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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꼼꼼히 읽기 | [조설근 평전](5)1.친화이 강의 풍류가 과거의 영화를 노래하네(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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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나비 작성일18-03-05 09:20 조회4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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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한 사람이 도를 얻으면 닭과 개도 승천한다.' 이 말의 의미는 한 사람이 훌륭하게 된다면 그의 친구와 가족들도 모두 함께 좋은 점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한 사람이 불행한 일을 만나게 되면 그의 친구와 가족 역시 함께 재난을 겪게 된다. 조부(曹頫)가 얻은 죄는 조씨 가문 전체에게 중대한 타격을 주었다. 가산 몰수 후, 옹정황제는 조씨 가문의 모든 가산과 노복들을 새로 강녕직조를 맡게 된 수혁덕(隋赫德)이라는 자에게 하사했다. 조부와 그의 가솔들은 (물론 어린 조설근도 그 중에 있었다) 처연히 고향인 남경을 떠나 북경으로 쫓겨 갔다. 그들은 북경 숭문문(崇文門) 밖의 한 마을에 정착한다. 북경에서 남경으로, 남경에서 다시 북경으로, 마치 한 바퀴를 돌아온 것 같다. 하지만 풍경은 여전하나 사람은 달라졌다. 모든 것이 변했다. 안락하고 부귀한 생활은 이미 돌이켜보기도 괴로운 삶의 기억일 뿐이기에 조부와 그의 집안사람들은 마음의 태도를 바꾸어야만 했다.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생활, 다시 말하면 간난신고로 가득하며 존엄이라고는 전혀 없는 하층민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것은 잠시 동안의 시련이 아니며, 길고 영원한 고난이었다. 조새(曹璽)가 기쁜 마음으로 북경을 떠나던 당시, 그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자손이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그에게 많은 환상과 동경을 가져다주었던 오래된 수도로 돌아오리란 걸 말이다. 삶은 이토록 잔혹하다. 당신에게 수많은 것들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다른 쪽에선 또 수없이 많은 것들을 앗아가 버린다.

 

고대 중국에서는 각 왕조가 모두 전제제도를 실시했고, 개인의 명운은 황제의 손아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높은 불확실성을 내포한 것이다. 조씨 가문과 비슷한 명운을 걸었던 가문이 매우 많았다. 우리가 특별히 조씨 가문에 집중하는 이유는 이러한 운명과 고난이 한 명의 위대한 작가를 낳게 했고,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한 가족의 흥망성쇠와 한 명의 위대한 작가, 또 뛰어난 한 작품을 연결해서 놓고 보면 이 모든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조설근은 <<홍루몽>>에서, 개인이 겪은 고난을 창작의 소재로 변화시켰고, 개인의 불행을 인류 공통의 체험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가족에 대한 관찰과 그의 체험을 자신의 소설에서 펼쳤고, 그것을 작품의 핵심 내용으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홍루몽>>은 가족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소설 중 애정에 관한 묘사에만 집중하고 가족에 대한 부분을 묘사한 것에는 관심을 안 둔다. 또 많은 정치적 측면의 독해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실, <<홍루몽>>에는 두 가지의 큰 줄거리가 있는데 하나는 가보옥과 임대옥 등 인물을 핵심으로 하는 청춘의 애정을 다루는 줄거리이며, 다른 하나는 가족의 명운을 핵심으로 하는 흥망성쇠의 줄거리이다. 전자는 표면에 드러난 것이고 후자는 뒤에 가려진 것인데 많은 부분 배경으로서 묘사되고 있다. 만약 가족에 관한 묘사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작가의 고심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전면적이고 심도 깊게 작품을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이 경험한 생활의 이력을 소재삼아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것, 이것은 중국 고대의 통속소설에서는 매우 보기 드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소설들은 대부분 고대 역사 속의 고사에서 소재를 취해서 근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금병매>>같은 소설도 역시 가정생활의 묘사를 중심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대부분은 허구의 사실들을 쓴 것이며, 실제상황이나 자전적인 색채는 거의 없다. 조설근처럼 이렇게 자기의 가족생활을 원형으로 하는 작품은 매우 드문데다가 뛰어난 사실묘사가 성공적으로 더해져, 그 핍진한 예술적 효과는 독자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작품과 현실을 혼돈하게 만든다. 그러니 독자는 작품 속의 인물과 사건이 결코 허구적 상상에서는 나올 수 없다고 여기면서 분명 실재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조설근은 가족에 대한 두터운 정을 표현했다. 작품은 가씨 집안에 대해 쓰고 있지만 우리는 분명히 조씨 가문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지금 우리로선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조설근은 가보옥 등의 인물을 통해서 가문에 대한 긍지와 아쉬움을 표현했다. 결코 일부 연구자가 말하듯이 그가 가문이 일찍 망하기를 바랬으며 가문의 멸망을 자초하는 역할을 맡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는 가씨 집과 같은 이런 가문이 영원히 지속하길 바랬지, 집안을 망치는 자식 몇몇 때문에 끝장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물론, 가족에 대한 이런 두터운 정이라는 것은 그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고 있어서,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는 것이다. 조설근은 가씨 집안의 가족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그 가족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가족으로서의 책임을 지는 것을 거부하고,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가족일원에 대해서, 조설근은 매우 불만족스러워하며 혐오감까지도 드러내고 있다. 작품 중에서 그는 일련의 그러한 인물 군상을 만들어냈는데 가련, 가진, 가용 등이다. 이런 인물들은 가족으로부터 엄청난 잇속을 챙기면서도 모든 가족을 망가뜨렸다. 그들은 가문의 패망의 주범들이다. 작품은 수많은 사건을 통해 조설근의 이런 생각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흥성했던 한 가족이 쇠망을 향해가는 전 과정을 우리에게 전면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위로는 가족의 주요 구성원과 아래로는 하층의 하인들까지 모든 인물들이 전부 망치는 자들이다. 정도상의 차이가 있을 뿐, 이 모든 파괴의 행위들이 모여서 하나의 강력한 힘을 이뤄 오랫동안 흥성했던 한 집안을 철저하게 때려 부순다. 조설근과 관련된 소설의 결말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여전히 알 수는 없음에도,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를 낙담시키고 절망케 한다. (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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