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설근 평전](4)1.친화이강의 풍류가 과거의 영화를 노래하네(三) > 동방신기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양력 2018/12/12 수요일
음력 2018/11/6

절기

동방신기

『홍루몽』 꼼꼼히 읽기 | [조설근 평전](4)1.친화이강의 풍류가 과거의 영화를 노래하네(三)

페이지 정보

작성자 흰나비 작성일18-02-26 01:46 조회434회 댓글0건

본문

[지난 글에 이어서]

 

 

조인은 부채의 전부를 메울 수는 없었다. 강희51년, 1712년에 조인은 질병으로 사망한다. 메우지 못한 백은(白銀) 32만냥의 부채는 그의 아들 조옹(曹顒)에게 남겨졌다. 그의 죽음은 조씨 가문에 심각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그가 이룩한 가문의 번성의 신화는 다시 재현되지 못했다. 

 

조인이 세상을 떠난 후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로 강녕직조를 조씨 집안에서 계속 맡을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였다. 조인에 대한 그리움과 조씨 가문을 돌보려는 마음 때문에 강희황제는 다시 한 번 관례를 깨게 된다. 조인의 젊은 아들 조옹으로 하여금 강녕직조를 이어받게 한 것이다. 강희황제는 이 젊은 계승자에게 꽤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를 매우 총명하며 재능이 있다고 여기면서 그에게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참으로 애석하게도 조옹은 건강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겨우 3년만 일하고는 강희 54년 1715년에 죽게 된다. 그의 후손은 오직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 조천우(曹天佑)가 있을 따름이다. 흔히 말하는 유복자이다. 어떤 이들은 이 조천우가 바로 조설근이라고 말한다. 물론 매우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논리적인 근거로 추론한 것일 뿐, 좀 더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증명해내야 비로소 확실하게 될 것이다. 

 

이제 조인이라는 이 인물의 계승자가 없다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조인은 오직 한 명의 아들, 조옹이 있을 뿐이었는데 이제 이 아들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때 강희황제는 또 다시 직접 간여하여 조인의 동생인 조선(曹宣)의 네째 아들 조부(曹頫)로 하여금 조인을 계승하여 강녕직조를 이어받게  한다. 강희제의 비호 아래, 조부(曹頫)는 그의 할아버지(祖父)와 형제들처럼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몇 년간 영위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이 지속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오래지 않아 강희 황제가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한 왕조의 천자에 한 왕조의 신하’. 강희제가 세상을 떠나자 옹정황제가 등극하게 되었다. 이는 성격으로 보나 일하는 스타일로 보나 모든 면에서 아버지인 강희제와 판이한 새로운 황제의 출현이었다. 황제가 바뀌자 모든 것이 바뀐다. 자연히 조씨 가문의 명운도 포함하여...

 

 

cb7337e29cccae493512a84852c52b93_1519578

 

 

 

(三)

 

새로 등극한 황제는 자기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분명 부친 강희황제처럼 조씨 가문을 돌보며 편애하지 않았는데, 그 행적으로 봤을 땐 심지어 이 가문을 싫어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등극한지 오래 지나지 않아 바로 갖가지 핑계를 잡아내어 조씨네 집안을 힘들게 했다. 조부가 올린 상소문에 반영된 어떤 상황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혼을 낸다든지, 조부가 구매해 온 견직물 등을 불합격이라고 지적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강희제와 조인(曹寅)간에 있었던 그런 화목하고 우정 돈독한 군신 관계는 절대 다시 볼 수 없었다. 짧은 몇 년동안 조부는 점점 심해지는 옹정제의 꾸짖음과 지적을 받아야 했다. 전제 제도 하에서 일단 최고 통치자인 황제가 한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마 모두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재앙이 닥쳐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과연, 옹정5년 즉 1727년, 이미 예상했으나 피할 수는 없었던 재난이 결국 들이닥쳤다. 이 해 11월, 산동지방의 색릉액(塞楞額)이라는 지방 행정관이 옹정제에게 한 사건을 보고한다. 조부가 북경으로 구매한 물품을 운송하는 길에 역참에서 소란을 피우고 재물을 강탈했다는 것이다. 옹정은 보고를 받고 즉시 조부의 관직을 박탈하였다. 얼마 후, 그는 또 조부에게 세 가지의 새로운 죄명을 부여했는데 : 행동이 단정하지 못하다, 직조의 회계 비용의 부채, 그리고 집안 재산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그는 즉시 사람을 파견하여 가산을 차압하고, 조부의 전 재산과 집안의 노복까지도 몰수했다. 이것은 옹정제의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이것은 분명 철저하게 사전에 계획되고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몰수하여 획득된 결과는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알고 보니 조씨 집안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유하지 않았고 그 재산은 당시 부유한 다른 집과 비교해보면 심지어 궁상맞다고까지 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부채가 생긴 이후, 조인 부자 3인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종 이 밑 빠진 독과 같은 부채를 메울 수가 없었다. 오래된 빚을 처리하고 나면 새로운 빚이 늘어있었다. 부채가 결국 이 화려했던 가문을 쓰러뜨린 것이다. 사람들이 깊에 생각해 볼만한 것은 만약 재산이 몰수되는 이러한 액운이 없었더라도 조씨 가문은 이미 거의 쇠락했다는 것이다. 단지 표면상으로만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을 뿐, 내부의 운영은 상당히 곤란한 지경이었다. 그토록 흥성했던 한 가문이 결국 이렇게 비참한 방식으로 끝장이 나고 말다니, 이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여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옹정황제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조씨 가문을 싫어했을까? 옹정제 본인이 명확하게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그저 자료들을 보고 귀납적인 분석을 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주장을 내놓고 있는데 하나는 정치적 원인설이다. 조씨 가문이 옹정제와 그의 형제들이 황위를 다투는 투쟁에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옹정제와의 관계가 잘 처리되지 않아서 결국 옹정이 즉위하고 나서 정치적 보복을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경제 원인설이다. 조씨 가문은 사실 매우 심각한 부채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옹정제는 조씨 가문에 어떤 인간적 감정의 교류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법대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조씨 가문에 엄중하게 죄를 물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료가 없으니 현재로서는 모든 사람들이 확실하다고 인정할 만한 해석은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어떻든지 간에 한 가지는 부정할 수 없이 확실하다. 바로 옹정제는 부친인 강희황제와 같이 조씨 가문을 돌보거나 편애하지 않았으며 그가 등극한 이후에 조씨 가문에 대한 공격을 한 걸음씩 실행에 옮겼다는 것과, 그것이 이 가문이 다년간 고심하여 이룩한 영화와 흥성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三 편 끝)

 

 

 

 cb7337e29cccae493512a84852c52b93_151957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mail : mvqblo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