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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꼼꼼히 읽기 | [조설근 평전](3)1.친화이강의 풍류가 과거의 영화를 노래하네(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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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나비 작성일18-02-19 01:35 조회5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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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새(曹璽)는 남경에 온 후 전심전력으로 자신의 일에 임했다. 그는 매우 빠르게 강녕직조 부서의 비교적 혼란했던 국면을 통제하였고 각 항목의 업무를 질서정연하게 정리했다. 그 외에도 그는 자신의 봉록을 덜어 이재민을 구제하는데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강희제의 높은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얻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조새는 매우 특별한 특혜를 받게 된다. 원래 강녕직조는 3년에 한번씩 교대하는 자리인데 강희제는 조새에게 영구직으로 이 자리를 맡겼을 뿐 아니라 이 직위를 세습할 수 있도록 하여 조새의 아들로 하여금 이어받도록 허락한 것이다. 이런 특혜는 조씨 가문이 매우 빨리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고 이로써 강남의 유명한 명문가문이 될 수 있었다. 강녕직조부()는 지금의 남경 대행관(大行官) 부근에 위치했다. 원래의 건축물은 수백년의 전쟁과 긴 시간 동안의 재난을 거치면서 이미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조씨 가문의 전성기는 바로 조설근의 조부인 조인(曹寅)의 시기이다. 조인은 조새의 장남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했는데 전하는 말에 따르면 4세에 이미 한자의 사성을 구분했다고 한다. 성장한 후에 그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쳤는데 시사를 짓는데 능하였다. 그는 수많은 문인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으며 당시 강남 지역의 문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인은 희곡을 좋아하여 적지않은 극본을 창작했는데 집 안에 극단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문인들의 일종의 고아한 취미였는데 평상시에 집 안에서 자주 연극을 공연 하는 것이다. 조인은 또 책 읽는 것과 모으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다. 집안의 형편이 넉넉하여 그는 수많은 진귀한 서적을 소장하고 있었다. 장서를 전문적으로 기록해 놓은 <<연정서목:楝亭書目>>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장서가 3200여 종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인은 강희황제로부터 <<全唐詩>><<佩文韻府>>를 판각하는 일에 임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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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 시집<<楝亭詩鈔>>의 첫 장

 

 

조인이 다년간 집안을 경영하며 영향을 미친 때문인지 조씨 집안은 점차 학자가문의 기풍을 띠게 되었고, 문화적 정신이 농후하게 배어들게 되었다. 이런 문화적 분위기가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까지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론해볼 수 있다. 조설근의 아버지, 숙부, 또 조설근과 그의 형제 자매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러한 고아한 집안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자료의 부족으로 우리는 조설근과 그의 조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정황을 알 수는 없으나, 몇 가지 사실들은 추론해 볼 만하다. 조설근은 어린 시절 조부의 사랑을 받으며 교육받았을 것이고, 그가 조부로부터 받은 영향이 매우 컸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훗날 이러한 영향이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 <<홍루몽>>에서 그것을 느낄 수가 있다. 조설근의 시인 기질이라든가 풍부한 학문과 수양은 바로 이러한 집안 환경으로부터 그에게 깊이 스며들게 되었고, 가족과 창작은 이렇게 매우 밀접하게 융합되었다.

 

조인은 사업에 있어서도 매우 성공을 거두었다. 강희23, 1684년에 조새가 세상을 떠났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강희황제는 관례를 깨고 조인으로 하여금 부친의 강녕직조 직위를 이어받게 했다. 부친인 조새와 비교했을 때, 조인과 강희황제의 관계는 훨씬 더 친근했다. 두 사람은 연령대가 비슷했는데,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조인이 어렸을 때 강희황제의 독서 짝(伴讀)을 했었다는 사실이다. 독서 짝이라는 것은 황제를 보필하여 책을 읽는 것이다. 청조에는 조정에서 황자(皇子)의 교육을 매우 중시했기에 황자들이 책을 읽을 시기가 되면 왕공귀족들의 자제들 중 총명한 아이들을 선발하여 황자와 함께 책을 읽게 했다. 이런 독서 짝을 하는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황제와 함께 책을 읽고 생활하여, 쉽게 우정의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황제가 즉위하게 되면 그들은 자연히 황제의 어린시절 친구로서 신임과 중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조인은 강희황제와 이렇게 군신이자 친구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했는가를 다음의 한 가지 사실로 알 수 있는데, 강희 황제는 6번의 남방 순행을 했는데 그 중 4번을 조씨 집에서 묵었다. 이것으로 강희 황제의 조씨 집안에 대한 신임과 편애를 상상해볼 수 있겠다. 동시에 우리는 조씨 집안의 부귀의 정도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홍루몽>> 중에 황제의 남순(南巡)이 나오는데, 많은 연구자들은 이것이 조씨 가문이 직접 겪은 일을 원형으로 하여 창작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황제의 신임과 총애가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조씨 가문은 곧 신임과 총애의 배후에 있는 고난을 맛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부채였다. 당시에는 재무 관리가 요즘처럼 엄격하게 일체 관리되어 공사(公私)가 분명하게 나뉘어 있지 않았다. 청조는 전제왕조이다. 황제의 와 국가의 은 뒤얽혀서 분명히 나눌 수 없었다. 강희황제의 남순(南巡)같은 경우, 황제가 4번을 조씨 가문에서 묵은 일은 분명히 수많은 대신들이 그 같은 은총 입기를 바라 마지 않는 영광된 일이다. 하지만 매우 명확한 사실은 황제와 다수의 수행원들이 쓰는 지출 항목은 모두 조씨 가문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제의 호화로움과 사치는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엄청나게 큰 지출을 요구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조씨 집안은 황제의 수행 신하들과 관리들, 또 황자들에게 모두 뇌물을 바쳐야 했다. 그들이 황제의 면전에서 자기들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지 않도록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이다. 조씨 집안만의 지출에 대해서 말하자면 주인과 하인을 모두 모은 가족의 수는 몇 백명에 이르렀다. 그 지출 항목만 해도 너무 방대한데, 빈곤한 문인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일에서부터 진귀한 도서를 구입하는 등등의 일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각 항목의 지출을 합쳐보면 이미 가족의 수입을 넘어선다. 그러니 점차 거대한 부채가 쌓여가는 것이다.

 

빚이 있다는 것은 정부의 관리에게는 하나의 엄중한 죄명이었다. 조정이 심각하게 추궁한다면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사실 그 당시 이미 한 대신이 조인의 심각한 부채를 알게 되어 강희황제에게 보고를 하고 감사를 진행하기를 요구했다. 강희황제는 조씨 가문의 부채가 자기와 관련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또 조인을 매우 신임하고 있었기에 이 사건으로 조씨 집안이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랬다. 그는 그 대신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여러 신하들에게 분명히 설명했다. 강희제는 대략 따져 본 후에 그 부채의 규모를 180만 냥의 은화로 확정했다. 그리고 조인에게 그 빚을 메울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물론 이 숫자는 실제 빚의 규모보다 매우 적었음에도 여전히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그 부채를 메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강희황제는 조인에게 적합한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그를 양주로 보내 소금을 관리하는 부서를 맡게 했다. 이 직무에서 얻게 되는 은냥으로 부채를 메우라는 것이었다. 

 

자, 조인은 이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궁금하면 다음회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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