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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꺽정시대 | 임꺽정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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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차리 작성일18-12-05 01:32 조회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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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리뷰 ⑪

 

임꺽정의 선택

성승현

 

 

 

“당초에 말이 없으니 사람이 답답하지 않소. 대체 형님같이 과단성 많은 이가 오늘은 웬일이오?” (『임꺽정』 6권, 153쪽) 

꺽정이가 전에 없이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유복이가 답답해하며 한 마디 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 안 그럴 수가 있겠는가. ‘도적’으로 사느냐 마느냐라는 기로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도 늘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이 온다. 우물쭈물하다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할 때가 있고, 충동적이라 보일 만큼 과감하게 선택하는 때가 있다. 태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결과는 동일하다. 그런데, 이 ‘태도’가 중요하다. 우물쭈물 선택한 경우에는 그 다음 스텝이 능동적일 수 없다. 그 선택을 억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니,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보이기 일쑤다. 하지만,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경우(충동적으로 보일지라도)에는 그 선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해서, 발걸음이 가볍다. 임꺽정은 어떤 선택을 할까. 


 

 

사면초가에 빠진 꺽정이

꺽정이의 태평한 성격 때문인지, 그는 마치 세상 걱정 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다. 스승이며 아버지 같은 (병해대사가 된) 갖바치가 있고, 봉학이와 유복이 같은 동무가 있고, 아내와 아들도 있다. 게다가 별일 없이 그럭저럭 살고 있다. 이런 꺽정이에게 고비가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은 꺽정이가 잠시 집을 비운 때 일어났다. 아비(돌이)가 오랜 병상에 있어 ‘금새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두고 떠났던 차였다. 옆집에 살던 최서방이라는 자와 문제가 생긴 것이다. 최서방이라는 자는 몇 년 전 살던 곳을 패가하고 읍으로 들어온 사람인데, 위인은 난봉이요 또 게으름뱅이였다. 다만 아내가 부지런하여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붙임성 좋은 최서방 아내가 꺽정이 집에 찾아와 “이웃간에 왕래가 없어 쓰겠소? 이웃사촌이라니 사촌처럼 정답게 지냅시다”라고 말하여 친하게 되었다. 

 

하루는 꺽정이 동생인 팔삭동이가 최서방네 집에 놀러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팔삭동이가 “우리집에 피륙이 퍽 많소. 다락에두 있구 광속에두 있소.” “명주가 다 무어요, 대국 비단두 있소.”와 같은 말로 집안의 넉넉한 사정을 말하였다. 이때 최서방의 큰아들이 꺽정이 아내에게 맞고 들어왔다. 꺽정이 아내가 ‘거지새끼’라며 쥐어박았다고 하니 최서방이 화가 나서 속으로 모함 잡을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백정의 집에 대국 비단 있는 것두 좋을 것 없어’하면서. 그날로 최서방이 관가에 들어가 “백정의 자식 꺽정이 집에 평양 진상봉물이 있다”고 밀고를 했고, 다저녁때 집뒤짐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안 식구 모두 잡아가뒀다. 군수가 집안 식구 문초를 하는데, 돌이(꺽정이 아비)는 이미 다 죽은 송장이 되었고, 팔삭동이, 백손이 어미는 매를 맞아 장독이 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꺽정이가 집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아비는 죽었고, 팔삭동이도 곧이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꺽정이마저 옥에 갇힐 신세가 됐다. 청석골 아우들이 찾아와서 “옥에 갇힌 사람들까지 아주 빼가지고 청석골루 가는 게 상책”일 거라며 결정을 재촉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꺽정이 앞에 세 갈랫길이 놓여 있었다. 한 갈래는 식구들이 갇혀 있는 옥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또 한 갈래는 식구들을 버리고 정처없이 떠나가는 길이고, 마지막 한 갈래는 식구들을 옥에서 빼내가지고 청석골로 달아나는 길이니… (152쪽)

도적놈의 힘으로 악착한 세상을 뒤집어엎을 수만 있다면 꺽정이는 벌써 도적놈이 되었을 것이다. 도적놈을 그르게 알거나 미워하거나 하지는 아니하되 자기가 늦깍이로 도적놈 되는 것도 마음에 신신치 않거니와 외아들 백손이를 도적놈 만드는 것이 더욱 마음에 싫었기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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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이 된 꺽정이 

꺽정이가 도적이 되는 것은 내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선택의 어려움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당연한 것이, 내게 ‘의적 임꺽정’이라는 키워드는 너무 익숙했으니까. 꺽정이를 태생이 도적이었던 걸로 생각했다는 것이 좀 우습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꺽정이는 누구보다 고민이 깊었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봉학이가 어릴 적 동무 유복이가 댓가지 도적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형님이 가까이 있으면서 유복이를 도적놈 노릇하게 내버려둔단 말이오”라며 꺽정이를 책망하던 일이 있었다. 이때 꺽정이는 “양반의 세상에서 성명 없는 상놈들이 기 좀 펴고 살아보려면 도둑놈 노릇밖에 할 게 무엇 있나”라고 말하는 데 이어 “내 생각을 똑바루 말하면 유복이 같은 도둑놈은 도둑놈이 아니구 양반들이 정작 도둑놈인 줄 아네. 나라의 벼슬두 도둑질하구 백성의 재물두 두둑질하구, 그것이 정작 도둑놈이지 무엇인가”라며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대체 이 세상을 어떻다구 생각해야 하나”라는 화두가 꺽정이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대한 고민은 벼슬을 다니는 봉학이보다, 도적이 된 유복이보다 더 깊었다. 이제 고민은 끝났다. 꺽정이는 갑자기 꿈꾸다가 깬 때와 같은 태도로 말했다. 

 

 

 “서장사 말대루 할 테니 식구 빼내올 계책을 서장사가 담당하우” (153쪽)

도적이 된 꺽정이의 첫 명령이었다. 이미 양반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 꺽정이가 도적놈이라는 세상의 편견 때문에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결정은 단번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장이 되었다. 

 

칠장사에서 생불노릇을 하고 있던 병해대사(갖바치)는 그해에 세상을 떠났다. 꺽정이는 병해대사를 보내며, 그곳에서 칠두령을 모아 결의를 맺기로 했다. “임꺽정이 신사생 삼십팔세, 이봉이학이 신사생 삼십팔세, 박유복이 임오생 삼십칠세, 배돌석이 임오생 삼십칠세, 황천왕동이 을유생 삼십사세, 곽오주 임진생 이십칠세, 길막봉이 정유생 이십이세”라고 읽은 뒤에 “결의형제 사생동고”라 외치며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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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이 되고 달라진 것들 

임꺽정의 힘이 장사인 것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일이었다. 꺽정이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 정도는 상식(^^)이었다. 동시에 ‘임꺽정을 안다’는 것이 ‘빽’이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이같은 아우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꺽정이를 보면 꽤 상식적인 인물이었다. 평양 진상 봉물 사건에 연루되어 집안 사람들이 모두 옥에 갇히고 난 후, 집에 돌아온 꺽정이를 잡으러 장교들이 몰려왔을 때였다. 

 

 

“내가 지금은 못 잡혀가겠소. 죽은 아버지를 아무렇게라두 땅에 끌어 묻구야 잡혀갈 테니 오늘은 그대루들 가구 내일모레쯤 다시 나오.”(131쪽) 

장교 삼사십명이 무엇인가. 삼사백명이 몰려와도 꺽정이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할 기세였다.하지만 자신이 한번 잡혀간다구 말한 바엔 도망할 리가 없구, 식구들이 옥에 갇혀 있는데 혼자 도망해서 무엇하느냐고 차근차근 말하니, 장교도 두말 않고 물러났던 것이다. 

 

하지만, 사정은 달라졌다. 칠장사에서 결의형제를 맺고 돌아오며, 꺽정이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내 말을 거역하는 것이 죄다. 네가 아직 나를 잘 모르겠지? 나는 어젯밤에 안성서 옥을 깨친 임꺽정이야. 지금 나하구 같이 갈 테냐, 안 갈 테냐? 얼른 말해라.” (346쪽)

꺽정이가 칠장사에서 자신들의 정체를 모두 알게 된 불상쟁이에게 윽박지르고 있다. 다른 절에서 불상을 파게 해주겠다며 함께 가자고 하니, 불상쟁이가 위험을 감지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화가 난 꺽정이가 ‘자기 말을 거역하는 것이 죄’라며 ‘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꺽정이의 세상이 달라졌다는 신호다. 이제, 꺽정이 자신의 말이 법이 되었다는 뜻이다.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거칠고 난폭해졌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세상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는 그런 선언. 이것이 임꺽정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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