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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生生) 동의보감 | <폐경기 여성의 몸과 삶> 분노, 삶의 변화를 향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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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씨앗 작성일19-01-29 11:33 조회4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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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삶의 변화를 향한 첫걸음

                                                                                                                                                   ​최소임

폐경기에 찾아온 분노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서문의 제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이다. 여기에는 저자인 크리스티안 노스럽이 겪은 폐경기 초반 경험이 소개되어있다. 그녀의 폐경기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폐경기가 시작되기 1, 2년 전. 그녀는 이 시기를 매우 힘들게 보냈다고 고백한다. 누군가 일을 방해하면 지나치게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직원들이나 동료가 자신만큼 헌신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들과 자주 언쟁을 벌였다. 예전에는 이런 일쯤은 너그럽게 넘기곤 하던 그녀였으니 이런 상황이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폐경기기 가까워지자 그녀는 점점 더 인내심을 잃어갔다.

바쁘게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데 열여덟 살인 딸이 주방에 들어와 “엄마, 저녁 언제 먹어요?”라고 묻기만 해도 화가 벌컥 났다. 왜 언제나 나만 식사준비를 해야 되는 거야? 난 지금 배도 안 고프고 일할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남편이 부엌에 들어오면 천지라도 개벽한데? 다른 식구들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왜 다들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면서 내가 해다 바치기만 기다리는 거야! 
                                                                   - 크리스티안 노스럽,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13쪽 

 이런 기분은 다른 집안일에 대해도 마찬가지였다. 무엇하나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는 것에 화가 났다. 가임기 때는 달랐다. 이렇게 가족을 보살피는 게 아내이자 엄마인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감수하고 받아들였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라는 우쭐한 기분에 빠져 그 역할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폐경기가 되자 그녀는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자제력을 잃어갔다. 마음속에는 늘 뜨거운 용암이 부글부글 끓으며 분출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분노는 갈수록 커져갔다. 


 폐경기를 맞이한 나의 친구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마냥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흔쾌히 참석했던 시댁 식구의 모임에 가기가 싫어졌고, 친정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전과 다르게 무언가에 붙들린 듯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요즘 일상에서 가장 버겁고 신경 쓰이는 일은 밥상을 차리는 것이다. 거의 30년을 전업주부로 너무나 익숙하게 하던 일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정말 당혹스런 일을 겪었다. 20년 넘게 모임을 함께 한 친구들과의 여행.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 만큼 오랜 친분을 자랑하는 친구들이다. 그런데 나의 친구는 여행 내내 삐지고 수시로 화를 냈다. 예전의 친구였다면 충분히 넘어가고 이해했을 사소한 상황이었고 한 번도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친구는 도저히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해오던 많은 일들이 예민하게 느껴지고 짜증스럽고 화가 난다. 또 수시로 마음이 변해서 계획을 세울 수 없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말을 달고 산다. “변덕이 죽 끓듯 해.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어.” 당연히 사람들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고 불편하다. 그녀는 매우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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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변화의 의지와 에너지
 폐경기가 되면 왜 분노가 생기는 것일까? 폐경은 월경이 멈추는 것이다.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다. 하지만 폐경기의 호르몬 변화는 월경을 끝내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뇌의 신경계가 완전히 재구성된다. 그 중 하나가 분노 호르몬의 생성이다. 

폐경기가 시작되면 성선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은 뇌가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자극한다. 따라서 여성들은 이전에는 쉽게 지나치던 일들에 매우 민감해지고 심지어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한다. 호르몬 변화로 홍조를 경험하기 훨씬 전부터 우리의 뇌는 성선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이 생성되는 시상하부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이 부위는 경험이나 표현, 또는 분노와 같은 감정을 관장하는 곳이다. ... 중년여성의 몸과 뇌는 거리낌 없이 분노를 겉으로 표출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조성해준다. 이전에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 같은 책, 83쪽 

 성선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은 성 호르몬 중 하나로 뇌의 시상하부에서 생성된다. 이 호르몬이외에도 우리가 많이 들어본, 에스트로겐이나 프로게스테론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호르몬이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원한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폐경기를 겪는 모든 여성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왜 그럴까? 여러 호르몬의 수치 변화는 분노와 같은 강력한 감정뿐만 아니라 지난날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분노가 전적으로 호르몬의 변화에 의한 감정은 아니다. 단지 호르몬의 변화가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되살아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다. 이 감정은 해결되지 않은 근원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럼 해결되지 않은 감정,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어떻게 생겼을까?  
 

 여성은 생리적으로 사춘기 이전이나 폐경기이후보다 가임기 동안 자신을 통제 - 지적으로, 생리적으로, 사회적으로 - 하기가 쉽다. ... 여성들은 가족을 돌봐야 하는 시기에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참고 견디며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비록 자신이 바라는 바가 아닐지라도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보다 참는 것이 가정에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다시 말하면 여성들은 생리적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거나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 - 생명을 보존하고 자손을 번식하는 역할 - 을 점차 소중하게 여기는 반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또 해묵은 상처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장시간 지속되어 온 부당한 대우에 맞서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되도록 회피하려고 한다.                                               - 같은 책, 80쪽 

 여성들은 가임기 동안에 생명을 보존하고 자손을 번식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지적으로, 생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자기 통제를 했다. 바쁘게 생활하면서 참고 견디면서 넘어갔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꾹꾹 눌러져서 저 아래에서 차곡차곡 쌓여갔다. 폐경기의 호르몬 변화는 그동안 호르몬의 영향으로 가려졌던 문제들을 표면으로 떠오르게 한다. 우리의 몸은 여성이 폐경이후에는 다르게 살라고 말한다. 번식과 양육에서 벗어나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다양하고 자유롭게 펼치라고. 그동안 금지되었던 선을 넘어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리라고. 이런 삶의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 바로 분노이다. 분노는 해결해야할 문제로 데려다 줄 안내자이며,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이고, 원동력이다.   

분노는 표출되어야 한다. 특히 중년에는 분노를 발산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나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분노는 내면의 지혜가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우리는 그 소리를 귀담아 듣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 만일 여성들이 폐경기 전에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그 메시지를 깨닫지 못했다면 폐경기야말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폐경기가 되면 재편성된 뇌가 명확한 통찰력을 갖게 해주고 분노의 동기를 좀 더 쉽게 규명하게 해준다. 따라서 분노를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을 위한 촉매로 이용할 수 있다.
                                                                                                                             - 같은 책, 85쪽  

 이어서 노스럽은 경고한다. 우리가 해결되지 않은 감정적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분노에 귀를 기울여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면 결국 심한 우울증에 걸리게 될 것이며 심장질환, 암, 골다공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폐경기전까지 여성들이 오랫동안 수행한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은 여성의 삶에서 단단한 지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지반위에서 여성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폐경기의 분노가 그 단단한 지반을 마구 흔들리게 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두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분노가 올라온다면 인생의 후반기에 펼쳐질 새로운 삶을 위한 첫걸음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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