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 어두운 심장을 가진 자 > 글쓰기의 달인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양력 2018/8/18 토요일
음력 2018/7/8

절기

글쓰기의 달인

지금은 꺽정시대 | 소인, 어두운 심장을 가진 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차리 작성일18-08-01 02:43 조회116회 댓글0건

본문

임꺽정 리뷰 ③

 

 

소인, 어두운 심장을 가진 자

성승현

 

 

 

세자의 체질이 약하건만 왕비의 눈에는 튼튼하게 보이어서 도리어 걱정이었다. (홍명희, 『임꺽정』2권, 157쪽)

왕비 윤씨가 처음 입궁했을 때에는 세자가 어린아기라 미워하지 않았으나, 그의 범절이 놀랍게 숙성하여 궁중 상하가 칭송하니 왕비는 은근히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게다가 세자가 여섯 살에 왕세자로 책봉이 되며부터는 본인의 아들은 대군밖에 못 된다 생각하니, 왕비에게 세자는 눈엣가시가 되었다. 이런 까닭에 본래 몸이 약한 세자였건만, 왕비의 마음에는 오히려 튼튼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 마음이 세자의 처소에 방화를 하게 하고, 무당을 사서 세자를 방자하게 만들었다. 

 

범절이 바르고 성숙한 인간을 보면,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 성숙됨을 배우려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말이다. 성숙한 인간으로 자란 것이 아니꼽고, 몸이 회복되는 조짐이 보일 때 ‘저러다 건강해지면 어쩌지’를 걱정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임꺽정』에서는 이런 마음보를 소인의 심장에 빗대어 표현한다. 무엇이 두려워 그랬겠는가. 왕비 입장에서 세자가 본인의 권세를 무력하게 만들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빼앗길 것이 두려워 상대의 것을 빼앗는, 그런 어두운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빼앗길까 두려운 심장

 

당시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조광조였다. 임금은 그의 사람됨을 몰라봤지만, 백성들은 그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칭송하는 이가 많았다. 남곤과 심정은 이런 조광조와 친구들을 모함해 권세를 잡고자 했다. 남곤 일당은 조씨가 임금 된다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자를 배나무 잎새에 새겨 조광조 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결국 조광조, 김식 등이 잡혀 들어갔는데, 죄목은 ‘붕당을 지어 성세를 잡고 궤격한 버릇을 길러 조정을 그르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사람은 남곤이다. 남곤은 기본적으로 다심(多心)한 사람이었다. 조그만 일에도 마음이 안 놓여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거나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소인이 할 법한 일을 하고는 ‘다른 사람이 날 소인으로 보면 어쩌지’ 걱정하는 스타일이랄까. 

 

 

4a4b0ac6769fe38eb91689bc38723faf_1533056

 

어느 날, 김식의 아들 덕순이가 아버지를 모함한 복수를 하기 위해 남곤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갔다. 그날은 남곤이 외박을 한 날이라, 덕순이는 벽에 걸린 남곤의 옷을 내려서 베개에 입혀놓고 환도로 내리쳤다. 옷 입힌 베개에 칼자국이 깊이 났다. 이 사건 이후, 남곤은 자주 소름이 끼쳤다. 그 즈음이었을까. 자꾸 사람들에게 묻곤 했다. “여보게 내가 소인인가?”하고. 이처럼 소인을 묻다가 병이 났는데, 병이 나며부터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하였다. “덕순이가 날 죽이러 왔다.” “아이구, 칼이 무서워. 칼이 무서워.” 하다가 입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함께 일을 도모했던 심정이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원통한 죄명으로 사약을 먹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천도가 무심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남곤과 심정이는 권세를 한번 잡아보려다 목숨을 잃게 된다. 처음에 조광조 등을 모함한 것은 판국을 뒤집어 권세를 잡으려고 한 것이고, 후에 여러 사람을 살해한 것은 신변의 위험을 없이하려고 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단속했지만 남곤의 말로는 그다지 편안하지 못했다. 본래 다심했던 남곤은 베갯 사건을 겪고 난 이후 더욱 예민해졌다. 애써 빼앗아 온 권세를 잃을까 두렵고, 자신이 꾀나 쓰는 비겁한 소인인 것이 들통날 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결국 자신을 잡아먹은 것이다. 

 

 

빼앗겨도 싸우는 심장

 

중종과 남곤 일파의 질투심을 부추겼던 자, 조광조다. 그는 강직한 유학자인데,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안위를 살피지 않고 바로잡으려 하는 성정을 가졌다. 조제학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벼슬이 올라 대사헌이 되었는데, 대사헌은 풍기를 바로잡는 직책이었다. 자기 성정에 딱 맞는 옷을 입게 된 셈이다. 조광조가 대사헌 된 지 불과 삼년 만에 세상 풍기가 일변했다. 청촉(청을 들어달라 부탁하는 것)이 없어지고 뇌물이 끊어졌다. 사람들은 세상이 변하였다고 좋아했지만, 뇌물이나 받아먹고 청촉질이나 하던 사람들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었을 것이다. 활을 들고 틈만 나면 조광조를 쏘겠다고 노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4a4b0ac6769fe38eb91689bc38723faf_1533056

  

조광조는 임금이라도 잘못된 처사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었다. 소격서 폐지가 안건으로 상정되었는데, 임금이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면 오늘 가서 고하고, 내일도, 모레도 고한다. 그래도 안 되면, 사람들을 끌고 가서 함께 고한다. 낮에도 고하고 밤에도 고하고, 새벽에도 고한다. 이에 임금이 하릴없이 허락하게 된다. 하지만, 임금 입장에서는 따르고 싶지 아니한 것을 부대끼다 못해 따르게 된 셈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런 사건도 있었다. 남곤 일파와 적을 두고 있던 대신인 신용개가 죽었다. 대신의 초상이라 임금이 별전에서 망곡하려고 하교까지 있었는데, 남곤 이외 몇몇이 중지하시라고 밀막았다. 조광조가 가만히 있었겠는가? 

 

“신용개 초상에 망곡하옵시려다가 중지합시는 것은 무슨 일이오니까? 일전에 망곡하옵신다는 하교를 봉행하지 아니한 것은 도로써 임금을 섬기는 신자의 할 바이 아니외다.” (62쪽)

임금께 알현해 이같이 아뢰니, 임금도 무안하였거니와 남곤 이외 몇 사람은 무안이 지나서 분으로 변하는 일도 있었다. 남곤 일파의 미움과 원한을 산 조광조는 친구 김식, 기준 등과 잡혀들어가게 된다. 조광조는 ‘이 같은 처사는 임금의 본심에서 나온 게 아닐 거’라며 통곡한다. 반면 김식, 기준, 윤자임 등은 “죽음을 당하여는 끝까지 옹용(마음이 화락하고 조용함)한 것이 글자 배운 보람인데 통곡할 까닭이 무어 있소?라며 사랑방에서처럼 웃고 떠든다. 조광조는 옷자락에 ‘임금이 친히 한번 심문하여 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는 상소를 써서 올렸다. 하지만 기다려도 답이 없자, 소원이 틀린 것을 알고 통곡을 그친다. 깨끗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는 귀양을 떠났지만, 후에 가죄를 물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조광조는 시종일관 옳지 않은 일에 정면대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싸움꾼이 된 것 마냥. 이 힘은 어디에서 연유했을까?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뜻을 펼친 적이 없다. 뇌물이나 청탁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임금이 세상을 공평무사하게 다스리도록 돕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미션이었다. 사심 없는 마음이었기에 담대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남곤도 학문이 꽤 밝은 사람이었다. 함께 일을 도모한 심정이는 꾀가 밝은 자였지만, 남곤은 학문에 능통한 자로 소문이 자자했다. 조광조의 친구들이 말한 것처럼 '글자 배운 보람'이 무엇인가. 죽음이 눈앞에 있어도 자신이 떳떳하다면 담대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남곤은 글자 배운 것을 권세 잡는 것에 썼다. 또, 심정의 꾀와 만나니 학문의 뜻이 혼탁해질대로 혼탁해졌다. 결국 '조광조와 친구들'과 달리 죽음 앞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버리게 된 것이다. 

 

 

4a4b0ac6769fe38eb91689bc38723faf_1533057

 

 

 

“임금이 밝으면 소인들이 모함할 수 있나요?” (90쪽)

이 모든 일(기묘사화)이 소인들의 농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자, 덕순이가 위와 같이 반문한다. 임금의 귀가 어둡지 않다면, 소인들의 모함을 곧이들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임금은 소인의 마음보를 가졌다. 매사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조광조를 고맙다 생각하기 보다는 귀찮은 존재라 인식했다. 또 왕비 윤씨의 보드라운 손길이 한번 닿고 나면, 자신이 숙고해서 내린 결단도 하루아침에 뒤집는 자였다.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릴 때로 말하더라도 어제는 죽일 죄가 없다고 잘라 말씀한 임금이, 곤전에서 한 밤을 지내고 오늘 갑자기 사약을 내렸으니 말이다. 우리는 알 수 있다. 임금에게 더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 하지만 소인의 마음으로는 알아차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 자가 곁에 있는데, 그 자를 좋아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사심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밝지 않으면 소인들의 말에, 욕망에 쉽게 휩쓸릴 것이니 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mail : mvqblo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