프카는 요제프 K식의 관찰에서 어떤 곤란함을 발견했던 걸까요? 빨간 피터가 그랬듯이, 대상을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우리는 그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될 위험에 빠지기도 하니까요. 요제프 K는 ‘어떤 법망도 나를 가둘 수 없노라’ 큰소리치며 적을 연구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법을 욕망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워도 법은 법이겠지요. 피터가 원숭이의 굴레를 빠져나가 인간의 굴레에 갇혔던 것처럼, 열심히 탐구했던 요제프 K도 결국에는 이 법의 그물을 빠져나가, 저 법의 그물에 걸려 좌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는 관찰자는 탐험가입니다. 그는 짧은 여행이 최고라면서, 유형지에서 일어나는 일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방관자적 시선은 유형지의 사법질서를 파괴시켰지요. 죄에 대해 묻기는 하지만, 처벌에는 관심이 없고. 법질서의 기원을 듣기는 하지만, 그 미래를 상관하지 않는 무심함! 탐험가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에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낯선 눈빛을 하고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질서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었기 때문에, 탐험가의 눈 아래에서 제도의 허상이 하나하나 민낯을 드러내었지요.  

 

 

 

3. 측량된 것들의 측량사   

 

그런데 카프카가 탐험가 다음으로 고민한 형상은 ‘측량사’입니다. 사악한 법질서를 파괴하고, 대지를 떠나는 것! 그것이 카프카의 목표는 아니었었나 봅니다. 카프카는 무심한 관찰법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측량사는 이전의 관찰자와 아주 많이 다릅니다. 원숭이나 카를 로스만, 그리고 요제프 K는 모두 선고를 ‘받은’ 자들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감옥에 갇힌 존재라는 것을 알지요. 그들의 관찰은 법이 정해준 한계 때문에 시작된 수동적 투쟁이었습니다. 그런데 K는 스스로 성이 있는 마을에 온 존재입니다. 오직 측량만을 위해서! 스스로 낯선 땅에 도착했다는 점에서는 「유형지에서」의 탐험가와 같습니다. 하지만 탐험가가 유형지를 빠져나가기 위해 급급하다면, K는 마을 사람들에게 단호하게 말하지요. ‘나는 이 마을에 살러 왔습니다!’ K의 관찰은 삶의 반경을 조금이라도 넓히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소설 안에서 K는 측량기구를 들고 다니지도 않고, 어디 높은 곳에 서서 지세(地勢)를 살피지도 않습니다. 그가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도 측량을, 관찰을 하는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그가 이방인의 눈으로 마을을 돌아다니기만 해도, 마을의 여기저기가 고장 나기도 했습니다. 예의, 선함, 강함, 사랑, 우정 등, 그는 측량된 모든 가치들을 처음 들어본다는 듯 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식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가면서 그때그때 먹을 것과 잘 곳을 구했습니다. 그 와중에 애인과 친구가 계속해서 바뀌었지요. 부부라면, 이웃이라면, 선생님이라면, 하인이라면? 그 어떤 사회적 관습도 그의 삶 속으로 온전히 밀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K는 매 순간 눈앞의 사람과, 발 딛는 장소를 다르게 느꼈고, 그랬기에 매번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K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도망가기 일쑤였지요. 왜냐하면, 그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보통 때 같으면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일도 K에게는 솔직히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가장 필요한 것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K 때문에, 오로지 그 때문에 나리들이 방에서 나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침에 눈을 뜬 직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고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 

그렇다, K와 같은 인간이 분명 있는 것이다. 그런 자는 법이든 아주 평범하고 인간적인 고려든 모든 것을 무관심하고 졸린 상태에서 무시해 버리며, 서류 배달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집의 명예를 손상시켜 여태껏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을 일으키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나리들이 직접 저항하기 시작해, 보통 사람들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자제력을 보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요지부동인 K를 몰아내기 위해서 벨에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한 것이다.

『성』 

어째서 K가 그럴 수 있었을까요? K는 이상한 나라를 동경하는 관찰자도 아니었고, 백작님 대신에 왕이 되기를 꿈꾼 반역가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K는 요제프 K처럼, 백작님을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카를 로스만처럼 아무도 이름 불러주지 않는 자가 되기보다는, 누군가의 남편이고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K와 다른 관찰자들 사이에 놓인 가장 큰 차이는 K가 삶을 꾸렸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미 측량되어 공표된 제도를 자신의 삶으로 다시 측정해보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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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새롭게 측량하는 자, 세계 안에서 자기 윤리를 만들어내는 자였습니다

 

 

K는 보여줍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제도’ 속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내 삶을 실체적으로 가꿀까라는 점임을. 물론 그도 계속해서 백작님을 만나야 한다고는 말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백작님은 나와 세계를 공유하는 한 인간일 뿐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K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은 제도에 의탁하지 않고 눈앞의 인간에게서 삶의 직접성을 요구하는 그를 보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아무것도 일구지 못했던 자신들의 무능력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K의 관찰은 이미 측량된 세계 안에서, 자기식의 윤리를 꿈꾸는 자가 던지는 관심과 애정의 눈길이었습니다.     

 

 

 

4. 삶을 조각하는 예술가

 

K가 자신의 삶으로 눈을 돌렸을 때, 카프카는 돌연 『성』을 중단하고 예술의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예술가들도 역시 탐구자였지요. 하지만 이들의 시선은 자기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K의 삶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조용히 자기 방로 돌아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라보기라도 하듯, 카프카의 예술가들도 일상을 응시합니다. 그들은 우선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제도 속에서 조각되어 있는지, 그 미세한 결들을 어떻게 낯설게 감각해 볼 것인지, 그 문제에 몰두했어요. 단식광대가 하는 일은 굶기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먹여 살렸던 모든 것들을 탈탈 털어서 내보이고자 했습니다. 

 

 

거기에는 작은 탁자 위에 세심하게 선택된 환자용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단식 광대는 언제나 저항했다. 그는 그에게 몸을 숙이고 팔을 뻗어 도와줄 준비를 갖추고 있는 여자들의 손안에 자신의 뼈만 남은 팔을 자진해서 올려놓기는 했지만, 일어서려고는 하지 않았다. 왜 사십 일이 지난 지금에서 그만두려고 하는가? 그는 아직도 더 오랫동안, 무제한으로 오랫동안 지탱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 그만두려 하는가? 사람들은 왜 그에게서, 단식을 계속해서 전대미문의 가장 위대한 단식광대가 될 수 있는 영광뿐만 아니라, 그는 아마도 이미 그러한 단식 광대일지도 모르지만, 자기 자신을 능가하여 불가해한 단계에 이를 수 있는 영광도 빼앗아가려 하는가?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단식 능력에 어떤 한계를 조금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단식 광대」

 

그러나 온몸에 새겨진 법의 무늬들을 읽기 위해 시작했던 굶음은 시간을 거듭하면서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굶고 또 굶은 그의 신체는 이제 단식 광대가 어떤 존재인지를 역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철저하고도 집요한 자기 삶의 탐구자가 여기 있노라! 사람들이 단식을 중단시키고자 음식을 들이밀었던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든 것을 벗어던지려는 그의 굶음이, 자신의 본질에 스스로 이르려고 하는 그의 철저한 태도가,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이고자 한다! 내 삶을 살고자 한다!’ 굶음에서 죽음으로 이르는 광대의 온 시간은 가장 자기답게 살고자 하는 예술가의 자기 실험, 자기 창조의 순간순간으로 채워졌습니다. 

    

카프카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삶을 조각한다는 것’, 그 어떤 제도의 힘도 무색하게 하는 자기 창조의 문제를 예술이라는 화두와 함께 돌파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란 ‘삶의 예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카프카에게 죽음은 법 너머의 피안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성찰하고 펼쳐 보이는 ‘글쓰기의 지금’이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를 연재하는 내내, 카프카와도 저와도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작품을 둘러싼 질문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연재는 끝났지만 길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봄에는 카프카처럼 밤 산책을 하세요 ~ ^^  

-오 선 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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